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 자동차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 엔진도 타이어도 살펴야 한다. 출장을 가기 전에 카센타에 먼저 들를 것이다. 출장을 가서도 그곳 어디에서 차를 수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잔을 기울인다. 이번 출장까지는 다녀오고 나서 차를 점검해도 될까. 빛이 잔에 모여들면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 이유는 모른다. 길을 나설 때마다 그럴 뿐이다.
이번 출장은 예정에 없던 것이다. 출장은 계속 혼잣말을 하게 만든다. 출장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방향도 없이 도로를 따라 달아나게 한다. 출장을 가겠다고 해놓고 무작정 달린다. 도로에 쏟아지는 차들과 나란히 달린다. 출장과 상관없이 라디오를 튼다. 음악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신청한 필립 글래서를 듣는다. 잠시 차를 멈춘다.
길 한복판에서 단조로운 머리키락을 묶는다. 웬일인지 지금까지 전혀 달려온 것 같지 않다. 출장을 가는 것 같지 않다. 불확실한 핸들을 붙잡는다. 달리지도 않고 달아나는 것일까. 달아나는 것 같지도 않다.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본다. 도로 한편에 어떤 누워버린 사람이 있다. 자세히 보니 그는 천천히 조금씩 위치를 바꾼다.
모든 차들이 그 사람을 피해서 간다. 도로에서는 누구나 운전에 열중한다. 도로에서는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이수명 시인〉
△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붉은 담장의 커브'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마치' '물류창고' 등
사진 〈Bing Image〉
서울 그리고 겨울
이 수 명
어디서 주워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돌 하나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
빛을 들이고
오후 내내 집에 있는 날은 돌을 센다.
하나밖에 없는데
하나 둘 셋 넷, 다시 처음부터 하나 둘 셋 넷,
쓰지 않는 형형색색의 펜들이 펜 통에 가득 꽂혀 있다.
잉크가 말라 나오지 않는 펜을 쓰레기통에 던진다.
하나 둘 셋, 그러다 네 번째 펜은 쓰레기통 옆으로 떨어진다.
통 안으로 떨어져도 밖으로 떨어져도 던지기는 계속된다.
빛이 더 퍼져 나가면
펜들이 자꾸 통 밖으로 날아가 떨어지면
집이 조금씩 부서질 것이다.
집은 실제로 움직이지도 않고 부서진다.
밖에는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