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29) - 아침에 안개가 깔려 있다.
으시시한 한기가 느껴진다.일기예보는 최저 6도에서최고22도를 나타내는데,체감 온도는 -2도 정도로, 노출된 손이 시렵다.오후에는 여름같은 더위가 될텐데.
오늘은 Palas de Rei 라는 작은 마을로 향한다.인구 2,000명도 안 되는 마을인데,8세기 당시 지배자가 살았다는 전설적인 곳.해발 400미터에서 700미터까지 오르고,다시 600미터 정도에 이르는 26km 길 로서,7시간 정도 소요된다.
어제부터 늘어 난 순례자로 번잡할 거 같아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선다.안개로 덮인 낯선 길을 조심스레 더듬어 간다.
2시간 만에 오아시스같은 카페가 보인다.몸도 녹이고, 조식도 하려고 들어선다.벌써 20여명이 앉아 있고,여기 저기서 "Buen Camino~!!" 소리가 들린다.
거의 한달 동안 오다 가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게 되는 순례자 동지(?)들이다.
브라질 부부가 반갑게 달려와 서로 포옹을 하고,이태리 여자도, 오스트랄리아 남자도 가볍게 목례를 나눈다.
'걸음걸이가 빠른 한국의 할배 노인'이라고 알려 져,사진도 찍자고 하고, 한 마디씩 하고 간다.
"Incredible ~!(못믿겠다)"
"Amazing~!(놀랍다)"
"Admire(존경스럽다)" 등 한마디 하며,
75세가 되면 자기도 나와 같이 걸을 수 있기를 희망한단다.30일 가까이 고생하며 여기까지 버티어 왔는데,기분이 좋다.
가는 길에,오스트리아 여자와 대화를 한다.자신은 영화계에서 의상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며 여행을 즐겨 한다고.(나이54세)오징어 게임도 감명깊었고, 넷플렉스에서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열심히 본다고.
딸이 18세로 고등학교 졸업하고,대학에 가기까지 1년의 공백이 있는데 동남아로 여행가겠다고 하여 보냈다며 지금쯤 태국에 가 있고,베트남, 라오스, 말레이시아를 다니며 6개월을 혼자 배낭매고 다닌다고 한다.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하는데, 부모가 어쩌겠냐며 건강하게 잘 다니기를 바란다고~.
중국 신장쪽에 출장 갔을 때,네델란드 여대생 혼자 다니고있는 것도 놀라웠고,아프리카 오지에 몇개윌씩 혼자 배낭 매고 여행 다닌다는 영국 여자(대학윈셍 ),수년간 사귀던 남자 친구와 이별하고, 1년 동안 혼자 여행이나 다니겠다며,키르키스탄에서 만났던 독일 여자 가 생각난다.
딸들이 유럽여행 가고 싶다고 했을 때,여자가 위험하게 어디를 나가려고 하냐고 핀잔을 주고 막았던 기억이 나서 후회 막급하다.
그 때 세상을 다니라고 권장했어야 했는데,골통 보수에 갇혀 있었던 것이라고 반성도 해 본다.
오후가 되니,다시 사람들이 붐빈다.진흙 길도 많고, 탁 터진 오솔길도 있고,수목이 울창한 아름다운 곳도 있고,동해 바다같은 짙은 파란 색의 하늘도 보인다.
오르막 경사진 길도 완만하여,산책이나 트레킹하기에는 편하다.한국의 둘레길을 걷는 듯 착각도 한다.
지나는 길마다 초식 동물(소나 말)들이 배출한 분뇨 냄새가 시골 길 걷던 옛날을 회상하게 만든다.
더위에 훌렁 상믜를 벗고,브라자 차림으로 변한 여자들도 늘어난다.
산티아고 까지 남은 거리가 자꾸 줄어진다.68키로.3일이면 도달한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더 걷고 싶은데...
산티아고의 매력 속으로 자꾸 빠져 들어간다.
첫댓글 저와 양수석은 경동 선후배 5명이서 버그내순례길을 걷고있습니다.
충남 합덕성당에서 신리성지까지 다녀오는 길입니다.
비와 안개의날이네요.
와,,포장도로도보이고,,고지가 바야흐로 눈앞이네요..좋습니다.
대단한 노익장입니다
지하로 스며든친구들도
많은데 800키로에 더걷고싶은 아쉬움이
들다니요...암튼 부럽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