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사회적 의무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기본적으로 사회가 제공해 준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아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돌려줄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사회적 의무'의 범위를 모호하게 설정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사람은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씨가 유명하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이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한다. 일반인들이 갖는 도덕적 의무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갖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뜻한다. 고대 로마의 사회의 지도층 들이 보여 준 높은 도덕심과 공공정신에 기원을 둔다.
현재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유럽 근대 국가의 기득권층들이 보여 준 높은 공화국 정신에 바탕을 둔 높은 사회의식을 뜻한다.
18 세기 부터 유럽의 근대 국가 형성과정에서, 봉건 귀족들과 사유재산이 바탕이 된 자유시민 자본가들의 권력 투쟁이 유럽 절차적 민주주의의 형성과정과 그 괘를 같이 하고 있다. 그 흔적은 유럽 의회의 상 하 양원 제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상원은 귀족들의 대표였고 하원은 자유시민 즉 자본가들의 대표였다.
그런데,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최악이었다. 오히려, 귀족 또는 지방 지주들이 권력을 잡은 18 세기 이전의 영국에서의 구민법 빈민법 구직법 등 노동조건에 있어서 더욱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19 세기 들어 와 고전적 경제학자(멜서스, 리카도, 스미스 등)들의 등장으로 사회보장 제도는 최악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들의 주장은 빈곤이야 말로 최선의 노동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18 세기 이전의 빈민법이나 구직법 또한 빈민 노동자들에게 절대로 유익한 법은 아니었다. 오히려 스피넘랜드법으로 대표되는 사회보장제도는 노동자들에게 최하의 생활환경을 강제했으며 결과적으로는 자본가들에게 철저히 유리한 제도가 되고 말았다.
즉, 유럽의 복지제도는 철저히 자본가와 귀족들의 권력투쟁과 자본주의를 견고히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의미는 현재도 같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또한 유럽이 근대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의 산물이다. 그람시에 의하면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유럽 귀족들과 자본가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대중들의 혁명을 잠재우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비유 하자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사회 지도층들이 울며 겨자를 먹는 셈이고, 사회보장제도는 악어가 하품을 하기 위해 입을 너무 크게 벌려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는 악어의 눈물 에 버금가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국의 지도층 들이다. 무슨 배짱으로 저토록 당당한지. 국가 안보회의 당사자들의 대다수가 군대 면제라니. 역시, 한국은 대단한 나라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