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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 있다.
나이 50이 넘어 운동 좀 해보려고 탁구를 선택하고, 탁구장에 등록하고, 장비를 갖추고 탁구장에 처음 출근하는 날. 탁구 그까이꺼 뭐 대충 두세 달 치면 고수 되는 거겠지 하며 들어선 탁구의 길.
음, 어디 실력 발휘 좀 해볼까 하며 매의 눈으로 상대를 고른 후, 호기롭게 만만해 보이는 누님들에게 게임을 청해보는데. 이럴수가. 내 비록 탁구를 배운 적은 없지만 그래도 어릴 적 동네 골목에서 최고수였으며, 왕년에 군대에서 대대 탁구왕까지 한 사람인데, 이런, 탁구장 초보 사모님들에게 완패를 당하다니. 완패를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게임 자체가 안 된다는 충격 아닌 충격. 그때서야 현실에 눈이 떠지고, 나를 압도하는 누님이 여자 6부라니. 그럼 남자 1부는 어느 정도란 말인가.
탁구장에서 남자1부를 보기는 하늘에 별따기, 탁구장에 어쩌다 3부 선수라도 출근한 날이면 수많은 탁구장 선배님들은 줄을 서서 게임을 청하는데.
드디어 현타가 찾아오는 것인가. 탁구라는 거대한 무공의 세계에 들어선 것을 직감하고, 무공을 배울 고수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 거려보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아 탁구장 선배님들 대부분은 나를 보면 피하는 느낌. 내가 사회에서는 지점장인데, 선생님인데, 중령으로 전역했는데, 부장인데, 작은 사업을 하는데, 탁구장에서는 그저 초보, 모든 것이 리셋 되어버리는 마법의 공간, 탁구장.
어쩌다 맘 좋은 누님이 일이십 분 동안이나 공을 받아주시는 은혜를 베푸시면, 감사 또 감사.
그때 둔부를 지나 머리를 스치는 생각. 배워야 하는 구나. 그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는 구나.
드디어 레슨을 받기로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탁구를 배우기 시작하지만, 도무지 늘지 않는 탁구. 내가 무슨 자율 주행 청소기인가. 제자리 다시 제자리. 도대체 어찌해야 탁구 실력이 는단 말인가.
시집살이, 아니 군대 신병 생활 못지않게 매섭다는 탁구장 초보 시절을 몇 년을 겪어야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단 말인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암흑, 절망, 절망.
내 기필코 초보를 벗어나리라는 일념으로 열심히 레슨 받고, 살갑게 대해주는 누님과, 간 혹 한 게임 해주는 고마운 동생들에게 밥과 술을 사면서 귀동냥으로 배우고, 유명하다는 탁구 사이트에 가서 이론 공부도 하고, 너튜브 동영상도 열심히 보며 무림비급을 얻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공청석유를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공력 유지를 위해 부부관계까지 멀리하는 수련 아닌 수련을 해보지만, 차곡차곡 느는 건 실력이 아닌 좋다는 라켓들과 잘나간다는 러버들과 형형색색의 유니폼들.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꾸며 탁구장 초보 생활 6개월, 드디어 레슨은 포핸드 드라이브로 넘어가고, 탁구의 꽃, 탁구장 고수들이 보여주는 그 환상적인 드라이브를 이제 배우는가 싶은데, 이런, 뭐 이렇게 위력이 없단 말인가. 홈런 아니면 네트행. 발로 지면을 박차고, 허벅지 근육과 복근을 사용하며 몸통 회전 후 잡아채며 스윙하라는데 위력적인 드라이브는 먼 이야기고 그저 무릎, 허리, 어깨만 아플 뿐, 여전히 공은 비실비실.
탁구 고수가 되기를 포기할까 생각도 해보지만, 투자한 시간과 돈, 노력이 얼마인데, 그리고 보아하니 그 동안 탁구장엔 나보다 늦게 등록한 초보들도 몇 명 있는지라, 이제 그들을 보노라면 말년 병장이 갓 전입 온 이등병 보는 느낌이랄까. 뭐, 종종 공을 받아 줄 수도 있는 여유도 생긴, 나는 진정한 탁구 동호인.
그렇게 몇 개월을 포핸드 드라이브를 배우고 이제 어느 정도 포핸드 드라이브 감을 잡았다 싶을 때 만난 하회전 공에 대한 포핸드 드라이브. 와우, 이건 거의 에베레스트 수준인데. 온 힘을 다해 치는데 왜 공은 네트행인가.
끌어 올려서 치라는, 잡아서 치라는, 기다렸다가 치라는, 두껍게 치라는 그런 말을 수없이 듣지만, 공은 여전히 네트행. 힘은 엄청 들고, 땀은 샘솟고, 공은 여전히 네트로,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힘이 부족한 것인가. 어떻게 해야 지면을 박차고 허벅지, 허리를 더 잘쓰며 스윙할 수 있단 말인가.
많은 초보 중년 동호인 중에는 안되면 되게 하라는 말을 안되면 힘을 더 써라와 동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상당수 있는 듯.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탁구 기술은 어렵지 않다. 다만 위력이 없을 뿐. 그러므로 1. 요령, 2. 숙달, 3. 위력, 4. 응용. 그러므로 한마디로 처음에 기술을 익힐 때는 그저 ‘힘 빼고 톡 쳐라’, 요령을 터득하라는.
잘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잘 되면 못할 사람 없을 것이고, 힘으로 해결해서 될 것이면 힘쎈 사람이 최고수가 되어야 마땅한데, 주위를 보라. 탁구 잘하려는 욕심만으로 고수가 되던가? 힘만 쎈 사람이 최고수던가? 무공은 힘을 더 써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초보의 실력 향상은 더 빠를 일이다.
제대로 훈련을 해야 고수의 문이 열리는 것, 안된다고 힘을 더 쓰는 것은 지름길을 버리고 먼 산길을 택하는 일이다. 요령을 터득하고, 터득한 요령을 바탕으로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면 위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하회전 공에 대한 포핸드 드라이브가 안 되면 그건 어려운 기술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특히 하회전 공에 대한 포핸드 드라이브를 연습하면서 ‘끌어 올려 치라’는 말을 듣는 순간, 초보 중년 동호인들은 힘을 더 써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십상이다. 이건 정말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기 위해 네팔행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일이다.
태극1장 동작을 외우는 일은 그저 설렁설렁 움직여도 그만이다. 하회전 공에 대한 포핸드드라이브를 배우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힘을 써서 해결하려는 것은, 태극1장 동작을 외우려는데 온 힘을 다해 동작을 연습하는 것과 비슷하다. 순서를 외우는데 무슨 힘이 필요한가. 마찬가지로 요령을 익히는데 힘은 필요치 않다.
처음엔 그저 힘 빼고 톡 쳐서, 하늘로 보내면 충분하다. 하회전 공에 대한 포핸드 드라이브 정복의 첫 단계는 별 힘 들이지 않고 공을 하늘로 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온 힘을 다해 한 방으로 치는 연습은, 단기간에 성취하면 좋으련만, 내 경험으로, 먼 길이다. 먼 길 트레킹을 좋아하는 초보 중년 동호인이라면 말리지는 않겠다. 어차피 취미로 하는 거니까.
하회전 공에 대한 포핸드 드라이브, 1단계는 힘들이지 않고 톡 쳐서 하늘 높이 보내는 연습을 통해 공을 네트 위로 적당히 띄우는 요령을 터득하면 충분하다.(별 위력이 없어도 괜찮다.) 이렇게 해서 100% 요령을 터득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2단계는 자유자재로 원하는 곳으로 보내기, 3단계는 공의 궤적을 낮추며 공의 스피드를 높여가기. 4단계 간결한 스윙으로 가다듬어서 공의 위력을 높이기. 5단계 한 방 드라이브 완성하기.
궁금증이 많은 초보 중년 동호인을 위해, 스스로 어느 정도 위력으로 드라이브를 구사할 수 있는지 간단하게 테스트 해볼 수 있는 방법을 남겨둔다.
테이블 앞에 서서 공을 던져 적당히 테이블에 바운드 시킨 후 테이블 맞고 올라오는 공을 냅다 스매시 해보면 그 공의 속도가 포핸드 한 방 드라이브 속도와 비슷하다. 사소하고 간단하게 스매시 해도 공의 속도는 매우 빠를 것이다.
해보면 알겠지만, 어마 무시할 것이다. 그 누군가의 포핸드 드라이브 속도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한 방 드라이브를 원하는 초보 중년 동호인이라면 이 연습을 통해 한 방 드라이브 요령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매시와 조금 다르게 해보자. 스윙은 아래에서 위로, 그리고 조금 앞으로, 통상의 스윙을 하되, 손목을 사용하여 라켓 각을 숙이는 과정(?)에서 공을 치는, 숙이는 느낌(?)으로 공을 치면 공에 전진회전이 더해지지 않을까? 가볍게 사소하게 스윙해도 공은 빠를 것이다. 글로 전하는 탓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틈이 있을 것이나, 이 부분은 스스로 수련하며 터득할 일이다. 자신 만의 노하우를 터득하는 일이니 그 만큼 기쁠 일이다.
누군가 단 한명의 초보 중년 동호인이라도 깨달아서 크게 웃게 된다면 사소한 이야기를 이리 길게 이야기하는 나의 수고로움은 보답을 받은 셈이다. 포핸드 드라이브를 반월참(半月斬)이라 칭한 이유, 손이 눈보다 빠르다고 표현한 까닭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걸 하며 놀랄 것이다. 그리고 긴 시간을 헤메이고도 포기하지 않은 자신을 대견스러워할 것이다. 인연 있는 누군가가 깨달았다면 이제 고수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탁구 수련이란 요령이라는 대지 위에 위력이라는 꽃을 피우는 과정을 여행하는 일이라고.
여행자 모두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첫댓글 재미와 유익한 내용을 동시에 갖춘 좋은 글 잘봤습니다 ^^
마지막 사부님 말씀이 팍 와닿네요!
아침부터 유쾌한글 잘읽었습니다ㅎㅎ
초보시절이 생각나는글이네요
무엇이든.. 지루함ㅡ새로움ㅡ익숙함ㅡ지루함ㅡ새로움ㅡ익숙함ㅡ지루함 의 연속이지요.. 탁구도 그렇게 실력이 늘어요.
감사
이미 고수이심
육십갑자의.내공이 진하게.느껴지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고수가 됐나요?
한 탁구장 고수,
한 도시 고수,
전국 오픈 고수?????
정말 주옥같은 내용이 담긴 글입니다.
한참을 헤매다 얼마전 몸소 체험한 내용들을 어찌 이리 명쾌하게 짚어주시는지..
좋은글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백핸드 관련 내용을 다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목빼고 기다리겠습니다.^^
요령이먼저다라는말에 공감합니다. 일단 안정적으로 넘기고봐야죠. 재미난글 감사합니다.
떨어지는 공을 힘을 완전히 빼고 연습중이었는데 방향이 맞는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재밌고 유익한 글 감사드립니다.
다른 글도 부탁드립니다^^
20년 수련 고수의 내공이 느껴지는 글이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