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孤高)
북한산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밤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나 인수봉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水墨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신록이나 단풍,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
눈이라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積雪)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지어는 장미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하는
그 고고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백운대나 인수봉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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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으며 오랫동안 생각해 본 일이 있다. 고고高란 말. 왜 고고일까? 외로울 고에 높을 고高 외로우면 누구나 높아지는 것일까? 반대로 높아지면 외로워지는 것일까?
어쨌든 고고, '세상일에 초연하여 홀로 고상하다'는 뜻이다. 사람이 이렇게 살기 쉬울까? 말처럼은 쉽사리 되지 않을 것이다. 우선은 자기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서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뭔가 달라야만 그가 고고한 존재가 된다. 남들이 다 그렇다 해서 그 길로 몰려가는 것은 결코 고고한 삶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