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퇴역장성 단체와 MB정부의 교묘한 선거개입
(블로그'사람과세상사이' / 오주르디 )
6.15남북공동선언을 “6.25동란 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고 말하고,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종북세력으로, 민주당 문성근 최고의원의 ‘국민의 명령 백만 민란운동’을 간첩 세력의 책동으로, 유신독재에 대한 반대는 곧 종북이자 친북이라고 주장하는 단체가 있다.
육군 대장 출신 ‘성우회’와 중장 출신 ‘국발협’
편향돼도 지독하게 한쪽으로 쏠린 단체를 국방부가 ‘안보장사’를 시키며 지원하고 있고, 이들 단체들은 정권과 여당후보를 지지하는 정치행보를 보이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국방부는 군 장성 출신이 주축인 이들 단체와 정식 외주계약을 맺고 예비군 안보강의를 모두 맡긴 상태다. 예비군 안보교육과 관련해 2012년 한 해 동안 국방부가 설정해 놓은 교육횟수는 7711회. 이중 6439회를 군 퇴역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가 설립한 ‘성우안보전략연구원’(성우연)에게 위탁했으며, 나머지 1272회는 육군 중장 출신 박승춘이 설립한 ‘국제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에 맡겼다.
노무현 정권 때는 국방부 표준교안에 의거 해당부대 지휘관이 담당해왔던 안보교육을 이들 단체의 강사가 맡아 실시하게 된 건 2009년부터다. 성우회 측이 국방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국방부가 이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안보강의 위탁’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2월 국방장관을 지낸 이종구 당시 성우회장은 <월간중앙>과 인터뷰에서 “재원 마련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 중”이라며 “국방부에 지원요청을 했고, 국방부에서도 이를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힌 바 있다.
안보교육인가, 여당 지지인가?
그 직후 국방부와 성우연 사이에 교육 위탁 계약이 체결돼 2009년 한 해 동안 1774회에 이르는 위탁교육이 있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2억6천만원을 강사료로 지급했다. 이후 교육횟수와 강의료가 5배 정도 급증한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전 국민 안보의식 강화’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이같은 지시는 예비군 안보교육 뿐만 아니라 민방위훈련에도 영향을 줬다. 동영상으로 대체해오던 안보강연이 부활돼 거의 모든 지자체가 안보교육 강사료를 지급하고 있는 상태다.
성우회는 육해공군 장성 출신들이 모여 1989년 설립한 단체로 초대 회장은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었다. 2005년에는 성우연의 전신인 성우안보연구소를 출범시켰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종북좌파로 규정하는 등 극우성향의 행보를 보이는 단체다. 성우회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소개 글의 일부다.
“안보 포플리즘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한미 안보환경과 대한민국은 적이요 북한은 우방이라고 외쳐대는 종북, 전교조가 활개치고 각종 군부대 이전 및 주둔 결사반대를 위한 이마의 붉은 띠, 죽창, 쇠파이프, 혈서가 동원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념도 사상도, 국가안보도 자유민주체제도 종북 세력들에게 유린당하고....”(성우회 홈페이지)
노무현은 김정일과 ‘한패’? 615남북선언은 ‘사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김정일과 ‘한패’라고 규정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한미연합사 해체를 반대하는 ‘1000만인 서명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안보를 국가의 기본전략이 돼야 한다면서 그들의 주장이 정권에 따라 바뀌지 못하도록 헌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2006년 6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을 극력 저지하는 집회를 개최한 바 있다. 현역시절 입던 군복을 입고 DJ의 방북 계획을 강력하게 규탄했던 이들은 “방북은 국론 분열을 초래할 뿐 아무런 의의가 없다”고 외쳐댔다. 6.15남북공동선언을 ‘6.15사변’으로 규정하며 “6.15가 6.25보다 더 무서운 사변”이라고 주장했다.
<전작권 환수에 격렬히 반대하는 성우회원들>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가장 적극적으로 정부입장을 비호하는 등 정치적 쟁점인 사안에 대해 정권 편향적인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따른 화답일까. 지난 2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은 성우회 창립 23돌 기념식에 “성우회가 일치단결해 국가 안보태세를 강화하는 데 적극 앞장서 달라”는 내용의 축하 전문을 보내기도 했다.
<성우회 23돌 기념식 / 출처: 국방일보>
보훈처와 민간조직인 국발협의 합작품 ‘반유신은 종북’
성우연과 함께 예비군 안보교육을 독식하고 있는 국발협의 회장 박승춘은 합참정보본부장(중장)을 지내다가 퇴역한 인물로 2004년 한나라당(당시 박근혜가 당 대표)에 입당해 국제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2008년에는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한바 있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국가보훈처장에 발탁된다.
국발협의 정치 편향은 더 노골적이다. 국가보훈처라는 국가조직과 박승춘이 민간인 신분이었을 때 설립한 국발협이라는 사조직이 동원된다. ‘안보교육’을 빙자해 교묘하게 선거에 개입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3일 국가보훈처 국감에서 ‘반유신은 곧 종북’이라며 민주화 운동을 폄하한 DVD가 논란이 됐다. ‘국가 정체성 확립’이라는 주제의 11편짜리 DVD 1000세트를 만들어 일선학교와 시민단체에 배포한 곳이 바로 국가보훈처라는 점이 충격적이다. 4대강사업과 박정희 업적을 ‘신화’라고 찬양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북세력은) 유신체제 하에서 사회주의 건설 목표를 숨긴 채 반유신ㆍ박독재 민주화 투쟁을 빙자해 세력확산을 기도했다....2000년대에는 종북세력이 제도권과 정부 내부에 침투해 친북사회주의 활동을 민주화ㆍ평화애호 운동으로 미화했다.”(국가보훈처가 제작배포한 DVD에서)
올해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박승춘은 “2040세대의 안보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말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안보교육을 빌미삼아 새누리당이 취약점인 20~40대 계층에게 보수우파적 시각을 주입시키려는 정치공작으로 보인다.
정부부처도 특혜 줘, ‘안보’ 가장한 ‘선거개입’
보훈처 지청과 행안부, 국방부 등이 국발협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일부 보훈지청은 관할 시구청에 공문을 보내 민방위훈련에 안보강연을 포함하도록 지시하며 국발협 소속 강사를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부는 지난해 2월 전국지자체에 공무원과 국민을 대상으로한 ‘안보교육 강사 풀’을 통보하면서 등록된지 6개월 밖에 안 돼 아무런 실적이 없는 국발협 강사 다수를 50명의 우수강사풀에 포함시켰다.
퇴역 장성들이 만든 극우단체의 뒤를 정부가 봐주면, 이 단체들은 안보교육을 빙자해 새누리당의 취약점인 20~40대의 보수우익화를 시도하는 식이다. 교묘한 정치공작이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다.
공권력을 이용해 특정 이념과 특정 정당의 입장만을 교육하고 이를 위해 특혜를 제공하는 건 선거개입 행위다. 성우연과 국발협 등 두 단체와 국방부와 보훈처, 행안부 등이 개입된 위법적인 정치개입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