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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신축교안 120주년 기념 심포지엄 (2)
'이재수의 난'이라고 불리는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았습니다. 수많은 희생자와 제주 지역사회, 교회 사이의 갈등을 불러온 신축교안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제주교구와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함께 심포지엄으로 짚어 봤습니다. 심포지엄 기사를 2회에 걸쳐 싣습니다.
5월 28일 제주교구와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함께 마련한 신축교안 120주년 기념 심포지엄 “신축교안, 기억과 화합”에서는 “신축교안에 대한 교회 내 인식 형성과 변화, 대중문화에서 드러난 신축교안의 양상, 2003년 미래 선언의 의미와 향후 기념사업의 방향” 등 역사, 문화, 사목적 방향에서 신축교안을 바라봤다.
먼저 문창우 주교(제주교구장)가 신축교안의 개요와 오늘 다시 물어야 하는 신축교안의 의미를, 양인성 연구원(한국교회사연구소)이 신축교안에 대한 교회 내 인식 형성과 변화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진 발표와 토론에서는 “대중문화 속에서 드러난 신축교안”, “2003년 미래선언의 의미와 향후 기념사업의 방향”을 다뤘다.
토론에는 박찬식 씨(전 제주학연구센터장), 조성윤 명예교수(제주대 사회학과), 고명철 교수(광운대)가 나섰다.
앞선 발제에 이어 강옥희 교수(상명대)는 대중문화 속에서 신축교안을 어떻게 그렸는지 살폈다. 대상 작품은 현기영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 영화 '이재수의 난', 마당극 '이실 재 직힐 수'로, 이는 모두 현기영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강 교수는 “그간 진행된 역사학계와 천주교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학문적 조사, 연구 결과보다 대중에게 역사적 실상을 훨씬 가깝게 바라보고 성찰하게 하는 대중문화 작품 속에서 어떻게 신축교안이 형상화되고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는지 살피고자 한다”고 목적을 밝혔다.
‘교안’이란 천주교회가 지역 사회를 대상으로 선교하는 과정에서 관, 토착 지배층, 일반인들과 문화, 사회적 갈등을 겪고 물리적 충돌에서 발전한 외교적 사안을 칭한다. 강 교수는 ‘교안’의 이러한 의미 위에서 신축년의 제주 민란을 분석했다.
신축교안을 다룬 유일한 문학작품이자, 마당극, 영화의 원작인 “변방에 우짖는 새”는 1981년부터 2년간 잡지에 연재되다가 83년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구한말 제주에서 일어난 ‘방성칠의 난’(1898)과 ‘이재수의 난’(1901)을 소재로 두 민란의 발생과 원인, 결과를 형상화한 소설이다.
"구마술 신부는 갓 서른 난 혈기 방장한 청년이었다. 활동적인 구 신부를 맞이하자 교당 측은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교리 해설만으로는 도무지 신자를 모을 수 없음을 깨달은 두 신부는 이때부터 전교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우선 최 선달과 평소에 친분이 있는 봉세관 강봉헌과 손을 잡아 봉세관의 마름으로 교인을 쓰도록 한 것인데, 마름이 되면 제집 몫의 세금은 모두 면제받는 큰 혜택이 있었다."(“변방에 우짖는 새”, 208쪽)
한국명 구마슬로 불렸던 프랑스인 구 신부는 1900년 5월 4일 제주 본당에 부임한 라쿠르 신부다. 당시 제주민에 처한 과도한 세금의 실상을 잘 알았던 그는 새로운 전교 방식으로 세금 문제와 선교사의 특권을 전교 방식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러한 전교 방식은 다음과 같은 폐단을 낳았다.
“이리하여 가난한 이 고장 주민들 중에는 봉세관의 마름이 되어 과중한 세금을 탕감받는 한편 억울하게 당하는 관재를 막아보려고 교인이 되려는 자가 속속 늘어갔다.... 그러나 교세가 번창해 갈수록 육지와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폐단 또한 크게 늘어났다. 교인 중에는 열심 교우도 많았지만, 신부의 세력을 믿고 협잡·난봉을 일삼는 불량 교인도 허다했다. 마을 부랑자, 소악패치고 한바탕 떵떵 위세 부리고 신명나게 놀아볼 이 좋은 기회를 왜 놓치겠는가.... 원성 높은 봉세관의 마름질하는 것만도 크게 미움 살 노릇인데, 이를 기화로 작당하여 다니면서 민간에 갖은 패악질을 놓는 것이었다.”(같은 책, 209쪽)
강 교수는 “변방에 우짖는 새”는 작가적 상상력보다 당시 제주에 유배 왔던 김윤식의 기록 “속음청사”를 작품에서 재현했으며, 현기영 작가는 신축교안을 통해 조선 말기 대한제국의 부패와 외세에 따른 갈등과 상처, 그리고 상처의 치유를 통해 현재 진행형인 역사적 교훈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역사학계 연구를 통해 재평가받기 시작한 신축교안은 “변방의 우짖는 새”를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확산될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그러나 작가가 진술의 근거로 삼은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신축교안의 주요 원인인 교폐와 세폐는 같은 비중이라기보다, 교폐의 근저에 세폐의 문제가 이미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영웅적 면모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이재수는 실제 기록상 부정적인 면을 가졌고 당시 무기를 제공했던 일본(상인)과의 관계 또한 수상하다며, 이런 이재수의 이미지와 평가가 어떻게 정착되고 인식되어 왔는지 설명한다면, 대중문화 작품 안에서 신축교안의 양상이 보다 다층적으로 밝혀질 것 이라고 제안했다.
5월 28일 중앙 주교좌 성당에서 열린 신축교안 120주년 기념 심포지엄. (사진 제공 = 제주교구)
과거사를 함께 이야기하면서 사회교리의 가치 구체적으로 직면
“세계 곳곳에서 상처들의 치유로 이끄는 평화의 길들이 필요합니다. 독창적이고 담대하게 치유와 새로운 만남의 여정을 시작하고자 하는 평화의 장인들이 필요합니다.... 격한 대립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말할 때 명확하고 숨김없는 진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들은 과거 기억에 대하여 참회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억의 참회는 자신의 후회스럽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미래를 어둡게 하지 않도록 과거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줍니다. 사건의 역사적 진실만이 서로를 이해하고 모든 이의 선을 위한 새로운 종합을 추진하는 항구하고 지속적인 노력을 낳을 수 있습니다.”('모든 형제들', 225항)
마지막으로 현요안 신부(제주교구)는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모든 형제들’에 비춰 신축교안을 바라보고, 이후 2003년 미래선언에 따른 제주교구 사목 방향 변화, 신축교안 기념사업의 방향을 제시했다.
‘2003년 미래선언’은 2003년 11월 7일 제주항쟁 102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채택한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선언문’으로, 100여 년 전 제주에서 천주교인과 제주도민 간 충돌로 빚어진 일에 대해 천주교인과 제주도민의 첫 공식 화해였다. 당시 양측은 서로의 과오를 사과하고, 함께 진실을 밝히며 정의와 평화를 향한 우애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자고 선언했다.
현 신부는 신축교안의 교훈을 통해 제주교구의 입장과 태도가 바뀌어 왔으며, 이는 “외국 선교사들의 선교 태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영향에 따른 근본적 사목 방향 변화(세상을 향한 교회의 개방과 적응)”이라고 설명했다.
또 2003년 미래선언 이후 제주교구의 사목 방향 역시 “소공동체 중심의 사목 시스템 구축, 강정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사목적 응답, 제주4.3 전국화를 위한 지역사회와의 연대, ‘한.베 평화재단을 통한 전쟁과 폭력에 대한 기억과 용서, 평화를 위한 국제적 연대 노력, 이주민 사목 활성화, 생태환경적 사목 활동” 등 연대와 환대, 기억과 성찰을 위한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축교안 기념 사업의 방향으로는 “기억을 위한 황사평 성역화, 평화 교육 활성화, 신축교안 관련 제주지역과 연대 사업 활성화”를 제시했다.
현요안 신부는 제주교구에서도 견진교리 중에 사회교리 과정을 지침으로 포함시키고 있지만 사회교리에 대한 교육은 추상적이고 막연하기 쉽다며, “신축교안과 같은 과거사를 이야기하면서 인간 존엄, 평화, 환경생태 등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를 역사로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 감수성”이라고 강조하고,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민과 자비, 환대의 교회가 될 수 없다. 이는 선교의 방식이나 내용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조성윤 교수는 “제주교구 차원에서 당시 천주교인 희생자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정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음을 이해했다”면서도, “그동안 대화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시민사회의 책임도 있지만 더 큰 책임은 제주교구에 있다. 그동안 대화와 화해의 몸짓을 보여 줬지만, 그 뒤에는 다시 깊이 성찰하는 기회를 만든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천주교회와 시민사회가 서로를 인정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여전히 자신의 것만 지키려는 것이 아닌가”라고 묻고, “지역사회뿐 아니라 다른 종교와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대화를 위해서이며, 대화가 없다면 천주교회 역시 신앙의 뿌리를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찬식 씨(전 제주학연구센터장)는 이후 기념사업 진행 방향에 대해, “신축년 사건 해법을 세계 냉전과 분단에 따른 동족상잔의 과거사를 해결한 베트남 전쟁과 제주4.3의 사례에서 찾을 것”을 제안했다.
그는 베트남전 당시 혁명군과 미군 측으로 나뉘어 싸우다 전사한 자식들을 똑같이 추모하는 어머니의 마음, 또 4.3을 전후해 죽어간 마을 사람들을 ‘영모원’에 함께 모신 제주 하귀리 주민들의 관용과 화합을 거울삼기 바란다면서, “죽은 이에 대한 연대의식과 추모를 통해 친족사회 공동체 내부의 관용과 민주화를 이뤄 낸 과정을 현재 제주도민 공동체가 잇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재수를 비롯한 민란의 세 장두가 제주도민을 대신해 죽어간 영웅과 의사로 거듭나듯, 관덕정에서 죽어간 천주교인들의 거룩한 순교와 희생 역시 후대 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래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공동 기념사업의 방향성은 상호 존중의 원칙 위에서 정립되어야 한다”며, “죽은 도민, 교민 모두 제주에서 살았던 공동체 구성원이므로, 같은 공간과 시대인식, 같은 취지의 공통 지향점을 찾아 공동으로 추진하는 기념사업을 도출하기 바란다”고 제안했다.
한편, 심포지엄 다음 날인 29일 오후 2시에는 제주교구와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가 천주교 황사평 성지에서 “신축교안, 기억과 화합 화해의 탑 제막식”을 열었다. 또 오후 7시에는 중앙주교좌성당에서 문창우 주교 주례로 신축교안 120주년 위령 미사가 봉헌됐다.
5월 29일 제주교구와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는 함께 황사평 성지에 '기억과 화합 화해의 탑' 제막식을 진행했다. (사진 제공 = 제주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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