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24. 주일 큐티
갈라디아서 6:14 ~ 18
바울의 자랑 – 예수의 흔적
관찰 :
1) 바울의 자랑
-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a. 율법주의자들이 바울을 이기는 것으로 자랑질 하고자 하는 것과 비교가 됩니다. 이 세상에 성령의 사람이 취해야 하는 자랑의 태도가 바로 이것입니 다.
b.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오직 이것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삶을 사도 바울은 살았고, 우리에게도 그것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자랑이 됨을 그가 사랑했던 갈라디아 지방의 성도들에게 역설하고 있습니다.
c.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의 현대어성경 번역은 “이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이 나에 대하여 죽었고 나도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입니다. 죽으면 더 이상 세상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사도 바울에게 죽었고, 바울이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d.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드러나는 능력은 실제로 세상의 것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또 세상 역시 우리를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 15절.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a. 할례를 받거나 할례를 받지 않는 것으로 구원을 받고 중생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기에 새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율법에 얽매이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인 바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b.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날마다 매순간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린 나라는 존재의 죽음을 날마다 매순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고 오로지 새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도 바울의 권면이 바르게 귀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 16절.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a. 여기서의 “규례”(κανών, 카논)는 ‘카네’(갈대)에서 파생한 말입니다. ‘자, 척도, 기준’을 의미합니다. 갈대를 자로 사용한 고대 풍습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여기서는 ‘본 서신’인 갈라디아서의 말씀, 곧 바울이 증거하는 자유케하는 복음이 ‘기준’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b. 사도 바울은 여기서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있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지 못한 이스라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단순히 혈통적인 이스라엘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로서의 이스라엘, 즉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인 하나님의 이스라엘에는 유대인도 있고, 헬라인도 있고, 모든 이방인들이 다 포함되는 더 포괄적이고 큰 개념입니다. 그리고 그 개념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있어야 합니다. 혈통으로서가 아니라 십자가로 말미암은 구원을 믿고 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속하는 자입니다.
c. 참된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러한 평강과 긍휼이 십자가의 믿음을 믿는 성도들, 자신의 복음, 성령의 계시로 알게 된 유일한 복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바로 그 복음 안에 있는 자들에게 임하게 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2) 예수의 흔적
- 17절.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a.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고 시기하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염두하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괴롭힘으로 사도 바울 역시 몹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b. “흔적”(στίγμα, 스티그마)은 ‘스티조’(인두로 종의 몸에 문신을 새겨 표시하다)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여기서는 바울이 주님 때문에 당한 고난의 흔적과 상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참된 사도됨의 증거입니다.
3) 마무리
- 18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a.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지방의 성도들을 형제들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다른 길로 가게 되는 것에 대하여 안타까운 심정으로 사도 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b. 주님의 은혜가 갈라디아 지방의 성도들에게 임하고, 또 그것을 그들이 심령으로 깨닫게 되어지기를 마지막으로 간구하는 사도 바울의 애끊는 표현입니다.
가르침 :
1) 바울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그는 세상에 대하여 자신을 죽였습니다. 또 세상 역시 자신을 십자가에 죽이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사도 바울은 많은 불이익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동족들에게 끈질기게 쫓겨 다녔고, 온갖 고생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십자가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지니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자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으로 말미암은 흔적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사람이 좇아야 하는 모범입니다.
2) 바울은 예수의 흔적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 ~ 27절에 보면 그가 얼마나 엄청난 예수의 흔적을 몸에 지니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옥에 갇힘, 수없이 많이 맞음, 여러 번 죽을 뻔 함,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음, 세 번 태장으로 맞음, 한 번 돌로 맞음,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냄,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함,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 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자 함으로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 자였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간청하는 것을 보면 정말 눈물짓게 되는 구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자신의 몸과 마음에 가지고 있는 사도 바울과 같이 성도는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니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갈라디아 지방의 성도들을 향한 끝없는 애정과 안타까움이 갈라디아서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그런 마음이 실제로 있는가?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그런 믿음과 마음이 있는가? 언제나 살펴보아야 하는 영역이 될 것입니다.
4) 갈라디아서 큐티가 끝났습니다. 자유케 하는 복음에 대한 사도 바울의 깊이 있는 메시지를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이 많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릇된 진리에 빠지려는 사랑하는 성도들을 향한 안타까운 바울 선생님의 마음도 절절히 느끼게 되었던, 목회자의 마음을 묵상을 통하여 깨닫고 감정이입이 되게 된 말씀들이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의 이러한 귀한 복음을 들었기에, 예수님을 사랑한 흔적이 내 안에 새겨지는 것을 소망하는 존재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적용 :
1)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통해 다시금 나의 자랑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지금의 내가 어찌 있겠으며,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해서도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온전할 수 없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나의 나됨은 십자가에 내가 죽은 이후부터 시작입니다.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2) 그리스도의 흔적이 나의 삶과 몸에 남겨지는 것을 명예롭게 여기는 바울의 태도를 본받겠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그러한 상처는 성령의 은혜로 별이 되는 것입니다. 빛나는 명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과 일들을 아프게만 여기지 않고 예수의 흔적으로, 훈장으로 여기는 사도 바울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그렇기 때문에 상처도, 아픔도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흔적을 지녔기에 이제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하는 수준의 신앙으로 내가 나아갈 수 있을까?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4)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주님의 섭리속에서 후회없도록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