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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사는 남자
"오 마이 갓."
희진은 자신의 집에 떡하니 들어 앉아있는 한 남성을 보고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영국에서 약 7년동안
살았다고 하더라도, 이건 정말…….
"오랜만이야, 희진."
180은 거뜬히 넘는 장신에다가, 어깨도 태평양처럼 넓디 넓었다. 금색의 예쁜 머리색에 푸른 색 눈을 가
지고 있는 그 남성은 분명히, 외국인이였다.
"아니, 왜, 왜, 연락도 없이 찾아온 거예요?"
"우리가 연락을 해야 만날 수 있는 사이였던가?"
"데이비드."
데이비드는 희진의 살짝 화난 음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장난스러운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희진을 더 약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희진은 한숨을 푸욱, 내쉬곤 데이비드 옆에 있는 커다란 짐가방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이건 뭐예요? 설마…. 아니죠?"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했던가. 희진이 가르쳐줬잖아."
"어머니는요? 알고 계세요?"
"내가 희진 집에 간다고 하니까 엄청나게 좋아하시던걸?"
희진은 저 앞에서 미소를 잃지 않는 데이비드를 보고 자꾸만 한숨이 푹푹 나왔다. 7년동안 영국에서
살았을때 만난 남성이였다. 연인으로서가 아닌, 친구로서 말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간간히 이메일도
주고 받고 한 3년 전에 데이비드가 일 문제로 한국에 왔었을때도 잠깐 만났던 적도 있다.
몇 일전에 데이비드가 일 때문에 한국에 온다는 걸 연락을 통해 알았지만 이렇게 불쑥 찾아오다니. 그
것도 저의 집에서 산다는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데이비드. 일 문제로 한국에 오면 금방 영국에 가야하지 않아요? 이렇게 큰 짐가방이 있을 이유가…"
"금방 영국에 갈 일이 아니니까 이렇게 큰 짐가방을 들고 왔지."
"…아, 나 미치겠다."
한국말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직 한국말에 서툰 데이비드 때문에 영어로 계속 대화를 이어가던
희진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한국말로 미치겠다ㅡ 라며 자신의 마음을 대변했다. 희진의
낯설은 말투에 데이비드는 살짝 당황하는 듯 싶다가 쇼파에 앉던 몸을 일으켜 희진의 앞에 섰다.
"한 2달 뒤면 다시 영국으로 갈거야. 딱 그때까지만, 안될까?"
"여긴 한국이라구요. 남녀가 같이 집에서 산다는게 밖으로 퍼지기라도 하면……."
"NO. 절대 그럴 일 없어."
"그걸 어떻게 장담해요!"
"내 이름을 걸고 장담하지. 정말이야. 그래봤자 고작 2달인데. 그리고 여기 살면서 희진에게 손 하나도
건들지 않을 걸 맹세할게. 또 일 문제로 바빠서 집에 들어올 일도 별로 없는걸."
"……."
"부탁이야."
휴. 희진은 한숨을 더욱 깊게 내쉬며 데이비드를 향해 말했다.
"진짜 딱 2달이예요. 알겠죠?"
"당연하지! 고마워, 희진!"
그리곤 희진의 작은 몸을 와락, 껴안는 데이비드다.
"손 하나도 안 건든다고 당신이 약속했어요!"
"그래도, 이건 감사의 표시인데."
"…휴, 밥은 먹었어요?"
"아니 아직. 불고기 있어?"
데이비드의 입에서 '불고기' 라는 낯익은 음식의 이름이 나오자, 아까까지만 해도 울상이 가득했던 희
진의 얼굴에도 금새 피식, 거리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휴. 그래, 고작 2달인데…. 마음을 편히 먹으려는 희진이다.
* * * * *
이런 희진과는 다르게 데이비드의 마음은 이미 흑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물론 일 문제로 한국에 온 것
은 맞지만, 호텔에서도 잠을 잘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희진의 집에 찾아온 이유는.
"참 좋은 여자야."
그녀가 참 좋은 여자였기 때문이다. 7년 전 영국에서 처음 만난 희진의 모습은 정말 순수 그 자체였다.
어깨를 스치는 조금 짧은 단발머리에 겨울이라 그런지 볼이 새빨개져 있는 희진의 모습은 정말이지, 너
무도 예뻤었다. 그때 희진의 나이가 스무살이였던가? 그저 처음엔 귀여운 동양인이라고만 생각했었는
데, 7년동안 영국에서 친구로 지내면서 희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마냥 '친구' 에 관한 감정이 아니라
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7년이라면 길기도 긴 시간인데, 그 긴 시간동안 왜 그 감정을
몰랐던건지. 새삼 자신이 한심스러워지는 데이비드다.
"응? 무슨 소리예요 갑자기."
주어를 생략하고선 갑자기 저런 말을 하자 희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데이비드를 올려봤
다. 데이비드는 자그마한 희진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너 말이야. 정말 좋은 여자라고."
"뭐야, 아부예요?"
"아니. 아부가 아니고 진심이야. 넌 너 매력을 너무 몰라. 얼마나 예쁘고 좋은 여잔데, 너가."
"…뭐예요. 진짜. 사람 당황스럽게."
"진심인데."
"흠. 됐구! 오늘은 뭐 먹고 싶어요? 한국 음식만 먹으면 좀 그렇죠? 스테이크라도 만들어줄까요, 오늘
저녁은?"
"너가 그런 말 하니까 우리가 꼭 신혼 부부라도 된 것 같아."
장난이란 걸 알고야 있었지만, 데이비드는 이런 농담을 너무 자주 했다. 그것도 가슴 떨리는 농담으로
만 콕콕 골라서! 희진은 데이비드를 살짝 흘겨보며 말했다.
"자꾸 그러면 스테이크는 커녕, 그냥 야채만 먹을 줄 알아요."
"좋으면서 그래."
"데이비드! 진짜 야채만 먹일거에요."
"미안해, 미안해. 그런데 난 진심이야, 희진.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너 밖에 없단 내 마음을 저렇게 말한
거라고."
"…지, 진짜. 야채만 먹고 싶죠? 오늘 저녁은 그냥 샐러드만 줄거에요."
괜한 투정을 부리는 희진을 보고 데이비드는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렇게 말해도 무조건 맛
있는 음식으로만 줄거면서. 벌써 희진과 한 집에서 산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시간동안 일
때문에 얼굴을 자주 못 봤지만, 그래도 간간히 집에서 얼굴도 보고, 밖에서 외식도 하고. 하다보니 안
그래도 좋던 희진이 점점 더 좋아져가고 있는 데이비드였다.
데이비드는 회사에서 일단 오늘 할 일을 마치고선,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와인
바로 향했다. 선웅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은 데이비드를 보곤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겼다. 와인
을 마시며 둘은 대화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대화의 주제는 여자였다.
"그, 희진? 이라는 여자랑은 어떻게 되가고 있어?"
"어떻게 되가긴. 아직 그럴 단계도 아니야. 희진은 그냥 날 친구로만 보는데."
"같이 집에서 사는걸 허락했다면서? 그럼 된거 아냐?"
"아니지. 난 희진을 사랑하지만 아직 희진은 그게 아니거든."
"둘이 동갑이라고 했나?"
"아니. 내가 3살 더 많아."
"아무튼 잘 되길 바래."
"물론, 당연히 그렇게 되야지. 아 맞다. 요새 지현씨랑은 잘 지내?"
"……잘 지내야 하는데 그게 맘처럼 쉽지가 않아."
"지현씨도 정말 좋은 여자던데. 잘해."
데이비드는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선웅과 딱 기분 좋게만 알딸딸할 정도로만 와인을 마시곤
희진의 집으로 향하는 데이비드다. 희진의 집 앞에 차를 주차하고,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희진의
집 안에선 희진의 향기가 났다. 자신의 옆에 있었던 여자들에게서 나던 진한 향수 냄새가 아닌 깨끗한
비누 냄새라고나 할까.
집 안으로 들어가자 티비를 보며 과자를 먹고 있는 희진이 보인다. 희진은 집으로 들어온 데이비드를
보고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술 마신거예요?"
"조금."
"주말에 뭐할거예요?"
"그냥. 또 일 해야겠지."
"그 놈의 일은, 맨날 한담. 우연히 영화표 2장을 얻게 되서, 오랜만에 영화 보려고 했는데."
"영화?"
"응. 이번에 꽤 인기있는 영화예요. 로맨스코미딘데. 이런 장르 별로 안 좋아하죠?"
"너랑 함께 보는거면 뭐, 다 좋지."
"으이, 닭살. 그럼 우리 같이 영화보는거죠?"
"응. 같이 보자."
오랜만에 영화를 보는 설레임에 희진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는 설레임인지, 데이비드와
함께 보는 영화라서 설레이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 * * * *
희진은 영화관 앞에서 가방을 다시 고쳐매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슬슬 추워지는 날씨라는 걸 까먹곤
옷을 얇게 입고 온 것이 화근이였다.
"7시까지 오기로 해놓고 왜 이리 안 오는거야?"
7시에 영화가 시작하는데도, 데이비드는 도통 올 생각을 안했다.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고. 짜증이 날대
로 난 희진은 인상을 팍팍 찡그렸다.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은 이미 지난 후였다. 시계가 8시를 가르키자
희진은 그대로 자신의 집을 향해 성난 걸음을 했다.
집으로 들어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곤 긴 후드티와 반바지를 입은 희진은 이제 하루가 지나가는 시
간인 12시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들어올 생각을 안하는 데이비드 때문에 속에서 불이 났다. 오늘 약속
에 바람 맞은것도 화가 나 죽겠는데 연락도 제대로 안 되다니.
"젠장할 데이비드."
성이 잔뜩 난 희진은 그 옷차림 그대로 대문 밖을 나갔다. 그리곤 가까운 편의점에서 맥주캔 3개를 사들
곤 집으로 걸어오는 도중이였다. 집으로 가기 전엔 커다란 건물 하나가 있는데, 그 커다란 건물을 지나
려고 할 찰나였다. 다리가 우뚝, 멈춰섰다.
"…."
오늘 하루종일 자신을 기다리고, 바람 맞춘 데이비드가 있던 것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한 여성과 말
이다. 한국 여자였다. 긴 생머리 스타일에 누가 봐도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자였다. 거기다가 그 여자
와 데이비드는 포옹을 하고 있었다. 데이비드가 여자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여자는 데이비드의
말에 눈물까지 짓고 있었다.
하, 어이가 없어서! 괜히 실소가 터져나오는 희진이다. 바람 맞춘 이유가 따로 있으셨네.
왜 자신이 이렇게까지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희진은 더이상 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용기가 없었다. 괜히 10분을 더 걸어야하는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집으로 들어온 희진은 들어오자마자 캔을 따선 벌컥벌컥 마셨다. 이, 이!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난다.
자신을 바람 맞춘 이유가 고작 그 여자 때문에? 아, 아니지. 유희진. 니가 왜 이렇게 성을 내? 데이비드
가 어떤 여자랑 있든지 뭔 상관이야? 그래, 이건 그냥 바람 맞춘거에 대한 분노일 뿐이야. 그래.
자기 위로를 하며 희진은 계속해서 캔맥주를 마셔댔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자신의 휴대폰이 진동소
리 하나 없이 꼼짝 없이 있는 것을 보니 더 화가 났다. 최소한 사람한테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할 거 아
니냐고! 희진은 이제 1시를 가르키는 시계를 원망스레 노려보았다.
살짝 잠이 올려는 찰나,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와 함께 술 냄새가 살짝 나는 데이비드가 집 안으로 들어
왔다. 희진은 들어온 데이비드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 희진."
"…"
"미안해. 오늘 못 나간거."
"연락이라도 해주는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미안해."
"그 여자 때문에 못 나왔어요?"
아, 미쳤구나 유희진.
술김에 홧김에 말을 내뱉어버린 자신을 원망한다.
"그 여자라니?"
"……."
"희진아."
"다 봤어요 아까. 그 여자랑 껴안고 있던데요. 좋은 분위기 망치기 싫어서 일부러 돌아서 왔어요."
"아…."
"여자가 꽤나 예쁜 미인이더라구요. 당신이랑 잘 어울려요."
"뭔가 오해를 하는 모양인데."
"무슨 오해요. 난 오늘 당신을 1시간 넘게 기다렸고, 연락 해도 받지도 않았잖아요. 날 바람 맞출 정도로
그 여자랑 함께 있는 시간이 중요했다는 건데, 그럼 말 다 한거 아니에요?"
이미 비뚤어진 희진의 마음 때문에 말이 예쁘게 나올 수가 없었다. 데이비드는 성을 내는 희진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을 더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3개의 캔을 보고 조금 인
상을 찌푸렸다.
"술 마셨어?"
"상관 말아요."
그 말을 끝으로, 희진은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가 세차게 방문을 쾅! 하고 닫았다. 데이비드는 희진의
방문처럼 희진의 마음까지 닫혀졌을까봐 초조하기만 했다.
* * * * *
데이비드가 희진의 집에 온지도 벌써 3주가 다가 오고 있었다. 그 날 이후로 희진은 데이비드에게 딱딱
하게 굴기만 했다. 희진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자신이 데이비드가 애인이 있다는 이유로, 데이
비드를 향한 말이 자꾸만 비뚤어지는 건지. 바보 같았다.
데이비드가 아무리 오해라도, 말을 들어보라고 해도 희진은 그저 귀를 막고 있을 뿐이였다. 지금 희진
의 상태론 데이비드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모든지 변명으로만 보일 뿐이였다.
이런 희진 때문에 데이비드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자꾸만 초조해져갔다. 희진을 보는 것만 해도 기분
이 좋았는데 요샌 그 예쁜 미소도 보여주지 않는 희진 때문에 힘들기도 했었고, 요즘 희진이 자신을 대
하는 태도도 예전 같지 않게 딱딱해진 것 같아 서운한 감정까지 느꼈다.
이번엔 꼭 그녀의 오해를 풀어주리라! 라는 생각에 데이비드는 일을 재빨리 마치곤 희진의 집에 왔다.
항상 이 시간 쯤이면 희진은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을 하곤 했었는데 왠일인지 지금은 집엔 아무도 없었
다. 데이비드는 휴대폰을 꺼내 희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자신의 전화를 받던 희진
이었는데, 전화도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건가? 걱정이 괜스레 드는 데이비드다.
시간은 벌써 저녁시간을 넘긴 11시가 되가고 있었다. 그때 자신을 기다리던 희진의 심정이 이랬을까.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데이비드는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나 희진은 묵묵부답이었다. 데이비드는
희진의 회사라도 찾아가봐야겠다, 라는 생각에 집을 나왔다. 그리곤 집 앞에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차
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려고 키를 끄내려는 순간이었다.
검은색 승용차 하나가 희진의 집 앞에 멈춰선 것이다. 그리곤 그 차 안에서 희진이 내렸고, 운전석 문도
열리더니……. 한 남자 하나가 내렸다. 준수한 스타일의 남성이었다. 남자와 희진은 집 앞에서 대화를
했다. 간간히 잘 보지 못했던 희진의 웃음까지도 볼 수 있었다.
희진의 웃음을 보자 갑자기 치밀어오르는 화가 나는 데이비드였다. 자신에겐 미소 하나도 제대로 보여
주지 않던 희진이 낯선 남자에게 웃음을 지어주는 꼴을 보자 자꾸만 화가 났다.
남자가 차를 타고 희진의 집에서 멀어졌고, 희진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데이비드는 차에서 내려, 집으
로 빠르게 걸어가 문을 벌컥, 하고 열었다. 이제 막 집에 들어온 희진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데이
비드 때문에 깜짝 놀라 꺅! 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뭐, 뭐예요. 놀랐잖……."
그러나 희진은 그대로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갑작스레 데이비드가 희진의 허리를 휘어감더니 입술을
눌렀기 때문이다. 마치 성난 사자마냥 데이비드는 희진에 대한 배려는 하나도 없이 그저 희진의 입술
을 탐하기에 급급했다. 화들짝 놀란 희진이 입술을 벌리자 그를 틈타 혀를 넣어선 고른 치열을 훑고선
거칠게 키스를 했다. 반항하는 희진의 양 팔을 힘으로 꽉 잡고선.
"하, 왜, 왜, 이,…"
간간히 희진이 데이비드에게 벗어날때 왜이러냐고 성을 내려고 했지만 금새 데이비드에게 눌려 아무말
도 하지 못했다. 아랫입술을 혀로 살짝 훑곤 희진을 정신 없게 만들었다. 겁이 났다. 갑자기 달라져버린
데이비드의 행동에 희진은 왈칵 겁이 들었다. 자꾸만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데이비드가 다리를 받치고
있어 풀썩 주저 앉지는 않았다. 키스를 하며 데이비드는 놀란 희진의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희진의
봉긋한 가슴에 손을 댔다. 화들짝 놀란 희진이 더 반항을 했지만 이미 화가 난 데이비드는 희진의 반항
마저도 모조리 무시했다.
여전히 성이 잔뜩 난 채로 키스를 하던 데이비드는, 놀람과 겁이 잔뜩 뒤섞인 희진의 눈물을 느끼곤 다
시 제정신을 차렸다. 겨우 희진에게서 입술을 떼던 데이비드는, 울고 있는 희진을 보자 그제서야 후회
를 했다. 젠장, 이렇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자신의 화를 주체 못하고 희진에게 상처를 줬다는 걸
알자 데이비드는 자신을 욕했다.
"…아 젠장……."
"……."
"미안해."
"……."
"정말 미안해. 이럴 생각은 진짜 없었어."
아무 말도 못하고, 벽에 등을 기대고 그대로 주저 앉아버린 희진에게 눈높이를 맞춘 데이비드가 희진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미안해 희진아."
"……."
"너랑 오늘 오해를 풀려고 회사도 빨리 끝내고 왔는데 너가 없었어. 전화도 했는데 받지도 않고 자꾸만
걱정은 되가고. 그래서 회사일 때문에 못 오는건가 싶어 너 회사라도 찾아갈 생각으로 밖으로 나왔어."
"…"
"딴 남자 앞에서 웃고 있는 니 모습을 보니까, 그래서 화가 났어."
"……"
"미안해."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행동하던 데이비드가, 이젠 자신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
하고 고개를 푹 수그러뜨리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수그린 고개를 다시 들어, 희진의 눈을 다시 바라보는 데이비드가 말했다.
"……혹시, 그 남자, 너 애인…"
"…아니예요."
"……."
"그냥 회사 동료일 뿐이예요. 오늘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있어서 데려다준 것 뿐이구요."
"…"
"괜히 허락을 한 것 같아요."
"무슨…"
"애초부터 당신을 이 집에 들이는 게 아니였다구요……. 내가 미쳤죠. 이제와서 후회가 되네요."
아까 전 자신의 행동 때문에 희진의 블라우스는 거의 벗겨져 있는 상태였다. 데이비드는 그런 희진을
보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희진과 잘해보고 싶었다. 좋은 남편이 되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이렇게 망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이미 희진은 자신의 무자비한 행동 때문에 상처를 받았고 데이비드를 만난 걸 후회한다는
말까지 하고 있었다.
"……"
"미안해 희진."
데이비드를 원망스레 바라보는 희진이다. 그런 희진의 눈빛을 보자 데이비드는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
었다. 그저, 미안할 뿐이였다. 풀어헤쳐진 블라우스의 단추를 조심스레 다시 잠궈주는 데이비드다.
"정말, 미안."
그리고 그는, 그렇게 희진의 집을 나갔다.
* * * * *
"…."
데이비드가 나간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휑해진 집안을 둘러보며 희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희진이
회사에 나가있는동안 데이비드가 자신의 짐을 챙겨서 나가버렸다. 연락도 하지 못했다.
그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였는데. 너무나도 화가 났었다. 데이비드는 애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난
그저 회사 동료를 만난 것 뿐이였는데 화를 내며 자신을 탐하려고 했던 그가 너무나도 미웠다.
넌 딴 여자 만나면서 왜 난 안된다는 거야? 이런 원망이었을 것이다.
한번씩 데이비드가 말해준 회사 앞을 지나갈 때마다, 데이비드 옆엔 항상 한 여자가 있었다. 그때 그 건
물 앞에 있던 여자는 아니였다. 데이비드의 회사 동료인지는 몰라도, 항상 데이비드의 옆에 있는 것을
보아하니 그냥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은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데 데이비드는 자신 따위는 쌔까
맣게 잊은 것 마냥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꼴을 보니 너무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여러가지 감정이 몰
려들었다.
속상한 마음에 친구와 함께 술을 기울이는 희진이다. 나쁜 사람. 어떻게 연락 하나가 없을까. 내가 걱정
되지도 않나? 그런 생각까지 들자 희진은 피식, 웃었다. 그가 자신을 걱정할 리가 없었다. 그의 옆엔 그
여자도 있고, 애인도 있고. 자신말고도 여자가 엄청 많을텐데.
술이 약한 희진은 자신의 주량은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벌컥벌컥, 술을 마셔댔다. 소주 1병도 다 먹지
못하는 희진이 소주 2병까지 마신데다가, 맥주도 여러 병 마신 후였다.
"괜찮아. 나 혼자 갈 수 있어. 너 먼저 가."
"뭘 너혼자 갈 수 있어! 완전 꽐라가 되놓곤!"
"아니야! 꽐라 아니거든?"
술이 잔뜩 취한 희진은 무언가에 홀린 것 마냥, 계산을 하곤 술집을 나왔다. 친구가 다급하게 희진을 따
라갔지만, 술 취한 여자가 어찌 그렇게 빠른건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아, 유희진!!"
친구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자 희진은 휴대폰을 들어 친구에게 문자를 했다. 술에 잔뜩 취해서 오
타가 가득한 문자였다. [ 나 괘나츠니까 먼저 가 ]
그리곤 익숙한 번호를 누르는 희진이다.
따르릉, 따르릉. 단조로운 연결음이 꽤나 오래 들렸다. 괜히 눈물이 나온다. 이젠 내 전화도 피하네.
ㅡ…….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상대편 쪽에 후- 하는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어?"
ㅡ…왠일이야.
"……어, 데이비드. 나야, 나."
ㅡ알아.
"……."
ㅡ…술 마셨어?
"그런가? 나 술 마신 것 같아요. 그렇겠지."
ㅡ어디야 지금.
"몰라, 몰라요. 진짜 나빴어. 어떻게 연락 하나도 안하고, 나 없어도 괜찮았어요? 아니지. 당신은 애인도
있는데 내가 무슨. 아니다 아니야. 내가 미안해요. 술 마시고 미쳤나봐요."
ㅡ유희진. 너 지금 어딘지 몰라?
"여기……가……. 어디지."
ㅡ젠장……. 거기 딱 있어. 알겠어?
희진은 그의 말대로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가만히 우두커니 서있었다. 시린 밤바람이 희진을 덮쳤다.
아, 추워……. 진짜 춥다.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있는지 한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유희진."
삐까뻔쩍한 승용차 하나가 희진의 앞에 멈춰서더니, 승용차 안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데이비드가 희
진의 눈 앞에 보였다.
"데이비드!"
반갑게 데이비드를 향해 미소를 짓는 희진이다. 희진이 데이비드를 보자말자 꽉 껴안았다. 데이비드는
오랫동안 서있어서 그런지 차가운 희진의 몸을 느끼곤 얼른 차에 태웠다. 히터를 키곤 아무말 없이 운
전을 했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희진의 집 앞에 차를 세우곤 조수석에 앉아있는 희진에게 말했다.
"내려. 집이야."
"……"
"희진아."
희진의 어깨에 손을 얹자, 데이비드는 눈을 찡그렸다.
"왜 그래?"
그 작은 몸이 울면서 떨고 있던 것이다.
"왜 울어? 무슨 일 있었어?"
"…"
"왜, 왜 울어. 말해봐."
"……미안해요 데이비드."
"…뭐가?"
"내가 그때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요. 당신이 미웠어요."
"……."
"당신이 갑작스레 나를……."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아니요. 해야되요. 당신의 여자에게 내가 질투를 했어요."
"무슨 소리야."
"당신 애인에게 내가 질투를 했다구요. 그래서 괜히 그랬어요. 당신은 애인이 있으면서, 난 그저 회사
동료를 만난 것 뿐인데… 그렇게까지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당신이 미웠고, 애인이 있다는 것도……"
"젠장.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설명해. 누가 애인이 있어?"
….
데이비드의 짜증 섞인 말에 희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당신, 당신요."
"하, 그때 오해를 아직도 못 풀었군."
"……."
"그 건물 앞에서의 여자는 내 애인이 아니야. 내 한국인 친구의 여자친군데 둘이 사이가 안 좋아져서 헤
어졌는데 내가 위로해주느라고 그런거라고. 그리고 지금 그 여자는 내 친구랑 다시 사귀고 있어."
"……."
"난 애인이 없어."
애인이 없다는 데이비드의 말에 희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정말요?"
"그래. 애인이 있었다면 너한테 왜 키스를 했겠어."
…….
"그럼, 날 좋아해요?"
"……"
"날, 좋아해요?"
희진의 물음에 데이비드는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말했다.
"물론."
"……"
"생각보다 아주 많이 널 사랑해."
…….
희진은 그의 답에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데이비드가 당황해선 희진의 눈물을 서툰 손길로 닦았다. 희
진은 그를 쳐다보다가 먼저 데이비드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리곤 그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나도요."
"…"
"나도 당신이 좋아요, 데이비드. 사랑해요."
눈물 섞인 그 목소리에 데이비드는 좀 더 진하게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좁은 차 안에서 그들의 입맞춤
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렸다. 처음엔 부드러웠던 키스도 점점 관능적으로 변해갔고, 차 안엔 뜨거운 숨
소리가 가득해졌다. 희진의 입술을 탐하던 데이비드가 먼저 입술을 떼곤,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집으로 들어가도 되?"
"……"
"아, 너가 싫다면……."
희진은 그에게 괜찮다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차문을 열고 희진의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둘은 쉴 틈도
없이 서로를 향해 키스를 했다. 희진의 작은 몸이 데이비드의 넓은 품에 안겨 침실로 들어가는동안,
희진의 몸에 걸쳐져있던 옷들이 벗겨나갔다.
"정말, 사랑해요 데이비드."
"나도. 너무 사랑해."
온통 사랑한다는 말로 가득한 둘은 밤새 사랑을 나누었다.
* * * * *
2년 후.
어느때와 다름 없이 희진은 넓은 데이비드의 품에서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자신의 허리를 꽉 껴안고 있
는 데이비드가 보인다. 데이비드를 향해 조그맣게 미소를 짓곤 그의 입술에 쪽- 하고 짧은 입맞춤을 하
곤, 침대에서 나오려는 찰나였다.
"아침부터 이러면 곤란하잖아."
데이비드가 몸을 움직이려는 희진의 허리를 아까보다 더 꽉 껴안았다.
"회사 안 나갈거예요?"
"아, 정말 이럴땐 회사 나가기가 싫다니까."
"어린애처럼 투정 부리지말고 빨리요. 일어나요."
"진짜 싫은데……."
"얼른."
"여기 뽀뽀 한번만 해주면."
"으, 이 능구렁이."
희진은 데이비드의 부탁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의 쭉 내밀어져있는 입술에 쪽- 하고 뽀뽀를 해주었다.
그러나 데이비드의 장난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쪽- 하고 뽀뽀를 하는 그 짧은 찰나에 희진의 입술을
벌리게 하더니 아침부터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가 그녀의 위에 올라타자, 희진이 눈을 동그
랗게 뜨더니 그를 힘들게 밀어냈다.
"자꾸 이러면 어머니께 다 이를거에요! 당신이 어린애처럼 아침마다 이렇게 투정을 부린다고."
"아, 젠장. 빨리 휴가를 내야지 휴."
"맨날 밤마다 안으면서, 뭐가 그렇게 항상 아쉬워요?"
"그것만으론 만족이 안되니깐. 넌 안아도 안아도 질리지가 않아. 오히려 좋아 죽겠어."
"못 살아 내가 진짜. 얼른 준비해요, 얼른."
아침마다 항상 이런 전쟁 아닌 전쟁을 치루는 희진의 얼굴에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데이비드는 샤워를 하고, 희진이 해주는 맛난 음식을 먹곤 다시 양치를 했다. 그리곤 말끔한 수트를 입고 현관문을 나서려다가 희진을 향해 아쉬운 눈빛을 보냈다.
"오늘은 왜 안해줘?"
"자꾸 아침에 말을 안 들으니까요."
"그래도."
"아침에 바로 바로 일어난다고 약속해요, 나한테 장난 안 치기로."
"그래, 알겠다고 알겠어."
하고 싶지 않은 약속을 한 데이비드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희진은 그런 데이비드를 보고 피식, 하고 웃더니 그가 원하는 것을 해주었다. 데이비드의 입술에 쪽- 하고 뽀뽀를 해주자 데이비드는 그제서야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갔다올게, 희진."
"오늘 맛있는거 해줄게요 빨리 와요."
"그 말 굉장히 유혹적으로 들리는 거 알아?"
"또!"
희진의 엄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는 그저 웃음만 내보일 뿐이였다.
"나중에 보자. 사랑해 희진아."
"나두요. 빨리 가요! 지각하겠다."
다시 한번 희진이 입술에 가볍게 뽀뽀를 하곤 그제서야 나가는 데이비드다. 그런 데이비드를 보고 희진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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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댓글도 힘이 된답니닷!!
첫댓글 ㅎㅎ재밌어요~~
아정말 보는내내 미소지으면서읽었어여 ㅋㅋㅋ 달달하네용 > <
아귀여운커플 ㅎㅎㅎ꺅 외국인남친잇으면은 어떤기분일까 ㅎㅎ잘 보고가요
달달달달달달달달달! ~~ 잘봤어용
ㅋㅋㅋ 잘봤어여..ㅋㅋㅋ
귀엽고...둘이 잘돼서 좋아요
우와앗- 정말 달달한! 재미있게 봤습니다.
재미있게 잘 봤어요~~^^*
우왕~부럽다ㅠ
너무너무 부럽다 알콩달콩
데이비드라는 남자 머시따 ㅠㅠ
지금 홍야님 소설 정주행 하고 있어요 ㅋㅋㅋ 저는 귀여운 커플부터 홍야님이 있는걸 알았는데 더있었네요 ㅋㅋㅋ
ㅋㅋ단편이라서아쉽네요ㅋ
너무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