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수(이하 '이') _ 2005년 전시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전시문화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이를 통해 한국미술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 넓게는 해외전시의 추세와 발빠른 변화가 한국미술계에 어떤 방식으로 흡수되고 변형되는지도 이야기해보자.
전시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법으로서 창조자와 감상자의 '의미있는 소통'을 목표로 하여 펼쳐진다. 이전의 전시들은 작품이나 작가의 창조성에 기대는 형식이 많았지만 최근 경향을 보면 영화나 상품 제작에서 보여지듯이 '만들어지는' 전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하랄트 제만 스타일의 전시가 국내전시에서 영향을 끼치면서 큐레이터의 비중이 커졌고, 블록버스터 전시들이 열리면서 전시가 상품화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미술시장에서는 몇 년 전부터 사진 열풍이 일고 있다. 우선 잇달아 열리고 있는 사진전을 중심으로 전시 소비문화를 살펴보았으면 한다.
유진상(이하 '유') _ 최근 사진전이 붐을 일으키는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사진이라는 매체가 시장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 말 회화와 조각이 미술시장에서 붕괴되면서 사진이 이를 대체할 매체로 주목받았다. 더불어 '디아섹(diasec)'과 같은 대형 사진의 보존과 전시를 위한 기술의 진보가 매체 자체에 영향을 주고 이러한 진전이 일반화되면서 사진이 시장에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다.
둘째는 유형학적 사진이라고 불리는 대형 정밀사진에 대한 관심이 사진 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미지를 다룰 때 디지털이나 영상은 시각적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흑백사진을 모태로 한 유형학적 사진은 시각적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즉 사진의 해상도에 대한 신뢰를 통해 사진의 대두에 직접적인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의 사이즈가 커지면서 회화를 대체하는 효과를 지니게 되었고, 이후 전시장과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각광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언제부터인지 대형 포맷 사진이 유행처럼 늘어나고 있다.
김미진(이하 '김') _ 테크놀러지의 발달과 함께 사진은 디아섹을 통해 테크놀러지의 결정체로서 시각적 효과를 누리고 있다. 사진이 왜 이렇게 인기를 끄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대중은 회화에 근접하면서도 미디어의 기초인 사진을 선호하는 듯 하다. 영화와 비디오도 있지만 사진은 매체미술의 기본인 회화적 요소를 담고 있기에 회화를 대체하는 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심지어 미술시장에서는 회화를 능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 _ 김선정 씨는 과거 아트선새센터 큐레이터로서 여러 사진전을 기획하면서 현대사진의 창구가 되어 주었다. 몇 년 전 미술관에서 사진을 다룰 때와 비교해서 최근의 사진에서 어떤 변화가 느껴지는가?
김선정(이하 '선') _ 장르나 매체의 구분 없이 일했기 때문에 사진을 바라보는 특별한 관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앞서 선생님들의 언급처럼 회화의 대체물로서의 사진이나 사진의 대형화 이후 미술시장과의 연계성에 대해 동의한다. 2005년 열린 사진전 중에서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열린 <김상길전>을 흥미롭게 봤다. 사진 자체보다는 작가 개인에 대해 더 탐구할 수 있는 전시였다. 전시기간을 둘로 나눠 동호회 모임과 사루비아다방의 빈 공간을 찍은 사진을 선보였는데 작가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2005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경우 유일하게 사진으로 참여한 작가가 오형근 씨였는데, 전시 이후 바젤 아트페어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해외 화랑에서 전속 요청을 해왔다고 한다. 이처럼 국내 작가들이 해외에서 인정받을 가능성은 크다. 한국작가들이 해외로 나아갈 다양한 방향이 제시되어야 할 때다.
이 _ 사진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다큐멘터리 사진이나 보도사진을 전통에 두는 사진계 라인과, 최근 펼쳐지는 현대미술과 가까운 사진으로 나뉘는 것 같다. 2005년 한 해를 돌아보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구르스키 & 스트루스, 랄프 깁슨 등의 흥행 전시가 많았지만 실제 한국의 상황이나 시의성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많았다. 국내에서 열리는 서구 유명작가 중심의 전시들을 어떻게 볼 것인지, 또 해외사진 경향과 한국사진 경향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해 보자.
유 _ 두드러진 사례를 들자면 카셀 도큐멘타 2005년 전시에서 엘런 시큘러를 비롯하여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 작가들의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이 중요하게 다루어진 것을 들 수 있다. 베니스, 리용, 요코하마와 같은 여타 비엔날레에서도 사진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도큐멘타나 비엔날레급 전시에서 사진을 다룰 때는 특정한 지식이나 정보, 논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재료를 실어 나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먼에 우리가 문제 삼는 국내 전시들은 동시대 담론과 동떨어진 주제를 다룰 때가 많다. 사진의 심미적인 면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반면 2004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다큐먼트전>이나 쌈지에서의 <Pick & Pick전>, <장면들전>은 소형 사진을 통해 새로운 이슈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 사례였다. 외국은 1960년대 말 문화적 변혁을 겪고 난 후, 사진을 시대를 반영하는 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을 우리는 비엔날레와 같은 이슈 중심의 대형 전시에서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사진을 고급예술(high art)로 다루고 있다. 최근 스키모토 히로시의 작품세계가 주목받고 있는데 그는 이미 한국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이싿. 또 야나기 미오 등의 연출사진은 일본적인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는 주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그녀는 최근 대형 디아섹에서 소형 흑백 액자사진으로 전환하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의 대형화보다는 컨텍스트 쪽으로 초저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김 _ 여기에 덧붙이자면, 해외 작가들의 경우 작가의 정체성과 철학적 담론에서 사진작업이 출발한다고 본다. 테크놀러지와 접목해 분석적, 과학적 접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배병우, 김중만, 카르티에 브레송 등 우리나라가 선호하는 작가들은 감상에 접근하는 사진이다. 국내에서는 사진에 얽힌 복잡한 담론이 아니라 시각적 감성에 접근하는 것이 추세인 듯 하다. 몇몇 젊은 작가들은 실험정신을 보이긴 하지만 시대를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선 _ 사진전문 미술관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프랑스에는 메종 유로펜 들 라 포토그라피 빌 드 파리(maison europeenne de la photographie ville de Paris), 주 드 폼(Jeu de Paume)등 사진 전문 미술관이 있고, 미술관들은 서로 성격을 달리하며 다양한 사진을 연구하고 전시한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국내 작가들에 대한 연구, 특히 선배작가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 현재의 전시양상이나 작업의 특징들이 과거로부터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연구들이 젊은 작가들에게 밑거름이 되지 못한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것을 되돌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외국의 것을 들여오는 데 집중해온 것도 문제였다. 사진이든, 미술이든 앞으로 우리의 역사에서 묻어 놓은 것을 보여주는 전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_ 은염사진으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사진과 미술에서 내려오는 현대사진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1세대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내려왔는데, 이들에 대한 재연구나 평가가 없이 지나쳐 왔다. 반면 요즘 주목받고 있는 사진 작가들은 패션이나 상업사진에서 먼저 주목받고, 역으로 순수미술로 들어온 사례가 많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내용에 충실한 사진전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유 _ 전시의 여러 형태 중 정보와 교육에 초점을 맞춘 지식형 전시가 있다. 예를 들어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복식을 주제로 다룬 <신체의 꿈전>과 같은 전시는 학예연구의 준비 기간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진도 지식형 전시로서 다루어질 경우 학예연구의 비중이 매우 커지는 것이다.
이 _ 자연스럽게 사진에서 큐레이팅의 문제로 넘어온 것 같다. 기존 사진전들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관념적인 문제를 풀어 나가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사진 큐레이팅이 전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평론가들이 큐레이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공학을 인지하는 전문적인 사진 큐레이터가 필요하다.
유 _ 국내에서는 예컨대 이영준이 기계, 기술을 주제로 한 이미지와 같이 분명한 자기 영역을 선언하면서 비평과 큐레이팅을 시도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넘어 자료사진의 분류나 기록사진, 연출사진 등에서 다양한 큐레이팅적 접근이 시도되어야 한다.
김 _ 소통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매체적 특성을 떠나 사진을 미술의 한 부분으로 보는 깊이 있는 주제의 전시가 기획되어야 한다. 사진작품을 보여주면서도 사진전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큐레이터가 사진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사진과 미술이 혼성된 전시들을 바라보는 별도의 방법론이 필요하다.
이 _ 국내에서도 사진 전문화랑의 등장과 사진 시잔의 활성화로 일반인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 사진이 큰 이슈가 되었다. 정연두, 오형근, 천경우, 김상길, 김아타, 배병우, 구본창 등 해외 미술계와 시장에서 보편성을 획득한 국내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진의 선전 속에서 2006년 사진계를 전망한다면?
유 _ 고급사진으로 대표되는 미술시장 지향적 사진과 전통적인 사진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기록 중심의 사진으로 더욱 양극화할 것이다.
김 _ 날이 갈수록 해외미술시장의 정보나 세계미술의 흐름을 발 빠르게 접하고 있다. 이러한 해외미술의 정보가 한국 사진시장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을 예상한다.
첫댓글 미술 잡지에서 이런 라운드 테이블을 한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사진전문가 가 빠진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가지고 말을 하니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