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면 외로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70대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인 이유 1위
젊은 날 세상의 거센 비바람 속에서 가정을 일구고 살아가던 시절에는, ]
'홀로 남겨진다'는 말만큼 시리고 두려운 단어가 없었습니다.
북적거리는 식탁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가득하고,
지치고 고단할 때마다 기댈 수 있는 식구가 곁에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야말로
이 험한 세상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울타리이자 행복의 상징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머리칼이 하얗게 세어갈수록,
빈방에 홀로 남아 불을 켜는 독거의 삶은 막연한 동정과 쓸쓸함,
혹은 감당하기 힘든 외로움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의 반환점을 돌아 일흔이라는 원숙한 나이테를 두르게 되었을 때,
세상의 겉모습 너머에 숨어 있던 인생의 참된 풍경은 전혀 다른 빛깔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칠십 대 어르신들이 모여 앉은 복지관의 햇살 바른 벤치나 동네 산책로 어귀에서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솔직한 속내를 가만히 귀담아듣다 보면,
젊은 시절의 통념을 뒤흔드는 깊은 탄식과 함께 뜻밖의 선망 섞인 고백을 마주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배우자를 먼저 보내거나 자식들을 다 출가시키고 혼자 사는 친구들을 보며 참 딱하고 쓸쓸하겠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일흔을 넘기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 지금 와서 가만히 보면 저렇게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과 자유를 누리며
정갈하게 살아가는 친구가 세상에서 제일 부럽고 멋진 팔자야."
북적거리는 대가족의 틈바구니에서 평생을 타인의 시선과 요구에 맞추어 제 살점을 깎아 넣으며 살아온 이들이,
왜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 "혼자면 한없이 외롭고 처량할 줄 알았는데,
저 사람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거룩한 축복을 누리고 있다"며 한목소리로 부러워하게 되는 것일까요.
칠십 대가 가슴 깊은 곳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꼽는 '의외로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 1위'의 실체는 바로,
‘가족과의 깊은 신뢰와 사랑을 따스하게 유지하면서도,
타인에게 기대거나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의 온전한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정갈하고 품격 있는 독립적인 삶’,
다시 말해 ‘속박 없는 고요 속에서 누리는 눈부신 자기 삶의 자율권’이었습니다.
외로움이라는 차가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혼자만의 공간이 노년의 삶에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자유이자 축복으로 피어나는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첫째는, ‘평생을 짊어져 온 끝없는 돌봄과 희생의 굴레에서 벗어난 절대적인 해방감’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칠십 년을 살아온 부모 세대, 특히 어머니와 가장들의 일생은 온전히 '나'를 지워버리고
'가족'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제 뼈마디를 갈아 넣은 세월이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을 짓고, 남편과 아내의 기분을 살피며, 자식들의 학업과 취업,
결혼과 출산에 이르기까지 내 삶의 모든 시간표는 늘 다른 사람들의 안위와 편의를 위해 돌아갔습니다.
칠십이 넘어서도 배우자가 곁에 있고 자식들과 한집에 살거나 지근거리에서 부대끼는 일상은 겉보기에는
화목하고 든든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가사 노동과 감정 노동의 멍에가 묵직하게 얹혀 있습니다.
삼시 세끼 따뜻한 국을 끓여 올려야 하고, 상대방의 거친 숨소리와 투정, 사소한 습관 하나까지도
온종일 맞추어주며 살아야 하는 일상은 노년의 쇠약해진 육신에게 결코 가벼운 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온전히 나만의 공간을 가진 사람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 누구의 눈치도 살필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내가 먹고 싶은 소박한 나물 반찬에 밥 한술을 편안하게 차려 먹으며,
배가 고프지 않으면 그저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해도 그 누구 하나 타박하거나 보채는 이가 없습니다.
빨래를 오늘 하든 내일 하든, 거실 창가에 우두커니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세 시간 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든,
내 행동에 대해 묻거나 참견하는 이가 없는 그 완벽한 무풍지대. 평생 타인의 밥상을 차리고 타인의 기분을 맞추느라
제 속이 문드러지는 줄도 몰랐던 노년에게, 하루 스물네 시간을 오롯이 내 뜻대로 호흡할 수 있는
이 온전한 주권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황금 침대보다 편안한 천국과 같은 휴식인 것입니다.
둘째는, ‘가족과 건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오히려 더 깊어지는 자식들과의 애틋한 화목’입니다.
흔히 혼자 사는 노년이라 하면 자식들에게 버림받았거나 가족 관계가 끊어진 쓸쓸한 풍경을 떠올리기 쉽지만,
칠십 대들이 진정으로 부러워하는 '혼자 잘 사는 사람'은 결코 가족을 등진 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식들과 깊은 사랑과 신뢰의 끈을 단단하게 이어가되,
일상의 물리적인 공간을 지혜롭게 분리하여 서로의 영역을 온전히 존중해 주는 성숙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입니다.
한집에 모여 살거나 매일같이 부대끼다 보면, 아무리 피를 나눈 자식과 며느리, 사위라 할지라도
사소한 생활 습관과 양육 방식, 말 한마디의 뉘앙스 때문에 오해가 쌓이고 서운함이 싹트기 쉽습니다.
부모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 말을 무시하느냐"며 서운해하고,
자식은 "부모님이 우리 집안일에 너무 간섭하신다"며 숨이 막혀 합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밀착된 관계는 때로 서로의 가시로 상대방을 찌르는 아픔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공간을 품격 있게 지키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부모는 자식에게 짐이 되지도, 간섭의 대상이 되지도 않습니다.
자식의 가정사에 불쑥 끼어들어 훈수를 두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부지런히 가꾸며 당당하게 살아가기에
자식들은 부모를 대할 때 죄책감이나 피로감 대신 깊은 존경과 애틋함을 품게 됩니다.
주말이나 보름에 한 번씩 자식들이 손주들의 손을 잡고 찾아올 때,
부모는 반가운 미소로 아이들을 맞이하여 정갈한 과일 한 접시를 나누어 먹으며 그간의 안부를 따뜻하게 묻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다정하게 정을 나눈 뒤 자식들이 돌아갈 때면,
"너희 살림 바쁘니 어서 가거라, 운전 조심하고 건강 잘 챙겨라" 하고 쿨하게 배웅하며 문을 닫습니다.
자식들이 떠난 텅 빈 거실에서 쓸쓸함에 눈물짓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무탈하게 잘 살아주니 참 고맙구나" 하며 다시 나만의 고요한 평온 속으로 사뿐히 걸어 들어가는 삶.
질척거리는 집착과 의존을 털어내고, 적당하고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가족 간의 사랑을 가장 맑고 흠집 없는 보석으로 지켜내는 그 고결한 지혜를 바라보며,
매일 자식들의 눈치를 살피며 가슴앓이를 하는 노년들은 깊은 부러움의 한숨을 내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외로움을 고독의 즐거움으로 승화시켜 피워내는 내면의 풍요와 취향의 발견’입니다.
사람이 젊은 날에는 남들의 인정과 사회적 관계에 목을 매지만,
칠십을 넘어서면 내 영혼을 진짜 위로해 주는 것은 바깥의 시끄러운 박수가 아니라 내
안에서 길어 올리는 고요한 기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칠십 대의 일상은 결코 적막하거나 비루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정갈하게 이부자리를 개어두고, 좋아하는 잔잔한 가곡이나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은 채
창가 화분에 분무기로 물을 줍니다.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시집을 돋보기를 코끝에 걸치고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마음에 와닿는 글귀를 정성스레 수첩에 필사하고, 오후에는 편안한 운동화를 꿰어 신고 천변을 산책하며
계절마다 피어나는 들꽃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봅니다.
주민센터나 복지관에서 서예를 배우거나 그림을 그리고, 동네 이웃들과 텃밭에서 가꾼 상추 몇 포기를
나누어 먹으며 담백한 인사를 건네는 소박한 일과.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남편이라는
무거운 이름표를 떼어내고, 비로소 칠십 평생 처음으로 온전한 '나 자신'과 마주 앉아 다정하게 차를 마시는
그 시간들은 인간이 태어나 누릴 수 있는 가장 순결하고 눈부신 정신적 사치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평을 들어줄 필요도 없고, 남의 화려한 삶과 나를 견주며 초조해할 이유도 없는 그 단단한 내면의 성채.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휘둘려 허겁지겁 사람을 찾아 헤매지 않고, 홀로 있는 고독을 향기로운 침묵으로 바꾸어낼 줄 아는
그 품격 있는 사람 곁에는 억지로 꾸며내지 않아도 은은한 난초 향기 같은 어른의 기품이 번져납니다.
인생의 황혼에서 마주하는 참된 행복이란, 내 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왁자지껄하게 둘러싸여 있는가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타인의 기대에 나를 맞추려 애쓰지 않고, 내가 가진 작은 공간과 시간을 내 손으로 온전히 통제하며,
스스로의 고독과 다정하게 악수할 줄 아는 단단한 자존감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든든한 등대처럼 멀찍이 서서 그들의 평화를 축복해 주는 넉넉함,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내 영혼이 기뻐하는 소박한 일들로 정갈하게 채워 넣는 부지런함,
그리고 남의 손길을 구걸하지 않고 내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서서 저녁노을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 당당한 자립심.
혼자라는 고요함을 가장 찬란한 자유의 날개로 바꾸어 입고 단정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그 사람이야말로,
수많은 인연의 그물망 속에서 여전히 허덕이며 마음 졸이는 이들이 가장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는
칠십 대 인생의 진정한 대승리자이자 가장 복된 상팔자의 주인공입니다.
첫댓글 넉넉함, 부지런함, 자립성...
칠십 대 인생의 진정한 대승리자이자 가장 복된 상팔자의 주인공의 요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