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下午의 당구/임채우
당구를 친다
하오의 햇살에 눈부신 북한산 연봉을 바라보며
녹색 당구대 위에는
큐대를 잡는 순간의 설렘과
병든 마누라와 자식의 취업과 고혈압과는 상관
없는
물물마다 고유의 질서와 법칙이 있노라고
그와는 도시의 북쪽과 서쪽에서 한참을 달려 조
우했다
산성 당구장, 창틀에 끼어 있는 풍경 하나
빨강, 노랑, 하얀 당구알 셋
구르다 부딪히는
저, 기하학적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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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임채우 시인이 4번째 시집을 상재했다. 작년 가을쯤인가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원고를 통째 보내줘 읽은 적이 있다. 며칠 지나고 나서 읽어보았냐고 묻길래, 나는 시가 좋다는 말은 않고 산문이 멋져요, 라고 대답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말이 임채우 시인에게 비수가 될 줄은 까맣게 몰랐다. 소설가보다도 시인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그의 심중에 내가 못을 박고 말았던 것. 그런데 임채우 시인은 소설을 전공해서인지 산문 맛은 정말 기가 막히게 좋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고 결국 4번째 시집을 도서출판 움에서 펴냈는데 A4용지로 보았던 그 시가 아니었다. 아니, 시는 분명 같은 시였는데 시집으로 나온 시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슴슴하다고 건방을 떨었던 내 발언이 무색했고 나는 나의 어설픈 시안에 깊이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시집 제목은 "소아과에서 차례 기다리기", 손자가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자손이 아프면 내가 아픈 것보다 더 아프게 느낀다는 것, 그는 소아과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까. 그는 평생을 교직에 몸담았고 또 자녀들을 잘 키워냈으며 선생님으로서 직분을 충실히 잘 해 왔다. 대부분 그렇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무리 없이 식솔을 이끌어 가는 것은 쉬운일 만은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불행이 먹구름처럼 머리 위를 지나칠 때면 더더욱 그러하리라. 그런데도 시인은 꿋꿋하게 가정을 잘 다독여 왔다. 단적으로 그럴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 그의 처신을 보면 잘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싫은 내색 한번 없이 아량을 베풀거나 솔선수범하는 그를 보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모범적인 시인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임채우 시인의 가정사 속속들이 다 알 순 없지만 이 글에서 시인은 아팠던 기억을 고스란히 토해 내고 있다. 당구를 유흥의 놀이 정도로만 아는 사람들이 아직은 많음에도 불구하고 당구를 시적 소재로 끌어들인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시인에게는 아주 친한 소설가 한 분이 있는데 서로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좀 적조하다 싶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화를 해서 북한산 초입에 있는 산성 당구장 앞에서 만난다. 그리고 북한산 둘레를 산행하며 거친 호흡으로 서로의 속내를 내비치곤 복잡한 심사를 풀어냈던 것이다.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을 때가 있다. 시인도 그러했으리라. 친한 친구와 거닐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뒤, 마치 입가심처럼 당구를 한판 치고 하산하면 어지러웠던 심사가 잠시나마 누그러졌을 것이다. 어쩌다가 나도 북한산 자락 산성 당구장에 시인의 초대를 받아 가 본 적 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북한산 인수봉은 마치 액자에 담아 놓은 듯 수려했다.
당구대는 푸른빛의 천이 우주 잔디처럼 깔렸고 당구알은 마치 행성처럼 구른다. 수구를 통해 제 1목적구를 타격하고 벽에 세 번 이상 부딪힌 다음 제 2목적구를 맞췄을 때 점수를 얻는 게임, 즉 스리쿠션이라는 게임이다. 분명 진로의 방향이 함수적으로 적용하면 정확하게 맞아야 하는데 생각처럼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아슬아슬한 경기, 당구알의 스핀, 당점, 두께, 큐의 속력 등 여러가지가 잘 조합되었을 때 적중율은 높아지는 절묘한 게임이다. 어쩌면 우리는 당구대 위에서 구르는 당구알인지 모른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음에도 순간 삐끗해서 실패하는 일이 다반사, 설사 모든 것이 정확하게 작용하여 목적볼에 잘 진행되는 것 같아도 수구에 부딪힌 제 1목적구가 돌아 어느새 수구를 방해하는 경우, 그래서 코앞에서 실패를 접하는 허탈함을 맛보곤 한다. 시인은 그 부딪힘을 /기하학적 충돌/이라고 말하고 있다. 큐를 가지고 제 1목적구를 가늠한 뒤 당구알을 타격하지만 빗나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을 느낀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갈 데도 있고 때론 초크를 제대로 바르지 않아 큐 미스를 하므로서 시작도 못 하고 물러나야 하는 서글픔, 삶은 내가 계획한 데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당구를 통해 방증하고 싶은 것이다. (전선용)
첫댓글 '기하학적 충졸' 이란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삶의 대변입니다
소아과에서 차례 기다리기!!
제목도 참 좋고
그 내용도 참 좋은 시집,
다시금
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