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저는 항상 한국인과 유대인 사이에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공유점이 있다고 느껴왔습니다. 이 책에서 유대인이면서 현대 이스라엘 철학을 이끌어왔던 대표주자의 한 사람인 마갈릿은 기억을 매개로 하여 추상적인 인간관계가 아닌 구체적인 관계 안에서 구축할 수 있는 돌봄과 용서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고, 이것이 바로 불과 1987년을 분기점으로 처절한 독재와 강압의 고통을 기억하는 한국적 상황에도 전적으로 유효한 이정표를 제공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세련된 번역을 통하여 가독성을 높인 옮긴이들의 수려한 문장이 이러한 효과를 배가하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진지한 일독을 강력하게 권하는 바입니다.
김한라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미국 네브라스카 대학(오마하) 나탄 슈와브 이스라엘 및 유대교 연구소 상주연구원
📝 저자 소개
아비샤이 마갈릿Avishai Margalit
현재 예루살렘의 히브리대 철학과 명예교수이다. 1939년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서 수학한 뒤 영국의 옥스퍼드대, 독일의 베를린 자유대학 및 막스플랑크 연구소, 미국의 뉴욕대 등에서 강의와 연구활동을 해온 세계적인 유대인 철학자로서 학술적 공로를 인정받아 스피노자 렌즈상(2001)과 이스라엘 총리가 수여하는 에메트(EMET)상을 받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를 촉구하는 세계적인 NGO 단체 ‘피스나우’(Peace Now)의 설립자 중 한 명이다. 국내 출간된 저작으로 『품위 있는 사회』(동녁, 2008), 『옥시덴탈리즘: 반서양주의의 기원을 찾아서』(민음사, 2007), 『배신: 인간은 왜 믿음을 저버리는가』(을유문화사, 2017)가 있다.
📜 목차
머리말
서론
1. 감금된 기억
2. 나의 주제
3. 각 장의 순서
1장 집중 돌봄
1. 이름을 기억하라
2. 기억과 돌봄
3. 윤리와 돌봄
4. 내 이웃은 누구인가?
5. 체계적 애매성
2장 지속되는 과거
1. 공유기억
2. 공유기억의 의지주의
3. 기억의 기억
4. 집단적 기억과 신화
5. 생명을 불어넣기
6. 기억의 공동체들
7. 하나의 보편적 윤리 공동체
3장 핵심
1. 윤리적 평가
2. 기억과 죽음
3. 기억의 공동체에서 싹튼 희망
4. 답변의 도출
4장 회상된 감정
1. 일화적 기억
2. 부정적 정치
3. 상처에 모욕을 더하기
4. 시에서의 되살림과 회상
5. 모욕 유도하기
6. 트라우마
7. 감정 유지하기와 되살리기
8. 삶 되살리기
9. 기분과 감정
10. 감정의 수정주의적 역사
11. 염려와 돌봄의 교차점
12. 훈육되지 않은 감정의 무리들
5장 도덕적 증인
1. 도덕적 증인의 표지
2. 희망에 반하는 희망
3. 도덕적 증인의 도덕적 애매성
4. 진실과 진정성
5. 악을 폭로하기
6. 흥미로운 사례들
7. 대리인으로서의 증인
8. 증언과 증거
9. 도덕적 증인이라는 관념을 변호하며
10. 도덕적 증인인가 윤리적 증인인가?
6장 용서하기와 망각하기
1. 인본주의적 방향설정
2. 용서하기와 망각하기의 계보학
3. 용서: 죄를 지우기인가 감추기인가?
4. 태도이자 의무로서의 용서
5. 선물로서의 용서
6. 되돌아가기
7. 망각하기가 의도적일 수 있는가?
8. 용서
9. 이차 용서
참고문헌
옮긴이 해제: 기억, 돌봄, 윤리의 관계 맺기
인명 찾아보기
사항 찾아보기
📖 책 속으로
망각된 과거의 기억에 대한 나의 탐색과 연구를 촉발한 프루스트적인 마들렌은 예루살렘의 한 지역신문에 실린 작은 이야기였다. 그것은 자신의 휘하에서 복무하다 전사한 병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한 장교에 관한 이야기였다. 장교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난받았다. 나는 제1장에서 이 이야기를 소개하고 그 함축된 의미를 상당히 광범위하게 다룰 것이다. 여기서 이 일화를 언급하는 까닭은 기억의 윤리에 대한 나의 관심을 촉발한 대단한 사건은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너머에는 크고 무서운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이 기억에 대해 자주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것은 전쟁이 끝날 무렵 시작되었다. 내 부모님은 영국이 통치하던 팔레스타인에 있었고, 전쟁 내내 그 분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일은 사실로 밝혀졌다. 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대부분 학살되었다. 나는 부모님이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실제로 사용한 낱말들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전통적 용어인 ‘파괴’()를 언급했던 것은 기억한다. 유대 전통에서 그것은 로마인들에 의한 성전의 파괴와 유대인 추방을 이르는 말이다.
- 머리말에서
이 책의 주제는 기억의 윤리에 대해 묻는 것이다. 기억의 윤리는 존재하는가? 나는 이 주제를 긴밀하게 연관된 다른 주제들, 즉 기억의 심리학, 기억의 정치학, 기억의 신학 등과 분명히 구별하여 고찰한다. 나는 바로 이것이 탐구해야 할 중요한 물음이며, 쟁점들을 임의의 지성적 분과로 전달하는 식의 무익한 관리 업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억의 윤리는 존재하는가? 나의 물음은 ‘미시 윤리’(microethics), 즉 개인의 윤리와 ‘거시 윤리’(macroethics), 즉 집단의 윤리 양자를 포괄한다. 나의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물음들로 제시될 수 있다. 우리에게 과거의 사건과 사람을 기억할 책무가 있는가?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 책무의 본성은 무엇인가? 도덕적 칭송이나 비난을 받을 만한 적정한 주체를 기억하는 것과 망각하는 것인가? 기억할 책무가 있는 ‘우리’는 누구인가? 집단적 ‘우리’인가, 아니면 집단의 모든 구성원 각각에 책무가 있다는 분배적 의미에서 ‘우리’인가?
각 장의 경로를 거쳐, 나는 기억의 윤리(an ethics of memory)는 존재하지만, 기억의 도덕(the morality of memory)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아마 느낌표보다는 물음표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은 이러한 생각의 흐름은 분명 윤리와 도덕의 구별에 의존한다. 내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다시 두 유형의 인간관계, 즉 두터운 관계(thick relations)와 얕은 관계(thin relations)의 구별에 기초한다. 두터운 관계는 부모, 친구, 연인, 지인 등과 같은 속성에 기초한다. 두터운 관계는 공유된 과거에 정박되거나 공유된 기억에 묶여있다. 반면, 얕은 관계는 인간이라는 속성에 의해 뒷받침된다. 얕은 관계는 인간이라는 것의 특정 측면, 이를테면 여성임 또는 환자임에 의존한다. 두터운 관계는 일반적으로 가깝고 친밀한 이와 우리의 관계이다. 얕은 관계는 일반적으로 멀고 낯선 이와 우리의 관계이다(이 구별은 제1장에서 상세히 다뤄진다). 나의 용례에서 윤리는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두터운 관계를 규제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며, 도덕성은 우리가 어떻게 얕은 관계를 규제해야 하는지 일러준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