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지인(婦人之仁) - 아녀자의 어진 성품, 남자가 과단성이 없이 머뭇거림
[며느리 부(女/8) 사람 인(人/0) 갈 지(丿/3) 어질 인(亻/2)]
며느리나 아내를 나타내는 婦(부) 글자를 분해하면 여자[女/ 녀]가 빗자루[帚/ 추]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결혼한 여자는 집안 청소 등 가사를 전담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더 오랜 중국 商(상)나라 때엔 왕비 등 지체 높은 여자를 가리켰고 신성한 제단을 청소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어떠한 것이든 세세하고 오밀조밀한 일까지 신경 쓰는 아녀자를 나타내는 것에는 지체와 관계없겠다. 그런데 힘이 산을 뽑는 천하장사 楚(초)의 項羽(항우)가 아녀자의 어진 성품을 지녔다고 평한 이야기가 있어 의외다. 물론 긍정적인 것은 아니고 좀스럽고 우물쭈물한 그의 일면을 꼬집은 데서 나왔다.
중국서 첫 천하통일을 이뤘던 秦(진)나라는 始皇帝(시황제)가 죽은 뒤 각지서 영웅호걸들이 일어나 난립했다. 초나라 명문 출신인 항우는 곧 세력을 결집해 覇王(패왕)이 됐으나 하급관리에다 보잘것없는 집안의 劉邦(유방)에게 패한 뒤 자결했다.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던 유방에게 천하를 호령하고도 비극적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은 항우가 인재를 보는 눈이 없어 모두 떠나게 한 것이 주원인이었다. 칠순의 고령에도 비범한 전략을 자랑하던 范增(범증)의 제안을 듣지 않아 유방 제거의 기회를 놓쳤고, 연전연승의 명장 韓信(한신)도 능력에 걸맞지 않게 하급 장교로 두었다가 유방의 휘하로 달아나게 했다.
楚漢(초한) 전쟁에서 승리한 유방은 전략가 張良(장량), 군수 조달의 蕭何(소하)와 함께 漢興三傑(한흥삼걸)로 한신을 높이 평가했다. 소하의 적극 추천으로 대장군이 됐을 때 한신에게 유방이 항우와 비교해 보라고 했다. 한신은 항우가 노기를 띠고 호령하면 1000명이 기절할 정도이니 유방이 못 미치지만 사람을 믿지 못한다며 말을 잇는다.
‘막상 공을 세운 부하에게 벼슬을 내릴 때면(使人有功當封爵者/ 사인유공당봉작자), 인장이 아까워 만지작거리며 닳을 때까지 내주지 못하니(印刓敝忍不能予/ 인완폐인불능여), 이른바 아녀자의 어짊일 뿐입니다(此所謂婦人之仁也/ 차소위부인지인야).’ 刓은 닳을 완. 항우에게 완력으로는 누구도 당하지 못하지만 사람을 쓰는 데는 형편없다는 말이다. ‘史記(사기)’ 淮陰侯(회음후) 열전에 실려 있다.
항우를 아녀자의 성품이라 한 것은 사람을 공경하고 화기애애하게 말하며 병자에겐 눈물을 흘리고 음식을 나눠주는 면도 있는데 인재를 쓸 때 머뭇거린다는 점이었다. 오늘날의 여성들에게 빗자루만 들고 좀스럽게만 행동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여권이 신장된 편이다.
‘여자는 훌륭한 남자를 만드는 천재‘라거나 ’여성의 직관은 남성의 오만을 능가‘한다며 높인 철인도 있다. 심지어 세계를 정복하는 남성을 정복하는 사람은 여성이란 말까지 나왔다. 여성의 어진 성품을 좋은 방향으로 쓸 곳은 무궁무진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