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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8일 오늘의 역사
2023년 북한 장거리 탄도미사일 동해상으로 발사
2022년 캄보디아.사기조직의 장기적출·실종 사례 발생
캄보디아에서 중국인들을 유인해 장기를 적출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중국 당국은 캄보디아 취업주의보를 내렸다.
캄보디아 인터넷 사기 조직에 납치돼 감금 상태에서 피를 뽑힌 중국 남성 리모씨(31)가 탈출해 현지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국 장쑤성 출신 리씨는 지난해 6월 고임금을 보장한다는 친구의 소개로 광시(廣西)에 갔다가 신원을 알 수 없는 이가 건넨 음료를 마신 뒤 정신을 잃고 베트남을 거쳐 캄보디아 시아누크빌까지 납치됐다.
이후 리씨는 납치 조직으로부터 인터넷 사기에 가담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거부했다. 이에 납치조직은 리씨를 감금하고 지난해 8월부터 7차례에 걸쳐 매번 1500ml의 피를 뽑아 팔았다. 리씨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탈출했다
그는 "사기단이 장기도 적출해 팔겠다고 협박했다"며 "함께 있던 중국인 한명은 피를 뽑히고 장기를 적출당한 뒤 이튿날 사라졌다"고 전했다.
앞서 중국에서는 리씨처럼 최근 일자리를 찾다 캄보디아에서 피해를 보는 사건이 연거푸 발생했다. 20대 중국 여성 왕모씨 역시 2020년 12월 캄보디아에 갔다가 실종됐다.
왕씨 어머니는 지난달 13일 이후 연락이 끊긴 뒤 지난 14일 '딸이 납치됐으니 20만위안(3800만원)을 보내라'는 웨이신(微信·위챗) 문자를 받았다. 왕씨의 중국인 일행 2명은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됐지만 왕 씨의 행방은 현재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2022년 포르쉐, 벤틀리 등 고급승용차 4000대 실은 파나마선적 화물선 화재
2020년 아프가니스탄 중앙선관위, 대통령 선거 실시(2019.9.28.) 5개월 만에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 당선 발표
2020년 신천지예수증거장막성전 대구교회 신도 코로나19 확진 판정, 코로나19 1차 대유행 시작
2017년 김민희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2017년 미국서 여성의 임신중절권리 첫 인정받았다가 반낙태운동가로 변신한 노마 매코비 세상 떠남(69세)
2012년 경희대학교 설립자 미원 조영식 박사 별세
1921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1951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경희대 전신인 신흥초급대학을 인수, 교육자의 길로 들어섰다. '교육의 힘으로 나라를 세운다'는 신념으로 경희학원을 유치원부터 대학원에 이르는 명문 사학(私學)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한국인이 가장 즐겨 부르는 가곡 중 하나인 '목련화'의 작사가이다. 1974년 고인은 대서양을 지나는 비행기 안에서 '목련화' 노랫말을 지었다. 여기에 당시 경희대 음대 학장인 김동진 교수가 곡을 붙여 그해 개교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목련화'가 처음 연주됐다. 목련은 경희대를 상징하는 교화(校花)이기도 하다.
고인은 1965년 세계대학총장회(IAUP)를 창설하고 총장회의 회장과 영구 명예회장을 맡았다. 또 세계대학총장회 산하 평화협의회(HCP) 의장, 밝은사회국제클럽(GCS International) 국제본부 총재,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총재, 오토피아평화재단 총재, 통일고문회의 의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사회평화 운동가이기도 했다. 1950년대 중반 농촌계몽운동, 잘살기운동, 인류사회 재건운동 등을 펼치며 봉사를 통한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1981년에는 유엔에 세계평화의 날과 해를 제정하도록 제안해 1982년부터 '세계 평화의 날'을 운영하도록 하는 데도 기여했다.
이 같은 공로로 제1회 세계인류학자대회에서 '인류 최고 영예의 장'을 수상했으며 UN 평화훈장, 비폭력을 위한 마하트마 간디상, 대한민국 정부 국민훈장 무궁화장, 만해평화상 등을 수상했다.
1982년에는 일천만이산가족 재회추진위원장을 맡으면서 남북한 이산가족 재회운동을 주도했다. 이를 위한 범세계 서명운동을 전개해 153개국에서 2100만2192여명으로부터 이산가족 재회운동 서명을 받았다. 이는 세계기네스협회가 인증하는 최다 국가, 최다 서명 세계 기록이다.
하지만 고인은 학교를 운영하며 수사기관에 연행되는 등 평탄하지만은 않은 삶을 살았다. 1980년 5공화국 정부의 압력으로 총장직을 사직한 그는 이듬해인 1981년 사학비리 혐의로 연행돼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았다.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당시 대학을 장악하려는 신군부의 미움을 사 한동안 총장직에서 떠나 있기도 했다.
2011년 중동발(發) 민주화 시위’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19일 미 백악관 인근에서 집회를 가졌다. 리비아군은 벵가지에서 시위를 하다 목숨을 잃은 시위대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이날 박격포와 기관총으로 공격하는 등 지난 6일간 6개 도시에서 최소 200여명이 사망했다고 AP가 보도했다. ‘아랍의 봄’은 전례가 없는 시위 운동 및 혁명의 물결로, 2010년 12월 이래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들이다. 알제리, 바레인, 이집트, 이란, 요르단, 리비아, 모로코, 튀니지, 예멘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 모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으며, 이라크, 쿠웨이트, 모리타니,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에서도 규모가 작은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 반정부 시위에서는 파업 참여 운동의 지속, 데모, 행진과 대집회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조직, 의사 소통, 인식 확대를 통해 광범한 시민의 저항 운동이 일어났다.
여러 반정부 시위 가운데,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의 반정부 시위는 정권 교체로 이어졌으며, 이는 혁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2010년 서울 지하철 3호선의 연장 구간인 수서역에서 오금역까지 연장·개통.
2009년 소설가 정을병씨 별세
정을병 전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이 2009년 2월 18일 간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한국소설가협회와 지인 등에 따르면 고인은 2003년 소설가협회 이사장직에서 퇴임한 후 외부활동을 하지 않은 채 집필에 전념하다 3년 전부터 간암으로 투병생활을 해왔다.
경남 남해에서 출생한 고인은 1961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후 ’개새끼들’, ’아테나이의 비명’, ’도피여행’ 등 다수의 소설을 발표했으며 2007년에는 도서평론가 박창근 씨와 함께 창작론을 담은 ’글쓰기 책’을 펴내기도 했다.
현대문학상(1967), 한국소설문학상(1976), 대한민국문학상(1987) 등을 수상했으며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 월간 ’동서문학’ 주간, 한국문학학술저작권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용산 초등학생 성폭행 살해사건 발생.
심부름을 하러 갔던 허모(某) 어린이(당시 11세, 여)가 김장호(당시 53세, 남)에게 살해되어 경기도 포천시의 한 공터에서 불태워진 채 발견된 사건.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발생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방화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당해 총 34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때문에 이 참사는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역대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손꼽힌다.
사고는 50대 남성에 의해 시작됐다. 뇌졸중으로로 치유할 수 없는 장애를 얻게 돼 죽음을 결심한 김대한(당시 56세)은 '혼자 죽기 억울하다'는 생각으로 범행을 준비했다.
이날 9시 30분 경. 그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동에 있는 송현역에서 1079열차 지하철에 올라탔다. 김대한은 송현역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서 휘발유 2리터를 구입한 상태로 열차에 승차했다. 9시 51분 경. 1079열차가 전역인 반월당역을 출발하자 김대한은 라이터를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대한은 1079 열차가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에 있는 중앙로역에 정차하는 순간, 미리 들고 있던 석유 플라스틱 통에 불을 붙였다. 주변 승객들은 당황해했고 승객들이 그를 제지하려는 찰나, 불이 그의 옷에 옮겨붙자 놀란 김대한은 휘발유 통을 바닥에 던졌다. 불이 삽시간에 전동차 의자와 바닥 천장에 옮겨붙어 결국 수 초만에 큰 불이 발생했다. 다행히 당시 1079 열차는 중앙로역에 정차 중이었고 많은 승객들이 열려 있던 출입문을 통해 대피할 수 있었다.
후속 열차 진입을 막고 신속히 진화와 구조 활동을 해야 했지만 상황 전파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화재 발생 유무를 알릴 의무가 있었던 1079호 열차 기관사는 당시 불을 끄려고 노력했지만 곧바로 사령실에 상황을 보고하지 않았다. 결국 대구역에서 출발한 1080호가 맞은편 선로로 들어왔고 불은 1080호 열차가 몰고 온 바람을 타고 더 확산했다. 여기서 1080호 기관사 역시 잘못된 선택으로 사고를 더 키웠다.
그는 승객들이 다 대피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열차 내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키를 뽑아들고 대피했다. 전동차는 키를 뽑으면 출입문이 모두 닫히는 구조. 그 탓에 열차 내에서 기관사의 지시를 기다리던 많은 승객들이 숨지거나 다쳤다.
2001년 미국 FBI 요원 로버트 필립 핸슨, 간첩활동 하다 체포
15년 동안 러시아를 위해 간첩활동을 해온 미국 연방수사국(FBI) 베테랑 요원 로버트 핸슨(56)이 2001년 2월 18일 체포됐다. 핸슨은 버지니아주의 한 공원 내 러시아 첩보원과의 연락 장소에 비밀정보가 든 꾸러미를 은닉한 직후 당국에 체포됐다.
핸슨은 지난 25년간 FBI에서 방첩임무를 맡아왔으며 근무기간 대부분을 미국 내 러시아 정부기관에 대한 첩보 수집활동에 종사해왔는데, 1985년 10월부터 러시아를 위해 이중간첩활동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러시아로부터 140만달러 이상의 금품을 받고 간첩활동을 해온 핸슨은 베테랑 요원답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데도 축적된 경험을 십분 발휘, FBI는 물론이고 자신과 거래했던 러시아측 연락원조차도 핸슨이 체포될 때까지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던 것으로 외신들은 전했다.
진술서에 따르면 핸슨은 자신을 담당한 러시아측 요원을 절대로 만나지 않았으며 비밀 장소에서 암호화된 메시지와 금품을 주고받는 치밀성을 보였다. 그는 `시카고`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자신이 다음 월요일 비밀 장소에서 물건 교환을 원하고 있다는 뜻임을 약속해두었다. 핸슨의 위치로 볼 때 그가 러시아에 넘긴 정보들에는 1급 비밀들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핸슨은 학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치과학을 공부하다가 전공을 바꿔 회계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공인회계사 자격을 얻었다. 잠시 회계사 사무실에서 일했으나,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를 이어 1972년 시카고 경찰청에 들어갔으며 1976년 초 FBI에 합류했다. 6자녀를 둔 전형적인 중산층 가장인 핸슨은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주에 30만달러짜리 집을 소유하고 있다.
1994년 종교연구가 탁명환씨 피습 절명
1994년 2월 18일 밤 10시 14분쯤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 탁명환씨(57)가 서울 노원구 월계3동 자신의 아파트 2층 복도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괴한들이 휘두른 흉기에 목 2곳을 찔려 상계백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9일 0시12분쯤 숨졌다. 탁씨는 이날 아들 지원씨, 민주당 인권위 이성호 부장 등과 함께 경기도 안양을 방문, 영생교실종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고 영생교 교회를 현지 답사한 뒤 귀가하던 중이었다.
1937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탁씨는 전북대 철학과와 영남신학교-연세대 연합신학원을 졸업했으며, 1980년대 초까지 한신대-목원대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1970년 설립한 신흥종교문제연구소를 1979년 국제종교문제연구소로 확대·개편한 뒤 이곳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현대종교’를 통해 사이비종교 및 기독교 이단에 대한 폭로활동을 벌여왔다. 그는 지난 1991년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과 (주)세모의 관련설을 폭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탁씨는 이 때문에 사이비종교 집단의 신도들에 의해 60여차례 이상의 구타와 테러를 당하는 등 고난을 겪어 왔다.
경찰은 범행현장에서 당시 사용한 쇠파이프 손잡이 부분을 감싼 달력종이를 확보, 수사한 결과 범인이 대성교회 운전자 임홍천씨임을 밝혀냈다
1992년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 평양에서 개최(-21일)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이 1992년 2월 18일부터 3박4일간 평양에서 개최됐다. 이번 회담에서는 1991년 5차 회담에서 합의된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정치 군사교류협력 3개 분과위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등을 발효시켰다. 발효 행사는 한국측에도 TV로 생중계됐다.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기본합의서 발효와 관련, 북한측의 성실한 실천을 촉구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이로써 한반도는 반세기만에 평화공존을 위한 기본틀을 마련했다. 한편 한국측 대표인 정원식 총리가 20일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논의했으나 김주석이 “우리는 핵무기가 없고 만들지도 못한다”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해 핵사찰이나 검증절차에 대한 결론을 맺지 못했다
1991년 영국 런던 철도역 2곳서 폭탄 테러
1981년 레이건 미대통령, 경제재건계획 `레이거노믹스` 발표
1981년 포철 4기 설비 확장 공사 준공(年조동 850만톤 생산)
1981년 이란, 요르단과 단교
1980년 캐나다 총선, 자유당(당수 트뤼도)이 클라크수상의 진보보수당 누르고 승리
1980년 최규하 대통령, 국정자문위원회 구성
1979년 베트남, 캄보디아 우호협력조약 조인
1979년 방글라데시 총선, 라만 대통령 영도하의 국민당이 대승
1970년 닉슨 미국 대통령, 70년대 미국 외교정책을 담은 외교특별교서를 발표함으로 닉슨독트린 확정
1968년 영국, 그리니치 표준시를 1시간 앞당겨 유럽과 동일한 시간을 사용
1967년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사망
제2차대전 중 원자폭탄 개발을 지휘했던 미국의 세계적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1967년 2월 18일 사망했다. 부유한 독일계 유태인으로 태어난 오펜하이머는 미국 로스 앨러모스연구소 소장으로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한 '원자폭탄의 아버지'였다.
라디오와 전화도 없이 학문에만 전념했던 오펜하이머는 1929년의 대공황 사실도 뒤늦게 알 정도였다. 과학자이면서도 8개국어를 익혀 플라톤의 '대화'편을 그리스 원서로 읽고, 산스크리트어로 된 고대 인도의 영웅시 '바가바드기타'를 외울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자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인이며 단편소설가이기도 했다.
그는 2차대전이 끝난 직후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 자신의 손에 피가 흐르고 있다며 양심의 가책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어 원자력의 국제 관리를 주장하며 원폭 제조금지와 사찰을 강조했지만 그를 기다린 것을 매카시즘이었다. 매카시즘 선풍이 한창이던 1954년 4월 12일, 그를 좌경 용공으로 심판하는 청문회가 시작돼 6월 28일 그는 출금금지와 보안 부적격이라는 `유죄` 평결을 받고 모든 공직으로부터 완전 추방됐다. 그러나 사실은 그가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했기 때문에 권력으로부터 추방됐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트루먼 대통령의 신무기 개발 의지와 달리 원자력정책 고문이자 일반자문위원회 의장으로서 수폭 개발을 전원일치로 반대 의결해 권력의 심판대에 올랐다는 것이다. `미국의 수폭연구가 18개월이나 지연된 것은 정부내부에 공산주의자가 있기 때문이다`는 청문회 판결내용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1966년 박대통령 동남아순방 마치고 귀국
1965년 감비아,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4년 주한미병의 한국인에 대한 총격사건 발생
1964년 미국, 쿠바와 통상하는 영국, 프랑스, 유고에 군원중지 발표
1963년 박정희의장 정국수습위해 민정불참 성명
1962년 서울신문 취재비행기 대관령서 추락
1960년 제8회 동계올림픽 개막(미국 아이다호)
1960년 서울노동회관 개관
1959년 정구헌 중령, 서정철 준장을 사살
육군 28사단장 서정철 준장이 1959년 2월 18일 예하부대 순시 중 제1대대장 정구헌 중령이 쏜 총탄에 맞아 즉사했다. 사건의 동기는 서준장이 다음날 있을 부대교육검열 준비태세가 불량하다고 정중령을 심하게 꾸짖어 언쟁을 벌인데서부터 시작됐다. 분노한 서준장이 정중령을 지휘봉으로 마구 구타한 뒤 권총을 착탄하고 대대장실로 들어가면서 정중령에게 따라 들어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격분한 정중령이 서준장을 뒤쫓아 들어가 권총을 난사, 서준장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정중령은 물론 서준장을 수행한 송광득 대령도 구속됐다. 정중령의 죄명은 국방경비법 48조와 16조 명령이행 태만죄 위반, 송대령의 죄명은 동법47조 무질서로 인한 군무불신임 초래죄 위반이었다.
4월 17일 열린 고등군법회의에서 정중령은 사형, 송대령은 징역 4개월 파면 전 급료 몰수 언도를 받았다.
그리고 정중령은 5월 20일 대구교외 육군형장에서 처형당했다
1955년 인촌 김성수 사망
교육가-언론인-정치가로 알려진 인촌 김성수 선생이 1955년 2월 18일 정경학부에 입학, 1914년 졸업 후 귀국하여, 운영난에 빠진 중앙학교를 인수하여 1917년 3월에 교장이 되었다.
1919년 경성방직회사를 창설하여 경제자립과 민족자본육성에 노력하는 한편, 1920년에는 동아일보사를 창립했다. `동아일보`를 통해 물산장려운동을 전개하였고, 1923년에는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펴서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힘썼다. 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여 교장에 취임, 1946년에는 이학교를 기초로 고려대학교를 설립하였다.
1949년에는 민주국민당 최고위원으로, 1951년 제2대 부통령이 되었으나, 정부의 국회탄압사건에 항거하여 이듬해 5월에 사임했다. 1952년 12월에 민주국민당 고문이 되어 야당인으로 호헌세력의 단결을 외치다가 1955년 2월 18일 병사,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받았다.
1951년 전시연합대학 부산에 설치
1951년 네팔, 영국으로부터 독립
1949년 스페인의 대통령(1931-36) 알칼라 사모라 사망
1942년 미국 소설가 알버트 터휸 사망
1940년 제14대 달라이 라마 즉위
1931년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 출생
1930년 클라이드 톰보, 명왕성 발견
"이것이구나" 1930년 2월 18일 미국 애리조나주 로웰 천문대에서 매일 밤 찍힌 천체사진을 비교측정기로 살펴보던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는 이렇게 외쳤다. 쌍둥이자리에서 앞뒤로 움직이는 흐린 빛을 발견한 것이다. 명왕성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많은 천문학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던 태양계 9번째 행성은 이렇게 24살의 농촌출신 아마추어 천문학도가 찾아낸 것이다.
톰보는 로웰천문대에서 `행성 X 프로젝트`에 따라 천체 사진을 판독한 지 1년 만에 명왕성을 발견하게 됐다. 명왕성이 톰보의 눈에 포착된 것은 톰보 자신의 노력도 있지만 다분히 행운이었다. 명왕성 궤도는 황도면에서 17도나 기울어져 있는데 다른 학자가 탐색할 때보다 톰보가 탐색할 당시 황도에 더 가까이 있어 관측이 쉬웠던 것이다. 명왕성 발견은 그해 3월 13일 공인됐고, 당시 11살 영국 소녀 바네사 버니의 건의에 따라 지하세계의 신인 `플루토`로 이름이 정해졌다.
육안으로 보이는 수성과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은 1600년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천왕성은 1781년, 해왕성은 1846년에 발견됐다. 명왕성은 공전궤도와 구성물질 등이 태양계의 다른 형제들과 달라 과연 행성으로 간주해야 하는지를 놓고 천문학계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달보다도 작고, 지구와 태양 거리의 약 40배나 멀리 떨어진 명왕성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있다.
1911년 인도 아라하바드-나이리 간 6,500통 우편물수송. 최초 공식우편비행
1910년 한국최초의 상설 영화관 경성고등연예관 설립
한국 최초의 상설 영화관 ‘경성고등연예관’이 1910년 2월 18일 지금의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자리에 세워졌다. 일본인이 설립한 영화관인 경성고등연예관은 한꺼번에 600여명이 입장할 수 있는 목조 2층 양식건물이었으며 당시로서는 첨단 영사시설까지 갖추고 주로 프랑스의 파테영화사에서 수입한 영화를 상영했다.
입장요금은 가장 비싼 특등석이 1원, 가장 싼 4등석이 10전이었다. 이어 일본인들이 지금의 종로2가 YMCA 건물 뒤편에 우미관을 세웠으며 계속해서 서울의 각 지역에 영화관이 세워졌다. 단순한 영화해설에 머물렀던 변사가 신파조의 감정을 풀어내며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해준 것도 이때부터였다. 경성고등연예관 개관 당시 기용된 변사 서상호는 구수한 입담으로 인기가 높았다. 당대 최고의 변사로 통했던 서상호는 유성영화가 등장하면서 빛을 잃고 1938년 우미관에서 약물중독으로 객사했다.
경성고등연예관 이전에 이미 영화를 상영한 극장으로 협률사(1902년) 광무대(1907년) 단성사(1907년) 원각사(1908년) 등이 이 있었지만 탈춤이나 줄타기 등도 함께 공연했기 때문에 순수 영화전용극장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일반 대중에게 영화가 처음 상영된 시기는 “한성전기회사 기계창에서 활동사진을 상영한다”는 광고가 1903년 6월23일자 황성신문에 실린 사실을 근거로 1903년 6월 전후일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반 대중이 영화를 접하기 전에도 영화상영을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최초의 영화상영 시점은 의견이 분분하다. 1897년 10월 19일자 '런던타임스'에는 "중국인의 가건물 한 개를 3일간 빌려 영화를 상영했다"는 기사가 실려 일본인 거류민을 상대로 본정좌에서 영화가 상영됐음을 알 수 있고, 1899년 미국인 여행가 버튼 홈스 일행이 고종 황제에게 영화를 보여주었다는 기행문이 남아있지만 전문가마다 각자 최초라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는 추정이 불가능하다.
1909년 국세징수법 반포
1902년 미국 보석상 티퍼니 사망
1896년 의병해산 조칙 공포
1848년 미국의 화가 겸 공예가 루이 컴퍼트 티퍼니 출생
1836년 힌두교 성자 라마크리슈나 출생
1745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알렉산드르 볼타 출생
1715년 이탈리아 물리학자 볼타 출생
1645년 소현세자 청에서 귀환
1564년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 사망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했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1564년 2월 18일 사망했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였고 또 건축가였다. 147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나 볼로냐 로마 등지에서 예술가로 활동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조형예술을 대표하는 그는 거작의 작가이면서 또한 다작의 작가였다.
그의 작품 모두가 대표작의 반열에 오를 만하지만 그림에서는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을, 조각에서는 ‘피에타’ 3부작을 꼽는다. 모두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피에타’ 3부작은 로마 산피에트로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 밀라노 론다니니에 보존돼 있다. 그는 자신을 조각가로 여겼으며 ‘피에타’나 ‘다비드상’ 등의 조각들도 20대에 완성한 작품들이다.
그림과 조각에서 명성을 얻은 그는 말년에 건축에 특히 힘을 쏟았다. 로마의 중심부에 위치한 캄피돌리아 광장, 성베드로 성당의 원형지붕 등은 원근법의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역동성을 살린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장대한 스케일과 엄숙한 비극성, 심오한 종교적 감수성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작품들은 당대뿐 아니라 후대 서양미술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546년 독일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 사망
1516년 잉글랜드 최초의 여왕 메리1세 출생
1455년 이탈리아 화가 안젤리코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