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나의 장미여
오주리
1
나의 가슴 안에서 숨 쉬던 것은 꽃봉오리인 채 피어나지 못한 장미였다
장미는 숨이 멎음으로써만 제 존재를 나에게 알려왔다
너무 멀리 벗어났다고, 유성우流星雨가 은빛으로 나의 창에 떨어지던 날, 새 한 쌍이 깨어나지 못했듯이
나는 십자가 너머 들어오던 빛 한가운데서 꽃잎처럼 쓰러지고 말았다
2
무엇이 밤의 아름다움을 내모는가? 로사리오기도, 시어로 새겨지는 고백, 그리고 침상을 적시는 눈물로서만 함께 누이는 연인을
인간의 백야가 나의 심장을 고사枯死시킬 때, 의식을 잃은 나는 피거품을 물고 장밋빛 꿈으로 흘러들었다
서맥徐脈, 맥이 멎어가는 죽음의 강 위로 사자死者를 건지려는 천사만 떠도니
생에 대한 열熱없음이여
얼음비늘에 싸인 장미여, 너의 날숨은 허공에서 깨어져 내리는 구나
생으로 나아갈 수 없음이여
빙결의 벽에 갇혀, 그것은 내가 살아 있는 장미의 무덤
3
왕후의 관冠처럼 장미 꽃봉오리를 감싼 핏줄이여, 무엇이 너를 석회石灰처럼 굳어가게 하는가?
신神의 바늘만이 장미 꽃봉오리에 핏줄로 생명을 수놓을 수 있으니
해독 불가능한 읊조림만 보내오는 장미 꽃봉오리 앞에서 숲의 모든 눈동자, 말을 잃는다
사제司祭시여, 병자성사病者聖事 에 당신을 모시어 유고遺稿를 가슴에 안고 눈을 감나니, 제 이마에 성유聖油를 바르시되, 하늘의 뜻 그대로 안게 하소서
장례미사에서 뵐 그분의 성혈聖血이 나의 관棺 안에 핀 장미 꽃봉오리들임을 믿으니, 때 이른 세상에의 작별, 눈물바람의 슬픔만은 아닐 터인데
지상이란, 날아오르려는 발레리나의 발끝이 잠시 딛는 곳일 뿐인데
4
시인의 운명은 비극이어야만 한다
나의 장미 꽃봉오리, 투명한 순수의 세례洗禮로써만 다시 피어오르리니
⸺계간 시 전문지 《POSITION 포지션》 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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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리 / 1975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졸업,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장미릉』. 현재 가톨릭관동대학교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