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희망이 안 보이는 것보다 큰 절망이 어디 있는가
2014/07/14 10:31
후보 님, 청문회는 당신의 처자식도 다 봅니다
【팩트TV】국민들의 희망은 얼마나 거창한 것일까. 재벌이 되겠다는 것인가. 장관이 되겠다는 것인가. 국민들의 희망은 소박하고 평범하다. 지금의 고생을 조금만 참고 견디면 좀 더 나이지고 자식들 제대로 기르고 먹고 입고 자는 걱정 안하고 사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런 희망을 가지고 산다고 믿는다.
형편은 어려워도 국가가 국민을 위해서 애 쓰는 모습을 보면서 적어도 마음만은 편안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언제 당할지 모를 사고에 전전긍긍하며 어디서 무슨 일이 났다 하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그런 불안한 세상은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비서실장의 답변을 들으며 납득할 국민이 어디 있는가. 법조문에 어떻게 써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은 이 나라 최고의 통수권자며 생떼 같은 내 새끼들이 물속에서 죽어간 참사에 대해서 ‘컨트롤타워 타령’이나 하는 청와대에 절망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현장에 가서 지휘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난 후 7시간이 되도록 보고 하나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는 시간에도 방송에서는 세월호 국정조사가 생중계 되고 있다. 솔직하게 대답을 하는 공직자가 없다. 국민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장관 청문회를 보면서 마치 ‘비리전시회’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는 국민들이 이 나라에 희망을 갖는다면 그게 비정상이 아닌가. 추악해도 저렇게 추악한 공직후보자들은 처음 본다. 김명수·정성근 후보를 보면서 희망의 끈을 끊어버린다고 누가 국민을 나무랄 수 있는가.
희망의 반대말이 무엇인가. 절망이다. 아무 곳에서도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쫓기던 쥐가 고양이에게 덤비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무서운 광경이다. 희망이 사라지면 바로 절망으로 빠지며 그 다음은 미움이다.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결론은 세상 탓이다. 국가탓이다. 애국심이 사라진다.
□청문회는 후보의 가족들도 TV를 본다
하느님이 죄를 고백하는 자에게 ‘죄를 고백하니 착하다. 네 죄를 용서한다.’
옆에서 소리가 들린다. ‘하느님. 그 사람 용서하지 마십시오. 지금 거짓말 하고 있습니다.’ ‘너는 누구냐’ ‘저 인간의 양심입니다.’
양심이란 이런 것이다. 아무리 입으로 회개 참회를 해도 양심만은 속일 수 없다. 거짓말을 늘어놓던 정성근이 유인태 의원의 녹취록을 듣자 하얗게 질리는 얼굴을 봤다. 눈은 커지고 입에 한숨이 가득 찼다.
그 광경을 방청객과 방송을 보는 전국의 국민이 봤다. 국민이 얼마나 절망했을까.
그 보다도 더 기막힌 것은 그 광경을 그의 아내와 자식들도 다 보았을 것이다. 오죽하면 아내가 거짓말 하지 말라는 권고를 했을까. 이런 사람이 장관이 될 수 있을까. 장관은 커녕 인간실격이다. 어떤 놈은 별 수 있느냐고 하지 말라. 세상 사람이 다 도둑이라도 도둑은 나쁜 놈이다.
포청천이란 중국 영화를 보면 남편이나 자식의 잘못으로 목숨을 끊는 장면을 종종 본다. 양심의 고통 때문이다. 양심이란 목숨과도 바꿀 가치를 인간은 부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비켜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공직자들을 보면서 국민이 희망을 잃어가는 것은 국민이 그들에게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믿고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있는가. 모두 무너졌다.
전방 GOP에서 총성이 들리자 무기고 열쇠를 들고 튄 소대장이 있다. 국방장관이 당장 옷을 벗을 사건이다. 이들을 믿고 국민은 지금 세금을 내고 있다. 머지않아 4대강의 ‘큰이끼벌레’가 우리를 모두 삼키리라는 공포에 떨어야 한다. 이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 청문회에서 조원진이란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지난번, 방청 온 세월호 유족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참혹하게 숨진 우리 애들을 AI 조류독감으로 몰살한 가축(닭, 오리)에 비유했다.
사람 정신이 맞는가. 심재철은 방해가 된다며 유족에게 퇴정명령을 내렸다. 이게 우리의 현주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변하겠다며 현수막을 들고 서 있던 조원진의 모습을 국민들은 모두 보았을 것이다. 그 때의 조원진과 오늘의 그를 비교하면 어디가 달라졌을까. 국민들의 상실감은 따져 볼 필요도 없다.
청문회장에 나온 고위공직자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자녀들은 외국유학을 했거나 영주권을 가지고 있거나 유학을 하고 있다. 그것이 무슨 잘못이랴. 문제는 국민이 그들에게서 느끼고 있는 상실감과 소외감이다.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 국민들은 총소리에 놀라 무기고 열쇠 들고 튄 소초장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바로 신뢰의 상실이다.
오늘 날 당신은 이 정권에 대해 얼마나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 누가 나에게 물어 본다면 한동안 망설일 것이다. 이유는 하나다. 지도자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증명을 해 보인 것은 바로 세월호 참사다. 죽어가는 국민의 생명을 방치했는데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
박근혜 정부를 평가하는 국민의 평가점수는 낙제다. 국민여론이 그렇게 말 하고 있다.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그것도 국민은 안다. 희망이 안 보인다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것은 없다. 왜냐면 희망은 살아가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이기명 칼럼] 관심 ‘당대표’의 새정치
누구에게서 배운 ‘희생과 헌신’인가
【팩트TV】24년 동안 친구였다. 그냥 친구가 아니라 민주화 동지였다. 한 친구는 울부짖고 한 친구는 화석처럼 굳어 있다. 단상은 아수라장. 하루에도 열두 번 씩 보는 광경이지만 이번만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화면 뒤에 또 다른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관심당대표’의 얼굴이다. ‘희생과 헌신’을 외치는 안철수 ‘관심당대표’의 얼굴, 당당한 소신이었다면 왜 얼굴은 그 모양인가.
정치가 비정하다고 한다. 부모 자식 간에도 도리가 없다. 참으로 고약하다. 그래도 있어야 할 것은 있어야 한다. 옳고 그름이다. 그게 무너지면 짐승의 세상이다. 정치는 짐승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위한 것이다. 왜 이리 얘기가 살벌한가. 정치와 더불어 인간의 도리를 사라지기 때문이다.
안철수 대표는 최고회의에서 “저와 인연 있는 사람이 최적 후보일 때는 ‘자기 사람 챙기기’라고 하고, 인연 있는 사람이 선정 안 되면 ‘자기 사람도 못 챙긴다’고 한다”며 “그런 잣대로 비판하면 하느님인들 비판받지 않을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난 ‘바담풍’해도 너는 ‘바람풍’해라다.
이제 안철수는 오만을 넘어 자신을 하나님의 반열에까지 승격시켰다. 실수라고 믿겠다. 지금 안철수 대표가 비난을 받는 이유는 자신과의 ‘친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공정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공정을 가장해서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좋다. 그렇지만 기동민을 꽂기 위해 허동준을 죽인 것은 당대표의 폭력 아닌가. 금태섭의 말을 생각해 보라. 왜 자신의 곁에서 사람이 떠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안철수란 이름이 처음으로 정치판에 등장했을 때 국민들이 열광했던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오염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원순 후보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충격은 거기까지였다.
대선후보 억지포기 선언 후부터의 행보는 기존의 정치행태와 너무나 쉽게 접근해 갔다. 머리가 좋아서 정치도 쉽게 배웠는가. 못된 것을 너무나 잘 배웠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착각의 달인이라는 사실이다.
어려서부터 어려움 없이 성장하고 마음먹은 것은 모두 이룬 안철수다. 정치도 그렇게 될 줄 알았을 것이다. 정치도 마음대로 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어떤가. 이제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가.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과 함께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까.
□7·30 보선과 새정치의 운명
주위에서 돌아다니는 끔찍한 소리를 듣는다. 안철수·김한길 때문에 이번 재보선은 망친다는 것이다. 새누리의 과반수를 무너트려야 한다는 간절한 기대가 바로 국민들의 염원이라고 믿는다. 이 염원을 접어야 된다는 안타까운 탄식인 것이다. 당 대표들의 책임이다.
안철수 대표가 ‘희생과 헌신’을 말한다. ‘희생과 헌신’은 참으로 좋은 말이다. 과연 안철수 대표가 이 말을 할 때 고개를 끄덕일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그의 행동을 보면 ‘희생과 헌신’은 남에게만 요구하는 것일 뿐 자신에게는 해당되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정치판에 발을 들여 놓은 지 얼마 되지 않기에 안철수의 행보는 일목요연하게 되돌아 볼 수 있다. 과연 ‘희생과 헌신’이었는가. 청춘 콘서트는 하나의 이벤트였다. 이제는 그의 곁을 떠난 훌륭한 분들을 들러리로 세운 이벤트에서 그는 알차게 챙겼다. 그리고 그들은 떠났다.
도대체 왜 안철수 대표가 저 지경이 됐을까. 한 마디로 자신을 제대로 돌아볼 줄 아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고생모르고 자란 부자 집 자식들의 시행착오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자신이 원하면 무엇이든지 된다는 오만은 국민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정치를 제대로 배우면서 조심을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좋은 머리로 정치를 제대로 배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야당은 달라져야 한다. 김한길 대표는 이미 평가가 난 정치인이다. 아직까지 그가 몸담은 곳을 온전한 곳이 없었다. 머리로 하는 정치가 성공할 리가 없고 그것이 오늘날 ‘새민연’의 모습이다. 선거가 끝나면 이기든 지든 김한길 안철수는 물러나야 한다. 선거도 없는데 왜 물러가느냐고 한다면 그렇기 때문에 물러나야 한다. 야당이 다시 태어나야하기 때문이다.
7·30 선거를 맞아 죽을상이던 새누리가 이제 표정관리에 들어갔다고 한다. 새누리 입에서 안철수 김한길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망해가는 야당의 꼴을 보면서 가슴을 치는 국민이 점 점 늘어난다. 지금처럼 좋은 기회가 어디 있는가.
밥을 떠다 입에 넣어줘도 삼키지 못하는 바보 천치들이다. 저것들을 어찌해야 된단 말인가.
새누리를 갈아 치울 능력이 없다면 김한길 안철수라도 갈아 치우자. 제대로 여물지도 않은 씨앗이 어떻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가. 최장집 교수가 말한 안철수는 아직 ‘여물지 않았다’는 말에 공감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한 때 안철수를 도왔던 김민전 교수가 방송에 나와 말했다. ‘안철수는 명분도 실리도 다 잃어버린 초보다’
새민주연합 지도부의 리더십은 위기를 넘어 ‘리더십 블랙홀’이란 진단까지 나온다. 7·30재보선 공천 과정에서 보여 준 지도력 부재는 보선 결과에 대한 암담한 전망을 보여주고 김한길 안철수 대표는 측근들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유례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박근혜 정권에 대해서 절망하는 것은 저런 정권을 바꿀 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처하는 정권의 수준을 보자. 그냥 두고 볼 것인가. 또한 안철수 김한길에 대해서 절망하는 것도 국민이 이들에게 정권대체 세력의 지도자로 희망을 걸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이 불쌍하지 않은가.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첫댓글 철수와 한길이는 새누리 2중대
안철수 대표는 최고회의에서
“저와 인연 있는 사람이 최적 후보일 때는
‘자기 사람 챙기기’라고 하고, 인연 있는 사람이 선정 안 되면 ‘자기 사람도 못 챙긴다’고 한다”며
“그런 잣대로 비판하면 하느님인들 비판받지 않을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난 ‘바담풍’해도 너는 ‘바람풍’해라다.
이제 안철수는 오만을 넘어 자신을 하나님의 반열에까지 승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