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가지 옳지 않은 법(십사비법 十事非法)
인도의 불교 시작지는 비교적 동부에 해당하는 바이샬리, 왕사성, 카필라 등이었다. 부처님 당시 논설 제일의 ‘카차야나 존자’가 비교적 많은 지역을 포교했는데 이로 인해 서부지역으로 불교가 전해져서 동부와 서부 두 지역의 불교가 상당한 세력을 이루게 되었다.
부처님 열반하신 100년경까지를 근본불교, 원시불교 시대라 하고 이후를 부파불교 시대라 한다. 원시불교 내지는 근본불교 시대엔 부처님의 가르치심의 원형을 지키며 순수상태로 이어졌지만 100년 이후가 되자 각 지역과 집단의 특성에 의해 점차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 한다.
초기의 스님들은 음식을 탁발해서 해결했지만 겨울이 있는 나라나 깊은 산중에서는 탁발에 의존하고 살 수 없었기에 직접 만들어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생겨 근본불교 시대의 수행형태에서 변화가 불가피했다.
불타께서 열반하신 100년 뒤에 서부 지역에서 수행하던 ‘야사스’라는 스님이 어느날 동부의 불교계를 돌아보다가 서부 스님들과 많이 다른 수행법을 보고 놀라서 이를 항의하고 논쟁을 벌이다가 동 서부의 여러 장로 스님들을 비사리성에 모아서 율장(계율)을 재정비하는 결집을 하게 되는데 이를 ‘제2 결집’ 혹은 ‘칠백결집’이라 한다.
제2 결집에는 동부 서부에서 7백 명 스님들이 모였는데 이 7백 명 스님들이 동부 스님들이 달라진 법으로 수행하는 것을 옳지 못한 수행법이라고 결론 내리고 그렇게 수행하면 안 된다는 결의를 한다. 이때 7백 스님들이 결의한 사항을 ‘십사비법(十事非法)’이라 한다. ‘열 가지 옳지 않은 법’이라는 뜻이다.
이 결집에 함께하지 못한 스님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으며 동부의 스님들은 끝내 이 결의에 동의하지 않고 서부불교와 완전히 다른 양상의 동부 불교를 수행하게 되는데 이를 부파불교가 시작된 시점, 즉 종파가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으로 본다.
당시 인도 서부불교와 동부불교의 수행법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왜 분열의 시초가 되었는가를 한 번 살펴보려고 한다.
7백 스님들이 ‘열 가지 옳지 않은 수행법’이라고 결론지은 법은 1,염사정(鹽事淨), 2,이지정(二指淨). 3,수희정(隨喜淨), 4,도행정(道行淨). 5,낙장정(酪漿淨). 6,치병정(治病淨). 7,좌구정(坐具淨). 8,구사정(舊事淨). 9,고성정(高聲淨). 10,금보정(金寶淨) 등이다.
1,염사정은 소금을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2,이지정은 시간이 지나서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3,수희정은 밥 먹고 나서 다시 더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4,도행정은 다른 곳에서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5,낙장정은 우유나 요구르트를 꿀이나 미숫가루를 타서 밥 대신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6,치병정 치료를 목적으로는 아직 발효되지 않은 효소를 먹어도 된다. 7,좌구정은 몸에 따라 방석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8,구사정은 앞 사람을 따라 하면 허물이 되지 않는다. 9,고성정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용서를 구하면 된다. 10,금보정은 돈이나 금은을 보시받을 수 있다.
동부 스님들은 대부분 젊고 개혁적인 스님들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서부 스님들은 나이 드시고 보수적인 장로 스님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대가 달라지고 의식이 달라지면 스님들 수행 체계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반면 나이 드신 장로들은 근본불교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었다.
사실 이 십사비법을 오늘의 불교계 시각으로 살펴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소금을 가지고 다녀야 하느냐 마느냐, 밥을 두 번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돈을 보시받아도 되느냐 안 되느냐, 지금으로선 도무지 논란거리가 될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당시의 스님들께선 그렇게 생활의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도 치열하게 논쟁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동료들을 챙기셨던 모습이 거룩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종교인의 자기반성과 자기 성찰이 이 정도는 되어야 감히 부끄럼 없는 성직자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