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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신 예수님
누가복음 8:26-35
30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2)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오늘 수요 예배 말씀은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신 예수님입니다. 갑자기 웬 귀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귀신은 옛날 이야기에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많은 다툼과 혼란과 파괴를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매일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몇칠 전에는 젊은 사람이 아무 관련없는 여고생을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 있었지않습니까? 미국이나 유럽에도 이런 사건이 올라오는 오는 것을 봅니다. 전쟁은 이런 것의 더 큰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늘 일어납니다. 사단의 역사가 아닐 수 없고 귀신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귀신을 물리친 이야기가 아닙니까? 귀신은 사단의 졸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단이 온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고 파괴하고 죽이고 비참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사단은 거의 처음부터 존재했습니다. 창세기 3장부터 나오지 않습니까? 사단의 계략에 빠져 인류가 낙원에서 추방되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 붙잡혀 자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원치않는 죄의 포로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한국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청소년 문제, 자살율 문제는 그 어는 때보다도 심각하다고 합니다. 청소년 약물 중독으로 인한 정신병원 상담 건수가 증폭되었다고 합니다. 중년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단은 우리 주변에서 삶을 파괴시키고자 가장 취약한 지점을 찾아 계속 공격하고 있습니다. 풍요속의 빈곤이란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실까요?
예수님은 이 땅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중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상당히 많습니다. 우리 모두는 귀신과 귀신의 세력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까? 저도 어떤 때는 잘 믿다가도 어떤 때는 무슨 귀신, 무슨 악령, 무슨 사단의 역사인가,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겠습니다. 베드로서에서 베드로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였습니까?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닌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것도 삼킬자를 찾아다닌다고 말입니다. 욥기에도 사단이 온 세상을 돌아다닌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을 어떻게 하던지 파괴하고 죽이고 괴롭히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우리들이 싸우는 것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에 있는 것과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할 때 처음부터 마귀와의 싸움으로 시작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시점에 더욱 발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예수님을 믿고자 할 때 사단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후 가는 곳 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도 전도여행을 보낼 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더해주셨습니다. 그들을 사도로 부르신 이유도 예수님과 함께하며 전도도 하고 귀신을 쫓아내기 위함이 아닙니까? 예수님의 사역은 사단과의 싸움이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의 사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와 빌립보에서 귀신을 쫓아낸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나와 있습니다.
귀신과 귀신의 세력은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세계와 아직 완젆한 구원에 이르지 못한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은 우는 사자와 같이 불신과 죄악을 타겟삼아 공격을 해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사람도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고자 합니다. 우리가 말씀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악한 영들과 싸워 이기기 위함이 아닙니까? 악한 영들이 눈에 보이면 그나마 싸우기 쉽고 또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악한 영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입니다. 그 실체를 알아야 우리가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런 악한 귀신의 세력을 어떻게 물리치셨는지 가르쳐 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구원역사가 어떤 것인지 우리가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어디로 가셨습니까? 26절에 보면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왼편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고 이곳에 유대민족주의자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예수님도 갈릴리 출신입니다. 반면에 갈릴리 호수 오른편에는 이방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로마가 이곳에 도시를 세워 많은 그리스 사람들과 로마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습니다. 특히 군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미군들이 많이 주둔했던 도시들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요. 이렇게 하여 도시를 형성했습니다. 이 도시 이름 자체가 데가폴리가 아닙니까? 열 개의 도시가 한 곳에 있었으니 얼마나 큰 도시를 형성했을까요? 데카는 열을 의미하고 폴리는 폴리스 즉 도시를 말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이곳에 가셨습니다.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코자 이곳에 오셨습니다. 27절에 보면 예수님 일행이 이곳 육지에 내리자마자 한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 일행을 대대적으로 환영했습니다. 옷도 입지않고 들판에 사는 오늘날로 말하면 홈리스죠. 홈리스 정도가 아닙니다. 무덤사이에 살았습니다. 오래동안 씻지 않으므로 머리카락이 헝컬어지고 옷도 입지 않고 맨 몸으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그저께도 뉴스를 보니까 시내 고분이 있는 곳에서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옷을 벗고 행패를 부리는 일이 있어 언론에 나왔습니다. 이 사람을 보십시오.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놀랍게도 귀신은 영적인 존재를 잘 압니다. 이미 예수님이 그를 통해 '더러운 귀신아, 나오라' 명령하셨으므로 귀신은 그 권세에 놀라고 또 그 권세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명하시는 분이 이미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단 번에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베드로의 경우, 이 고백을 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까? 그러나 귀신은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귀신이 들렸음을 아시고 그를 귀신으로부터 구원하시고자 이곳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부정한 곳으로 보이는 이 거라사까지 오셨습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 곳은 부정한 곳이 아닙니까? 특히 본문에 나오는 귀신들린 사람의 주거지는 무덤입니다. 죽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원치 않게 시체와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장소입니다. 보통의 유대인들이라면 매우 꺼리는 장소가 아닙니까?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또 그런 부정한 사람과 접촉할 때 역시 부정한 사람이 됩니다. 그가 만약 유대인이라면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 무덤이 있는 산비탈에 돼지 사육장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돼지고기가 또 얼마나 부정한 음식입니까? 우리는 부정한 것과 가능하면 안부딪힐려고 합니다. 몇날며칠 찝찝합니다. 옛날에 우리가 귀신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장소가 있었죠. 상여집이죠. 이곳을 밤에 지나가면 머리카락이 쭈삣쭈삣 서곤했었죠. 그런 곳으로 지나가는 것만 해도 무서운데 무덤이 있고 그곳에 온 몸을 돌로 상하게 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날뛰는 귀신들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곳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문제가 다른 문제가 아닌 귀신의 문제임을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알려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사람이 날뛰고 추하고 더러운 행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이 귀신의 역사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귀신 중에 더러운 귀신이 이런 짓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주로 귀신에게 어떻게 명령하십니까? 더럽고 악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귀신은 이와 같습니다. 한 사람을 완전히 못쓰게 만듭니다. 한 인생을 너무나 추하게 만들고 세상의 모든 선한 규칙에 대해서 반발하게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고성을 질러댑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귀신의 또 다른 특징이 무엇입니까? 말을 못하게 하고 불가운데 물 가운데 막 뛰어들게 합니다. 거짓말을 하게 합니다. 사람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게 합니다. 자기 세계에 빠져 은둔하게 만듭니다. 또 집을 뛰쳐나오게 합니다. 죽은 사람들이 있는 곳을 좋아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신체를 자학하게 하고 자해하게 합니다. 귀신이 사람을 미치게합니다. 귀신은 어두움을 좋아하게 만듭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귀신의 문제가 아니지만 우리는 세상을 믿음의 눈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세상은 정말 사단의 영향아래 있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의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니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이것이 귀신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는 전혀 도움을 받고자 하지 않고 오히려 돕고자 하시는 예수님께 심한 반발을 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이 뭔대, 라는 말을 들으면 참 난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을 도와주셨습니다.
30절에 보면 예수님이 이 사람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떻게 도와주셨죠?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놀라운 권세가 있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죠. 귀신의 가장 큰 약점이 무엇입니까? 빛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빛 앞에서는 귀신이 꼼짝을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물어보신 것입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귀신들린 사람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리는 군대입니다. 바로 그 안에 군대급의 귀신이 들어 간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귀신이 그의 마음에 들어가 그를 마음대로 조정하고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로 하여금 마약에 빠지게 하고 그로 하여금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못하게 하고 마음대로 살게 한 것입니다. 세상에 반항하고 세상을 빼딱하게 보게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도시를 떠나 무덤가운데 살게 한 것입니다. 이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슬픕니다.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야 할 한 사람이 귀신이 들리므로 그의 삶의 모든 질서가 깨지고 평화가 깨지고 사람들과의 관계성이 깨지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과도 관계성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를 붙잡아 두고자 쇠사슬과 쇠고랑을 채워도 아무런 소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권능의 말씀을 듣게 되자 꼼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순순히 자신이 누구인지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군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고 더 이상 그 사람 속에 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지옥에 가지 않도록 간구했습니다. 지옥에 떨어지는 대신에 그 곳의 많은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허락하시니 그 비탈에 있던 돼지들이 갑자기 호수로 달려 들어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돼지가 2,000마리나 되었다고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돼지떼입니까? 돈으로 환산한다면 어머어마한 금액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루셨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사람이 이제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게 되어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렇게 날뛰고 거품을 흘리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예수님께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던 청년이 온순하게 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이 못쓰게 되고 한 사람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많은 이유가 바로 귀신, 곧 하늘의 악한 영에 의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이것에 대해서 다 알 수 없습니다. 영의 세계가 어떠한지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상에 악한 영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악한 귀신의 역사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 회당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셨고 또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부여해주셨습니다.
특히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실 때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해주셨습니까?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귀신보다 더 큰 능력을 덧입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가르쳐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돼지 2,000마리를 희생시킨 이야기 입니다. 이는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 주님의 희생을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죄인을 의인으로 구원하시기 위해 그 아들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드린 십자가 사건이 아닙니까? 이 희생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믿습니다. 이 섬김이 우리의 삶 가운데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 정말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아무리 해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하는 일이 없느니라,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사단은 늘 우리 주변에서 우는 사자와 같이 그 삼킬 자를 찾아 윙윙거립니다. 약한 부분이 보이면 언제든지 공격을 합니다. 사람을 무너뜨리고 삶을 괴롭게 하여 믿음에서 떨어지게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굳게 분잡고 주님의 큭크고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우리 삶에서도 나타낼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