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뺑소니 사건 직후 50만바트(약 190만원)의 보석금을 지불하고 사건 관할 텅러경찰서에서 나와 사망자의 장례식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채 나타났던 레드불(Red Bull) 재벌 3세 보라윳 피의자./사진=work point TODAY 화면 캡처
[방콕=아세안익스프레스 전창관 기자] '유전무죄' 권력형 비리의 전형을 보이며 태국을 들끓게 한 재벌 3세 음주·마약 뺑소니 사망사건의 의혹 전모가 지난 1일 '국가 의문사건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위차 마하콘)'의 공식 조사결과 발표로 공개되었다.
태국 재벌 순위 2위 레드불 창업주의 손자 보라윳 유위타야(35)는 8년 전인 2012년 9월 3일 방콕 시내서 페라리를 타고 과속해 근무 중이던 경찰관을 치어 숨지게 했다. 과속, 뺑소니, 정차위반, 피해자 구제 위반 등 5가지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수사를 무려 8년간을 끌었다.
특히 공소시효가 7년이나 남아 있음에도 석연찮은(?) 불기소 처분을 하자 국민적 공분을 샀다. 부실수사와 호화 해외도피에 대한 비난이 커지던 중 지난 7월 검찰이 기소 중지를 발표하자 태국 전체가 '무전유죄, 유전무죄' 논쟁으로 뒤덮였다. 사법당국은 민심에 놀라 마약 복용 혐의를 추가하면서 지난달 8월 26일 보라윳 체포영장을 재발부했다.
태국 정부는 검찰의 불기소 처리가 현행 민주화 요구 시위의 군사정권 불신임을 가중시키는 여론의 불쏘시개가 될 것을 우려해 7월에 국가 의문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검·경을 망라해 연루된 사법절차 문란 행위 용의점들에 대한 대대적 진상 결과 보고가 총리에게까지 보고되었다.
■ 민주화 시위 확산 시점에 검찰의 불기소 처리가 도화선
태국 유력매체 카우솟 등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일 조사결과 보고를 받은 쁘라윳 총리는 의혹사건의 수사와 사법적 처리 절차가 검·경 주요 사법기관들에 의해 공정치 않게 진행되었다고 공식 시인했다.
마약-음주 뺑소니 사고로 오토바이 순찰 경찰을 사망케 한 레드불 재벌 3세 사건에 대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공정한 법적 절차를 통한 재수사를 지시했다.
그간 공정한 수사와 사법절차를 이행치 않으며 의도적으로 지연하면서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갑자기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 과정에 관여한 고위 사법공직자 10여 명의 징계 및 처벌 절차에 돌입했다.
▲ 사건 발생당시 초동수사 미흡 의혹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사건 관할 텅러경찰서. 사진=타이 PBS 방송 화면 캡처
■ 검·경을 망라한 수 십여 명의 조직적 사건 축소,은폐 혐의에 대한 대대적 감찰 조사 시작
위차 마하콘 국가 의문사건 진상조사위원장은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검-경이 피의자의 혐의를 희석 또는 누락시키기 위해 공모한 주요 정황과 혐의가 드러났다”면서 이 사건에 권력형 배후가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수사관들이 매우 중차대한 중범죄성의 사건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전문적이고 상식적인 수사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며, 단순 음주운전 사고로 무마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다수 보인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피의자가 제기한 13차례에 걸친 수사의 부당성 주장까지 받아들인 검찰청 차장 검사까지 있었음을 밝혔다.
사건 발생 당시 현장 검증에 나섰던 법의학자 타나싯 씨는 "사건의 핵심 정황 증거인 사건 현장의 폐쇄회로 TV를 통해 검증된 규정 속도의 2배 가까운 과속 여부 결과 보고서를 수정하라는 상부의 압력을 받은 적이 있다”고 증언해 충격을 더했다.
▲ 인터폴에 의해 수배된 레드불 재벌 3세 보라윳. 사진=work point TODAY 화면캡처
■ 공소시효 연장을 통해서라도 재수사 필요성 부각, 인터폴을 통한 수배 조치 시행
위차 마하콘 국가 의문사건 진상조사위원장은 "총리의 사건 재수사를 통한 기소 지시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주요 혐의 중 상당 부분은 이미 공소시효를 넘겼다. 관련법규 개정이나 특별 한시법 제정을 통해서라도 공소시효를 연장해 원점부터 제대로 된 재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측도 이와는 별도로 경찰청 특별 내사위원회를 설치해 방콕 경찰청 수뇌급 경관을 포함한 21명의 전현직 경찰이 이 사건과 연루되어있는 것을 파악해 전원 조사에 들어갔다.
여론도 뜨겁게 들끓고 있다.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묻지마식 불기소 처리한 검사는 물론, 이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치 않은 경찰청 수뇌의 비정상 업무처리 절차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있다.
'음주·마약 뺑소니 사망사건'이라는 중대 혐의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 며칠만에 50만 바트(약 1900만원)의 보석금을 지불하고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진 피의자에 대해 지난주 새로이 법원의 구속영장이 발급되고 뒤늦은 인터폴 수배가 이뤄졌다.
이번 진상 조사에서 밝혀진 혐의 내용을 보면, 사건 당일 새벽 피의자는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음주상태에서 시속 170km 가량의 과속 운전으로 오토바이 순찰 경관을 치어 사망에 이르게 했다.
또한 긴급 구난 의무조차도 이행치 않은 채 뺑소니 후 귀가해 음주 치사 운전 행위를 저지른 행위자를 자신의 저택 관리인으로 뒤바꾸려 시도하였다. 이후 행해진 마약검사에서 코카인까지 다량 검출되었다.
▲ 오토바이와의 추돌임에도 심하게 파손된 상태로 사건 당일 관할 텅러 경찰서로 운반되어져 경찰관들의 감식을 받고 있는 페라리 사고차량 모습. 사진=타이 PBS 방송 캡처
반면에 그는 뺑소니 행위를 저지른 다음날 '운전면허 취소' 해당되는 알콜검사 결과에 대해서도 '겁이 난 나머지 귀가해 혼자 술을 마셨다'고 증언하는 등 대부분의 의혹 사안을 부인해 왔다.
독신이었던 피해사망 경관의 장례식 기간 중, 사망 경찰관의 형제 자매 3인에게 300만 바트의 금액을 지급한 후 문제제기 포기 각서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사건발생 당시 사망 피해자가 오토바이를 급차선 변경해 몰다가 페라리 차량에 치인 것처럼 현장 정황과 불일치하는 의혹스런 증언을 한 2명의 목격자 중 1명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함에 따라 의문을 증폭시켰다.
한국의 재벌 2세와 정치인 자녀들의 유전무죄 사건을 능가하는 범죄행각을 벌인 피의자는 정부의 대규모 특별조사단의 범죄 피의 사실 공표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해외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당국에 대한 응대조차 없는 상태다.
한편, 전 세계 171개국에서 연간 75억 캔 가량을 판매하는 레드불(태국어명 끄라팅댕) 드링크의 제조와 부동산 투자업으로 거부가 된 TCP그룹은 태국에서 CP그룹에 이은 재계서열 2위의 회사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