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 복잡한 생각에 종종 잠길 때가 있다.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때,
그리고 타인과의 갈등이 생길 때 특히 이러한 경향이 강해진다.
여러 번의 힘든 시기를 지나고 나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점이 하나 있다.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힘든 적이 많았다는 점이다.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면서 나쁜 관계가 누그러질 수 있다는 것을,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최근에 급물살을 타고 있는 남북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단절의 시대엔 끝없는 도발과 상처, 비난과 세뇌가 반복되면서 갈등의 회오리가 불지만,
평화의 시대에는 상호 활발한 소통을 통해 갈등과 오해를 불식시킨다.
휴전선과 가까운 동네들은 하나같이 이러한 변화에 매우 예민하다.
와수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지금은 살기가 가득 느껴지는 최전방이지만,
장벽이 허물어지고 상호 왕래가 가능한 날엔 새로운 교통 거점으로 기능할 것이다.
와수터미널로서는 소통을 간절히 바랄 것이다.
서울로 가는 조그만 버스터미널이 아닌,
강원도 북부를 연결짓는 교통 거점이 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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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수리는 강원도 철원에 있는 최전방 마을이다.
신철원(갈말), 동송과 함께 철원을 아우르는 3대 읍내 중 하나이자,
앞선 두 곳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동네이다.
이곳은 철원 동부 지역의 중심지이자, 과거 강원도 김화군 소속이었다.
김화군은 철원 옆에 있었던 지역으로 철원에서 금강산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으나,
6.25 전쟁이 끝나고 김화군이 분단되면서 읍내가 비무장지대로 바뀌었다.
남한에 수복된 구역이 너무 좁은 탓에 결국 김화군은 1963년에 철원군에 흡수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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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으로 김화읍이 민통선 이내에 들어가면서,
김화읍내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와수리가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김화읍'이 아닌 '서면'에 중심 마을이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기에 김화군이 철원에 합병되는 바람에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와수리는 철원에 속함에도 앞선 두 지역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김화군'의 정체성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60대 이상 노년층에서는 지역 갈등이 상당하여,
철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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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 철원에 합병된 지 50년이 훌쩍 넘었기 때문에,
40대 이하 주민 및 군 장병들에게는 철원이라는 인식이 굳게 박혀졌다.
와수리에 있는 버스터미널도 마찬가지이다.
처음부터 철원군 소속으로 출발하였기에, 동송과 비슷한 느낌의 최전방 버스터미널로 인식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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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도 동송, 지포리와 마찬가지로 읍내가 형성될 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동송, 속초, 구 화천처럼 승차장 위에 지붕이 있는 형태이다.
승차장은 두 개로 구분되지만 사실상 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만큼,
승차장의 폭이 매우 좁아 버스가 드나들 땐 혼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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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수터미널 승차장은 최근에 리모델링을 하여 보다 화사하고 따스한 느낌을 살렸다.
검색해보니 10년간 두 번의 리모델링이 있었는데,
처음엔 파란색 → 살구색으로 도색만 바꾸었고,
두 번째로는 벽에 조형물 같은 타일을 부착하여 어둡고 칙칙한 느낌을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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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차장 옆에는 아주 조그마한 대합실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의 외벽은 10년 전과 그대로지만, 곳곳에 간판이 들어서 다소 조잡해졌다.
터미널 간판이 있긴 하나 너무 작아서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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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합실은 지난 10년간 터미널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공간이다.
레몬색 - 회색 배경에서 우드로 디자인이 달라졌고,
매표소를 왼쪽으로 옮기면서 공간을 메운 뒤 원래 매표소 자리를 기능품 판매소로 바꾸었다.
공간은 이전보다 좁아졌지만 훨씬 밝고 깔끔해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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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답게 군인 수요가 절대적인 역할을 차지하다 보니,
군인을 향한 광고가 곳곳에 눈에 들어왔다.
2층에 생긴 식당도 군 장병과 관련된 이벤트를 하고 있었고,
전역 군인을 위한 어학연수 광고판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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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수리도 주변 버스터미널과 다름없이 경기고속 / 강원고속 시간표를 각각 분리해놓았다.
다른 곳은 솔직히 왜 따로 걸어놓는지 이해가 잘되지 않지만 이곳만큼은 납득한다.
왜냐하면 동서울 가는 노선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경기고속은 과거 영종여객(~2004) - 선진고속(2004~2010)에서 이어진 노선들이다.
경기고속 동서울행(하루 12회)은 3002번이라는 고유번호가 부여되고 있으며,
신철원 - 운천 - 신북 - 포천 - 송우리 - 의정부를 경유한다.
그 외에는 수유리(14회, 3005번), 성남(4회)행이 운행되고 있다.
여타 포천, 철원의 버스터미널에 비하면 경기고속 노선 비중이 다소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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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일동과 더불어 경기보다 강원고속 영향력이 센 몇 안 되는 지역이다.
터미널의 핵심인 동서울행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보이기 때문이다.
강원고속 동서울행은 번호가 따로 부여되지 않으며,
신수리 - 자등리 - 도평리 - 이동 - 일동만 경유해서 3002번보다 빠르다.
그래서 하루 32회로 경기고속보다 월등히 자주 다니며, 무정차 4회까지 있어 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인다.
그 외에는 안양-인천(6회), 다목리-사창리-춘천(4회), 산양리(8회)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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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워낙 구석진 위치라서 노선이 다양하지는 않다.
서울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오랫동안 고속도로가 없던 지역이라 경유지가 많다.
요금표의 가장 왼쪽 칸은 모두 3002, 3005번이 경유하는 지역으로 채워져 있으며,
가장 오른쪽 칸은 춘천행, 산양리행 경유지로 꽉 채워졌다.
그러나 만약에 북쪽이 개방되고 도로가 신설되어 왕래가 가능해진다면,
와수리의 시간표는 완전히 뒤집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화읍 시절에는 철원, 평강과 더불어 가장 교통이 편리하고 밀집도가 높은 읍내였다.
그때에도 시외버스가 있었다면 경성, 철원, 원산, 평강, 금강산, 춘천행 노선이 수시로 운행을 했을 테다.
지금은 분단에 막혀서 서울행에만 의존해야 하는 구조이지만,
이러한 구도가 깨질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최근에 종종 들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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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오면 주차장에 몇몇 차량이 주차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10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빨강-하양 줄무늬의 선진고속 차량이 있었는데,
지금은 간데없이 보라돌이로 모조리 바뀌어 있었다.
헌데 이러한 변화를 여행하는 내내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심지어 이전까지 글을 쓰는 데도 당연히 KD가 다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곳의 버스가 교체된 지도 어언 9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기도 했고,
전국적으로 워낙 KD 영향력이 강해지기도 해서인지 원래 본 것처럼 익숙했다.
글을 쓸 때까지도 회사가 바뀐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나,
다른 카페의 회원분께서 말씀해주셔서 뒤늦게 바뀐 점을 상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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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정을 겪으니 소통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글을 쓰고, 누군가가 피드백을 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끝까지 지나쳤을 테니까.
별거 아닌 과정이지만 글의 방향성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마치 뒤통수에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강력하고 묵직하게 느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랬지만, 와수리터미널 입장에서도 통용되는 사실일 테다.
남북이 반목하지 않고 진작에 소통하고 협력을 했었더라면,
지금처럼 서울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소규모 터미널로 남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도라산역처럼 남북출입사무소가 설치되어 북한으로 가는 길목이 되고,
북쪽에서 이곳으로 내려오는 만남의 창구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절과 대립은 와수리터미널의 운명을 지금처럼 만들었다.
지금의 조그마한 시골 터미널의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하겠지만,
소통의 경과에 따라 꼭 그렇 지도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
와수리터미널의 모습을 뒤돌아보며 소통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가져보았다.
첫댓글 ^^
잘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코스가
동서울~와수리, 사창리 코스입니다.
예전에 동서울~양구갔다가 춘천으로
나와 사창리,와수리쪽 여행을 했었는데
빠르지않게 좋은경치 구경하며 가는건
좋았는데 차 시간 맞추기가 애매해서
힘들더라구요.
와수리에서 올때는 경기고속을 탔었는데
중간좌석에 시트커버가 분홍색으로 여성전용
좌석이 있었습니다(벌써 십년전 이야기네요).
그쪽에서 군생활하신분들은
'와수베가스' 라고도 부르는것 같던데...
늘 마음은 경기북부.강원도행 버스표를 손에쥐고 떠나고싶은데 현실적으로 이것저것
따져야하니(애들 중,고등학교 올라가면
부모님 안따라다니고 자기들 끼리 노니깐
지금 많이 놀아주라는
아내말에 고개를 끄떡입니다).
그림의 떡? 작은기다림이라고 할까요?
따듯한 봄이오면 하루쯤은 훌쩍
떠나며 맥시멈님 터미널여행기를 다시한번
읽어볼날이 있겠죠^^
강원도 북부 버스여행을 10 여년 전에 하셨었군요. 그리 오래 안 된 것 같으면서도 참 오래됐네요~
동서울-와수리, 사창리 코스는 저도 좋아하는 코스입니다.
이번엔 차를 끌고 갔지만, 10년 전 그리고 7년 전에 동서울-와수리, 춘천-와수리를 시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개인적으로 철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분단으로 인한 아픔이 가장 많이 녹아있는 곳이고, 지역이 갖는 히스토리가 참 많아서이죠. 날쌘돌이님도 육아 및 직장생활 때문에 여의치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그림의 떡이 언젠가는 먹을 수 있는 떡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
@Maximum 백운계곡을 지나 사창리 넘어가면
경기도와 사뭇다른 강원도의 느낌이
나는것 같아요.
그나저나 7시~8 시대 동서울행
배차간격이 촘촘하네요.
부대에서 휴가 신고하고 나와서
타기엔 이른시간 같은데 출퇴근
인원이 많은것도 아닐텐데 이유가
궁금하군요
@날쌘돌이 요새는 기상하자마자 신고 후 출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하더군요. 와수리쪽은 잘 모르겠으나 장거리를 이동하는 군인이 분명 있을테니 영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동서울 9시10분 무정차랑 같이 출발하는건가요??
따로 표기된 것을 봐서는 그런 것 같습니다. 저때 매표소에 물어보려 했으나 매표소가 텅 비어서 확인을 못했네요.
아마도 김화읍 시절에 평강, 원산등을 영종여객, 대진운수의 이전 회사들이 운행하지 안았을까 추측합니다.
너무 오랜 옛날이라 기록이 없는게 아쉽네요~
언젠가 통일이 되어 평양터미널 원산터미널 리뷰하는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네요. :)
14년전 군생활시절 필수로 들러야햇던 와수베가스 와수리네요
3사단 외출이나 외박의 주무대이자 휴가때 집으로 향하기 위해선 꼭 들러야하는 터미널이 잇는 와수리..
사진을 보니 크게 달라진건 없나보네요 길거리도 그렇고 터미널앞 그린파크 여관? 첫 외박때 묵엇던...곳도 보이고..
첫 휴가때 버스 잘못 탓던 기억이 납니다 강원고속을 타야 빨리가는데 옆에 보라색버스를 탓던...지금은 의정부도 들르고 하는 노선으로 바뀌엇던것 같은데 그땐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포천하고 몇군데만 들럿던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그때 잘못탄줄 알고 당황햇엇는데-_-;;
전역할때는 다시는 이곳에 안오리라 생각도 안하리라 햇는데
Maximum님의 글을 보니 한번쯤 찾아가 보고 싶네요.
터미널 하니 육단리 시외버스터미널이 생각나네요
14년전에도 터미널이긴한테 운영을 안했던걸로 기억을 하는데
유동인구를 찾아볼수가 없엇거든요 그때도...
육단리 시외버스터미널 사진은 검색으로 감상해야겟습니다
육단리 시외버스터미널을 아는 이유는 제가 첫복무햇던 곳이 육단리엿습니다
일명 독립중대라고 1개 중대가 떨어져잇엇습니다. 그러다가 한 6개월후 통합되어 와수리로 와서 생활햇습니다.
항상 글 잘보고 잇고 이렇게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4년 전에 육단리, 와수리에서 군복무를 하셨었군요...
동서울 가는 노선이 두 개라서 헷갈릴만 하죠 ㅎㅎ
전역한 곳은 보통 두 번 다시는 안오겠다고 다짐하는데 가끔씩 생각이 나긴 하더군요.
육단리 시외버스터미널도 여기에 올려드렸으니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김화군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 와수리가 김화 지역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됩니다. 매번 덕분에 많은 것들을 알아가게 됩니다. 확실히 경기고속보다는 강원.진흥의 동서울행이 배차가 상당히 많네요. 서로 운행경로도 다른데 요금은 10900원으로 동일한가 봅니다. 거리를 생각하면 확실히 비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철원 땅이 과거 한 나라의 도읍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모습은 참 초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할텐데 분단이라는 조건이 참으로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분단이 없었으면 철원이 천안 못지않게 커졌을거라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동해 항구가 원산이고, 서울-원산 축의 중간 지점이 철원인 데다 강원도에서 황해도, 평안도로 넘어가는 길목이어서 교통 입지가 굉장히 좋기 때문이죠. 단순 분단이 아닌 전쟁으로 인한 분단이어서 지금처럼 세력이 축소된게 더 안타깝습니다. 경기 / 강원 노선의 운행 경로가 다르지만 요금을 맞춘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ㅎㅎ
사담입니다만, 철원지역도 지역감정이 무섭더군요... 김화권(와수, 학포, 신술)지역하고 철원권(동송, 신철원)이 서로 으르렁 대더군요...
@경원여객 남마산영업소 그렇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지역 주민이 아니라 체감할 일은 잘 없지만 굉장히 유명한가 보더군요.
백골부대에서 전역한지 40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군복차림으로. 부대행사 참석차 신수리 와수리를 가끔씩 찾아갑니다
예전에는 한달에 대여섯번도 가곤 했었죠
그곳은 전방이라는 개념이 있다보니 거의 변화가 없읍니다
요즘들어서 주변상가의 간판이 조금씩 새로운 스타일로 바뀌긴하지만 10년전이나 지금 이나 거의 변화가 없죠
그래도 얼마전 까지 동서울 ㅡ진접 ㅡ서파 ㅡㅡ일동 ㅡ이동(여기부터는 구도로 이용해서 도평리 통과)도평리 지나서 새도로 로 나왔다가 자등고개 까진 올라가면 신수리 뒷쪽 까지 새도로가 생겼지만 구도로 로 신수리 통과해서 와수리 까지 운행 했었읍니다
동서울ㅡ와수리 는 강원고속으로 약 1시간 40분 소요됩니다
버스요금은 변동없이 10900 원
그전에는 그랜버드 션샤인이 다녔는데 지금은 차랑이 바뀌었읍니다
지금은 파크웨이 가 다니는것 같아요
그리고 운행코스도 변경되어 지금은 동서울에서 구리 ㅡ포천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포천 끝까지 가서 만세교에서 우회전해서 일동터널 통과후 일동도착 ㅡ신도로 나와서 이동까지 가서 다시 구도로로 도평리 지나서 다시 신도로 올라와서 아까윗글에 적은대로 신수리 ㅡ와수리 운행 합니다
자세한 설명 정말 감사드립니다. 혹시 간부로 전역을 하셨는지요? 복무를 마친지 40년이 지났음에도 행사를 참여하신다니 존경스럽습니다. 40년 이상 와수리를 지켜보셨을 테니 지역 주민 못지않게 동네 사정을 잘 알고 계시겠네요. 동서울행 차량이 파크웨이로 바뀌고 경로도 고속도로로 바뀌고... 와수리는 그대로지맘 와수리를 잇는 버스는 참 많이도 바뀌었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