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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남부지구는 보은, 삼승, 영동, 옥천, 이원, 청산, 황간, 학산이다. 이 중 보은성당은 남부지구의 대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보은성당은 1955년 10월 1일 봉헌된 성전입니다.
청주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1801년 신유 해 이전부터였으나, 대부분이 박해를 피해 숨어서 신앙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므로 1882년 이후 신교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되자 곧 여러 곳에 공소가 생겨 교세가 날로 늘어났습니다. 1896년에 충북 감곡에 부이용 신부가 성당을 건립, 이 지방에 정식으로 첫 본당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뒤이어 1906년에는 옥천에 두 번째 본당이 설립되었고, 청주, 증평, 제천, 교현 등 6개 본당이 차례로 설립되었는데, 그중 증평 본당이 6.25 동란으로 폐쇄되어 결국 5개 본당만이 1953년에 감목 대리 구로서 메리놀 외방 전교회에 위임되었습니다.
충청북도 감목대리 구는 1958년 6월 23일에 청주 대목 구로 독립하게 되고, 파디 야고보 신부는 7월 4일 교황청으로부터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되어, 그 해 9월 16일 미국에서 성성식을, 11월 26일 파디 야고보 주교의 착좌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그 뒤 1962년 한국 교회에 교계 제도가 설정됨에 따라 청주 대목구는 정식 교구로 승격되었습니다. 1969년 6월 28일 파디 야고보 주교가 72세의 고령으로 교구장직을 사임, 1970년 6월 25일 정진석 니꼴라오 신부가 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어 10월 3일 성성식을 갖게 되어 청주교구도 한국인 주교가 다스리는 자치 교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8년 5월 30일 청주 교구장 정진석 니꼴라오 주교가 서울 대교구장으로 서임되고, 1998년 6월 29일 교구 참사회에서 청주교구 교구장 직무 대행으로 김원택 프란치스코 신부를 선출하였습니다. 1999년 6월 3일 장봉훈 신부가 청주교구 제3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같은 해 8월 24일 내덕2동 주교좌성당에서 서품과 착좌 하여 지금껏 그 직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늦가을 103차 순례와 걸음 여행은 보은과 속리산 일대와 구병산 깊은 기슭 안, 산중 공동체 신앙 터전으로 기획하였습니다. 일정표에 의하면 첫 방문지는 보은 성당이었습니다. 전날 금요일 비와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비는 가을을 이미 넘어 서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기상환경을 대하며 은근히 걱정이 앞서야 되는 법인데 나의 마음은 미동도 하지 않었습니다. 그것은 오래도록 기상조건과 관련하여 특별한 은총을 경험하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오는 심정의 결과입니다. 10월에도 비슷한 조건을 주시더니 11월에도 새벽 1시에 내리기 시작한 비는 새벽 3시경 끝 쳤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마지막 짐을 정리하여 챙기며 스스로에게 속삭였습니다. 음~ 순례와 걸음 여행에서 최적의 기상조건은 누가 뭐래도 초목이 그리고 흙이 적당하게 젖어 있고 공기 또한 신선한 것이 좋다. 오늘도 바로 그런 조건이니 마지막으로 챙겨 넣는 비옷을 만지작 거리게 되더군요. 넣을까? 뺄까? 이건 아니지 야외활동에 필요한 물품 준비는 늘 최악을 기준으로 두지 못하더라도 보편적 나쁜 상황 대처에 기준을 두어여 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back- peack 깊숙한 외진 공간에 비옷을 밀어 넣었습니다. 차를 끓여 보온병에 채운 후 집을 나섰습니다 대기 중인 버스에 올라 출행에 대한 전반적인 기도를 드렸다. 감사와 은총을 기본으로 하는 평화의 염원을 질서 있게 배열한 마음을 여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리고 약속되어 있는 형제들과 만나 평화의 인사를 교환하고 일정대로 동선을 찾아 나섰습니다. 동천 간이 환승역, 그리고 기흥휴게소, 이후 줄곧 첫 순례지인 보은 성당으로 접근하여 참례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8시 30분경 도착 모두 성모님 앞에 모여 섰습니다. 한국교회의 주보성인이신 성모님에게 다가 가 인사를 드리고 우리들의 간구하고 또한 약속과 감사들 드리는 일은 일상적인 신자들의 책무입니다.
성전은 보은 주산에 모셔져 있습니다. 보은하면 알게 모르게 結草報恩(결초보은)이란 사자성어가 떠오릅니다. 풀을 묶어 은혜를 값는다?
결초보은의
유래 춘추시대, 진(晉)나라에
‘위무자’(魏武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끼는 '조희'(祖姬)라는 젊은 첩이 있었으나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그는 전장(戰場)에 나갈때는
'과'(顆) '기'(錡) 두 아들 에게 자기가 죽으면 서모(庶母) 조희를 좋은 곳에 개가(改嫁) 를 시켜주거라
하고 전장(戰場) 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장에서 돌아와 병들어 죽을 때는 조희를 자기와 함께 묻으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위과는 난감했습니다.
처음에는 개가 시켜라 했다가 다시 자신과 함께 묻으라고 유언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귀인이 죽으면 그의 첩들은 순장하는 관습이 있었으나 큰아들 '과'는 서모를 개가 시키기로 했는데
아우인 '기'가 아버지의 유언을 고집 하자 한동안
고민하던 큰아들 '과'가 결국 서모를 다른 곳으로 시집 보내니
아우인 '기'가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병이 깊어지면 생각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정신이 맑을 때 아버지가 처음 남긴 유언을 따르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 뒷날 그가 전쟁에 나가 진(秦)나라의 '두회'(杜回)와 싸워 첫전투에 크게 패했는데 밤에 비몽사몽간에
귓전에 맴도는 청초파(靑草坡), 청초파 라고 속삭이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잘 못 들었는가
보다 생각하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같은 노인이 다시 나타나 청초파를 또 외치는게 아닌가.
다시 잠이 깨어 주위를 둘러 봐도 이번에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위과'가 같이 출전한 동생 '위기'를 불러 이야기 하니 여기서 십리쯤 떨어진 곳에 보씨의 못이 있고 거기에 청초파라는 둑이 있는데 거기를 말하는것
같다 하면서 혹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진(秦)군과 청초파에서 싸우면 우리가 이길것이라고
계시(啓示) 한건 아닐런지요? 라고 하니 진(秦)나라
두회를 이길 뾰쪽한 방법이 없던 진(晉)나라 장수 위과는 이튿날 두회를 유인하여 청초파에서 전투를 치르는데
위과의 진(晉)군대가 적군인 진(秦)군대의 공격에 몰려 위태로운 처지에 빠져 있는 상황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 '위과'의 눈에 멀리 한 노인이 나타나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잡아매어 온 들판에 매듭을
만들어 놓는게 아닌가. 두회와 진(秦)병사들은 말을 타고 공격해 오다 거기에 걸려 넘어져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그
틈을 타, 공격하자 위과는 손쉽게 승리를 거둘수 있었습니다.
적의 용맹한 장수 두회도 사로잡았습니다. 위과는 그 노인이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알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나는 그대가 시집보내 준 '조희'의 친정아버지요. 그대가 그대 아버지의 첫 번째 유언대로 내 딸을
살려 주어 그 은혜에 보답했다오.” 이 이야기로 해서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백골난망(白骨難忘)과
같이 죽어서 까지 은혜를 갚는다는 보은설화(報恩說話) 중에서도
가장많이 인용되는《춘추좌씨전》에 나오는 성어가 되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위과는 자신이 은혜를 베풀었기에
훗날 그 보답을 받았고 반대로 조희의 친정아버지는 죽어서까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갚았습니다. 선악은 반드시 뿌린대로 거둡니다. 선을 행하고 뿌리면 행운이 뒤따라 오지만, 은혜를 잊거나 보답을 악으로 행하면 큰 불행이 온다는 사실을 보은을 탐방계획지로세우면서부터 되뇌이게 되었습니다.
보은성당은 청주교구 남부지구 답게 성당, 유치원, 프란치스코회관, 영성수도원 등이 보은군 주산에 산재해 있습니다.
하늘이 낮고 빛이 적어 어두운 아침나절
성모님 동산에 모여 데레사 자매님 주도를 따라 기도와 묵상의 시간 갖었습니다.
기도 후, 현지 신자, 자매님들과 인사를 나눈 후 입당하였습니다. 필리핀으로 선교 목적으로 가셨던 주임신부님께서 귀성하시는 날이신지 모두들 청소하시느냐 분주하셨습니다.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묵상과 기도를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행위에 대한 여러 가지 불편한 것을 전부 정리해 두었습니다.
우리들의 영원하신 사부 성 프란치스코, 성녀 글라라님을 기억하며 회관으로 달려갔습니다. 행사가 없어 굳건하게 잠긴 회관, 내부 모습은 정동 수도원 성당과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자각과 인식을 기억하며 기도를 올려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를 새롭게 하소서~~^&^
행장을 수습하기 위하여 잠시 흩어진 사이 성당으로 오르는 야트막한 언덕길, 풍광은 가을빛이 있어 자매님 몇 분과 사진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봉화 홍유한 수덕자 묘역 참배 순례 후 오랜만에 찾아 주셔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늘 영육 간에 건강하시고 복되고 영광이 넘치는 성가정이 함께 하시도록 소원하며 손을 맞잡고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꾸벅~ 다시 한번 더 꾸벅~~^&^
보은 성당에서 참례예절을 모두 끝내고 창조적인 질서 안에서 현존하고 계신 주님을 뵙기위하여 이동하였습니다. 세상과 별리하고 속세를 등진 속리산은 보은과는 지척에 있습니다. 속리산은 보은, 괴산, 상주와 경계를 이루며 깊은 계곡과 능선이 넓은 치마 폭처럼 펼쳐져 있는 산입니다. 속리산 국립공원은 괴산의 선유동, 화양구곡까지 포함되고 일분는 상주권역까지 포함됩니다. 8개의 대와 8개의 봉과 8개의 석문이 존재하는 속리산이지만 계곡과 폭포는 괴산과 상주에 모여 있습니다. 8봉은 천황봉, 비로봉, 길상봉,문수봉,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이고 8대는 문장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은석대,봉황대,산호대, 8개의 석문은 내석문,외석문,상환석문,삼고외석문,비로석문,금강석문,추래석문입니다. 이러한 깊은 산중에 법이 주석하고 있는 절이라 하여 붙여진 법주사, 마차에 불경을 한가득 실고 들어와 주석을 만들고 고려 숙종 대에는 승려의 숫자가 무려 3만명이 었다 합니다. 억불정책을 폈던 조선에서도 태종과 세조가 국가적 법회도 열었다는 절, 법주사, 이 사찰에서 공을 풀어 만들었다는 말티재 꼬부랑길이 바로 오늘 걸음 여행의 중심입니다. 인간의 삶이란> 굴곡진 길처럼 여러고비를 넘기며 살아야 합니다. 마음을 잡지 못하면 삶은 더욱 더 피폐해 집니다. 늘 살아 날뛰는 마음은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기 중심적이 되어가면 겆잡을 수 없는 풍파에 시달려야 합니다. 나를 죽여야 비로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한 시도 잠들지 못하는 바다 표면에서 일렁거리는 풍파위에 수많가지 정염을 죽이고 피정이란 고요한 자신의 마음을 그 풍랑위에 새길 수 있을 때 해인(海印)은 완성된다고 하였습니다. 해인의 직접적인 주인공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 깊은 수도정진의뜻을 알 수 있다면 삶의 사표로 받아 들 일 수 있으니 그것으로 족합니다. 깨닫고 알게되면 늘 분별력이 생기게 됩니다. 깨어 있으면 생생한 분별력으로 자신을 늘 진리의 자리에 머물게 합니다. 복음 안에서의 삶 또한 복음의 향기를 가슴 안았을 때 가능한 이치와도 같은 형극입니다. 걸으며 묵상하며 재속의 삶 안에서 묻어 나를 괴롭힌 것들을 정화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세속과 등지는 깃점이라 할 수 있는 말티재에 모두 모여 섰습니다.
번뇌를 불러 일으키는 마음을 혼탁하게 하는 것들, 이기심을 먹고 자라고 상념으로 성목이되어 심지를 어지럽게 만듭니다. 그 사유를 들어 생각하라고 마음의 법을 공부하라고 금석문을 만들어 걸음 마디마다 세워 놓았습니다. 일께우는 석문을 보며 자랑할 일 보다 부끄러운 일이 더 많은 자신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평생 공부하며 성현,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르며 자기 성찰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앞으로 백팔번뇌와 관련한 시설을 더욱 더 확충할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불가에서 얼핏 들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법이 제대로 서려면 대중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잠시 재속의 삶과 별리하며 걷다 금석문 마지막을 돌아 나가다 보면 목탁 동산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잠시 머물며 묵상으로 마음을 정리할 것입니다. 신앙의 뿌리는 다르지만 가르침이 바르다면 분명 사랑과 자비와 평화의 가르침이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걸어서 떠나는 마음여행을 시작하겠습니다.
불가의 절 집 추녀에 걸린 풍경, 추는 물고기 모습입니다.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잡니다. 수도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목탁의 모습도 물고기를 형상화한 법기입니다. 불가에서 사용하는 도구라는 뜻입니다. 옛적 덕이 높아 가르침이 좋은 스님이 있어 제자들로 항상 넘쳤습니다. 제자 하나가 계율을 어기고 멋대로 살다 죽어 물고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물을 떠다니는 물고기 한 마리 등에 커다란 나무가 박혀 있었습니다. 법력을 이용하여 고승께서 살펴보자 당신 제자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불상이 여겨 스승께서 뽑아 주자 제자는 죄의 용서를 빌고 후회하며 자신 등에꽂혀 있던 나무로 목탁을 만들어 놓고 가 이후 스님들은 게으르지 않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새로운 법령이나 공지할 일이 생겼을 때 두드려 대중을 모으고 사회에 관심을 주기 위한 목적과 대중들이 염불을 하거나 경전을 외울 때 음률과 박자를 맞출 때 사용하며 번뇌와 잡념을 깨트리는 법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불가에서는 세상 곳곳에 자비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늘 깨어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고 울림을 통하여 만물을 정화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범종을 쳐서 이 세상에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것을 깨우고( 인간의 마음도 이 범주 속합니다) 수중 생물을 위하여 목어를 두드리고 하늘에 날짐승을 위하여 운 판을 두드립니다. 또 땅을 딛고 사는 짐승을 깨우려 법고 즉 북을 두드리기도 합니다. 목탁은 작은 목어라 생각하셔도 됩니다.
피세정염으로 나가는 길목에 서서 마음을 잡아 섰습니다. 백팔번뇌를 살피는 길, 많은 사색의 단초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끝없이 이어져 나가는 사색의 길을 걷다 오후 일정에 맞추기 위하여 그 길로 빠져나왔습니다. 아직 미완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사도의 주인과 입장 정리가 안 되었는지 열쇠로 채워져 있어 옆으로 돌아 나와야 했습니다. 이야기는 2번으로 이어집니다.
첫댓글 11월 걸음성지 순례 전날...^
종일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을스년 스럽게 내리는 금요일 하루~*
토요일 걸음여행 행장을. 정리하면서...^^
날씨에 상관 하지않고 늘 떠날 준비가 되있는터라~*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할수있기를 은근히 고대 하며....
도착한 보은성당 주위환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른새벽 달려온 보람을 느끼며 감사한 마음이 충만~★
시작이 좋으니 속리산 둘례길 역시 환상적이다
날씨까지 받쳐주니 모든것이 내 마음에. 행복이 가득~♥
또한~충북의 알프스
멍에목 성지. 비밀 신앙 공동체인 교우촌
한국의 3대 풍혈. 구병산풍혈...충북 알프스
아름다운 마을~💕
보은의 주산(主山)은 사산(蛇山)이지요. 이 산주변에 놓여 있는 성전을 중심으로 영성 수도원, 성프란치스코 회관, 유치원 등 에덴의 동산처럼 아름다운 곳입니다. 제대로 살펴 보신 것 같습니다. 수고 많으셨구요. 언제나 샬롬 샬옴~~^&^
최양업 신부의 사목 순방지
신앙 선조들의 교우촌
지금은 아름답고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충북의 알프스로 거듭나.....
걸음팀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
멍에목 김상수 불라시오신부님의 따뜻하고
자상하신 신부님의 모습
오래 오래 기억되고 다시 뵙고싶은 신부님...*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충북을 중심으로 안거, 칩거 근거하시고 사목을 하시며 삼남 교우촌을 순방하셨던 토마스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르다 보면 왜 신부님이 땀의 순교자이신지 깨닫게 됩니다. 멍에목에 머무시며 때로는 휴양차 때로는 교우들의 생생한 생활환경에 대하여 신앙생활에 대한 소식을 스승이신 외방전교회 신부님들에게 보내는 서한 속에 담겨 있습니다. 열 아홉의 서신 중 아홉 째 서신만 분실되고 나머지는 보관되어 전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올려 보려고 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평화와 함께 하시기를 소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