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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황혼이었다. 낚시찌에 집중하면 세상만사를 잊는다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나는 열심히 낚시찌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다에 황혼이 물드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처음에 수직으로 뻗어있던 황금색 빛기둥이 점차 바다 전체로 번지면서 진홍과 주황의 너울이 되었다. 찌는 작은 배의 돛대처럼 그 너울을 헤치고 꿋꿋한 항해를 계속했다. 찌가 물속에 잠기는 몇 차례 입질이 있었지만 번번이 고기를 낚는 데는 실패했다. 썰물과 밀물이 바뀌는지 물이 돌면서 그나마 입질마저 뚝 끊기고 찌만 용용히 물결을 타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거친 바위돌들 너머로 한 검은 그림자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얼핏 험악한 생김새에 누추한 입성이었다. 한 손에 양동이를, 또 한 손에 달랑 짧은 낚싯대 한 개를 들고 있었다. 온갖 장비를 다 갖춘 도시 사람이 아닌 이곳 사람이 분명했다. 그는 잘 알아듣지 못할 지역 사투리로 뭐라고 말을 걸더니 방파제 너머로 건너갔다. 내가 앉아 있는 방파제 계단 쪽은 고기가 잘 안 잡힌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외양에서 풍기는 거칠음과는 달리 의외로 상냥한 목소리였다. 나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바위 위에서 그는 한참을 부스럭거리며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찌 바라보는 것도 지루하여 그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그는 바다 쪽으로 낚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바위 틈 사이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듯싶었다. 나는 그가 하는 낚시가 말로만 듣던 구멍치기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람을 좀 조심하는 편이지만 어쩐지 그에게는 별다른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가 구멍치기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내가 묻는 것에 이것저것 대답도 해주고 낚시 요령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시범도 보여주었다. 처음 느꼈던 것과는 달리 검게 그을렸지만 선량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 뭔가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물리적 타격일 수도 있고 정신적 타격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타격으로도 본래의 선량함을 지울 수 없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는 컴컴한 구멍 속으로 낚싯대를 수직으로 밀어 넣었다. 릴 낚싯대처럼 생겼는데 정상적인 낚싯대가 아닌 두 간 정도만 남긴 낚싯대였다. 그 끝에 짧은 줄과 낚시를 매달고는 쉴새 없이 물고기를 끌어올렸다. 바위 아래 고여 있는 물속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물고기가 있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는 그 물고기 이름이 물메기라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메기 모양의 수염이 있었다. 줄곧 그 물고기만 잡혔다. 밑밥을 좀 뿌리고 낚싯대를 집어넣었다 꺼내면 바로 물메기가 낚였다. 그는 정말 무시무시하게 물메기를 끌어올렸다. 그는 한두 시간이면 양동이가 그득 찬다고 말했다. 그렇게 잡아서 자기도 먹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준다고 했다. 라면에 물메기를 함께 끓이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지느러미에 독이 있으니 대가리를 누르고 낚시 바늘을 빼야 한다는 주의와 함께 바늘을 깊이 삼켜 빠지지 않을 경우 가위로 턱을 잘라버리는 시범도 보여주었다. 열심히 듣고는 있었지만 훗날 내가 구멍치기를 하러 올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또한 이 구멍을 찾지 못할뿐더러 설혹 찾았다 해도 그 구멍에 물메기가 여전히 살고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그는 해질녘 검은 바위틈에서 무시무시하게 생긴 물메기를 무시무시하게 잡아 올렸다. 그때 문득 내가 누군가의 자폐의 공간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 어쩐지 무시무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