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겹살’이었던 삼겹살의 가격이 곤두박질쳤다고 한다. 돼지독감에서 이름이 어색하게 바뀐 신종플루 때문이라는데, 2002년 돼지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가장 급격한 가격 하락이라고 상인들은 울상을 짓는다. 어두워진 축산농민의 얼굴과 별도로 2009년 세계 10대 사건을 예약한 이번 독감 파동은 유럽의 긴장이 남아 있더라도 머지않아 진정될 텐데, 돼지는 본의 아니게 인간 세계에 다시 주목되었다.
세계보건기구는 멕시코에서 시작된 독감을 돼지독감(SI, swine influenza)로 자신 있게 명명했지만 왜 미국의 입김 하에 있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압력을 받자마자 인플루엔자A H1N1이라는 학술적 이름으로 바꿔야했을까. 물론 그 표면적 이유는 설명을 했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다니는 이번 독감 바이러스가 돼지에서 기원했다는 흔적이 없는 데에도 지구촌에 돼지고기를 회피하는 시민이 급증하다보니 돼지고기 교역에 차질이 생기고 급기야 자국에서 사육하는 돼지를 모조리 살처분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이후 돼지 살처분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데, 혐의를 벗은 만큼 삼겹살은 다시 금겹살이 되었을까. 돼지는 모르겠고, 축산농민의 얼굴은 밝아졌을까.
자국의 모든 돼지를 살처분하려는 국가의 주요 종교는 단연 이슬람이다.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다. 따라서 일부 기독교인을 제외하고 돼지를 사육하는 농가도 없다. 사막에서 부패하기 쉬워 그런 계율이 생겼을 거로 추정하는 학자의 견해와 관계없이 무슬림들은 코란으로 하느님께서 금지했고 그 이유는 하느님만이 안다고 여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독감 창궐의 혐의에서 벗어났어도 강행하려는 그 나라의 살처분은 예방보다 종교적 이유라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돼지독감을 고집하던 세계보건기구가 갑자기 명칭을 변경하게 된 경위도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학자들은 독감 바이러스를 구성하는 8개의 내부 RNA 중 6개가 돼지에서 기원한다지 않은가.
독감 바이러스의 RNA는 DNA보다 100만 배나 부정확하게 복제되는 까닭에 창궐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변이체가 만들어지고, 그 바람에 새로운 환경변화에 쉽게 적응한다. 새와 돼지도 그런 독감 바이러스에 오래 전부터 감염되어왔지만 사람과 마찬가지로 독감에 걸린다고 모조리 목숨을 잃거나 위태로워지는 건 아니었다. 면역이 아주 약한 어린이나 병약자나 노인, 그리고 이번 신종플루에 희생된 멕시코처럼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제때 병원에 갈 수 없는 가난한 계층에 피해가 집중될 뿐, 건강한 이는 며칠 앓다 이내 회복되었다. 우리나라에 조류독감을 전하는 것으로 여기는 철새와 마당을 돌아다녔던 닭과 토종 돼지도 마찬가지다. 물려받은 유전적 다양성을 잃지 않은 개체들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기에 떼로 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인간이 문제를 증폭시키고 말았다. 욕심 사나운 축산과학이 용도에 맞춰 가축의 품종을 극단적으로 육종하자 돼지도 양계장의 닭처럼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현저히 좁아져 환경변화와 질병에 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따라서 질병을 옮길 수 있는 외부공기를 차단하는 실내에서 엄격하게 사육해야 하는데 인간의 부주의가 발단이 된 것이다. 잡식동물이라 그런지 돼지는 사람처럼 조류독감에도 감염되고 사람에게 자신의 독감을 잘 옮기는데, 돼지를 빼곡하게 채운 공장식 축사와 가까운 곳에 닭과 오리를 밀집시킨 공장식 양계장을 만든 인간이 들락거리는 게 아닌가. 그야 돼지가 책임질 일이 아니건만 인간은 조류독감이 돌기만 하면 위험 반경 안의 건강한 닭은 물론이고 멀쩡한 돼지까지 모조리 죽인 뒤, 내놓으라하는 정치인들은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떠들썩하게 시식회를 연다.
그뿐인가. 미니 돼지를 육종한 인간은 유전자조작으로 면역에 관여하는 유전자 하나를 없애더니 아예 복제하겠다고 덤빈다. 돼지의 장기를 인간의 몸에 넣겠다는 거다. 돼지의 장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돼지 몸에만 적합하게 진화되었는데 왜 인간의 몸에 넣겠다는 건가. 제 몸에 맞는 장기를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를 위해 돼지를 활용하겠다는 발상인데, 인간의 장기가 망가진 건 오로지 몸을 함부로 놀린 인간 자신의 문제일 뿐 돼지와 아무 관계가 없건만 인간의 생명을 조금 연장하려고 죽이겠다는 게 아닌가.
독감에 감염된 돼지도 두려워하면서 돼지로 사람을 치료할 것처럼 유난을 떨지만 어떨까. 태반에서 장기를 적출할 때까지 무균사육하면 바이러스나 병균에 감염되지 않을 테니 청정하리라 단정하지만, 바이러스는 외부에서 감염되는 종류만이 돼지에서 장기를 이식할 사람에게 옮겨가는 게 아니다. 돼지의 유전자 내에 삽입된 채로 물려받은 바이러스 유전자가 살아있는 돼지의 장기에서 사람의 몸으로 옮겨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른바 ‘내인성 바이러스’다. 앞서 연구한 서구의 연구자들이 다른 생물의 장기를 사람에 이식하는 연구를 포기한 것은 예산지원이나 실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연구비 욕심에 불필요한 연구로 헛된 희망을 퍼뜨리는 걸 거부한 까닭이었다. 더구나 유전자들의 복잡다단한 작용에 의한 면역을 섣부른 유전자조작과 복제로 극복할 수 있을까. 어찌 되었든 복제된 돼지도 인간의 언론에 크게 주목받았다.
미국이 만든 ‘아기 돼지 데이브’라는 영화가 크게 히트한 이후 똑똑한 동물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 전에는 미련하다 여겨 아무렇게 대했던 돼지. 삼라만상의 동물이 그렇듯 자신의 독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데 특별히 문제가 없을 정도의 지능을 가진 돼지는 자신을 재평가한 인간이 고마울 리 없다. 돼지막이 지저분한 건 사람이 그리 관리했기 때문이고 낮고 단순한 꿀꿀 소리를 반복한다고 미련하다 여기는 건 편견일 뿐이다. 영어의 바바리안은 “바르바르”에서 왔다. 자모음을 분간할 수 없는 이웃 나라의 언어를 그리 들었던 거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남을 미련하다 평가한다면 나도 예외일 수 없다. 남의 기준에서 나는 똑똑할 수 있다던가.
캐나다의 돼지들이 신종플루에 감염되었다. 엉뚱하게도 멕시코를 다녀왔던 인간 때문이었는데 고맙게도 돼지 사이에 별 탈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전문 학자들의 동의 없이 이름을 바꿨지만 그런다고 독감의 유전자도 바뀌는 건 아니다. 앞으로 생길 더 큰 걱정은 다시 변화될 독감 바이러스에 있다. 지구온난화로 환경변화가 전에 없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독감 바이러스는 변화될 환경에 적응할 준비를 마쳤는데, 탐욕스런 인간은 공장식 가축 사육방식을 전혀 반성하지 않는 게 아닌가. 수시로 손을 씻는 개인위생과 무관하게 독감 바이러스들은 변종을 계속 만들어낼 것이고, 미니돼지의 유전자를 조작해 복제하는 신기루 같은 과학기술을 꿈꾸는 인간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게 틀림없다.
공장식 축사의 돼지들은 꼬리가 없다.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서로 물어뜯기 때문이라는데, 오염된 사육환경에서 상처부위의 염증이 도져 상품가치를 잃을 것을 걱정한 사람이 진작 떼어낸 것이다. 꼬리 잘린 돼지는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돌지 않는다면 살코기 용 소나 닭처럼 성체가 되기 한참 전까지 자란 뒤 일제히 도살될 텐데, 인간은 그렇게 죽는 돼지의 머리를 상 위에 올려놓고 큰절을 올린다. 소원성취를 빌겠다는 거다. 자신의 의지와 달리 만 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 콧구멍에도 끼워야하는 돼지는 인간의 기도를 어떻게 들어주고 싶을까. 신종플루는 공연히 창궐한 게 아닐지 모른다.
첫댓글 글을 쓴 시기가 벌써 한 달 이상 지났습니다. 이제 돼지독감이란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돼지와 관계는 분명히 있을 텐데 돼지와 연관관계에 관심은 사라지고 신종플루가 다시 변종으로 강화될까 두려워하는 모습입니다. 한데 그 대책이란 게 손 씻자는 데 그치니 어이없습니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나오지 않는군요.
그냥...안다는 게 참 무서울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서운 일이라는 걸 느끼지 못할 땐 정말 파장이 크겠지요...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면서 행하는 것들이 인간에게 재앙을 어디까지 불러 올것인지 무시무시합니다.
모르는게 약이라 했을 겁니다 근본적인 것이 무엇일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