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일 화요일 19:00시 방어진 중학교 시청각실에서 홍세화 선생님의 '차별없는 세상' 이라는 주제로
강연회가 열렸다. 나에게는 정말 뜻깊은 강연회가 될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형님이 보내 준 책 중 5년전 포항 청운동에서 내가 처음으로 좌파도서?? 를 접하고 읽게 된 것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였다. 그 당시 군인이었던 나는 솔직히 좌가 뭔지 우가뭔지 별 관심이 없었었다.
그래서 당시 홍세화는 나에게 그냥 프랑스 '똘레랑스'라는 단어와 이렇게 연대가 잘돼는 세상도
있구나 하고 다가온 그냥 단순한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 그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남민전이란 사건이
뭔지 얼마나 큰 사건이었으면 무려 20년간이나 입국이 안되었는지 그냥 그정도로만 생각했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책을 기점으로 점점 나의 시야는 바뀌게 되었다. 많은 책들을 접하며 홍세화라는 사람을 알게 되어갔고
내 자아가 점점 성숙 해지는 과정에서 읽은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는 또한번 나에게 이런세상을
만들고 싶라는 생각을 들게끔 해 주었던 책이다. 그렇게 나에게 센세이션을 준 작가가 강연회를 위해 울산에 온다니 나에게는 설레이지 않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이 시간에 맞춰 강연회 장에 도착했다. 그렇게 기대하던 홍세화 선생님 모습이 보인다. 강연회는 20:80의 사회 아니 5:95의 사회 95%의 가난한 사람들은 왜 5%를 대변하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열심히 구독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 돼었다.
그리고 12개월에서 36개월 된 아이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1위 '엄마' 2위는 기대와 달리 '왜?' 였다. 어렸을 때 부터 아이들은 왜? 라는 질문은 던지지만 현 제도권 교육이 이를 묵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렸을때 우리도 한번쯤 기억이있는 득하다. 엄마 왜? 라고 질문하면 대답은 크면 다알게 돼! 그리고 나고 쬐금한게 하며 혼난 기억. 그 것이 현 대한민국의 제도권 교육의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변영주 감독과 진중권 교수의 강연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교육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안주고 암기식 주입식만 하고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셨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것이 될 수 있었나?' 결론적으로 현재 이 강연회에 오신분들은 국가가 말하는 불온서적을 읽었거나 불온한 선배를 만나서 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 안타까운 말이다. 대한민국의 진보들은 불온한 세력들이 되어버리는 현실. 나는 자아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내 형이었는데 그렇다면 우리형은 불온한 형??? ㅋㅋㅋ 그리고 우리들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셨다. 우리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은 교회 아니면 조중동 인데 우리는 왜 그렇게 광신도가 되지 못하는냐?? 광신도가 되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며 식당에갔는데 조중동을 보면 "이 집 밥은 맛있는데 신문은 개판이네" 라는 소릴를 왜 못하냐는 것이다. 맞는 말씀이다.ㅋㅋ
선생님의 말씀데로 좌와 우의 신문이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의 신문인 것이다. 그러면서 또 한번의 선생님의 감동. 질의 응답시간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바뀌는가라는 말씀을 하시다가 그러니까 여기 오신 분들 중에 한겨레 신문 안읽는 사람들은 오늘 구독 신청해라 한겨레 구독하시는 분은 한겨레 21 구독 신청 해라 하시며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가방좀 주세요" 하며 구독 신청서를 꺼내신다. 이런 어른이 정말 밑바닥부터 바꾸는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나눠지는 구독 신청서. 다행히 나는 한겨레에 한겨레 21 까지 구독 중이니 굳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정말 이 분은 어떤 것이 시작인지 말로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신문사 영업사원들이나 해야할 구독홍보를 하고 계신분이다. 정말 중요하지만 진보계의 어른으로서 신문사의 어른으로써 정말 쉽게 할 수없는 일을 그는 이렇게 솔선수범하며 하고 계셨다. 정말 감동받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인원들의 질의가 쏟아졌고 나 또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많은 질문으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뒷물이 장소를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강연회가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홍세화 선생님의 인기를 실감나게하는 싸인 행렬과 사진찍기가 길게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나 또한 저서 쎄느강...을 들고 줄을 섰고 나의 반쪽 또한 저서 나는 빠리...를 들고 싸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싸인을 받고 사진을 찍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흥분이 되었다.
그리고 뒷풀이 장소로 옮겼고 운 좋게도 홍세화 선생님 바로 앞자리에 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화를 하면 할 수록 그분의 인품이 느껴졌다. 많은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워낙 인기가 좋으신지라 다른 자리로 옮기는 과정에서 하고 싶은 말들을 아낄 수 밖에없었다. 그리고 자리가 끝나갈 때쯤 다시 같이 자리를 하며 못다한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뒷풀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쉬로 가셔야 할 시간. 내가 생각해도 여자친구 정말 잘 두었다. 선생님 우리가 묵을장소가지 모시자고 하고 선생님께 가서 우리가 모시겠습니다 한다. 그렇게 해서 선미 재랑 과 함께 선생님을 내차로 모텔까지 모시게 되었다. 정말 이런 횡재 한번 있을까 말까 할것인데 ㅋㅋㅋ 차안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선미 왈"선생님은 어려우신 분인가요??" 선생님께서는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 서울 올 일 있을때 미리 연락주고 오면 같이 밥한끼 하자고 하신다. 그렇게 해서 느추하지만 울산역 근처 모텔로 안내 해 드렸고 마지막인사도 웃음으로 해주시는 홍세화 선생님.
내게 큰 눈을 갖게 해 준 책의 저자와의 만남이었지만 정말 그 인품을 알 수있었고 저런분이 있기에 아직 우리 대한민국에도 희망은 분명 있다라는 것. 나에게 잊지 못 할 추억이 또 하나 생긴 듯 하다.
첫댓글 테리우스님이 강연회 후기를 멋지게 써서 난 안써두 될 것 같네요^^ 결국 홍세화 선생님을 차로 모셨군요~~
홍세화님~~ 올초에 울대에서 뵈었는데 ㅋㅋㅋ 반가워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