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지용
피아노/ 전봉건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 시집 『꿈속의 뼈』(근역서제,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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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발랄한 피아노 선율이 주는 감동을 생생하게 전하는 이 시는 음악 그 본연에서 길어 올린 청각적 심상보다는 건반 위의 현란한 손놀림에서 느끼는 공감각을 시각적으로 더 잘 표현한 시라는 느낌이 든다. 건반 위 손가락 율동에서 싱싱한 물고기의 퍼덕거림이 연상되고, 그 물고기는 곧장 바다를 떠올리게 하여 힘찬 파도의 모습으로 이미지가 전개되었다가 이윽고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연상의 궤적은 대강 이러했을 것이다. 그랜드피아노 앞에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고, 건반을 두드리는 희고 긴 손가락이 퍼뜩 신선한 물고기로 보였던 것이다. 피아노 건반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강열한 햇살에 지느러미를 빛내며 펄펄 뛰는 수십 마리 물고기의 약동인양 현란하다. 피아노 선율의 청각적 이미지가 시각적 이미지인 물고기로 전이되었다. 그리고 물고기는 바다의 이미지로 확장되어 칼날 같은 시퍼런 파도로 출렁인다.
형식미의 재간놀음이고 이미지의 공중잡이 같다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거리가 그리 멀게 느껴지진 않는다. 모르긴 해도 전봉건 시인 자신도 그다지 음악에 조예가 깊은 처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선율에의 몰입 보다는 시각적 형상이 눈에 더 들어왔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피아노를 통해 파도의 칼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물아일체의 경지에 들지 않고는 불가능한 노릇이다.
평소 돈을 내고 음악회에 가는 일라고는 좀처럼 드문 내가 지난달에는 두 번씩이나 음악 공연장을 찾았다. 하나는 실내악 앙상블 ‘디토’에 소속된 조카 피아니스트 지용의 지방순회 공연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인의 아들인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이 출연한 콘서트였다. 모두 가족 초대권으로 입장한 음악회였지만 원래의 티켓요금은 호락호락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만큼 그들의 음악과 연주가 만만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나는 무대에서 가장 큰 악기인 피아노이고, 또 하나는 가장 작은 악기에 속하는 하모니카다. 그러나 완결된 형태로 그들이 뿜어내는 선율의 아름다움과 감동의 힘은 하나같이 시의 이미지 이상으로 강렬했다. 바람이 불고 풀잎이 가늘게 떠는가 하면, 소나기가 꽂히며 세찬 파도가 치기도 했으며, 날선 시퍼런 칼날이 번뜩이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 음악의 우물에 빠져 가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하지만 공짜로 그걸 즐긴 건 조금 미안한 일이었다.
권순진
The Flight Of The Bumble-Bee (왕벌의 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