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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공 여러 개를 가지고 올렸다 받았다 하면서 노는 공놀이. 일종의 손 놀리기 재주인데, 여러 개의 공을 공중에 올려 그것을 기예적으로 받아서 돌리는 것이다. 구슬이나 작은 공을 갖고 논다고 하여 농주(弄珠)라고 하고, ‘공 놀리기’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농환(弄丸)·금환(金丸)·수환(垂丸)이라고 한다. 오래 전부터 기예놀이로 전해지다가 근래에는 콩주머니를 이용하여 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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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풍속도첩-농주 | 어느 시기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행해지던 놀이로 보인다. 고구려 팔청리고분벽화(八淸里古墳壁畵)와 수산리고분벽화(修山里古墳壁畵)에 왕이나 귀족의 행렬 앞에서 걸어가며 여러 개의 공을 던지고 받는 그림이 있다. 또 신라 후기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향악잡영(鄕樂雜詠)》에는 농주하는 모습을 묘사되고 있다.
몸을 휘두르고 팔을 뻗쳐 금환(농주)을 놀리니 / 달이 돌고 별이 뜬 듯이 눈에 보이누나. 의료의 재주인들 이보다 더 나으랴 / 넓은 바다 물결조차 잠잠하여 지리로다.
그리고 중국의 이연수(李延壽)가 지은 《북사(北史)》의 <백제지국전>에 백제에는 투호(投壺)와 저포(樗蒲)와 농주와 악삭(握·) 등 잡희(雜戱)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고, 《수서(隋書)》의 〈동이전(東夷傳)〉 백제조(百濟條)에 농주놀이가 기록되어 있다. 그밖에 조선시대 성현(成俔)의 《허백당집(虛白堂集)》에 “공 놀리며 공교한 술법이 많고~”라고 표현한 시가 있다. 이 시를 볼 때 농주가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까지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놀이가 조선시대의 잡희 중에 빠지지 않고 국가의 큰 행사에서 연희되었다는 것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 이 놀이는 오늘날의 서커스에서 간혹 볼 수 있는데, 5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하던 놀이였다. 지금도 종종 노인들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근래에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던 놀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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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어디서나 임의의 시간에 할 수 있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 놀 수 있다.
1) 놀이 도구
농주는 주먹보다 작은 귤 정도 크기의 둥근 모양으로, 재료는 쇠붙이나 나무로 만든다. 위로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눈에 띄게 하기 위해서 겉에는 여러 가지 색을 칠한다. 근래에는 헝겊으로 작은 주머니를 만들고 그 안에 곡식을 넣은 ‘콩주머니’를 만들어 논다.
2) 놀이방법
① 혼자 하는 방법 (ㄱ) 한 손으로 두 개를 가지고 놀 때 ― 두 개를 손에 넣고 하나를 위로 올린 다음 떨어지기 전에, 손에 있는 것을 위로 올리고 내려오는 것을 받는다. 계속 이와 같이 한다. (ㄴ) 두 손으로 세 개를 가지고 놀 때 ― 왼손과 오른손에 한 개씩을 쥐고 위로 한 개를 올린 다음, 한 번은 오른손에 있는 것을 위로 올리면서 떨어지는 것을 받고, 다음 번엔 왼손에 있는 것을 위로 올리면서 떨어지는 것을 받는 식으로 되풀이한다. (ㄷ) 여러 개를 가지고 놀 때 ― 두 개, 세 개가 익숙해지면 여러 개를 가지고 노는데, 잘 하는 사람은 다섯 개 이상을 가지고 놀기도 한다. 중국 《장자(莊子)》의 〈서무귀편(徐無鬼扁)〉에 “‘시남의 의료가 환령을 잘 놀리므로 항상 여덟 개는 공중에 있고 한 개는 손에 있었다.”라는 기록에 보이듯이 아홉 개도 돌리는 사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ㄹ) 여러 가지 기술 ― 여러 개의 농주를 가지고 다리 밑으로 올려 던져 받는 방법, 다리 밑으로 뒤로 던져 앞으로 받는 방법, 옆으로 던져 위로 올리기 등의 다양한 기술이 있는데, 이는 아주 어렵기 때문에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② 둘이 하는 방법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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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팔, 눈이 잘 협응이 되지 않으면 제대로 해 낼 수 없는 놀이이다. 따라서 신체적 단련이 저절로 되고 그와 함께 손놀림이 빨라진다. 또한 움직이는 농주를 던지고 받으려면 주의를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길러지고, 다양한 기교를 익히는 가운데 성취감과 재미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놀이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아슬아슬한 흥미를 자아내는 재미를 얻을 수 있고 모두에게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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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주와 같이 기교를 필요로 하는 놀이들이 많이 있었다. 장대타기·줄타기·무동·접시돌리기·땅재주 등이 그것이다. 이런 놀이들은 흔히 외국 사신을 영접하거나 명절, 대중 행사가 있을 때 전문적인 예인들이 공연하였는데, 간단한 것은 농주와 같이 일상적인 놀이가 되기도 했다. 고구려 벽화에 위와 같은 기교를 필요로 하는 놀이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이런 놀이들이 상당히 발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조완묵, 《우리 민족의 놀이문화》, 정신세계사, 1996. 스튜어트 컬린/윤광봉 역, 《한국의 놀이》, 열화당, 2003.
출처 : 우리의 놀이문화 원형을 찾아서 |
첫댓글 재미있을 거 같아요^^*연인끼리 해도~~~
꼭 해 보세요.. 콩주머니는 제공해 줄 수 있답니다. 연인만 생기면...^^
클로버님 감사합니다 늘 밝고 창대하십시요
행운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