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 9 / 2 / 금
헌신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박 은 서
추리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제목부터 따뜻함(?)이 느껴지는 책, 『용의자 X의 헌신』이다. 확실히 ‘고전’이라 운운한 『셜록 홈즈』 보다 재미있다. 읽으면서 추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끝에는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몹시 재밌었다.
제목에 나와 있는 ‘헌신’이라는 용어는 ‘어떤 일이나 남을 위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 이라는 뜻이었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 임에도 불구하고 용의자 X가 행하는 ‘헌신’에 집중하여 볼 필요가 있고, 따라서 ‘헌신’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써 보려 한다.
첫째로, 그는 하나오카 모녀를 위하여 사건을 은폐해 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위해 ‘거의’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천재적인 머리로, 9월 10일 날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었고 그 덕에 ‘쿠나사기 슌페이’형사가 물을 때, 하나오카 모녀는 정확하게 대답하였고 ‘거의’용의 선상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둘째는, 사건의 진범이 들어날 위기에 처할 ‘하나오카 야스코’를 위해, 자신이 진범으로 위장했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야스코로 부터의 의심을 완전히 벗겨내기 위해 자신이 ‘스토커’짓을 했다고 말하기 까지 하고, 그것을 위해 다양한 트릭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오카 모녀를 위해 ‘새로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사실 하나오카 야스코가 도미가시를 살인한 날은 9월 9일이며, 이시가미가 새로운 살인을 저지른 날이 9월10일이다. 그는 신원 파악이 어려운 한 노숙자를 살인하였으며, 그 시체를 완전히 도미가시로 위장했다. 그렇기에 하나오카 모녀가 9월 10일의 알리바이를 침착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며, 경찰 수사에 혼선을 일으킨 것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글을 쓰다 보니 누군가도 나에게 이정도의 극진한 ‘헌신’을 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미 누군가가 나에게 이러한 헌신을 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항상 나의 편에 서서 나를 위해 싸워주며, 내가 위급할 때 도와주고, 내가 잘못한 것에 책임을 지어 주고,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 줄 사람이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은 바로 나의 부모님, 나의 엄마 아빠였다.
정신이 멍했다. 무언가로 머리를 새게 맞은 듯 한 기분이었다. 완전히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이시가미 데츠야’와 일치했다. 그리고 곧이어, 다른 생각도 떠올랐는데, 바로 ‘하나오카 야스코’가 나와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소설의 중 후반부에서 야스코는 이시가미의 ‘헌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를 피한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남자인 ‘구도’가 그녀에게 다가오자 그녀는 갈등을 버린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이시가미는? 그는 계속하여 그녀에게 ‘헌신’을 내비춘다. ‘구도’라는 다른 남자와 행복하게 지내라고 축복해 주면서 ‘헌신’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나는, 어느새 사춘기가 되면서 부모님이 귀찮아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을 의심하기도 했고, 반항을 한 적도 생겨났다. 하지만 부모님은? 부모님은 미우나 고우나 항상 ‘헌신’하시고 나른 ‘사랑’해 주셨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든, 부모님은 내가 가는 길을 축복해 주셨다.
추리 소설을 통해 ‘부모님의 헌신’에 대해 깨우친 것은 웃긴 일이지만, 내가 이것을 깨달았다는 점은 이시가미의 야스코에 대한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의 수준을 넘어선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는 ‘헌신’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이 『용의자 X의 사랑』이 아니라 『용의자 X의 헌신』라는 것이 내용에 맞게 참 잘 지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정말, 그의 ‘헌신’이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를 떠나서 대단한 것이고, 그런 헌신을 부모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함과 놀라움을 표하는 바이다. 나도 언젠가는, 이시가미처럼, 우리 부모님처럼 누군가에게, 나의 자녀에게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나는 다짐한다.
용의자 x의 헌신.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