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31.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골 3:5
*제목;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8) 탐심을 버리라!
1. 가나안에서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것, 돈 우상
광야는 매우 부족하고 위험한 곳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기에 최적화 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가장 좋은 영성 프로그램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반대로 가나안은 풍요롭고 편안한 곳이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으로 모든 마음을 빼앗기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만큼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야보다 가나안이 영적으로는 더 위험하고 힘든 곳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광야의 시간에 이를 배우지 못해, 가나안에 들어가 “바알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되었고, 그래서 “순종 중심의 신앙”에서 “제사 중심 신앙”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오늘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만 드리고, 십일조만 드리면 그만이라는 신앙이 가득해서, 삶은 점점 하나님과 그 분의 뜻과는 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아직도 “바알 신앙”에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가나안의 삶 중에서 가장 빠지기 쉬운 우상숭배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 3:5)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그리고 탐심입니다. 이 모두 바알이 추구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이들 중에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탐심”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의 정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표현대로 더 쉽게 이야기하면 “돈 우상”이 우상의 정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수정하지 않으면 바른 신앙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돈 문제는 삶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라는 말입니다. 그 만큼 악한 영 사탄이 여기에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돈 문제에 사로잡힌 자들은 결코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니 행복도, 은혜도, 믿음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누구나 돈 문제가 있고, 또 돈 걱정을 합니다. 이것은 삶에서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돈 때문에 인간관계가, 더 나아가 하나님 관계가 무너진다면, 더 이상 삶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돈 문제로 부모-자녀, 형제 간의 말할 수 없는 분쟁이 일어납니다. 이는 가정을 돈으로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문제, 즉 영적인 문제입니다.
서울에 한 지역이 서로 몽둥이를 들고 싸우고 난리가 난 장면이 뉴스에 보도됩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한 장애인 시설을 들어오는데, 지역 주민들이 땅값이 떨어진다고 반대하면서 폭력까지 행사하는 것이 보도된 것입니다.
돈 문제가 사회문제를 넘어 영적인 사악함으로 발전한 영적 문제가 된 것입니다.
한 목사님이 안타까운 고민을 전했습니다. 한 성도가 너무나 힘든 나머지, 목사님을 찾아와 그 동안 하나님께 드렸던 헌금을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이것이 진정 삶의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이미 이는 영적인 타락으로 접어든 영적 문제인 것입니다.
2. 탐심에 사로잡힌 자들을 구별하는 법
이처럼 사탄에 사로잡히고 탐심에 사로잡힌 자들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헌금이나 구제를 할 때, 그의 마음을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이나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지 않으면, 다 사탄에 탐심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고후 9:7’입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7)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들은 바나바의 헌신을 보고, 자극받아(?) 자신들도 전재산을 헌신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 ‘사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욕심(탐심)이 들고, 성령을 속이려 드는 안타까운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행 5:3’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 5:3)
이들의 문제는 돈 문제가 아니라 영적 문제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이나 구제의 상황에서 나의 마음에 사탄이 있는 지 없는 지를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는 마음이나 거짓이 있으면’ 영적 문제에 빠진 것입니다.
한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이 교회는 교회건축으로 큰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IMF상황까지 펼쳐져 교회는 갈수록 힘이 들었습니다. 교인들의 헌금이 점점 더 줄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때 교회의 당회는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은 교인들에게 현 상황을 설명하고, 더 열심히 헌금하도록 독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목사님과 당회는 전혀 다른 결정을 합니다. 교인들도 교회 상황과 현 IMF 상황을 통해서 더 어려워진 교회재정 형편을 잘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촉하지 말고, 아예 원래의 예배 시간에 있는 헌금시간을 없애고, 헌금드리는 시간이 있는 예배를 따로 드리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 부담이나 억지로 하는 헌금이 아니라, 기쁨과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는 헌금만을 받도록 결정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헌금 액수가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로 늘어나 건축 빚의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까지 갚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금은 이래야 합니다. 억지로나 형식적으로 하는 헌금은 탐심으로 하는 것으로 사실 헌금이 아니고, 그런 돈은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담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민수기서에 보면 선지자 발람이 나옵니다. 모압왕 발락이 그에게 큰 재물을 주며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할 때, 그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시는 분명한 이야기를 듣고도 계속해서 하나님께 여쭙습니다. 왜냐하면 발락이 주는 돈이 탐났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가라고 하십니다. 이는 허락이 아니라 포기입니다. 하나님의 반대해서 얻는 징계를 발람 자신이 져도 하나님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러 갈 때,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죽이려고 기다립니다. 그의 나귀가 이를 발견하고 나가지 않자 발람은 나귀를 때립니다. 그 때 나귀의 입을 열어 주셔서, 발람을 책망하게 하시고, 그제야 발람은 영적 눈을 떠 하나님의 사자를 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돈은 우리 영적인 귀와 눈을 멀게 합니다.
한 성도가 너무나 힘든 상황에 목사님을 찾아옵니다.
목사님도 사정을 들으시고 안타까워 하시면서,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왜 찾아오지 않았냐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그는 목사님이 말리실까봐 일부러 찾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일일 바르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귀와 눈이 탐심에 멀어버리면, 바른 것으로 나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3. 탐심을 이기는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이 탐심,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까? ‘눅 6:38’이 그 답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 6:38)
주면 됩니다. 흘려보내면 됩니다. 그러면 탐심에 빠져들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더욱 더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주시면 더 흘려보내면 됩니다. 이것이 탐심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법입니다.
이렇게 주는 것이 쉽습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는 오직 우리 주 예수님을 만나야 가능합니다. 삭케오가 그랬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혹시 누구의 것을 억지로 뺏은 일이 있거든 4배를 갚겠다고 선언합니다. 그의 성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만나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돈을 사용하는 모양이 믿음과 영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면 후히 주어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이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온누리교회 고.장응복장로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의사로 30년 생활하시면서, 자기 차도 없이 생활하시는 검소한 분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쓰시고 저렇게 사시나 수군대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돌아가시자, 한동대에서 장로님의 선행을 드디어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 분이 평생 모은 돈 113억을 한동대에 기부하고 사셨던 것입니다.
장로님은 한동대 초대 총장 김영길 목사님의 “배워서 남주자!”는 말에 깊은 감동을 받고, 자신은 ‘벌어서 남주자!’고 고백하며 정작 자신은 중고차 하나 없으시면서도, 모은 모든 돈을 후학을 위해 사용하신 것입니다.
한동대에서 그의 선행을 밝히려 하자, 자신의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고 하셔서, 돌아가신 이후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돈을 사용한 것이 왜 영적인 일인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나면 돈이 다른 것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에 사용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돈은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며,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무너지게 하는 “우상”이 됩니다.
당신은 돈 사용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당신은 헌금과 구제는 어떠한 모습입니까? 자원하고 즐거운 마음입니까? 아니면 억지로 아까워하면 하는 마음입니까?
주님 만나 돈 우상을 이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돈을 사용한 것이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돈이 다른 것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에 사용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돈은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며,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무너지게 하는 “우상”이 됩니다. 당신은 돈 사용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당신은 헌금과 구제는 어떠한 모습입니까? 자원하고 즐거운 마음입니까? 아니면 억지로 아까워하면 하는 마음입니까? 주님 만나 돈 우상을 이기고 행복하게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