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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파랗게, 강물은 투명하게, 햇살은 노랗게, 내 마음 부푼 튀밥이 되어(24차유랑기) 조선홍차 씀
8월 22일 7시 30분쯤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 정아언니! 전데요. 음~~지효아빠가 오늘 꼭 악양으로 가자네요, 지금 도시락 싸는 중인데 이따가 만나요.-
가끔은 이런 재미도 있으니 유랑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자 매듭이 되어 내 삶을 요리할 때가 있다. 밥은 은하씨가 책임진다니 나는 과일과 고구마, 빵, 찐계란을 챙기고 양제를 깨운다. 간밤에 퉁퉁 부어있던 얼굴이 은하씨 전화로 말끔히 가라앉았으니 신통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늘 여럿이 더불어 함께 라는 문구를 희망의 등불로 걸어놓게 된다. 나만의 유랑에서 그들과 함께 하는 유랑으로..
곡성쪽으로 차가 빠지자 하늘빛이 달라진다. 쨍쨍한 볕이지만 덥다기 보단 군불 때는 것 마냥 따끈따끈하다. 압록을 지나는 동안 한껏 바람을 들이마시고 오늘 유랑의 주제와 암호를 생각한다. 오늘은 섬진강 생태기행이면서 사람기행이기도 하다. 내 삶에 변화와 자극을 던져줄 수 있는 악양 토박이를 만날 것이다.
섬진강이 아름다운 건 산을 휘돌아 감는 그 유연함 때문이다. 마음도 몸도 느긋한 유랑일행- 영준아빠, 영준이, 광균이, 지효아빠, 은하씨, 지효, 민수, 서원이- 은 햇살 아래 반짝거리는 강물을 내려다 볼 만한 장소를 찾아냈다. 태언이는 강을 보자마자 물고기를 잡아야한다며 탐색을 하고 나는 산골소년 같은 아들을 진정시킨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마을은 어디랄 것 없이 평화롭고 넉넉해보인다. 저 유구한 역사의 생태계를 파괴시키려는 개발논리를 떠올리면 아득하기만 하다. 우리는 이토록 찰나적인 세계의 관객일 뿐인데 영원한 주인인양 계곡을 시멘트로 도배하고 강바닥을 긁어내고 서슴없이 칼날을 들이밀고 있다. 나는 오늘 유랑을 함께 하는 서원이, 지효, 석인, 태언, 영준, 광균이가 생태탐험단의 경험을 그들 가슴과 머리에담아서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기를 염원한다.
두 아들은 녹두(영준아빠)의 차로 건너가고 양제와 나는 초록 드라이브를 즐긴다. 발가락을 꼼질거리며 재잘대는 종달새가 된 나는 기억하기 힘든 소소한 일들을 쉼없이 얘기한다. 여러 가족이 오지 못한 서운함이 너무 커서 하마터면 이 좋은 날을 망칠 뻔 했음을 고백하면서.
양제의 차를 부지런히 따라오던 너털도사(지효아빠)와 녹두(영준아빠)는 악양면 파출소 앞에 나란히 주차를 한다. 악양은 지리산 자락 아랫 동네로 산과 평야가 조화로운 마을이다. 이 곳엔 100명이 넘는 수제차 장인들이 터를 잡고 다양한 차맛을 유지하고 있다.
지리산의 영롱한 기운이 느껴질 만큼 청정한 곳에 매암 차박물관의 입간판이 보인다. 약간의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이 박물관의 기원을 적은 안내판들이 걸려있고, 아래쪽엔 족히 50년은 됨직한 건물이 드러난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인데 넓직한 마루와 방마다 옛 시대의 차그릇이 배열되어 있다. 이것은 전통이 주는 향기!
이제 우리 눈앞에는 평지에 조성된 한 폭의 그림같은 초록차밭이 펼쳐있고, 하늘아래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드러나있다. 하늘과 저 편의 산자락과 삐죽삐죽 올라온 차잎이 한 몸이 되었다. 그 어느 것도 눈을 거슬린 것이 없다. 초록빛은 생명의 숨결을 뿜어내는 마법의 컬러이다. 보성과 강진, 제주도, 해남의 차밭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내 앞마당 같은 편안함을 주고 지나치게 꾸며있지 않은 생얼굴 같은 차밭!
나는 은하씨(지효엄마)의 팔을 붙들고 아담한 차실로 들어섰다. 그녀는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내 눈을 빤히 쳐다본다. - 언니, 에어콘 대신 선풍기를 틀면 더 시원했겠어요.- - 우리 박물관 실장님이 올 때 까지 차 맛을 즐깁시다- - 네, 언니~ 민수야 이리 와. 이 작은 창문이 정말 어울린다.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었네. 우리 무슨 차 마실까? 붉은 차, 노란 차?
매암차는 현재 발효차 위주로 생산되고 그 생산량도 많지 않아서 광주권에서 맛보기란 쉽지 않다. 차나무가 40년이 넘었다는데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고 매암옹이 직접 거름을 주며 풀베기로 가꾼다니 참으로 대단하다. 한여름인데도 잎이 넓고 부드러우며 뻣뻣하지 않고 나긋나긋하다. 밭 중간 중간에 어른 키높이의 감나무가 있고, 해마다 5월에 열리는 차문화제에 쓰이는 무대와 통나무의자도 보인다.
민족 차는 생활이자 문화다. 어떤 차를 마시느냐에 따라 민족의 흥망성쇠를 토로한 의재 허백련 선생은 평생을 차생활로 정신을 단련시켰다. 이 악양의 매암 선생도 오직 외길을 택하며 본래부터 있어왔던 우리 의 차생활을 지켜오신 분이다.
나는 그 분들의 드높은 정신과 행동의 결단, 의지 앞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가치있는 삶이란 나의 목적과 행동이 공동의 이익에 기여할때 더욱 숭고하게 빛난다. 나는 이 풍요롭고 고요한 땅에 차밭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예로부터 민간에 전승되는 차맛을 지키기 위해 이 곳을 간수하는 박물관장과 그 부인에게도 감사한다. 그러나 이제 누군가는 이러한 전통의 맛과 향을 인정하고 가치있게 바라보아야 한다. 박물관 실장님과 차탁에 앉아 차이야기를 나누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좋은 게 좋다가 아니다.
이제 확실하게 왜 좋은 건지 따져들고 차문화를 건져내서 재창조하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실장님의 고민이 바로 나의 고민이기도 했다. 외국의 홍차와 중국의 보이차를 수입할 만큼 차생활 수준이 올라갔지만 조선의 차는 여전히 농가부수입 정도로만 여기는 현실, 차를 판매할 곳이 없어 차잎을 따지 않고 묵혀두는 매암차의 현실, 대기업에 가로막혀 일반 차농가의 차를 가게에선 볼 수 없는 현실 등등
나는 조선홍차라 이름 지은 매암차를 홀짝인다. 강하거나 텁텁하지 않고 맑게 가라앉은 맛이 순하고 담담하다. 서원이랑 지효는 실장님이 타주신 매실홍차도 맛보고 차갑게 아이스티로 만든 홍차도 시음중이다. 그러다 저희끼리 감잎차와 혼합하여 맛도 보고 여간 신난 게 아니다. 너털도사와 녹두는 아주 진지하게 실장님의 민간에서 마시던 띄운 차(발효차) 얘기에 집중하고, 연신 쉬지않고 내가 따라주는 홍차를 마신다. 옛 것을 지키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나 또한 20대와 40대가 즐길 만한 차맛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유랑은 끼니를 빼놓고선 얘기할 수 없다. 드디어 도시락싸기의 달인 정은하(지효엄마)의 보자기가 풀리는 순간 나는 감동에 감동을 먹었다고 말하고 싶다. 닭날개 볶음, 매실장아찌( 역시 광양여자 답게), 풋고추와 쌈장, 가지런한 김치와 야채 계란말이까지 하나 하나 정성껏 담긴 음식앞에 어찌 기쁘지 않을텐가!! 나는 염치 불구하고 양제와 함께 기쁨의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다. 다음 유랑에도 그녀에게 도시락을 부탁하고 나는 간식만 담당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걸 은하씨도 알까??
다음 이야기는 마을을 관통하는 지리산 냇물에 아이들이 흠뻑 빠지며 막바지 물놀이를 즐겼다는 것과 나는 참으로 이 마을에 한 칸 집을 짓고 사랑하는 유랑단 가족들과 올망졸망 모여살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다는 것, 냇물에서 고기 잡고 가장 열성적으로 놀던 아들 태언이가 옷이 없는 바람에 완전 깨벗은 몸으로(수건으로 아래만 가리고) 마을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광균이는 너무 열심히 놀아 신발을 흘려 보내고 찾을 수 없어 천원짜리 쓰리빠를 샀다는 것, 서원이는 소원대로 물놀이를 끝내고 엄마가 준비한 튀밥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다는 것,
정말이지 배가 고파도 뭔가 가슴 한 복판을 뜨끈하게 데워 준 박물관 실장님의 배려가 오래도록 남는 유랑이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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