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푸드뱅크가 걸어가는 길
- 배고픈 이 없는 세상을 향한 발걸음, SINCE 1998 -
김한승 신부 (성공회푸드뱅크 본부장)
요즘도 밥 굶는 사람이 있어요?
푸드뱅크 사역을 하며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다. 가난에 찌든 전 근대사회도, 구호와 원조로 먹고사는 극빈국도 아닌 21세기를 이끄는 IT 강국의 문제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의 기초생활이 법으로 보장되고 사회복지시설과 프로그램이 도처에 널린 대한민국에 결식인구가 60만이라니 누군들 믿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현실도 이만저만 심각한 현실이 아니다. 이른바 신빈곤 현실이 양산해낸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허기를 끼니 삼아 하루하루를 사는 아이들, 배고프고 쓸쓸한 말년을 보내고 계신 어르신들을 우리는 지난 7년간 숱하게 보아왔다. 적어도 그 속에 비춰진 우리의 과거는 허망했고, 미래는 공존조차 의심되는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현재 우리사회의 결식문제가 지닌 심각성이다.
결식문제가 경고성 화두인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결식이 자라나는 세대에 끼치는 영향 때문이다. 결식은 빈곤을 상징하는 결정적 지표다. 밥 굶는 아이들에게 교육, 문화, 의료의 혜택과 기회가 있을 리 만무하다. 즉, 아동결식은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배제의 현실을 내포한 상징적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가난의 대물림, 고착화 현상이 산업의 고도화 추세에 맞물려 속도와 깊이를 더하면서 이젠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구한 공동체적 문화를 단기간에 상실한 우리 사회에 있어 대책 없는 양극화의 문제는 곧 사회 구성원의 생존과 공존 자체를 위협하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게 남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조만간 이질적 사회인 북한과의 통일시기를 거치며 한층 더 심각한 양상으로 대두될 것이라는 데 있다. 과연 우리 사회의 결식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통일과정에 적절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 푸드뱅크의 보다 큰 고민이 있다.
푸드뱅크는 20세기 후반기에 성공적으로 정착된 비영리 민간 사회운동의 하나로서 생산, 유통, 소비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잉여먹거리를 확보해 가난한 시설과 개인을 돕는 민간사회복지운동이다. 전문적 사회운동으로서의 푸드뱅크는 1967년 미국의 자원봉사자인 John Van Hangel 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는데 이후 미국은 물론 캐나다(1981년), 프랑스(1984년), 독일(1986년), 유럽연합(1986년) 등 주로 복지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확대되어 하나의 독립된 사회운동으로 자리잡았으며, 최근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 국가들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국내에는 IMF 구제금융 시기인 1998년 대한성공회 등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다.
푸드뱅크는 보는 각도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설명될 수 있는 독특한 성격을 지닌 운동이다. 후발 사회복지 영역에 속한 ‘비영리 비정부 민간운동’이자 시민사회·자원·환경·복지 분야에 두루 걸친 ‘다영역성(多領域性) 운동’으로서, 태생적으로 요구되는 ‘저비용 고효율 참여운동’으로서 푸드뱅크는 복잡한 자기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는 공동체적 나눔운동, 자원절약 운동, 친환경운동, 민간 사회안전망으로서의 다양한 의미를 띠고 있다.
올해로 활동 7년차를 맞이하는 성공회 푸드뱅크는 네트워크화 된 관구기관으로서 전국 30개 지역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이젠 정기 식품 기부처만도 760여 곳에 이르고 4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드나드는 기관으로 성장했다. 성공회푸드뱅크가 주로 돕는 대상은 정부나 민간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로 개인 3,600명, 가정 110, 시설 260여 곳이다. 식수인원으로 따지면 한끼 기준 하루 12,000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성공회푸드뱅크가 행하는 사업은 다양하지만 앞으로 지향할 길은 명확하다. 푸드뱅크가 지닌 고유의 위상을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지역사회복지의 중심, 혹은 배후 지원처로 역할 하는 것이다. 온갖 물품이 오가는 지역 내 물품창고로서 기능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점진적으로 필요한 인프라를 갖추고 창고형 시설로 자라가게 할 예정이다. 물론 중앙본부는 전국을 네트워크로 묶고 지역별로 효율적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지역별로 시도되고 있는 지역화폐운동도 그 쓰임새와 통로를 전국화 할 수 있도록 네크워킹해 명실공히 물질과 봉사가 들고나는 네트워크창고로 거듭나게 할 계획이다. 이는 성공회푸드뱅크가 특정 교단의 기관으로서가 아닌, 사회 전체를 위한 공기로서 어떻게 공공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우리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내용과 형식면에서 더욱 가다듬고 노력해 나갈 것이다.
성공회가 푸드뱅크 운동을 통해 배고픈이 없는 세상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은지 올해로 7년이 됐다. 과연 결식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가능한 것일까? 10년이 다 돼가는 오늘도 되묻곤 한다. 그리고 그 때마다 굳은 확신을 다진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간은 나눌 줄 모르고 그칠 줄 모르는 탐욕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지만 나누고 희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인간에 대해 무한한 믿음을 갖는다. 그리고 오늘도 푸드뱅크 활동의 현장 곳곳에서 이를 확인한다. ‘사람중심’ ‘수요자 중심’ 이것이야말로 푸드뱅크 7년 활동을 통해 얻은 가장 소중한 행동철학이다.
* 편집자 주: 「교회와세계」는 우리 사회의 소외된 자, 약한자들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회원교단의 기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대한성공회 푸드뱅크를 소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