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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지리산 둘레길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하동읍에서 차밭, 밤밭, 매실밭 사이 길을 지나 율동, 관동, 서당마을에 닿는다. 서당마을은 지리산 둘레길 12구간 삼화실∼대축구간의 기점에 해당한다. 이동거리가 7.1km로 짧은데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고도 284m이고 최저는 20m에 불과해 난이도 하급에 속하는 편안한 길이다. 시간은 채 3시간이 안 걸린다.
하동읍의 앞마당격인 너뱅이들과 적량들판 농촌의 풍광이 수확의 계절 넉넉함과 풍요로움을 전한다. 봄이면 산속 오솔길에서 매화향이 진동한다.
하동읍→바람재→율동→관동→서당마을.
▲출발지 하동센터를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하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화개 방향으로 중앙로를 따라가면 읍내파출소가 나온다. 다시 하동읍사무소 약간 못 미친 지점 왼쪽 파리바게트 하동점 맞은편 골목길을 따라 20m정도 올라가면 하동센터가 나온다. 주소는 하동읍 읍내리 중앙로 52-4번지이다. 전화번호는 055-884-0854.
사단법인 숲길사무실도 이곳에 위치해 있고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어 지리산 둘레길 관련 사업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장거리 도보여행을 계획한 이용객들은 이곳에서 생명평화 지리산 둘레길 순례수첩을 발급받아 스탬프도 찍을 수 있다.
둘레길은 센터 옆으로 난 아스팔트로이다. 주택가와 교회 사이의 오름길로 향한다. 기쁜소식선교회가 나오면 곧바로 산복1길 도로와 마주친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200m 정도 아스팔트로를 따르다가 좌측 산길로 접어든다.
오른쪽에 하동읍의 드넓은 황금들판 너뱅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작고 아담한 도시와 황금들판의 경계를 가르며 휘달리는 기차와 기찻길, 그 끝에 섬진강이, 그 너머에 광양 무동산 불암산이 위치하고 있다.
너뱅이는 ‘넓은 벌’이라는 뜻. 너뱅이들 서남쪽에 있는 광평(廣坪)이라는 지명도 너뱅이와 관련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너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넓을 광(廣)’자와 ‘벌 평(坪)’자로 개명한 것이다.
수천 수만 년을 두고 흘러온 섬진강의 오래된 과거를 잠시나마 상상해 볼 수 있다. 그 섬진강은 지금도 살아 꿈틀거리며 흐르고 있다. 1926년 비파제방을 축조하면서 새 농경지가 개간돼 들녘이 더욱 확장됐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금오산 달님 별님’ 이야기 중에 너뱅이들이 등장한다. 금오산 정상 부근에 달님과 별님이 사랑을 나누며 살고 있었다. 질투의 화신 지신(地神)이 탐스럽고 예쁜 달님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별님 몰래 잡신(雜神)과 계략을 꾸몄다. 지신은 잡신에게 별님을 없애주면 너뱅이들을 주겠다고 약조했다. 너뱅이들이 워낙 기름진 땅이었기에 잡신은 지신의 제안에 넘어가 버린다. 이후 잡신은 너뱅이들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에 눈이 멀어 별님을 죽이고 달님과 지신을 짝 지으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모두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지신이 숨겨 놓은 땅, 풍요로운 너뱅이들임을 짐작케 한다.
임도와 숲길을 벗어난 둘레길은 하동중앙중학교 옆을 지나 작은 사찰 보현사로 진행한다.
출발 후 3km지점, 어느새 바람재다. 바람재에서부터 뒷밤골마을 율동마을로 이어지는 길. 재와 임도 밭길과 숲길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농촌의 파노라마다. 길은 바람재서부터 서당마을까지 차량이 오갈 수 있는 임도로 구성돼 있다.
느리게 살기, 아니 느리게 걷기는 하동과 잘 어울리는 말이다. 하동은 2009년 2월 슬로시티(Slow City)로 인증을 받았다. 슬로시티는 범지구적인 운동으로 1999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됐다. ‘느리게 살기 미학’을 추구하는 도시를 가리킨다. 슬로시티 하동과 지리산 둘레길은 궁합이 맞는 조합이다.
이번에는 적량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너뱅이들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산골에 펼쳐지는 보석같은 황금 들녘이다.
율동마을의 지리적 위치와 형세가 재미있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 뒷산인들 백두대간, 백두산으로 연결되지 않는 곳이 없으나 율동마을은 군더더기 없이 지리산과 연결된다. 이 형세가 한 마리의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이팝나무다.
관동마을과 상우마을 등 몇 개의 마을들은 산 어귀에 친구처럼 도란도란 어울려 있는 산촌이다. 그 아래로는 전답들이 위치한다. 서당마을로 향한다. 들녘에는 수확을 하다만 콤바인이 한대 서 있다. 기계가 고장이 났는지 사람은 안 보이고 그 옆에 수령 350년 된 이팝나무가 버티고 서 있다. 봄에 눈이 덮인 것처럼 하얀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는 마을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목신이다.
봄에는 꽃의 모양이나 색깔로 풍년을 미리 알려주었고, 여름철에는 녹음 짙은 그늘을 제공해 농업인들의 휴식처가 돼 주었다. 봄에 이팝나무꽃이 쌀밥처럼 풍성하게 피어나면 풍년이요. 꽃이 시원찮으면 흉년이었다. 나무 아래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농업인의 이마에 맺힌 땀을 씻어주는 청량제였다.
그런데 요즘 농업인들의 표정이 밝지 못하다. 내년부터 쌀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쌀값 폭락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 때문이다.
서당마을 앞 들녘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방금 수확한 나락을 볕에 말리기 위해 당그래(널어놓은 곡식이나 눈을 끌어당겨 치울 때 쓰던 농기구)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25년 전 서울서 이곳으로 시집왔다고 했다. 시골에 사는 것이 좋다고 했으나 농사철이 되면 바쁘고 힘이 많이 든다고 했다. 허리 구부리고 땅을 파는 농사일이 힘든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 쌀시장 개방으로 앞으로 농사가 어떻게 될지 걱정을 했다.
서당마을은 본래 상우마을과 한 마을이었고 서당골로 불렸다. 오래전부터 함덧거리에 아이들이 글을 읽는 서당이 있었고 뒷골 큰대밭 중심지에도 서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나무가 들어차 서당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서당 대신 서당마을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이 하나 있다. 오래전 폐교된 학교시설인 듯한데, 이를 활용하고 있다. 이 마당에 들어서면 옥상에서 진돗개 한마리가 들어오지 말라는 듯 하늘을 보고 ‘컹∼컹’ 짖어댄다.
서당마을 적량로에서 둘레길 12구간인 삼화실∼대축구간 본선과 다시 만난다.
◆tip∼
(사)숲길에서는 오는 25일 오전 9시부터 하루 동안 지리산 둘레길 산청센터에서 제4회 지리산둘레길 걷기축제 ‘가을소풍’ 를 개최한다. 구간은 수철~성심원이다.
참가인원은 1000명이며 선착순 마감한다. 참가비는 5000원, 사전접수 시 점심과 간식 티켓, 기념품을 제공한다.
전화문의:055-884-0850 (사)숲길/메일(인터넷):trail@trail.or.kr/
최창민·강동현기자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경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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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의 지리산둘레길을 가다(22)] 하동읍~서당 (12-1 코스)
어쩌다 잃은 길이 덤으로 오는 행운이었네
어쩌다 만난 우연이
둘레길 들머리에서부터 따라온
청계천 이팝나무는 300년 수령의 서당마을 이팝나무- 이 나무의 씨를 받아 키운 묘목이 서울로 가 청계천의 가로수가 되었다. 청계 이팝나무는 해마다 봄이 되면 쌀밥 같은 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승용차 앞 유리창으로 달려와 자진하는 진눈깨비 너머로 산들은 가까이에서 하얗게 빛났다. 산은 길눈에 쌓여 잠이 들고 숲길은 꿈으로 깊어갔다.
산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눈 내리는 숲길을 가고 싶었다. 설산의 그리움이 신열이 되었다. 정월대보름날의 아침, 출발길의 배낭에 방한 자켓보다 더 두툼한 설렘이 담겼다.
꽃 너머로 하동공원이 보인다
‘일생을 추위에 떨어도 그 향을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는 매화의 꽃말이 찬바람에 새롭다. ‘천 번을 이즈러져도 본바탕은 변치 않는다(月到千虧餘本質)’는 달도 오늘 밤에는 본바탕을 드러낼 것이다. 정월대보름의 날에 달 보듯 매화를 본다.
키 큰 사철나무 한 그루가 표지목처럼 서 있는 지리산둘레길 하동안내센터는 언덕마을의 중턱에 (사)숲길 사무소와 함께 자리했다. 안내센터에 들려 코스 안내와 교통편 등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한 뒤 출발한 길은 담벼락 높은 고샅길에서 시작됐다. 안내센터에서 가르켜 준 길을 머릿속으로 재현하며 발길을 뗐으나 몇 걸음 못가 금세 길을 잃었다. 미로처럼 얽힌 실골목은 가다가 끊겨 막다른 골목에 닿거나 어느 집 앞마당으로 들어섰다.
골목길은 휘어졌다 꺾어지고 꺾어졌다 갈라지며 집과 집을 이어가고, 이웃한 집들의 마당에는 맑은 햇살이 빨래줄에 널렸다. 뒤돌아보는 길에 맞은바라기 교회 첨탑너머로 하동공원의 누각이 아슴푸레하다. 명징하여 조용한 시골읍내의 시간이 아다지오의 곡조로 흐른다.
지리산둘레길을 가면서 어쩌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덤으로 주어지는 행운이다. 인생은 정의할 수 없는 일이어서, 정해진 길에서 얻는 가치보다 정할 수 없는 잃어버린 길에서 얻는 가치가 더 클 때가 있다. 어쩌다 만난 우연이 인생의 가장 멋진 순간이 되듯 길 잃은 즐거움은 지리산둘레길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지리산둘레길에서는 정해진 길에 애면글면하지 않아도 좋아서 좋다. 둘레길 어귀에서 바라본 하동의 너뱅이들녘과 섬진강의 풍경
눈 쌓이듯 매화는 피어나고
길은 마을과 산을 가르며 산복1길을 따라 하동독립공원을 지나 숲으로 들어선다. 공원은 일제 강점기 하동에서 일어났던 만세운동과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항일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4년 조성됐다. 공원에 오르면 하동읍 시가지와 너뱅이들녘 너머로 아침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흐르는 섬진강의 물줄기가 아스라하다.
오르막 숲길 어귀는 아름드리 도래솔이 사천왕문처럼 지켜선 채 하동읍을 내려다보고 있다. 오랜 세월을 견뎌 온 도래솔의 갈라진 보굿 조각들이 어른 손바닥보다 굵고 크다.
숲길에 들어서면 과수원의 매화나무 가지에 눈 쌓이듯 매화꽃이 피어나고 길 섶 양지엔 노란 양지꽃이 꼬마전구처럼 불을 켰다. 겨울을 지나느라 푸른 멍이 든 개불알꽃도 무리지어 해쪼이를 하고 있다. 요란한 강바람은 여전히 살을 에는데 봄은 소리 없이 다가와 꽃잎 하나씩 틔어내고 있다.
길은 한 시간쯤 지나 산기슭에 자리한 중앙중학교가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작은 고개를 넘는다.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숲속의 학교는 중세 수도원처럼 고적하고 학교 옥상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은 지나는 흰 구름으로 인해 더욱 푸르다.
잎 말라 회색뿐인 좁은 숲길을 푸른 잎의 녹차나무가 채우고 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가는 길이다. 둘레길 들머리에서부터 따라온 섬진강 때문이다. 강은 햇빛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받아 흘러간다. 아침 햇살에 생선 비닐처럼 빛나던 강은 이제 청옥의 하늘빛으로 물들었다. 강은 사람들이 잠든 지난밤에도 별 빛을 안고 흘렀을 것이다.
내가 새긴 발자국도 뒤돌아 본 길에서는 강으로 흐른다. 지나온 길이 아름다운 이유다. 발걸음은 지나온 길을 만들며 앞으로 간다.
둘레길안내센터를 나선 지 1시간 반쯤 지나 발길은 바람재에 닿았다. 고개를 넘어오는 날파람이 고개의 이름을 대신한다. 바람 가득한 숲길에서 바람이 우는지 나무가 우는지 분간할 수 없는 울음소리만 가쁘게 일어섰다 가라앉고, 이어졌다 끊어진다.
고개는 사거리 길이다. 바른 방향은 분지봉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하동 밤골, 오른쪽은 적량 밤골로 내려간다. 숲길이 끝나고 길은 적량 밤골을 지나 목적지인 서당마을까지 10리길로 이어진다.
온통 밤나무로 뒤덮인 적량 밤골은 율동마을이라고도 하는데 행정구역상으로는 율곡마을이다. 마을회관 뒷벽에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그린 둘레길 벽화가 원색의 화려함으로 발길을 붙든다.
지난해 여름, 서당마을에서 하동읍으로 가던 길에 마을회관 앞에서 길을 잘못 들어 땀께나 흘렸던 기억이 새롭다. ‘길은 마을회관 앞을 지난다’는 편견이 낳은 결과였다. 율곡마을에서 길은 마을회관 뒤로 이어진다.
마을 앞 작은 저수지에는 늘어진 버드나무와 함께 산 그리매가 담기고 우람한 플라타너스는 수호신처럼 마을의 초입을 지키며 산골마을 풍경의 화룡점정이 된다.
길은 자로 잰 듯 경지정리 된 계단식 논이 끝없이 펼쳐진 적량들판을 바라보며 관동마을로 휘돌아 간다.
관동마을 길을 가다보면 콘크리트 옹벽을 이용한 리버스 벽화(Reverse Graffiti)를 볼 수 있다. 마을의 1.5km에 달하는 옹벽에 지리산 주능선이 담겼다. 검게 침식된 옹벽의 표면을 쇠 솔로 닦아내 명암을 주는 방식으로 그린 그림이다. 논둑의 흙막이에 불과했던 옹벽이 캔버스로 변해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옹벽의 벽화가 끝나는 곳에는 ‘관동마을 미니 캠핑장’이 마련돼 있다. 마을주민들이 캠핑족을 배려하여 전망 좋은 곳에 설치한 공간이다. 율곡마을회관 뒷벽에 주민들이 그린 둘레길 벽화
길손은 관동마을에서도 길을 잃고, 잃은 길에서 태극기를 만났다. 마을회관 앞에서 왼쪽으로 가라는 이정목을 보지 못하고 직진하여 마을 안으로 들어선 길이다. 잘못 든 길에서 만난 마을은 집집마다 태극기를 내 걸었다. 몇 년 전 모범마을로 선정된 뒤부터 이를 축하하는 뜻으로 일 년 내내 게양하고 있다.
주민들의 긍지인 태극기에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극렬 보수의 상징이 되고 있는 태극기가 오버랩 됐다. 같은 태극기에서 함께 할 수 없는 이미지가 상충했다. 발길이 무거워지는 것은 길을 잃어서가 아니다.
관동마을을 지난 길은 밀림처럼 들어선 서어나무 군락지와 상우마을을 거쳐 서당마을회관에 닿는다. 서당마을에는 덫을 놓아 호랑이를 잡았다는 ‘함덧거리’가 사라져간 생명에 대한 추모비처럼 지명으로 남아 있다.
서당마을회관이 손에 잡힐 때 쯤, 길옆 논둑에 선 나무 한 그루가 늙은 몸으로 길손을 맞는다. 300년 수령의 이팝나무다. 주린 배를 채우는 일이 목숨을 부지하는 일과 등가이던 시절에 사람들은 이팝나무의 꽃에서 밥그릇 가득 올려 진 하얀 쌀밥을 보았다. 꽃이 밥으로 보였던 주린 배들의 아픈 기억을 늙은 이팝나무에서 읽는다.
봄마다 하얀 꽃으로 장관을 이루는 서울 청계천의 이팝나무 가로수는 이곳 서당마을 이팝나무의 씨를 받아 키운 묘목을 옮겨 심은 것이다. 청계천 이팝나무는 호랑이 출몰하던 선대의 땅과 그 땅을 지키며 서울로 간 후손을 그리워하고 있는 이 늙은 이팝나무를 기억이나 하는지.
손끝에 머무는 바람은 여전히 시리고 살눈 내리는 날이야 며칠 더 있겠지만 봄은 마을회관 옆 길섶에도 파랗게 스며들고 있다. 개불알꽃 한 송이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겨울바람이 마을회관의 낡은 깃발에 걸려 휘모리로 울고 있다.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하동읍- 바람재(2.5km)- 율곡마을(2.0km)- 관동마을(0.4km)- 서당마을(2.4km)까지 7.3km에 달한다.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
지리산둘레길의 ‘삼화실- 대축’ 구간에 포함된 지선이다. ‘삼화실- 대축’ 구간의 본선과 만나는 지점인 서당마을회관을 기점으로 삼아 하동읍으로 넘어가거나 반대로 하동읍에서 서당마을로 간다.
산길은 구릉처럼 낮은데다 바람재까지의 산길을 지나면 나머지는 포장길로 이어진다. 가볍게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중간에 음료 등을 구입할 수 있는 휴게시설은 없다.
교통편은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광주에서 하동읍까지 1시간40분쯤 소요된다. (사)숲길 사무소(055-884-0850)나 하동 청소년 수련원 등의 주차장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하동터미널(1688-2662)에서 서당마을까지는 하루에 3차례 마을버스가 오가며 20분쯤 걸린다. 서당마을에서 하동읍으로 원점회귀 할 때 콜택시 요금으로 9,000원을 지급했다.
다슬기나 재첩요리를 하는 식당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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