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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숲속동화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복근조현미
초대장
조현미
놈이다! 나는 숨을 죽이고 몸을 깊이 낮추었다. 이제 막 논을 벗어난 놈의 암갈색 등이 9월의 저녁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놈이 길고 튼튼한 뒷다리로 도약하기 전에 포획해야 한다. 잠시 정지해 있던 놈이 도약하려는 순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잠자리채를 뒤집어씌웠다.
“우어엉…….”
잠자리채의 틈으로 놈이 빠져나가며 울었다. 다시 한 번 잠자리채를 놈에게 던지다 시피 뒤집어씌웠다. 그 바람에 무릎이 땅바닥에 부딪히며 꼬꾸라지고 말았다.
“아앗!”
“우엉……, 우어엉…….”
거의 동시에 놈의 약 올리는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웅덩이 쪽에서 풍덩하는 소리가 났다. 허탕이다. 오늘 벌써 세 번째다. 놈에게 또 진 것 같아 분했다.
잠자리채를 바닥에 끌며 터덜터덜 아파트 정문을 들어섰다. 엄마와 내가 작년가을에 ‘새터민’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정착할 때 나라에서 빌려 준 집이다. 아파트 뒤 쪽으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아 논과 수많은 웅덩이를 품은 습지가 있다. 내 놀이터이자 간식 창고다.
“영수야, 황소개구리 많이 잡었냐?”
경비 할아버지가 열린 경비실 쪽문에 몸을 바짝 대고 알은체를 했다.
“아뇨. 오늘도 허탕 쳤시요.”
“근게……. 잠자리채로 그 잽싼 황소개구리를 워쩌케 잡는 다냐? 내맹키로 삼지창 으로 잡아야제. 암만!”
경비 할아버지 얼굴에 뿌듯한 승리의 미소가 이는 것 같았다.
“근디 오늘은 잡아왔어도 고 놈 못 궈 줘. 시방 그반 일이 생겨서 나가려던 참이여…….”
“세 시간 넘게 있었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시요.”
경비할아버지는 내가 사투리에 신경 쓰지 않으며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엄마마저도 내가 북한 말을 쓰는 걸 싫어한다.
“다음 공일에 같이 가야. 삼지창으로 그 놈 칵 잡아 줄테니께.”
“네에.”
경비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이곳에 와서 맞은 첫 여름. 황소개구리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우리 가족이 살던 함경도 문암리에서도 여름에는 그악스럽게 울어대는 황소개구리 때문에 깊은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그때는 그저 시끄럽고 흉측하게 생긴 간식거리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곳에 와서 들으니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여름 방학을 하고 얼마 안 돼 경비할아버지를 따라 황소개구리를 잡으러 갔다. 북한에 있을 때도 아버지와 황소개구리를 잡아 구워 먹었다. 아버지는 황소개구리를 햇볕에 잘 말려서 서령누나와 나에게 주기도 했다. 먹을 것이 부족한 그 곳에서 최고의 보양식이었다. 그런데 먹을 것이 넘치는 이곳에서도 개구리를 잡는 게 좀 신기했다.
경비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황소개구리잡기의 귀재였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섯 마리나 잡았다. 더 놀란 건 할아버지가 사용하는 도구였다. 아버지는 웅덩이에 그물을 쳐서 황소개구리를 잡았는데 할아버지는 크고 날카로운 삼지창을 던져서 잡았다. 그 광경을 보는 내내 가슴이 벌렁거렸다. 아무리 황소개구리가 시끄럽고, 아무리 황소개구리 뒷다리가 맛이 있어도 그렇게 끔찍한 방법으로 잡고 싶지는 않았다.
집은 예상대로 비어 있었다. 엄마는 오늘도 갈빗집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뒷정리를 마친 후 열 두시가 넘어서 들어올 거다.
밥솥을 열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 탈북한 누나들이 나왔다. 한 명씩 돌아가며 탈북 과정과 남한에 와서 느낀 점을 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어떤 누나가 “밥이 다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밥솥 얘기를 하며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 밥솥도 누나가 말한 그 신통한 밥솥이다.
그 누나는 남한에 와서 누리는 행복 가운데 하나라면서 이 밥솥과 밥솥에 가득한 밥을 얘기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이 밥솥을 보면, 특히 밥솥 가득 흰밥이 들어있는 걸 보면 북한에서 애옥살이하던 때가 생각난다. 먹을 것이 없어 밥 솥 앞에서 하염없이 울던, 중국에서 헤어진 서령 누나도 생각난다. 그리고 아버지도…….
“영수야, 학교 가게 어서 일어나렴!”
엄마는 이제 북한 말을 쓰지 않는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간지러운 말을 쓴다. 이럴 때 나는 괜히 아버지와 누나에게 미안해 엄마에게 골을 부리곤 한다.
“아, 내래 알아서 갈 거니까 기냥 두라우!”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며 짜증을 냈다. 그리고는 금세 미안한 생각이 들어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간밤 잠결에도 황소개구리의 우엉, 우어엉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낮에 놓친 녀석들인 것만 같아 살짝 약이 올랐던 걸 떠올리며 안방으로 갔다. 엄마는 벌써 밥을 다 먹어간다. 서두르는 걸 보니 또 어딜 가려나 보다.
“엄마 오늘 남한 말 배우러 가는 날인 거 알지? 학교 갔다 와서 간식 챙겨 먹어.”
엄마가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 쓰며 천천히 말했다.
“피붙이라고는 남한에 우리 둘 뿐인데 너는 어제 쉬고 엄마는 오늘 쉬고…….”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엄마 표정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는 듯 덤덤하다. 엄마가 다니는 갈빗집은 일요일에 일하고 월요일에 쉰다. 그래서 방학이 아니고는 엄마와 나는 얼굴 보기가 힘들다.
엄마는 나랑 달리 날마다 더 씩씩해지는 것 같다. 쉬는 날도 집에 있지 않고 오늘처럼 남한 말을 배우러 가거나 하나원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을 만나러 나간다. 나는 아직도 이곳이 낯 설고 아버지와 누나를 생각하면 미안하기만 한데 원래 살던 곳인 양 편해 보이는 엄마가 오늘따라 더 미운 마음이 들었다.
“누가 머이래?”
또 골을 부려봤지만 꼬인 속이 풀리지 않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왜 이렇게 짜증을 내고 그러니?”
엄마가 간지러운 말을 한층 더 자연스럽게 했다. 그렇잖아도 꼬인 속이 더 꼬였다. 숟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오마니는 이곳이 그렇게 좋습네까? 참말로 아바지랑 누의는 영영 잊어버린 겁네까?”
아뿔싸! 하지 말아야할 말을 결국 하고 말았다. 엄마와 나는 아버지와 누나 얘기는 암묵적으로 합의해 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누나 얘기가 나오면 엄마도 나도 겉잡을 수 없이 슬퍼진다는 걸 서로 잘 알기 때문이다. 알면서 기어코 엄마의 아픈 속을 긁은 내가 한심했다.
“학교 갑네다!”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다.
‘오마니는 어드렇게 하고 있을까?’
발걸음은 학교를 향하는데 마음은 다시 집으로, 안방으로, 엄마에게로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학교는 걸어서 오 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다른 애들은 굳이 놀이터나 정문 에서 만나 같이 학교에 간다. 짝을 지어 모여 있는 애들을 지나쳐 혼자 등교하는 내 발걸음은 무거운 추를 매단 것 같다.
수학 시간을 마치고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복도에서 남자 애 몇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5학년이 구구단도 제대로 못 외우는 게 말이 되냐?”
내가 지나가자 나를 빤히 보며 조금 더 큰소리로 말했다. 나 들으라고 일부러 하는 말 같았다.
“심지어 중학생 나이래 잖아! 덩치도 우리 두 배는 되고! 쯧쯧 !”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더 나쁜 건 교실 문을 열고 나오는 지연이와 맞닥뜨린 거다. 빨개진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 얼른 고개를 돌리고 교실로 들어왔다.
“야, 너희들 쩨쩨하게 남 뒷담화나 하냐? 그것도 교실에서도 다 들리게 큰 소리 로!”
등 뒤에서 지연이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걸음이 멈춰졌다.
“민지연, 니가 뭔데 어리바리 편을 들고 그래?”
“나? 너희들처럼 남 아픈 걸로 수군거리는 애들 경멸하는 사람이다. 왜?”
여린 외모와 달리 남자애들에게도 지지 않는 당찬 면이 있는 민지연. 이번 학기 우리 반 회장이다. 귀염성 있는 얼굴에 공부도 잘 하고 무엇보다 착하다. 여자애들도 남자애들도 지연이를 좋아한다. 나처럼 지연이와 눈이 마주치면 얼굴이 붉어지는 남자애도 몇 있는 눈치다. 다행히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려 난처한 상황이 종료됐다.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고 교실로 왔다. 지연이를 중심으로 대 여섯 명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지연이를 보자 쉬는 시간 일이 떠올라 무안했다. 모여 있는 애들을 지나 조용히 교실 맨 뒤 내 자리로 가 앉았다. 고개를 숙이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꺼내 읽었다.
“토요일? 맛있는 거도 많겠네?”
늘 지연이 곁을 맴도는, 눈매가 가는 여자애 목소리다. 토요일에 무슨 일이 있나보다.
“응. 우리 엄마가 맛있는 거도 많이 해준 댔고 실컷 놀아도 된다고 했어. 친구들도 많이 초대하라고 했고.”
웃음기 가득한 지연이 목소리다. 지연이한테 좋은 일이 생긴 모양이다.
“정말? 신난다. 빨리 토요일이 됐으면 좋겠어!”
여자 애가 기대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내 생일 파티에 초대할 건데 올 거지?”
지연이가 내 자리로 오면서 말했다. 지연이도 나를 오빠도 영수도 아닌 애매한 ‘저기’로 부른다. 또 얼굴이 뜨거워지려 했다. 생긋 웃는 지연이의 손에 리본이 달린 종이 한 장이 들려있었다.
“이거 생일 초대장이야. 이번 주 토요일 열 두 시야.”
“오, 잘 생긴 령수 오라바이는 좋겠구나야!”
입이 머리보다 빠르다고 선생님한테 늘 야단을 맞는 원혁이가 놀리는 투로 말했다. 반 애들 중 내가 외우는 몇 안 되는 이름이다. 아까 내가 교실로 들어올 때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휙 돌려놓고 지금 와서 이런 식의 알은체라니……. 비겁한 녀석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연이가 준 초대장을 얼른 가방에 넣고 고개를 숙이고 책장을 넘겼다.
“초대장에 우리 집 동, 호수 있으니까 꼭 와!”
“어…….”
겨우 대답을 했다. 그 짧은 말이 갈라져서 나왔다.
나는 지연이가 이래서 좋다. 지연이는 누가 뭐라고 하든지 신경을 쓰지 않는 대범함이 있다. 분명히 쉬는 시간에 화장실이나 복도에서 나한테도 초대장을 준 것에 대해 애들이 수근 거릴 거다. 그렇지만 지연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거라는 걸 나는 안다.
지연이는 작년에도 나랑 같은 반이었다. 이곳에 정착하자 나는 4학년에 배정 되었다. 열세 살, 6학년 나이인데 말이다. 그래도 작년만 해도 겉모습은 다른 애들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겨우 1년 사이 내 키는 10센티미터 이상 컸고 살도 많이 쪘다. 그래서 지금은 누가 봐도 내 모습은 눈에 띈다.
처음에 나는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애들을 얕잡아 봤다. 그런데 그 얕잡아 봄은 공부를 시작하자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국어, 수학은 물론이고 다른 과목도 모두 어려웠다. 중국과 베트남을 거쳐 남한에 오는 3년을 공부란 것은 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일상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애들이 다 알아듣는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고 당연히 행동은 굼뜨거나 엉뚱해졌다. 처음에 나에게 관심을 보이던 애들도 차츰 멀어져 갔다. 그리고 나는 ‘북한산 어리바리’라는 은밀한 별명으로 불리며 교실에서 외톨이가 됐다.
5학년이 된 지금도 나는 교실에서 형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외톨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은밀하던 별명이 공공연한 것이 되었고 별명 앞에 수식어가 하나 더 붙어 ‘덩치 큰 북한산 어리바리’가 됐다는 거다.
4학년 때 내 글동무로 선생님이 짝 지어준 애가 지연이다. 지연이는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내게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옆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글자 하나하나, 숫자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지연이가 나이는 어리지만 서령 누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연이 손톱 끝에 남은 봉숭아물도 내가 기억하는 서령 누나 것과 같았다.
5학년 때도 지연이와 같은 반이 돼 은근히 글동무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렇지만 담임선생님은 내 공부가 다른 애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5교시와 6교시 수업 시간 내내 지연이가 준 초대장 때문에 정신이 나가 있었다. 처음에는 지연이가 나를 초대했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그러더니 다음으로 ‘갈까? 말까?’ 하는 갈등이 왔다.
‘다른 애들도 올 텐데, 그럼 또 외톨이가 될게 분명하니 가지 말아야지.’
가지 않기로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안 가면 지연이가 다시는 나 같은 건 거들떠도 안볼 텐데 외톨이가 되더라도 가 야하지 않을까?’
마음이 편한 것도 잠시 또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드는 거였다. 오후 수업 시간 내내 두 가지 생각 사이에서 그네를 탔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생명과 생태계반’ 방과 후 수업이 있는 날이다. 내가 좋아하는 수업이다. 생일 초대장에 정신을 뺏겼던 6교시가 끝나자 붙잡는 사람도 없는데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와 방과 후 교실로 갔다. 예전에 중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쳤다는 남자 선생님은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공부를 가르쳐 준다. 때로는 마음에 와서 콕 박히는 말도 해준다.
“오늘은 우리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종 생물에 대해 공부할 건데 어떤 게 있는지 아나요?”
출석 확인을 한 후 선생님이 말했다.
“뉴트리아요!”
“배스요!”
“황소개구리요!”
여기저기서 힘찬 대답이 터져 나왔다. 배스나 뉴트리아는 몰라도 황소개구리는 나도 아는데 말할 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잘 알고 있군요. 그렇다면 이 외래 종들은 과연 모두가 말하듯이 악당일까요?”
선생님의 난데없는 질문에 씩씩하게 대답하던 아이들이 멀뚱멀뚱 선생님만 쳐다봤다. 모두 나처럼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거다. 잠시 여유를 둔 후 선생님이 말했다.
“물론 이 외래종들이 천적 없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토종 생물들을 마구 잡아먹 고 있죠.”
앞에 앉은 몇 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왕성하게 번식해서 우리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기도 하죠. 그렇다면 이 외 래종들은 어떻게 우리나라에 올 수 있었을까요? 미국이나 남아메리카 같은 그 먼 데서 말이죠.”
“비행기나 배 타고 왔어요.”
누군가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오, 맞는 말이에요. 그럼 그 비행기나 배에는 과연 누가 태웠을까요?”
‘음……. 사람이요!’
잠깐 생각하다 내가 속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사람이겠죠? 그런데 악당 소리는 누가 듣고 있나요?”
선생님이 좀 어렵지만 또 마음에 와 닿는 질문을 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채송화와 봉숭아 알지요?”
‘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대답했다. 물론 속으로……. 우리 가족이 살던 곳에도 여름이면 채송화와 봉숭아가 많이 피었다. 아버지는 시간 날 때마다 누나와 내 손을 잡고, 들로 강으로 다니며 동물과 식물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동물과 식물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황소개구리가 우리 토종 생물을 마구잡이로 잡아먹고 있다는 것도, 황소개구리의 암컷과 수컷을 구별하는 법도 아버지한테 배웠다. 황소개구리에 대한 적대감도 그때 생겼다.
아버지는 봉숭아에 얽힌, 거문고를 타는 봉선의 슬픈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우리 집 장독대와 대문간에도 봉숭아가 여름마다 피었다. 엄마와 누나는 봉숭아를 짓이겨 손톱에 물을 들였다. 끼니를 건너 뛰어 배가 고픈 날도 엄마와 누나 손톱에 물든 다홍빛 봉숭아 빛깔을 보면, 손가락에 무명천을 묶고 거문고를 타는 불쌍한 봉선이 그려지며 배고픔 같은 건 잠시 잊히는 듯 했다.
“이 꽃들은 지금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우리 정서와도 잘 맞죠. 그런 데 이 채송화와 봉숭아도 애초에는 황소개구리나 배스처럼 외래종이었다는 거 혹 시 알고 있나요?”
그렇게 슬픈 이야기를 가진 여린 봉숭아가 외래종이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외래종은 배스나 황소개구리처럼 모두 강하고 거칠어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들인 줄만 알았다.
“지금은 채송화나 봉숭아도 우리 토종이 되었죠.”
‘아!’
사람……. 욕심……. 생태계……. 황소개구리……. 배스……. 토종……. 선생님의 말들이 마치 봉숭아 씨앗 주머니가 터진 듯 내 마음 여기저기에 톡톡 떨어졌다. 떨어진 씨앗들이 뿌리를 내렸다. 잔뿌리들이 가닿은 곳이 아릿했다. 채송화와 봉숭아도 함께 뿌리를 뻗어 왔다. 손톱에 다홍빛 봉숭아물을 들인 서령 누나와 지연이 얼굴이 떠올랐다.
수업이 끝나고도 나는 방과 후 교실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일부러 머뭇거리며 가방을 천천히 챙겼다. 선생님을 흘깃 보았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선생님이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열어 놓은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내 이마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선생님, 저는 토종 이야요? 외래종 이야요? 저도 시간이 지나면 봉선화처럼 토종 이 될 수 있는 기야요?’
선생님께 하고 싶은 질문을 마음으로 되 뇌이며 방과 후 교실을 빠져나왔다.
내 갈등에 아랑곳하지 않고 토요일이 오고야 말았다.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요즘 부쩍 더 커진 엄마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코고는 소리 크기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침대에서 내려와 책상 서랍을 열었다. 며칠 전에 사둔 지연이 생일 선물과 초대장이 들어있었다. 갈지 말지 결정도 못했으면서 ‘지연이에게 무엇을 선물할까?’라고 생각하며 며칠, 사놓은 선물을 보며 또 며칠 기분이 좋았다.
일단 욕실로 들어가 목욕을 했다. 평소 토요일에는 하지 않는 일이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오다 언제 일어났는지 욕실 앞에서 엄마와 마주쳤다.
“으악!”
내가 소리를 지르며 아랫부분을 가리자 엄마가 내 등을 철썩 때리며 말했다.
“우리 령수 다컸구나야. 오마닌데 머이가 어드래서 가리니. 가리긴? 일없다야!”
북한말을 쓰는 거 보니 엄마도 당황한 것 같은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욕실로 들어가 버린다. 방심한 엄마의 북한 말에 풋 하고 웃음이 났다.
엄마가 출근한 후에도 나는 지연이 생일잔치에 갈지 말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 지연이 생일잔치는 열두시인데 시계 바늘은 벌써 열한 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초침의 째깍거리는 소리에 맞춰 내 가슴도 쿵쾅거리며 달렸다. 초침은 앞으로만 달리는데 내 가슴의 쿵쾅거림은 달리다가 멈췄다가 또 뒤로 달리다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에잇, 가자!’
집에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벌떡 일어나 가방에 초대장과 생일선물을 넣고 밖으로 나왔다. 현관 옆에 잠자리채가 세워져 있었다. 머뭇거리다 잠자리채를 움켜잡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는 동안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영수 또 황소개구리 잡으러 가는고만?”
경비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네.”
“공일인디 친구들하고 좀 놀지 않고 또 혼자…….”
논을 향해 걷는데 경비 할아버지의 걱정하는 시선이 뒤통수에 따라붙는 것 같았다. 항상 짧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데 늘 먼저 아는 체를 해주고, 이런 걱정도 해주는 경비 할아버지가 오늘따라 고맙게 느껴졌다.
논 주변은 마지막 힘을 쏟는 늦여름 볕에 달아있었다. 내가 황소개구리라도 물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더운 날씨였다. 풀숲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황소개구리를 핑계 삼아 생각을 더 해볼 참이었다.
잠자리채를 옆에 내려놓고,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 애꿎은 땅바닥만 자꾸 팠다. 그러다 아침에 엄마가 얼떨결에 북한 말을 쓴 게 생각났다. 엄마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은 것 같았다. 남한 말을 쓰는 엄마는 왠지 낯 설다. 중국에 있을지 북한으로 소환 됐을지 모르는 아버지와 누나를 미련 없이 잊은 것만 같다. 무엇보다 아직도 어리바리한 나를 두고 엄마 혼자 ‘토종’이 된 것 같아 외롭다. 그래서 엄마한테 자꾸 짜증을 내게 된다.
그런데 오늘 엄마가 무심코 북한말을 쓴 게 떠오르자 엄마도 나랑 같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엄마도 사실은 낯가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보다 더……. 바쁜 갈빗집 일로 피곤할 텐데도 쉬는 날마다 남한 말을 배우러 다니는 엄마. 아침에 스치고 지나간 생각을 붙잡아 왔다.
‘오마니도 사실은 나처럼 힘든 거구나. 그런데 오마니는 노력 중이구나! 그러면 나는?’
물음표가 꼬리를 물었다.
‘내래 무슨 노력을 했드랬지? 노력을 하기는 했드랬나?’
물음표에 정신을 쏟고 있는데 논에서 황소개구리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큰 울음주머니, 보통보다 작은 덩치. 수컷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듯 멈추었던 황소개구리가 뒷다리를 오므려 힘을 주더니 펄쩍 튀어 올랐다.
잠자리채를 잡을 틈도 없었다. 지금까지 본 어떤 개구리보다 힘찬 도약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놀라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두 손을 벌리고 황소개구리를 향해 힘차게 튀어 올랐다.
“우엉. 우어엉…….”
잡았다! 물컹한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오소소 소름이 돋으며 희열이 느껴졌다. 손에 힘을 줬다. 어른 주먹보다 큰 통통한 황소개구리가 두 손 가득 들어있었다.
“우와! 잡았다! 잡았어!”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 댔다. 아마 남한에 와서 내가 낸 소리 중 가장 큰 소리였을 거다.
“우어엉.... 우어엉...”
황소개구리도 덩달아 소리를 질러 댔다. 손을 살짝 펴서 황소개구리를 봤다. 황소개구리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황소개구리 눈을 한참 들여다봤다. 튀어나온 눈 속에 박힌 검고 큰 눈동자. 나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먼 곳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목요일 생명과 생태계 반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한 말이 생각났다.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 남부 지역 일부를 제외하 고는 황소개구리의 개체수가 더 이상 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어?”
선생님의 말에 여기저기서 의아하다는 듯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학계에서는 황소개구리에게 천적이 생겨 우리 땅에 정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고 하네요.”
선생님이 한 명 한 명에게 눈길을 주며 하는 말을 듣고 당연한 생각을 그제야 했다.
‘황소개구리도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는구나!’
황소개구리를 잡은 두 손에서 힘을 살짝 뺐다. 느슨하게 황소개구리를 잡은 채 웅덩이 앞으로 갔다. 웅덩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황소개구리의 눈을 다시 한 번 봤다.
“너도 살아남으려고 피타게 노력하는데…….”
황소개구리를 웅덩이 가장자리에 놓아주며 말했다. 뭔가 개운했다.
풀숲으로 돌아온 나는 벗어 놓았던 가방을 열어 초대장을 꺼냈다. 이미 외우고 있는 지연이네 집 동, 호수를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리고 급히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잠자리채를 버려둔 채 지연이네 집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너무 늦은 건 아닐 거라고 스스로 위로 하면서!
2017 MBC창작동화대상 단편 동화 부문 수상작
<당선소감>
작년 가을 동화가 제 삶의 한 귀퉁이를 예고도 없이 훅 치고 들어왔습니다. 동화 쓰기를 배우는데 쓰는 동안의 몰입과 각성이 너무 좋았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야기꾼 아버지 밑에서 자란 것, 어린 시절 동화책을 좋아했던 것, 청소년기에 만화책에 빠져 살았던 것, 지금까지 소설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 초등학교 교사가 된 것 등 그동안 삶 위에 찍었던 수많은 점들이 모두 동화를 향한 화살표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재미있으면서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의미 있는 동화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꾼이 되려고 합니다.
<심사평>
최종 선에 오른 12편을 심사했다. 미래에 일어날 법한 비인간적인 행위에 일침을 가한 이야기, 동물을 의인화하여 부조리에 맞써 싸우기도 하고, 가족을 만들어 가는 신나는 이야기, 동물과의 우정 등 아이디어가 돋보이고 참신하여 심사위원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 작품들이었다.
문학 작품을 음식 만들기에 비유하면 아귀가 딱딱 잘 맞는데, 햄버거로 이야기를 해 본다.
햄버거는 누구나 알듯이 두 조각의 빵 사이에 패티를 넣어 만든다. 햄버거의 맛은 가운데 들어가는 패티에 달려 있는데, 맛았고 몸에 좋은 재료를 잘 어우러지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패티가 햄버거의 맛을 좌우한다고 해서 위아래에 있는 빵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알맞게 구워진 빵에 맛있는 패티가 들어가야 맛있는 햄버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빵 위에 솔솔 뿌린 참깨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심사한 작품은 다 참신하고 재미있는 소재를 가지고 시작되었다. 그런데 햄버거의 위 빵이 너무 크면 맛이 없듯 이야기 발단에 너무 많은 지면과 정성을 쏟아 전개가 빈약해진 작품, 패티가 너무 커서 줄줄 흘러내리는 것과 같이 전체 조화를 생각하며 절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미숙한 작품, 잘 만든 햄버거에 맨 아래 빵을 토르티야로 받친 것과 같이 훌륭하게 잘 써 내려가다가 결말에서 실망을 준 작품, 빵은 큰데 패티가 너무 작아서 맛이 없는 햄버거같이 퍽퍽하고 지루한 작품들이 있었다. 심사위원들을 안타깝게 만든 작품들이었다. 독서를 많이 하고 열심히 쓰면 이런 결점들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중에서 <초대장>은 엠에스지(MSG)를 듬뿍 넣은, 열량 높고 맛만 추구한 정크푸드 햄버거가 아니다. <초대장>은 갖출 것은 다 갖추면서 맛과 영양까지도 갖춘 수제 햄버거 같은 작품이다.
<초대장>은 엄마와 탈북해 온 새터민 아이 이야기다.
남한 생활에 적응 못하는 아이와 달리 엄마는 서울말을 쓰면서 적응이 빠르다. 아이는 그런 엄마가 원망스럽고, 함께 오지 못한 누나와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만 간다. 자칫 지루하고 평범한 이야기가 될 뻔했는데, 작가는 외래에서 온 황소개구리와 호감을 갖고 있는 여자아이를 적재적소에 넣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희망적인 결말을 맺었다.
햄버거가 맛과 영양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듯 문학 작품은 재미와 예술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작품이 된다는 것을 보여 준 작품이었다.
단편 동화 부문 심사위원 소중애, 박덕규
첫댓글 멋진 작품 감사해요.... 축하드려요.
잘 읽었습니다 ~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수상자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