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내세워서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게 하거나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글입니다. 결국 읽는 이를 설득하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논설문의 짜임
대체로 '서론 - 본론 - 결론'의 3단 구성을 취합니다.
♠ 서론 :글의 앞부분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제기하게된 배경을 밝히며 주장을 미리 밝히기도 합니다.
♠ 본론 : 글의 중심 부분으로 본격적인 주장을 펼치는 단계입니다. 주장을 제기할 때에는 그에 대한 근거를 함께 밝혀야 합니다.
♠ 결론 : 글을 끝맺는 부분으로 주장을 요약하거나, 마무리하거나, 강조하는 단계입니다.
논설문의 갈래
♠ 논증적 논설문 :어떤 사건이나 현황의 옳고 그름을 밝히기 위해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여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글입니다.
▶ 논문, 평론 등
♠ 설득적 논설문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전개하여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게 하는 글입니다.
▶ 신문 사설, 연설문 등
구분
논증적 설명문
설득적 설명문
목적
문제의 논리적 해명
주장이나 의견을 통해 독자를 설득
방법
지적, 이성적 요소가 주가 됨
논리가 주가 되지만, 감성적 요소가 추가됨
언어
지시적 언어사용이 주가 됨
함축적 언어의 사용도 가능함
논리
정확한 자료 제시와 추론
논거에 의한 증명과 감성에의 호소
그 예
연구 논문
신문 사설
설득하는 글을 쓸 때의 유의점
♠ 주장의 핵심을 분명히 밝혀야 함.
♠ 주장의 근거와 이유가 타당해야 함.
♠ 주장의 논리가 정연해야 함.
♠ 사용된 용어가 분명하고 정확해야 함.
♠ 받아들이는 독자를 염두에 두어야 함.
♠ 자기 주장의 의미와 영향력을 생각해야 함.
논설문을 읽는 방법
♠ 지은이의 주장과 그 주장에 대한 이유나 근거가 옳은지 파악합니다.
♠ 대명사나 접속사 등을 잘 파악하여 문맥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 각 문단의 중심 내용과 전체적인 주제와의 관계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 사실과 의견을 잘 구분해서 읽습니다.
▶ 새 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정치와 경제 권력에 예속되지 않는 '문화의 힘'이 시민사회와 함께 창조적 사회를 이끌어나갈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 바탕을 마련하고 사회환경을 조성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 중심의, '인간의 얼굴을 한' 발전으로만이 가능하다. 세계화도, 정보화도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어야 한다. 인간이 소외된 세계화는 벌거벗은 약육강식의 세계일 뿐이고, 인간이 없는 정보화는 정보에 통제되는 인간의 노예화와 다를 바 없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계화 정보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개인적 사회적 윤리의 실종상태를 극복해야 한다. 관용과 화해, 절제의 가치관으로 다원적 사회를 꾸려 가는 높은 시민의식을 구현해야 한다. 생산성과 효율, 부가가치 못지 않게 인간 생명의 가치를 높이는 삶을 가꿔나가자. (동아일보 새천년맞이 사설 중에서)
<진단평가>
◈ ‘갯벌 보호 캠페인’에 참여하도록 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 <보기>의 요소를 가장 충실히 반영한 것은? ▶ ③
① 갯벌은 국민의 정서 함양에 기여한다. 갯벌 견학을 통해 학생들은 자연을 체험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를 기르는 한편 해양 생태계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
② 갯벌은 기후를 조절하며, 지구의 허파로서 끊임없이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갯벌을 매립하여 얻는 경제적 이익보다 갯벌을 보전하여 지속적으로 얻는 이익이 더 많다는 것을 알리는 캠페인 활동이 필요하다.
③ 다양한 생물 자원의 보고(寶庫)인 갯벌은 경제적 가치가 높기 때문에 갯벌의 소중함을 인식시키기 위한 사회적 차원의 캠페인 활동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갯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무분별한 갯벌 개발을 막을 수 있다.
④ 국가적 차원에서 갯벌을 보전하기 위한 특별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서는 언론이나 각종 매체를 대상으로 갯벌 보전의 당위성을 알리거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속적인 캠페인 활동이 필요하다.
⑤ 정부가 갯벌을 보전하기 위한 관련 법률을 조기에 제정하도록 촉구하는 캠페인 활동이 필요하다. 법률이 시행된다면 무분별하게 갯벌을 매립하여 농지로 전용하는 것을 방지하여 국민 복지를 향상하고 국민 건강에 기여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 다음은 '과학 기술의 발전은 사회의 발전과 일치하는가?'라는 논제에 대한 글을 쓰고자 작성한 메모이다.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 ④
①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 소외와 계층 간의 불평등을 심화하여 결국 인간 사회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②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가 당면한 질병과 기아, 환경 파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③ 과학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발전은 무관하므로 우선적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④ 과학 기술을 올바르게 활용하는 가치관을 확립하고 인간 사회와 과학 기술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발전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⑤ 과학 영재를 조기에 발굴,육성하는 교육 체제를 구축하고, 최첨단 기술 산업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과거 사회는 신분과 지위, 권력과 계급의 상하관계 등이 주축을 이루는 단순한 계층 사회였다. 이에 비해 현대 사회에서는 상하의 간격이 극도로 확대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사이에 다양한 계층이 새로이 발생하고 있다. 수직적 격차의 확대는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후기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계층과 계급의 구성 원리가 바뀌고 다양해지면서 소위 중간층(中間層)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 중간층이란 것도 하나의 동질적인 계층이나 계급으로 파악하기란 그리 단순하지 않은 일이다. 이를 우리는 과거의 단순 계층화와 구별하기 위해 복합적 계층화라고 부르자. 일반 관리직, 소자본 자영업자(自營業者), 중농과 부농 등 다양한 부류가 중간층에 속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계층화라는, 산업 과정에서 나타나는 재구조화는 결국 다양한 계층화에 따른 불평등 관계를 더욱 확대시켜 놓는다. 이러한 불평등은 경제적인 것을 넘어서 동시에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것이다. 이러한 계층화 현상은 일부 계층의 소외현상과 상대적 박탈감을 가중시키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히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산업 사회가 사회적 계층화를 복합적으로 증가시켜 나간다는 사실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인정하더라도 계층화된 각 부분들 간에 이질감과 적대감이 생겨난다는 것은 사회적 통합의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유해한 현상이다.
계층 간의 위화감(違和感)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개입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사회 계층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미정착, 과도한 계층 간의 격차, 계층 간 이동의 정당성에 대한 의혹, 상류층의 권위 상실, 사회적 분배 정책 등 여러 요인이 관계할 수 있다. 이러한 위화감은 우선 격차를 좁히는 일, 기회의 평등 등 구조적이며 제도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현대 사회의 계층화 현상은 그 절대적인 격차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격차에 대한 이념적, 동정적 이해는 산업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매우 필요한 도구적 윤리이다. 여기에 사회적 소통의 일차적 중요성이 있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격차는 다수의 사람들이 합의하는 기준에 의하여 그 정당성이 인정되어야만 한다. 만약 격차가 생긴 합리적인 이유가 밝혀진다면 계층 간 이해와 소통(疏通)이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격차는 계층 간 위화감으로 직결될 것이다. 고위 정치가, 재벌, 해외자본, 그리고 이들의 결탁, 국가권력 등에 대한 수많은 불만과 의혹은 모두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해주지 않는 데에서 기인한다.
정당성이 결여된 격차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격차가 통용되는 사회의 재구조화를 위한 소통이어야 할 것이다. 전자만을 위한 소통은 강압적, 일방적이지만, 후자를 위한 소통은 자발적, 동정적이다. 산업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노정(露呈)시키게 되는 정당한 격차에 대하여는 국민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이념적 합일 또한 매우 중요한 과제인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역사가 결국 어디로 가고 있는가?’하는 물음에 대해 많은 역사학자, 철학자들이 나름대로 대답을 내놓았다. ⓐ종말론(終末論)적인 해답도 있었고 발전론적인 해답도 있어 왔지만, 지금까지의 인류 사회가 지향해 온 역사의 길은 인간들이 살기에 한층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었으며, 그것은 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하게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면, 인류의 역사는 모든 인간들이 정치적인 속박에서 점점 벗어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헤겔(Hegel)은 ‘역사의 발전이란 곧 자유의 확대 과정’이라 말했다. 역사는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지는 인간의 수가 점점 많아지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왕과 귀족들만이 정치적 자유를 누렸지만, ⓑ근대 사회로 오면서 그 정치적 자유가 시민 계급에까지 확대되었으며, 현대 사회로 오면서는 노동자, 농민층에게까지 실질적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인류 사회의 이상 가운데 하나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더 확대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인류 역사가 나아갈 방향이기도 하다. 인간이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길은 곧 스스로 권력을 가지는 길이며, 권력을 가지고 행사하는 인간이 많아지는 길, 즉 국민 주권주의(國民主權主義)가 확대되는 길이 곧 역사가 나아가는 길인 것이다.
또한 인간의 역사는 경제적으로 빈부의 차가 적어지는 길로 발전해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신라 시대나 고려 시대에는 소수의 귀족층만이 재부(財富)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피지배층의 생활은 처참했다. 조선 사회에도 양반 지배층의 생활과 일반 농민의 생활 사이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차이가 있었다. ⓒ근대 사회로 내려오면서 자산 계급과 서민 대중 사이의 생활 양식은 어느 정도 접근해 갔으나 소유한 재부의 차이는 여전히 크다. 그러나 재부의 편중을 억제하고 사회적 평등을 촉진하는 운동과 정책이 계속 추진되고 있으며, 그것이 바른 역사의 길이라는 인식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더 발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또 생각하고 표현하는 자유, 즉 사상의 자유가 꾸준히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종교적 독단 때문에 지구가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도는 것이라는 믿음이 강요되기도 하였고, ⓓ정치적 권력의 강제에 의하여 역사란 지배자의 능력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라 가르쳐지기도 했지만, 아무리 무서운 권력이나 뿌리 깊은 인습(因襲)도 인간의 ‘생각하고 말하는 자유’를 계속 누를 수는 없었다. 사상의 자유야말로 인간의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가진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의 변화에 일정한 방향이 없으면 인간 사회는 그야말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갈 수밖에 없으며, 역사의 의미가 바뀌는 데 일정한 기준이 없으면 역사의 해석이야말로 [ ㉠ ]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역사의 길, 역사적 발전, 역사적 진리란 말이 있을 수 없으며 역사학 자체도 남아날 수 없다.
수천 년에 걸친 인간의 역사를 분석해 온 학자들은 역사의 변화에 일정한 방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 방향은 크게 말해서 인간이 정치적인 속박을 벗어나는 길, 경제적인 불평등을 극복하는 길, 사상의 자유를 넓혀 가는 길이라고 한다.
⑤ 우리 나라의 현대사도 자유와 평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겠어.
4. ⓐ~ⓔ 중, <보기>와 가장 관계 깊은 진술은?▶⑤
<보기>
1894년에 전라도에서 전봉준이 많은 농민군을 이끌고 정부군 및 일본군과 싸운 사실은 맨 처음 ‘동학란’으로 불리었다. 그 당시 정부는 동학을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종교라고 탄압하고 교조 최제우를 처형하였다. 여기에 동학 교도들이 불만을 품고 일으킨 반란이란 뜻으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대한 제국 시기와 일제 식민지 시기까지 계속 ‘동학란’으로 불린 이 사건은 해방 후에는 ‘동학 혁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반란이 혁명으로 바뀐 것은 같은 사실을 두고 그 해석이 전혀 달라졌음을 말한다. 전봉준 등의 행동이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바뀐 것이다.
① ⓐ ② ⓑ ③ ⓒ ④ ⓓ ⑤ ⓔ
5. ㉠에 들어갈 속담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⑤
① 누워서 침 뱉기
② 언 발에 오줌 누기
③ 눈 가리고 아웅하기
④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진단평가>
* ‘흡연과 건강’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개요’를 작성한 뒤, <보기>에 제시된 관련 자료를 추가로 얻었다. 추가 자료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⑤
많은 사회인들은 종교와 사회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던 사회는 전근대적인 봉건 사회였고, 문화와 문명이 발달된 오늘날에는 사회의 길과 종교의 길이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많은 종교인들도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이 사회를 초월한 초인간적, 혹은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종교와 사회의 엄격한 분리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종교적인 원칙과 사회적인 원칙의 관계를 종교인의 삶과 사회인의 삶의 관계와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원칙적인 면에서, 종교의 진리는 사회를 다스리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제공할 수 없으며, 그 반대로 사회의 현실도 종교를 명령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질투, 증오, 살인보다는 자비, 사랑, 평화를 가르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과 자비의 원칙은 어디까지나 원칙에 불과한 것이다. 사랑과 자비가 구체적으로 사회에 적용되려면―그리하여 사랑스럽고 자비스러운 사회를 건설하려면―그 원칙을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는 사회적인 메커니즘, 이데올로기, 정치 체제를 동반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를 존속시키고 그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사회적인 원칙은 종교의 신앙을 주관할 수 없다. 예를 들어서, 어느 사회의 존속을 유지하기 위하여 외국을 침략해야 된다는 원칙이―이것도 원칙이라면―언제나 종교의 원칙에서 배척되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뜻에서, 종교의 원칙은 사회의 원칙을 초월한다고 말할 수 있다. 종교의 원칙이 언제나 사회의 원칙과 충돌해야 된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종교의 원칙은 특정한 개인, 가정, 사회, 국가, 민족을 초월한 모든 인류에 대한 메시지라는 뜻에서, 종교의 원칙은 사회의 원칙에 역행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원칙적인 면에서 종교와 사회의 관계를 고찰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종교인의 삶의 입장과 사회인의 삶의 입장에서는 전혀 해당될 수 없는 것이다. 우선 모든 사회인이 종교인은 아니다. 그러나 종교를 신봉하는 사회인은 그가 동시에 사회인이며 종교인이란 사실을 망각할 수 없다. 물론 그가 진실하지 않다면 ㉠‘일요일의 종교인과 월요일의 사회인’이라는 이중의 인간으로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정체를 상실한 삶이며, 진정한 삶은 사회적인 활동과 종교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일이다. 더구나 후기 산업 사회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인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종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종교인은 이미 사회인이다. 인간은 종교인이기 이전에 이미 인간이며, 인간이라 함은 바로 사회 속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며, 도구를 만드는 동물이며, 웃는 동물이며, 언어적 동물이며, 이성적 동물이며, 종교적 동물이며,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측면을 무시한 종교적 인간이라는 개념과 종교적 측면을 무시한 사회적 인간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일면만을 관찰한 것이다. 진정한 종교적 삶이란 현실의 부조리, 부정, 불의를 외면하지 말고 오히려 그 개선책을 제공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면서 반성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