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로마의 탄생
준공식이 열린 330년 5월 11일,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비잔티움을 로마 노바(Roma Nova) 즉 '새로운 로마'라 명명하였으나, 역사적으로는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의미의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이 신도시는 로마처럼 일곱 개의 언덕이 있는데, 언덕의 숫자처럼 무려 일곱 개의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지만 그 이야기는 뒷부분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도시를 새로운 로마로 만들기 위해 로마와 똑같이 14개의 구역으로 구분했고, 그 중 한 구는 로마처럼 물 건너에 있었다. 바닷물과 강물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그 구의 이름은 갈라타다.
제국 곳곳에서 조각품과 원주, 오벨리스크를 날아와 거리를 장식했으며, 그리스도교의 성물들도 대거 이곳으로 옮겨졌다. 그 중에는 지금도 건재한 카르나크 신전의 오벨리스크와 델피 신전의 청동 뱀 기둥도 있으니 고대 문명의 정수를 이 도시에 모으는 동시에 새로운 종교 즉 그리스도교의 중심으로 만들려는 상징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선택은 탁월했다. 330년 5월 11일은 도시 특히 고대 도시로는 드물게 콘스탄티노플의 생일이 되었으며, 동로마제국이 탄생한 날이 되었다. 그리고 동로마 제국은 놀랍게도 1453년까지 존속했다.
황제는 새로운 수도의 조기 활성화를 위해 로마의 원로원의원들에게 토지와 특권을 주며 회유하여 대거 이주시켰다. 가옥신축과 무료 급식을 연계시켜 도시 내에 집을 지으면 식량배급소 14개소에서 만드는 신선한 빵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식권을 주었다. 전차 경기장인 히포드럼도 무려 8만 명 규모로 건설되었지만 검투사들의 무대인 원형 경기장은 그리스도교를 의식해서인지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빵과 서커스’ 정책에 충실하게 히포드럼에서는 전차 경주와 각종 퍼포먼스가 행해졌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비잔티움은 콘스탄티노플 이자 새로운 로마로 변모하였다.
이렇게 황제는 비잔티움을 전통적 다신교 문화와 공화주의적 정치 관례가 남아있던 로마를 대체할 제2의 수도로 완전히 개조하는데 성공하였다. 치세 대부분을 콘스탄티노플에서 보낸 최초의 로마 황제는 테오도시우스 1세였다.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 로마 제국의 동서 분열은 고착되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동로마의 수도가 되었다. 40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난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즉위했을 때는 도시에는 주랑 현관이 52개, 공중목욕탕 52개, 교회 14개, 수로 8개, 원로원과 법정 4개 등을 갖춘 당당한 모습이어서 쇠퇴일로에 있던 로마와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