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가(安民歌)
충담사
[원문]
君隱父也 (군은부야) ,
臣隱愛賜尸母史也 (신은애사시모사야)
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知 (민언광시한아해고위사시지)
民是愛尸知古如 (민시애시지고여)
窟理叱大 生以支所音物生 (굴리질대힐생이지소음물생)
此惡支治良羅 (차힐식악지치량나) .
此地 捨遺只於冬是去於丁 爲尸知 (차지힐사유지어동시거어정위시지)
國惡支持以支知古如 (국악지지이지지고지)
後句 君如臣多支民隱如 爲內尸等焉 (후구군여신다지민은여위내시등언)
國惡太平恨音叱如 (국악태평한음질여)
[기존해석]
- 어학적 해독 -
군은 어비여
신은 다자샬 어지여
민은 얼한 아해고 하샬디
민이 다잘 알고다
구믈ㅅ다히 살손 물생
이흘 머거 다사라
이 따할 바리곡 어듸갈뎌 할디
나라악 디니지 알고다.
아으, 군다이 신다이 민다이 하날단
나라악 태평 하니잇다.
[현대어 풀이]
君은 아비요
臣은 사랑하시는 어미요,
民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하실진댄 民이 사랑을 알리라.
大衆을 살리기에 익숙해져 있기에
이를 먹여 다스릴러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할진댄 나라 保全할 것을 알리라.
아아, 君답게 臣답게 民답게
한다면 나라가 太平을 持續하느리라
[시어 풀이]
*시어ㆍ시구 풀이
*어비 : 아비, 아버지
*다자샬 : 사랑하실, 사랑해 주시는.´닺´은 사랑[愛]을 뜻함
*어지 : 어미, 어머니
*얼한 : 어리석은, 또는 어린
*구믈ㅅ다히 : 구물거리며, 구물대면서
*물생(物生) : 백성, 서민, 인류
*이흘 : 이를. 이것을
*다사라 : 다스려져서
*이 할 : 이 땅을
*바리곡 : 버리고
*나라악 디니디 알고다. : 나라 안이 유지될 줄 알리이다.
*군(君)다이 신(臣)다이 민(民)다이 :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하날단 : 할지면
[시구 풀이]
*1-4행 : 임금을 아버지, 신하를 어머니, 백성을 어린 아이로 치환하여 위정자들이 정치를 잘 해서 백성을 자신의 자식을 양육
하는 것처럼 잘 보살펴야 백성들도 위정자의 사랑을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은 유교의 부자효친(父子孝親) 사
상에 바탕을 둔 것으로 국가적 의미의 충(忠)이 가정 내에서의 효(孝)로부터 확장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은유법이 사용되었
다.
*5-8행 : 5행은 해독상 많은 논란이 있는 부분이다. 교과서의 해석을 따를 때 ´구물거리며 사는 물생(物生)´이란 모든 생물들
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백성들을 의미하고 있다. 백성들을 이식위천(以食爲天 :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음 - 먹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김)하므로 먹는 문제가 가장 절실하다. 이렇게 백성의 기본적 의식주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 줄 때 백
성들은 이 나라를 최고로 여겨, 버리고 떠나지 않게 되므로 위정자들은 정치를 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7행에서 ´이 따할 바
리곡 어듸 갈뎌´라고 백성들이 말하는 상황을 설정한 것은 실제로 경덕왕 17년 계속되는 정치적 불안과 민생이 피폐로 인해 74
명의 신라인이 신라를 떠나 일본에 귀화한 사건을 토대로 한 것이다.
*9-10행 : 10구체 향가에서 9행, 10행은 낙구(落句) 또는 격구(隔句)라 하며 반드시 감탄사로 시작된다. 이 구절의 ´군다이 신
다이 민다이´는 <논어>의 "君君臣臣父父子子(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의
구절을 원용한 것으로, 제각기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자기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때 나라가 태평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서 임금이 임금다워야 한다고 말하는 구절에는 충간(忠諫)의 의미가 내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구절은 직분에 따라 그 직분
에 알맞은 사람이 그 일을 맡아야 한다는, 즉 명분과 실지가 일치해야 한다는 유교적 정명 사상(正名思想)에 바탕을 두고 있다.
출전 <삼국유사>
[작품개괄]
-작가 충담사
-갈래 향가
-연대 신라 경덕왕 24년(765)
-성격 유교적, 교훈적
-출전 <삼국유사>
-제재 왕과 신하와 백성의 본분
-주제 나라를 다스리는 올바른 길
-특징 1.유교적 이념을 노래한 유일한 향가
2.목적성과 교훈성이 강함
-의의 유교적 이념을 노래한 유일한 향가
-표현 논리적, 직설적 어법, 교훈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인칭적 은유(군,신,민의 정치 사회적 계층을 부,모,자로 이루어진
가정의 기본적인 인륜관계에 비유)를 함
-창작동기 나라가 어지러워 민심이 동요하고 있을 때 충담사를 맞아들여 ´안민가´를 지어 노래의 힘으로 민심을 수습하고자
함
[작품 해제]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에 실려 전한다. 노래를 지은 유래는 다음과 같다. 경덕왕 23년(765) 3월 3일 왕이 귀정문(歸正門)에
올라 신하들에게 거리에 나가 훌륭한 스님을 한 분 모셔 오라 하였다. 신하들이 한 명승(名僧)을 모셔왔으나, 왕은 자기가 찾는
스님이 아니라 하여 돌려보내고 다시 모셔온 분이 바로 충담사였다.
왕은 그가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를 지은 스님임을 알고 "안민가(安民歌)"를 지으라 하였다. 이에 충담사가 노래를 지어 바
치니 왕이 기꺼이 여겨 왕사(王師)에 봉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다고 한다. 이 때 그가 지은 향가 "안민가"는 임금과 신하와 백
성이 각각 자기 본분을 지키면 나라가 태평하리라는 소박한 내용으로, 유교 사상이 짙은 노래이다.
향가를 지은 신라 사람들은 당시의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에는 불교가 귀족 불교로서 각광을 받았고,
화랑도를 통한 심신 연마를 중요시했던 만큼, 향가를 지은 사람들은 주로 불교의 승려와 화랑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향가 작
품이 불교를 배경 사상으로 삼은 데 비해, 이 작품만이 유일하게 민본주의(民本主義)라는 유교적 통치 이념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승려가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유교적인 이상 정치에 대해 노래했다는 점이 독특하다고 할 수 있
다. 이 작품이 쓰여질 당시에는 각종 천재지변이 민생(民生)을 위협했을 뿐만 아니라, 신하의 도전으로 왕권이 위협받는 등 정
치적으로도 위기 상황이었다. 그래서 경덕왕은 충담사로 하여금 향가를 짓도록 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따라서 예술
성보다는 교훈성이 강한 작품이 되었다
[배경 설화]
이 노래는 다른 사뇌가와 마찬가지로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장은 제4구까지로 여기에서는 나라의 계층 구성이 가정에서의
아버지, 어머니, 자식과 같다고 하여 그 중에서 백성이 매우 중요한 것이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백성의 중요성을 부모가 자
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중장은 8구까지로 그 해석에는 이론이 있다. 양주동 풀이를 전제로 설
명한다면 여기에는 임금과 신하는 백성을 잘 먹여 다스려야 한다는 훈계가 들어있다. 종장에서는 임금의 백성 사랑하는 뜻을
받아서 신하들도 백성의 아픈 데를 알아 줄 것 같으면 나라는 절로 태평을 누릴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 노래는 충담사(忠談師)가 지은 것인데 경덕왕의 명을 받아, 어떻게 하면 나라를 편안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도리를 밝힌
것이다. 경덕왕 시절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정된 나라를 이룩할 것인가에 온 힘을 기
울였다.
임금을 아버지, 신하를 어머니, 백성을 자식으로 생각한다면 그 셋의 관계가 원만해질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소박하면서
도 당시의 시대 모습과 사회 정치의 윤리관이 깔려 있다. 충담사는 찬기파랑가의 작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