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스 대령
헤스는 미 공군 소령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보잘것없는 한국군에 공군기 조종 훈련을 시켜 일본에서 십여 대의 전투기를 가져온다. 중부 지방이 공산군의 손에 넘어가자 대구비행장에서 출격하여 전차와 행군대열, 각종 군수물자 차량을 폭격했다. 일거에 내닫는 무서운 남진 행군을 저지시켰다.
한번은 무전 연락이 왔다. 다급히 지원해 달라는 긴박한 타전이었다. 모두 쉬고 잠든 조종사들을 일깨울 수 없어 혼자 이승만 대통령이 지어준 ‘신념信念의 조인鳥人’ 애기를 몰고 전장에 나아갔다. 공산군 행군대열은 마치 토막 난 뱀과 같았다. 길게 이어진 앞부분을 내리퍼부었다. 파괴된 전차와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전진 속도를 막았지만 이내 옆으로 길을 틔워 내려오자 다른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이들을 폭격으로 쳐부수는데 크게 전과를 올렸다. 일본 주둔 미 공군에서도 융단폭격을 해줘 김천에서 전열을 가다듬어 내려오다 멈칫하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 사실을 알고 불러 포상을 주고 양아들처럼 대했으며 자주 격려해주고 함께 했다.
길게 조종 교육을 못 받은 한국공군은 급조되었어도 그 짧고 엄연한 상황에서 잘 해냈다. 모두가 헤스 소령의 덕분으로 있는 힘을 다해 공군 조종사들을 일시에 배출해 냈으니 그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싶다 기적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공군부대를 방문해 빨간 마후라를 달아주며 무스탕기를 어루만졌다.
우리 공군은 전진하는 공산군의 진로를 막고 후방 보급로를 차단하는 좋은 수단이다. 이어서 북한 전 지역을 날아가 군사 기지와 보급창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전차를 앞세워 거칠 게 없던 공산군은 그만 기가 꺾이고 말았다. 대형 수송인 철로와 남녘으로 난 도로가 모두 박살 났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 공군은 정밀 타격을 이어 갔다.
참으로 한 사람의 노력이 이리 놀라울까. 그가 한국 전쟁을 바꿔놓았다. 만약 헤스가 없었으면 밀고 남쪽으로 내려가 부산까지 점령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고마운 사람이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신앙인이다. 공군에 입대해 조종 기술을 익혀 조종사의 길을 한때 걸었다.
맥아더 극동군 사령관 원수를 보좌하면서 전쟁 발발 사흘 뒤 최전방 수원 전선을 시찰했다. 승리로 이끌겠다고 말하는 장군은 어두운 밤 고난의 피난 행렬 중 부모 잃고 굶주린 떠돌이 어린이들을 보고 보살펴 주라는 명을 내린다. 콩 볶듯 터지는 굉음의 서울 시가는 바로 섬광이 하늘로 뻗치는 불바다 지옥이다.
조종사 교육이 어느 정도 이뤄지자 그 위험하고 바쁜 전쟁 중에도 어린이들을 구해내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 추운 겨울 그들을 입히고 먹이며 재우는 일이 쉬운 게 아니라 어렵다. 각국에서 보내온 구호물자 옷으로 입히고 모자라면 군복을 작게 만들어 덮어씌웠다. 처음은 인천 부두로 데려가 배편을 이용 안전한 제주도에 수송하려 했다.
중공군 참전으로 전세가 바뀐 1.4후퇴 직전 긴박한 전장에서 자칫 버려질 수 있는 이들은 벌써 여러 명의 동사자가 속출했다. 어려워지자 비행기로 날랐다. 수송기를 동원해 제주공항 주변 가까운 곳 농업고등학교 안에 보육원을 만들었다. 마침 영국 유학을 다녀온 영어를 잘하는 황온순 원장을 만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굶주려 죽어가고 자고 나면 동사하는 길거리 아이들을 재빠르게 구해내야 했다.
무려 900여 명을 찾아 구해서 섬으로 옮겼다. 미군 부대 군목 블레이즈델 대령이 임시 보호했던 이들을 16대 수송기에 실었다. 워싱턴에서 이 사정을 알고 특별 명령을 내린 쉽지 않은 이 작전명은 꼬마자동차이다. 마지막 문이 닫히자 아이를 안은 헤스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도를 올렸다. 이 일을 우리 어찌 잊겠나.
부인이 와서 남편이 돕는다는 보육원을 찾았다. 명랑한 아이들이 바글바글 좁은 고아원을 그득 메웠다. 남편 헤스는 이들을 보살피느라 쉴 틈이 없다. 먹을 것에서부터 몸을 가리는 옷가지며 아플 때 치료하는 수많은 일을 해내야 했다. 말이 천명이지 얼마나 많은 수인가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수선떠는 이 아이들을 어찌 감당하랴.
마침 여자아이 하나가 부인의 옷자락을 잡으며 방글방글 웃으며 따랐다. 그 아이를 양 아이로 키우겠다며 데려갔다. 미국은 이 불쌍한 어린이들을 키우는 가정에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다. 그중에서 죄를 짓고 재판받을 때 크게 도움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도 무죄에 가깝게 형을 감해 준다니 놀랍다.
3년간 그 치열했던 전쟁이 휴전회담으로 소강상태가 되자 대령 진급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 전쟁의 경험을 쓴 전송가(Battle Hymn)를 지었다. 영화로 각색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인기배우 록허드슨이 주연으로 나오고 황온순 여사 역에는 안나카슈피가 나온다. 여기에 아리랑이 나와 처음으로 한국민요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넷킹콜 가수가 나와 주제곡을 부른다. 전란 후 어려울 때 그 수많은 다양했던 구호물자는 바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보낸 것들이 많다. 동명의 전송가는 흑인 노예해방을 위해 벌인 남북전쟁 당시 북군이 불렀던 군가이다. 우리나라 찬송가에도 번안되어 ‘마귀들과 싸울지라’로 나온다. DVD로도 제작되었다.
한국보육원이 자리를 비워줘야 했다. 옮기는데 비용과 천명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아플 때 치료하는 돈이 6만 달러나 든다니 그 당시 얼마나 큰 돈인가. 인지대와 영화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또 도움을 줘야 했다. 헤스의 도움이 없으면 곧 거리로 나앉을 판이다. 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도 보살펴야 하고 새로운 고아들도 계속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끝이 없다.
2차 대전 때 독일 교회를 잘못 폭격해 탁아소 어린이들을 많이 숨지게 한 사건이 있다. 한국 전쟁 시 노근리 피난민을 오인 폭격해 피해 입힌 것도 마음에 걸렸다. 속죄인가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한 헤스 목사였다. 한국 정부는 2차례에 걸쳐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박사과정을 밟은 오하이오주대학교 근처 데이튼시 외곽 단층집에 암과 투병하며 살다가 98세로 타계했다.
그가 만든 전투 비행대는 서거 1주년을 맞아 그의 유족을 초청하여 추모식을 거행했다. 미국박물관과 제주 항공박물관에 그의 기록이 남아있다. 한국 공군가에 그의 전투기에 쓰인 ‘신념의 조인’이 나오고, 그의 애기가 청주 공군사관학교에 전시되었다. 전장의 모습을 배경으로 담은 거대한 초상화 제막식도 가졌다.
또다시 한국 정부에서 을지 훈장과 소파상을 수여하고 서울대에서는 박사학위도 안겼다. 두 번에 걸쳐 김대중 이명박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방한했다. 82세 노구를 이끌고 김포 비행장에 내릴 때 우르르 달려가 엎드린 많은 사람이 아버지! 아버지! 하며 울부짖었다. 그가 키웠던 한국보육원생들이다.
첫댓글 6.25와 전설적 인물 헤스 대령의
생생한 글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이 어떠한 나라였는지 모두 망각하고
작금의 사회 정치 모두가 둘로 쪼개져 70년 전
그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고맙고 수고 하셨습니다
추석 명절 편안히 보내세요
편안한 추석 쇠세요.
작년에 딴 반물러기 감 맛있게 먹었고
대추 아직도 아껴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