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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여행재밌었어, 다시 가고싶어?"
딸아이가 종종대듯 내게 묻는다.
선뜻 그렇다는 긍정의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아니 솔직히말해 다시가고 싶지않은 쪽이다.
영혼에 속한자만이 누릴수있는 축복일까..
일상이 주는 타성에 젖은 내가
변화를 느끼기에 열흘간의 인도는
너무도 먼먼 이국의 땅..
순례자도 구도자도 아닌 평범한 한
여행자의 눈에 그곳은 내 의식의 일단도 넓혀주지못한 막막함이었고, 삶의 근원적인것들에 다가서기에는
지독한 흙먼지와 무섭기조차한
거지떼들(조직적인 앵벌이행렬들)이
자꾸 내시선을,내가슴을 걸어잠그게
방해했을뿐,
다만,
꿈꾸듯 찾아간 갠지스...
종착역에 다다를쯤 만난 그곳은
연극무대로서의 삶의 전모를
한눈에 펼쳐보인 대 파노라마..삶과 죽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울림의
무대...
내가 그곳에 간 이유를 알게해주었던
실로 소중한 대답이 되주었다 ..
틀에 갖힌 나를 또렷이 보게해준
거울과도 같았던 시간..
인도행은 그렇게 쓸쓸한 결론을
내게 던진체 막을 내렸지만
추억은 언젠가 예기치도 않은곳에서
바람처럼 찾아와 나를 두드리리라..
함께했던 사람들의
환한 미소와 함께...
47명의 대부대가 떠난 인도여행의
첫번째 이야기는 아무래도 도착비자사건,
해외여행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남을만한 대사껀....
방콕을거쳐 뭄바이에 도착,입국장한켠의 비자신청창구에 관련서류 뭉치를 건넨 시각은 현지시간으로 밤 아홉시경, 비자스템프가 날인된 여권을받아든 시각은 다음날 새벽 두시경,
장장 다섯여시간의 대사투였다.
꿈도 야무지다고 했던가..
나는 당초 서너시간 걸린다는 소요시간을 당겨볼 욕심으로 어설픈 영어실력에 ,미인계(??)까지 불사하며 please..를 연발, 밀실로까지 불려가 최고결재권자인듯한 상관에게
시시콜콜 심문절차 밟고,그 와중에 정중한 아양까지 떨었건만~급기야
날을 넘기고 말았으니..결국은 급행료를 달라는 얘기구나~노골적으로 직구를 던져보았건만, 그것마져도 불발 한사람한사람 수작업으로 직업까지 일일이 기재하는 촌극벌리기를 서너시간..드디어 비자피 지불,이제
끝났구나싶더니만,압권은 지금부터..
아뿔사, 영수증받는데만 족히 한시간 넘게 걸리다니~상상을 초월한 대단한나라,인도가 그 진면을 화려하게
신고한셈이다..입국장을 빠져나오는데
초면인 동행한분이 다가와서는 진지하게 건네신다 " 원장님은 참 행복한 분입니다. 이 와중에도 불평한마디 하지않고 웃어대는 순한양들을 거느리셨으니..." 도저히 납득이 가지않는다는 불만어린 눈치가 역려했다. 여행내내 이분은 자청해서 여행전과정을 모니터링해주셨고,여러번 긍정의 중간보고를 해 주시기도 했는데, 급기야 마치 성지순례와도 같은 감동의 여정이었다는 피날레고백을 남기신 교수님이시다.
한눈에보아도 쓸쓸해보이는 가이드,샷시와의 첫만남,
제대로된 자기소개도 없이 조금은
어설픈 안내를 받으며 우리 일행이
호텔에 들어선 시각은 새벽세시.
한참을 뒤늦은 도착으로 룸배정에
빨간신호등 깜박,더블베드 여섯개의
혹들이 기다릴줄이야~ㅎ
담날,아니 그날 아침 부페
첫식사는 메뉴도, 반응도 모두가 굿~!
잠을 설친 고생을 메우고도 남는 성찬이었다.
첫목적지 도브가트로 향하는길
버스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인도최대의
상업경제도시 뭄바이의 속내는 참으로 충격적인 모습으로 첫인사를 건네오고 있었다.서울역노숙자들의 환경은 차라리 호화판 별장, 도로변에 마치
내다버린 쓰레기더미처럼 여기저기 거지들이 일가를 이룬체 질긴목숨들을 연명해나가는 모습에 비감한체 아득해졌다..
최하위집단 수드라,그중 불가촉천민들의 지구상최대의 빨래터도착
뭄바이관광의 어엿한 주연이된지 오래..세탁기를 놔두고
저런곳에서 빨래를 하다니.. 도저히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여 물었더니
불가촉천민들에게 일자리를 보존해주기위해 이어올수밖에 없다는
대답,우리가묶는 호텔들의 시트들이
전부 이런곳에서 빨아오는 거라고하니
결국 인도가지닌 지독한 문신과도같은 카스트제도가 이방인의 잠자리에까지 그 존재감을 드러낸체 살아숨쉬고있는 셈이다. 씁쓸한체 발길을 돌리는데
수로한켠에 놓인 붉은화분하나가 내눈에 들어왔다. 어쩜 저들에게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일상일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도비가트를 나와 향한 곳은
고딕양식의 19세기 영국인들에의해
세워진 빅토리아기차역,오랜 노구의
그 역은 지금도 바삐 사람들을 실어나르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였다.
마린드라이브 해변을 돌아 다음 다다른곳은 웅장한 타지마할호텔과
게이트 오브 인디아..
뭄바이관광의 일번지다.
일찌기 서구열강들에 의해 지참금으로
바쳐진도시 뭄바이가 1911년 영국왕의 방문기념으로 세운 문이라는데 식민통치를 끝내고 이 문을
통해 본국으로 당당히 향했다하니 적과의 평화로운 이별의식이 그저
낯설게 느껴졌다
서구화된 뭄바이가 지닌 부의 상징과도 같은호텔 타지마할,단지 인도인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투숙을
거부당한 인도갑부가 세운 이 호텔은
인도인의 자긍심을 세운 건축물로
몇년전 파키스탄회교도들에게 테러를
당해 보안검문후에야 들어갈수 있었다
호텔문 하나로 나뉘어진
뭄바이의 두얼굴,
동전한닢을 구걸하는 손들로 넘쳐나는
빈곤과 럭셔리한 장식들과
명품샵들로 풍요롭게 반들거리는
호텔내부...이곳이 인도인가 싶었다..
아우랑가바드로의 이동을 위해
우리는 간디생가방문을 델리에서 하기로 하고 점심후 공항으로 향했다
엘로라와 아잔타석굴이 우리들의 목적지.하지만 인도인들이 믿는다는
수많은 신중에 비행기신(~??ㅎ)에게
간절히 빌었건만 무심한 짝뚱의 그신은 보기좋게 우리를 외면한체 두시간가까이 연착하는 사태발생, 엘로라오후일정은 일찌감치 포기한체
트랩에 오를수 밖에...데칸고원의 창문이라하여 부여된 이름, 아우랑가바드는 평화로운 농촌 시골도시라는데,입국장에서 짐을 찾고 있자니 밖에서 카메라 플래쉬세례와
꽃다발을든 환영인파들이 야단이다.
국방장관이 방문을 했다나.. 아직은
순박한 그들의 인심을 보는것같아 정겹게 느껴졌다.
얼마간을 달렸을까...어둑어둑해질쯤
다다른 호텔은 리조트식 전원호텔로
샷시는 자기가 좋아하는 곳이라며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는데,방배정을 끝낸후 가이드들은 외부다른 숙소에서 자야한다며 돌아서 나가는데,방금전 좋아라하던 샷시모습이 떠올라 그 영문을 물어보니 방값이 너무 비싸 감당이 안되는 모양,나는 얼른 매니저를 불러 사기를 쳤는데,내용인즉 오늘밤 중요한 일정논의로 가이드들이 이곳에서 자지않으면 큰일난다고 엄포를 떨었더니 결과는 대성공,수영장한켠에 아늑하게 자리한 식당에서 우리일행은 물론 가이드둘도 편안한 저녁식사를 만끽, 수라바야의 브로모커티지가 생각나는 이국적인 밤
만찬 메뉴도 맛도 동그라미.
행복으로 충만한 밤,
비는 내리고 우리는 야외만찬장에서 맥주파티로 이어지는
여흥을 만끽했는데,나국장님의 즉석
사회와 구국본(이번 여행 최대 히어로우중 한분인,빼고 돈벌고 박고 돈버는 치과의사)님의 무궁무진한 음주기술은 딸꾹씨의 그것을 한차원 뛰어넘는 묻지마식 폭탄세례와도 같은 신기였으니,너무 웃느라 가슴한구석이 터질듯이 아려오기도 했다
다음날 새벽네시 알람에 눈을떠보니
아직도 비가 오는 모양
건기에 예외적인
현상이었지만 우산도없는 나는
무작정 반가운 아침인사처럼느껴졌다
일찍 당도한 엘로라석굴
공식적인 개장시간보다 앞선 도착이었는데도 현지가이드가 조치해둔덕인지 안내원이 쉽게 문을 열어주었다.
거대한암벽을 통채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뚫어서 만들었다는 16번석굴,내게는 두번째 만남인데,
여전히 경이로왔다.
불교가 자연사한뒤 불사신처럼
살아남은 힌두성전,적어도 인도인들에게 석가는 단 한줄의 존재감조차도 없는 잊혀진 과거지만
히말라야의 시바신의 신전이라는 카일라스산을 재현한 카일라석굴은
영구히 빛나고 있었다.
시간관계상 그곁의 자이나교 신전을
못본체,아쉽게 발길을 돌려이동한곳은
아잔타석굴,석굴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시기적으로도 기원전 2세기부터 700년,불교문화의 최전성기, 굽타왕조시대까지 조성했다고하는 불교문화의 보고,
엘로라가 그 웅대함으로 빛나는데 반해 아잔타는 역시 매혹적인 프레스코화의 아름다움이리라.
예배공간 차이트야와 승려들의 거주공간 비하라.한평도 채되지않을듯한 공간의 그곳에서 그들이 할수있는것은 수행만이 최상이었으리라..실크로드 돈황막고굴에서 느꼈던 인간이 지닌
종교성..그 끝모를 깊이에 다시한번 아득해졌다.
과연 내신앙은 유효한가...차마 비교조차도 할수없는 보잘것없는 습관만이 아른댈뿐,
열망을 상실한 단지 기복으로서의
신앙은 적어도 이곳에서는 쓰레기에
불과하리라...
부처님의 전생과 일생으로 가득채운 벽화들,나는 그 일단조차도 속시원히
들어오지않아 답답했으나 1번굴에서든가..
연화보살상의 벽화앞에서 나는 숨이
멎는듯한 도취에 빠진체 한참을
머문체, 신의 손인듯한 그 색체감의
신비에 할말을 잊었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이에 비할까..
대체
반사되는 한줌의 햇빛과 바람에만 의지한체 무생명의 돌에 이토록 찬란한
생명을 불어넣은 저들의 집념은 어디에서 왔을까.. 경이로움만으로는
부족한 인간이 지닌 신성이라니....
단체사진을 찍는내내 난 상념에 젖어들었고 델리로의 이동시간때문에 허둥대듯 아잔타를 빠져나오는데
비에젖은 분홍빛 부켄베리아꽃들이 아쉬운 맘을 달래주려는듯
여기저기서 웃고있는게 눈에들어 왔다
델리로가기위한 공항으로의 이동
거리에 천막을 두른 집들이
여러체 눈에들어왔다.
남루했지만 이상한 평화가 감지되는
풍경, 짚시들의 주거공간으로
짚시의 원조는 에스파니아가 아닌
인도란다..
두번째 국내선 비행기로의 이동
뉴델리에 도착,여장을 푼곳은
꽤나 럭셔리한 호텔
과연 수도 델리답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터내셔날 그 자체
european.japanese.chinese
게다가, 코리안까지..그야말로 만국박람회장과도 같은 축제분위기..여행지에서의 저녁은 그렇게 슬슬
닳아오르고 저녁식후 외출에 나갔다 먼지폭탄에 몇걸음 내딛다말고 돌아온 일행들은 호텔바에서 와인파티로
잠들지않는밤 달랠수 밖에...
이튿날 약속된 시간보다 20분이나
빨리 식사장소에 내려갔는데
이게 웬일...이층으로 올라가란다
전날 그렇게 밀려들어오더니
결국 식사공간이 부족,우리는 한지붕
두가족의 신세로 헤어진체 식사를
해야했다..
인디아게이트와 대통령궁등을 지나
첫번째 도착한곳은 간디생가
암살전 사업가의 주선으로 머물던
생가인데 저녁기도차 정원으로 나오다가 부하가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는데,그 마지막 발자욱들을
그대로 새겨둔게 이채로왔다.
240정도 발싸이즈의 작은 거인,
간디동상에는 영어로 "martyrdm" 순교라 적혀있었고,
기념관 뒷쪽 건물외벽에 적힌
"my life is my message"란 문구가 내안에 들어왔다.
신음하는 민족을 구해낸 별,간디는
분명 그들에게는 무소유의 현자뿐 아닌
신으로서 추앙을 받는 모양,하지만
샷시가 무심코 뱉은 "그는 무능했을뿐.."이라는 말이 계속 가시처럼 걸렸다
다음 행선지는 "꿉트미나르"
노예신분으로 왕조를세운 아프카니스탄인이 12세기말 힌두정권을 정복한 기념으로 세운
일종의 전승탑으로 모스크를 세우고 탑을 축조, 30여년에 걸쳐 완성한 그들의 끈기가 놀라왔다.그런데
내기억속의 이곳은 뾰족한 왕관모양의 미나르뿐, 수많은 건물터와 무덤,왕궁들이 내가 이곳에 왔었든가 싶었다.
다음 행선지,한 회교사원으로 향하던 노상에서 맞닥드린 일요일의 도둑시장,
우리네 재활용품보다도 못한
쓰레기같은 옷들을 사고팔기위해
거리로 나선 젊은이들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도 않는, 마치 거대한 초파리떼들의 물결처럼
이방인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총칼없는 전쟁터나 다름없는
생존의 현장이었다.
한국식당에서 모처럼 김치찌개백반으로 회포를 푼후
자이푸르로의 이동,
이제부터는 모두가
육로이동,인도여행의 진수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8세기 무굴제국의 계획도시,
"자이푸르"
이번여행 코스중 가장 생소한
도시중 하나인 이 도시는
숨겨진 비밀병기로 적잖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유목민들의 피속에 대체 저토록 화려한 문양의 예술혼이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현재까지 주민등록증제도가 없는 인도에서
세계최초로 ID카드가 통용되었던 계획도시, 도시전체가 발코니로 연결된체
도시전체를 완성해놓고 나서야 사람들을 입주시켰다고하니 화려하기 짝이없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이도시는무사계급의 영주가 살던 도시란다.
무굴제국의 위대한 지도자
악바르대제가 사람의 마음을 얻는
큰 리더십을 발휘, 무사계급의 성주들을 포용정책으로
감싸안아 끝내는 남인도 영역까지 통치했던 전성기를 구가했다고 하니
동서고금의 진리는 만고불변
민심이 천심인 셈,,
암베르성
언덕위에 자리한 이 성에 입성키위해
우리일행들은 짚을타고 이동했는데 하나같이 거대한 코끼리등에 실려 마치 개선장군처럼 위풍당당하게 입성하는 유러피안들을 보니
순한 유전자의 우리들과는
대조적으로 호전적 기질의 게르만이나 앵글로 색슨들의 후예들은 어쩔수가 없꾼...접근방식부터 이렇게 다르다니,,문화적 갭이 여실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성문을 들어서 보니 영락없는
대 축제의 향연,악사들이 여기저기서
연주하고 무희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것만 같은 분위기...
두시간여를 둘러본 성 내부는 화려한
보석장식은 물론,바닥을 비추는 천정의
거울장식까지...
그 오묘하고 정교한 기법과 아름다움은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건축물로
타지마할조차도 세부기법면에서는
후순위였으리라...
빌크린턴이 몇번씩 찾아왔다고하는데
보는 눈은 매한가지,,
이곳은 차라리 거대한 하나의 요술램프, 마법의 성과도 같았다.
꿀맛과도같은 성 방문을 마치고
내려와 씨티팰리스에서의 무기박물관과
섬유박물관을 둘러본후 점심식사전
막간을 이용,몇년전 인도여행에서 경험한 헤나문신을 자청,
인도여행의 성공을 향한 작은 다짐과도 같은 문양들을 저마다 새겼다..
네모난 난간으로 둘러쌓인
테라스가 아름다운 호텔,
Holyday Inn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아그라로 이동할 차례
느닷없는 2호차가이드의 무리한쇼핑계획 발언에 난 한국의
에이전시와 원칙대응할것을 밝혀두고는 곧바로 여사장과 전화,
사태수습에 나섰고 급기야 원하면
가이드교체까지 해주겠다는 초강수의
대안까지 확보했지만, 머리가 아팠다
타지마할의 도시,아그라
내게는 두번째 만남이다..
버스가 진입하기위해 문이 열리자
내눈앞에 펼쳐진 정원풍경은
육년전 내가묶었던 그 호텔의 그것,
내부로들어서니 긴 대리석장식의 회랑들이 영락없는 두번째 인연의
그 장소였다.
늦은 저녁에 우리일행은 단체로 짐가방을 포터에게 부탁키로하고 곧장
식당으로 향했는데 이미 부페식당한켠에는 유럽인들단체가
만찬을 즐기고 있어 이곳이 세계적인
명소,타지마할의 도시임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내방짝 명순님과 지갑분실사건의 행운의 주인공,청명선생이 내는 맥주파티로 만찬의 분위기는 최고조,
인도의 맥주는 탄산수가 섞인듯한 산뜻한 맛이 일품,여기저기서 원더풀을 연발해댔다..
몇시간후면
드디어 타지마할과의 만남이라니..
두번째이지만 쉽게 잠이들지않았다
이번여행의 닥코스,타지마할
두번째만남의 이 명작은 육년의 시간을
뛰어넘어,아니 몇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도도히 빛나고 있었다..
한 남자의 사랑이 빚어낸 불가사의,야무나 강변을 사이에두고
먼저간 아내를 바라보기위해 달밤에는
망루에 나와 절절히 울었으리라..
넓은 정원에 우주를 끓어들인 사자한에게 뭄타즈를 향한 사랑은 이미 종교로서 승화되었을터,
불멸의 사랑이 탄생시킨 불후의 명작은 무덤을 뛰어넘어 신에게 바쳐진 한편의 대서사시가 아니었을까..영원히 바래지않는,,
점심식사후 도착한 아그라성은
무굴제국의 다섯번째 황제 사자한 이전부터 각자 기호대로 지어진 양식이
재미있게 혼재,대비되는 성으로
건축광이며 특히 흰대리석을 좋아했던
젊은날의 사자한이
어느날 궁안에서 열린 바자르에서 각설탕을 팔던 아가씨의 웃음소리에 반해 운명의 여인을 만났나던 넓은 광장이나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된체 칠년간을 강건너 타지마할을 바라보다가 쓸쓸히 죽어간
팔각형의 망루도 쓸쓸하긴 매한가지...
내려쬐는 태양만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뿐,영원한건 없었다..
두곳의 답사를 마치고 호텔에
돌아온 시각은 세시반경,
아그라쇼를 보기위한 여섯시,로비에서의 만남까지는 두시간이 넘게 남는 모처럼의 휴식시간
하지만 배상태가 심상치않았다
한국말 번역이 나오는 해드폰을 끼고
본 아그라쇼는 사자한과 뭄타즈의 러브스토리를 다른 뮤지칼풍인데 중간중간 인도고유의 무용이 삽입되기는 하나 천편일률적인 동작과 멜로디가 밋밋 그자체, 차라리 웃음이
나왔다. 난,뭄타즈의
"전하,하늘과 땅을 비교하지말아주세요"라는 대사의 뜻을 알고싶었으나 가이드 샷시도 갸우뚱, 알수가 없었고
네루대학 한국어과 여교수의 나래이션은
60년대 극장의 변사의 그것과 어찌나 닮았는지...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엄습해온 한기에 난 저녁식사는 엄두도 못내고 바로 객실행,
이틀여간의 투병기가 시작될줄이야~
다음날
오르차로 가기위한 첸시역까지의
기차이동.. 아그라역은 지금까지의 어느 순간보다도 가장 리얼한 인도의
실상이 생생히 느껴지는 그야말로 인도다운 풍경, 앵벌이를 나온 여자들이 저마다 간신히 목숨만 할딱이고있는 아기(훔쳐온 아기라고 함)를 안은체,젖병을
들고 구걸하는 모습들이 진을치고 있었다..
컨디션 난조로 오르차에서 본 고성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겨우 따라다니느라 힘만 들었다
드디어 카주라호로의 이동
호텔에서 누룽지끓여 아침대신으로
떼우고 나선 카주라호 힌두사원은
새벽의 맑은공기가 모처럼 반갑기 그지없었고,인도에서 훍먼지만 없다면
인도가 훨씬 다르게 다가올텐데.,하는
확신을 들게 해주었다
"카마수트라"
인도인들이 오래전부터 가르쳐온 성교육지침서다.
이미 여러차례 교육을 통해 봐온
남녀교합상들과 잡다한 성행위묘사장면들은 실제로 보니
오히려 전혀 야하다기보다는,그저
그들의 뛰어난 조각솜씨에 감탄이 나올뿐이었다. 이슬람이 들어오기전
자유롭게 성을 향유했다는데,눈앞의
조각상들이 그 사실을대변해주는 듯
했다..오늘날 자유연애조차도 불허한다는 현실은 대체 이 조각상들앞에서 어떻게 이해해야하나...지금이나 그때나 욕망의 실체는 동일할텐데, 그욕망을 대하는 사회적인식은 하늘과 땅으로 벌어졌으니, 그들이 믿는
시바신만은 그 이유를 알까...
이번여행의 하이라이트
바라나시로 향하기위해 버스에 시동을
건 시각은 열시가 조금못된 시간
장장 열두시간의 대장정이란다
허름한 도시락과 노상방뇨 서너번
그래도 바라나시로 향하는길은 멀고도 멀었다
묘기에 가까운 버스운전사들의 운전실력은 여러번 충돌위험을 절묘하게 피하더니 급기야 마주오던
차와의 직면 앞에선 속수무책,고장난 후진기어 겨우 손보고, 길가에 주차해둔 대형트럭운전사들,어디서
나왔는지 하나?둘 나타나더니 이윽고
정체풀려 호텔에 도착한 시각은
밤 열두시 , 열네시간의 대사투 끝에
호텔도착,그래도 저녁 굶을쏘냐..
야식인지 저녁인지 대충떼우고 다음날
갠지스일출을 보기위해 새벽 다섯시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버스에서내려 십여분간 걸어가는,갠지스로 향하는길
그길은 악취에. 소똥인지.. 사람똥인지
집요하게 달라붙는 거지떼들에...
눈도 코도 땅바닥을 살펴야하는 내시선도 그야말로 아수라장,어느한회원은 지옥이 꼭 이런 모습일꺼야? 라고 푸념이다
이윽고 갠지스도착
이른 새벽부터 성스러운 계단,가트위는
목욕키위해 나온 힌두교도 현지인들과
장사아치,거지들로 가득넘실댔다
강폭은 생각만큼 넓진않은게 눈에 들어왔고 갠지스강물은 새벽부터 그 성스런 소임을 다하기위해 한없는 그 품을 내주고 있었다
배에올라 촛불을밝힌 꽃배를 띄우고나니 동녁에서 일출이 감지되었는데,갠지스여신의 기호일까
붉은빛의 하모니도. 강렬함도 없는
심심한 태양하나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가트위에 자리한 건물군들을 따라
갠지스를 훑는 차례..
임종이 임박한 사람들이 와서 묶는집
수드라왕의거처,산스크리스트어대학,
인도에반해 인도남자와 결혼해 운영한다는 게스트하우스 등등...
건물들을따라 흐르다보니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곁에서는 빨래를 하고,
또다른 곳에서는 죄를 씻겠다고 차가운
강물에 몸을담그고...
연기가 피어오르는곳을보니 시체가 거의다 타고 주변엔 흐느껴우는 유족도
구경꾼도 ..별다른 아무것도 보이지않았고 잠시후 또다른시신이
다음순서를 향해 들것에 들려 들어오고있었다
화장을위해서는 반드시 이곳 수드라왕의 허가가 나야한다는데
브라만도 최후 시바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만큼은 수드라의 승인이 필요하다고하니 참으로 절묘한
카스트의 운행법칙이 아니던가...
삶과죽음이 같다더니
행여 이 명제에 불복하고픈자는 갠지스로가라~!!
그들에게 화장터에서 나는 연기는
저녁밥짓는 굴뚝의 연기와 하등의차이가없는 하나의 것
나는 비로서 내가 인도에온
정확한 이유하나를 갠지스강에서
건져올렸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목적지 보드가야로 가기위해
버스에 올라 내가 슬쩍 던졌다
"I came back from the hell(지옥)"
그러자,
바로 샷시가 받는다
"I came back from the heaven(천국)
우린 서로 웃었다...
마지막 여정의 종창역,보드가야
호텔한켠의 선물숍에서
한바탕 스카프구입쇼를 벌인후 우리일행이 나선 곳은
부다가 깨달음을얻고 설법을한 불교의
성지,보드가야
..
다섯명의 비구를 접견했다는 곳과
녹야원을 들러 우리가 들른곳은
양치기목동 출신으로 고행의 붓다에게
유미죽을 봉양했다는 수자타의 집터인지, 탑인지 하는곳을 들렀는데
때마침 소풍나온듯한 꼬마들과 한바탕
사진찍고 선생인듯한 노인에게 한 회원이 사탕이라도 사주라며 2불을 주자 얼른 받아체는게..아뿔싸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들 도착시간에 맞춰 소풍나오는 아이들이란다
대각사
드디어 종착역이다
세계최고의 불교성지, 그 위상에 맞게
맨발로 들어가야한다는데
형식은 때로 내용을 지배하는법,
자유로움에 내 육신과 맘까지도 조금은 가벼워지는듯 상쾌했다
득도했다는 그 지점엔 몇백년쯤 되보이는 수령의 보리수 나무가 심겨져 있었고,득도후 7일단위로 석가모니가 머물렀다는 지점들을 다 섭렵하고난후 자유시간...불교가 사라져버린 인도의 불교성지 한켠엔 링가가 모셔진
힌두인들의 성전이 버젓이 모셔져
있었고 , 티벳과 미얀마등지에서 온 외부승려들만이 성지로서의 자존심에 부합하려는듯 오체투지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내 모든 일정을 다 마치고
마지막
점심식사를 위해 호텔로 돌아오는
차에 오르는데 샷시가 이상한 과일한조각을 건넨다..구아바란다
구아바 두봉지를 사들고 나는
마지막 인디안 푸드를 즐기기위해
식당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인도와도, 1호차 가이드 샷시와도
이별할 시간..
보드가야공항으로 가는 길에
나는 샷시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했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에 오면 숯불고기파티를 꼭 열어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여행을 마치면서 가이드와 나눈 최초의 약속이다.
인도를 사랑하고 오래도록 인도가 인도스럽게 남아주기를 바라는
순수한 영혼의 인간,
송정바닷가에서의 3일이 지금까지 삶의 최대행복이었다고 웃으며,
그러나 진지하게 고백하는 그는
자칫 난기류에 표류할뻔 했던 인도여행을 순항케해준 고마운 친구였다..
이번여행도 언제나처럼
고마운 분들이 많다
매순간 수시로 인원첵크에 여권전달에
수고아끼지않은,막강 역할의 조장,,
황지선, 임형주,김숙자,손주남,이동순
김정희1님들
사진찍어내느라 제대로된 답사는 애초부터 반납한 김흥태 박선희 님
1호차 인원파악의 최후사렁탑이자 내 인디커플에 행운 안겨준..ㅎ 김선섭님
2호차의 모든것은 내게 맡겨라
세분의 친구 대동하고 하루도 술잔놓은적없는 막강저력의 오만이님
행여 분위기처질쎄라 실탄 팍팍쏴주신
임남천,김명순,김흥태,김순란,윤준원님
과일값 찬조해주신 김영동님
이른새벽 행여빈속의 허전함일까싶어
맛난떡 들고오신 김필진님
소리없이 적재적소에서 저를 도와주지던 언제나 든든한 울나국장님
양쪽차 번갈아 오르시며 답사지에
포동포동 살을 입혀주시고 ,2호차에서
야전사령관 역할 훌륭히 해내주신 봉촌샘
멀리 한국에서
크고작은 문제들 빠르게
해결해주신 세일의 여사장님
마지막으로
한마디 불평없이 잘
따라와주신 모든 회원분들께
감사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vv
첫댓글 아마도 단 하루만에 쓰신 것 같은데! 원장님의 글 솜씨는 빠르고 빼어납니다.
그리고 외대교수로 계시면서 학계에 막강한 영향력 발휘하시는
정남진 교수님이 이번 답사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셨습니다.
"인도답사에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이 답사는 그냥 답사가 아니라 성지순례입니다.
저는 개신교 장로인데 인도답사를 통해서 이슬람교를 비롯한 흰두교 불교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고 돌아가 열린 마음으로 타종교를 바라 볼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문화아카데미에 대해서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라 하시면서 이번 답사를 높게 평가하셨습니다. 답글 | 수정 | 삭제
우선 10일간의 긴 여행에서 아무런 사고 없이 많은 지식을 쌓고 체험을 하시고 돌아오신것을 반갑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긴 여행길을 상세하게 전해주어서 동행하지 못한 사람들 까지 흥분 하게 만든 것은 필력인지 끈기 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공간에서도 좋습니다 만 좌석에 이야기도 기대하여봅니다 진솔한 보고서 감사합니다. 이제 여독을 풀어야지요
역시!
안가봐도 가본듯
꿈결같이 느껴지는
인도 여행기의 맛깔스런
글솜씨~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