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인간에 대한 예의 (1) 사건의 발단, 인천 5·3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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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만도 못한 권력 ‘5·3 사태’의 파장은 심각했다. 전두환 정권은 사건 관련자 319명을 연행하여 129명을 구속했고 37명을 수배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 권인숙도 정권이 눈에 불을 켜고 ‘위장취업자’ 등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통장의 신고로 6월4일 경찰에 연행되었다. 권인숙의 죄목은 공장에 취업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고치는 등 공문서 위조를 했다는 것이었지만, 경찰의 주된 관심은 권인숙으로부터 5·3 사건 수배자들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는 것이었다. 이때 문귀동이라는 자가 권인숙에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몹쓸 짓을 했다. 권인숙은 교도소 내에서 용기를 내어 그 끔찍한 일을 면회객들을 통해 밖으로 알렸다. 가족들이나 가족들이 선임한 공문서 위조 사건의 변호사는 권인숙에게 조용히 있으면 기소유예나 집행유예가 될 수 있다고 만류했으나, 권인숙은 또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전신인 정법회에서는 권인숙이라는 여성이 감옥에서 변호사와의 만남을 간절히 원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상수 변호사를 보냈다. 권인숙을 면회하고 온 이상수 변호사의 충격적인 얘기를 듣고 조영래, 홍성우 변호사 등이 한걸음에 달려갔다. 몇 년 전부터 이런저런 풍문으로 떠돌던 성고문의 실체는 이렇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한 달 만인 7월3일에는 권인숙이, 7월5일에는 조영래 등 변호사 9명이 문귀동을 정식으로 고발했다. 당시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으로 5공과 6공 시절 권력실세의 한 사람이었던 박철언에 따르면, 경찰, 검찰, 안기부 등 공안당국은 “권인숙이 허위사실을 주장하고 있으며 심지어 급진 좌경 사상에 물든 나머지 혁명을 위해 성적 수치심마저 이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안기부 인천분실장이 7월10일에 올린 보고서에도 권인숙이 성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6월6일과 7일에 문귀동은 집에서 쉬고 있었고 조사한 일이 없다고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잘못된 보고서를 토대로 안기부장 장세동은 7월11일 열린 안기부 확대 부서장 회의에서 “현 상태에서는 공권력 마비를 위한 공산 세력의 조작이다. 사실대로 수사하여 진위를 가려야 한다. 수사 결과에 따른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편 말에 더 귀 기울이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는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권력은 눈을 감았다. 아니 눈을 감기로 했다. 이 사건의 본질이 “문귀동이라는 한 변태 성욕자가 우발적인 충동에 의해 저지른 단독 범행이 아니라 경찰관료 조직 내부의 의도적인 성고문 계획에 따른 자행된 조직범죄”였다는 점은 권력의 판단력을 마비시켰다. 도마뱀은 꼬리라도 자르건만, 권력은 도덕성은 물론이고 도마뱀만한 판단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뒤집혀진 조사 결과 당시 인천지검장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김경회 변호사는 회고록에서 권인숙이 문귀동을 고발한 다음 날인 7월4일 법무부 장관 김성기가 “경찰에서 권인숙을 명예훼손과 무고로 맞고소하면 받아줘야 할 것 아니냐”며 신경질적인 전화를 했다고 밝혔다. 장관의 전화가 있고 두 시간이 채 안 돼 인천경찰국장 유길종 등이 찾아와 경찰에서 조사를 해보니 성고문이란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이라며, 상부의 지시로 경찰을 무력화하려는 권인숙을 무고 혐의로 맞고소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들이 돌아간 후 경찰은 곧 고소장을 접수시켰다. 도둑이 매를 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김성기는 내무장관 정성모와 협의를 한 뒤 김경회에게 압력을 가한 것이다. 법무부는 이 사건이 “초임 검사도 처리할 수 있는 50 대 50의 사건”인데 검사장 김경회가 신속히 수사하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양쪽의 고발을 받은 뒤 문귀동과 권인숙을 모두 무혐의 처리하라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처음 인천지검은 나름대로 의욕을 갖고 사건을 수사했다. 검찰은 경찰서 유치장과 인천교도소에서 권인숙으로부터 성고문 사실을 들은 수감자들과 경찰관 등 43명을 소환하여 진술을 받았다. 인천지검 검사 남충현은 변호인과 기자들에게 “나중에 결과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공정하게 수사를 했는지 알 것이다”라고 호언했다. 그런데 7월16일의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는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검찰은 권인숙이 조사받은 방은 안이 들여다보이는 곳이고 다른 경찰관들이 옆방에서 날씨가 더워 모두 문을 열어놓고 왔다 갔다 하는데 성고문이 있었다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고, 단지 문귀동이 조사 중 티셔츠를 입은 가슴 부위를 몇 차례 쥐어박은 사실이 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검찰은 문귀동이 조사에 집착한 나머지 우발적인 과오를 저질렀지만 “그는 이미 파면처분을 받았고 지난 10년 이상 경찰에 봉직하여 성실하게 근무하여 왔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과오를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하여 문귀동을 기소유예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실제 조사한 내용과는 전혀 다른 발표였다. 성, 혁명의 도구? 고문의 도구? 더구나 검찰은 수사 결과 발표문 말미에 ‘사건의 성격’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달아 기자들에게 배부했다. 이 보도자료는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서동권이 나중에 국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검찰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 안기부와 문공부에서 작성한 것이었다. 권인숙은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는 운동권”으로 매도되었고, 안기부는 운동권이 “성을 혁명의 도구화”하고 있다고 펄펄뛰었다. 보도자료는 이렇게 주장했다. “급진좌경사상에 의한 노학연계 투쟁을 전개해왔던 권인숙의 ‘성적 모욕’의 허위사실 주장은 운동권 세력이 상습적으로 벌이고 있는 소위 의식화 투쟁의 일환으로서, 폭행 사실을 성 모욕행위로 날조, 왜곡함으로써 자신의 구명과 아울러 일선 수사기관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반체제 혁명투쟁을 사회 일반적으로 확산시켜 정부의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판단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사
첫댓글 당시에 이 사건과 관련된 유인물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눈을 감기로 한 권력의 비겁함과 무능때문에 평생 억울함에 죽을 것 같은 피멍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