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알게 하리라 - 만일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과 맞사울 장수로 이스라엘에서도 최대한 비슷한 조건의 용사를 고르고 골라 내보내어 혹시 이겼다면, 그 싸움의 모든 영광은 그 승리한 용사에게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골리앗의 조건과는 모든 면에서 너무나도 현격한 대조를 보이는 다윗이 '창 칼 없이' 막대기와 물매만으로 승리한다면, 그것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여요, 오직 그 이름만이 영광받을 것이었다. 따라서 소년 다윗은 이러한 점까지 내다보면서, 진정 골리앗의 창칼이 썩은 지푸라기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이스라엘의 거인 하나님과 함께 나아갔던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 이 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전쟁의 하나님'으로서, 곧 (1) 모든 전쟁의 승패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 좌우되며 (2) 또한 그러한 모든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뜻이다.
[사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판결하시리니 - 앞에서 율법의 수여자 혹은 인생의 행할 길을 가르쳐 주시는 참된 교사로 그려졌던 여호와가 본문에서는 민족들 간의 분쟁을 조정하며 판단하시는 재판관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판결과 중재가 가능한 것은 열방들이 율법의 말씀으로써 삶의 지침을 삼고 그 뜻에 기꺼이 복종하려 하기 때문이다.
'판단하다'는 '다스리다', '왕노릇하다'나 '징벌하다'는 뜻보다는 '중재하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만들 것이며 -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될 때 전쟁도 더 이상 필요없게 된다.
그날에 사람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파괴적인 목적을 위해 제작하였던 칼과 창을 생산적인 농기구로 바꾸게 될 것이다. '보습들'은 당을 갈아서 흙덩이를 일으키는 도구이며, '낫들'(마즈메로트)은 쓸데없는 가지를 잘라내는 전지용 가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