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를 고치게 된 사연
강동구 암사동에 위치한 112.2m2(34평) 아파트는 재건축이 끝나 이제 막 입주를 시작한 새집이다. 아직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멀쩡한 집을 뜯어고치게 된 것은 맘에 드는 곳이라곤 한 군데도 없는 인테리어 때문. 집주인 양진영 씨는 다른 것은 다 눈감을 수 있었지만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체리색 일색인 바닥과 몰딩은 도저히 참아낼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개조를 결심한 후 온갖 잡지와 인테리어 관련 사이트를 뒤지고 구경하는 집을 몽땅 보러 다녔지만 개성 넘치는 그녀의 눈을 만족시키는 스타일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알게 된 이가 스타일리스트 이길연 실장. 본래 같은 아파트에 입주한 동생이 이길연 실장에게 개조 작업을 의뢰했었는데, “신축 아파트를 부수는 것은 죄짓는 일”이라며 거절한 상태였다고 한다. 마음이 급했던 양진영 씨는, 어차피 부술 것인데 이왕이면 잘 부수고 싶다며 스타일리스트를 설득해 결국 개조 맡기기에 성공(?)했고, 집주인의 과감함에 스타일리스트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개성 넘치는 공간이 탄생됐다.
1 이 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은 단연 에폭시를 깔아 만든 작업실이다. 미술 작가인 남편 역시 가끔씩 작은 작업들을 집에서 하는데 물감이 떨어져도 쓱쓱 닦아내면 그만이라 아주 마음에 들어한단다.
2 벽 하나에 가득 차도록 짜 넣은 책장은 합판으로 만든 것이라 내추럴한 멋도 있으면서 가격도 저렴하다.
일본풍 빈티지 스타일 작업실을 만들다
아동복 디자이너인 양진영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일을 잠시 쉬고 있던 터라 집에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본래 침실로 사용하려 했던 볕이 잘 드는 안방을 작업실로 만들고, 현관 맞은편에 위치한 작은 방 2개를 터 침실로 만들었다. 작업실의 콘셉트는 요즘 맘스웨이팅, 페이퍼 가든 등의 트렌디한 상업 공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본풍 빈티지 스타일. 빈티지 느낌을 내기 위해 천장과 벽은 노출 부분이 그대로 드러나게 두고, 내추럴한 나무 느낌 합판으로 책장과 책상을 짜 넣었다. 방과 이어진 베란다는 옹벽이어서 틀 수 있는 만큼만 튼 후 턱을 높인 공간을 만들고, 바닥에는 모두 에폭시를 깔았다. 에폭시 바닥은 본래 외장재라 실내에서는 쓰기 꺼려하지만, 먼지도 덜 날리고 청소도 편해 작업실 바닥으로 쓰기에 썩 괜찮은 자재다. 긁힐까 찍힐까 조심스러운 마루와 달리 ‘막 써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다른 공간을 고치러 온 시공 인부가 “이 방은 아직 공사가 덜 끝난 거냐?”고 물었을 정도로 보통의 가정집에서 시도하기엔 생경한 작업이었지만, 스타일리스트의 아이디어에 집주인의 과감함이 더해진 덕에, 일본 잡지에서 툭 튀어나온 듯 스타일리시한 공간이 완성될 수 있었다.
3 옹벽 턱에 맞게 단을 높여 만든 베란다는 접이식 문을 닫으면 독립된 공간이 되고 활짝 열어두면 마치 평상처럼 앉아 쉴 수 있는 재미있는 곳이다. 이렇게 단을 높이면 색다른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4 가스 배관을 옷걸이로 이용한 것은 가스 배관을 담당한 시공 인부의 아이디어. 참 감각적이다. 가스 배관 옷걸이는 노출된 벽면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것은 물론 옷감을 넉넉히 걸어둘 수 있어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예산과 욕망의 적절한 조율
하고 싶은 것은 많고, 예산은 한정돼 있고. 개조할 때 생기는 고민은 대개 비슷할 것이다. 이 집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더욱이 흔한 스타일은 싫다는 부부였기에 재료 하나를 골라도 남달랐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래서 스타일리스트는 새 아파트인 만큼 그대로 둘 수 있는 것은 가능한 한 두고 마음에 안 드는 곳만 고치기로 했다. 개조에 들어가면서 남편이 요구한 것은 딱 하나, 고재를 이용한 중후한 분위기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거였다. 그래서 거실과 주방은 고재를 사용하자 했는데, 몽땅 고재를 쓰자니 집 분위기도 어두워지고 무엇보다 가격이 매우 비쌌다. 그래서 테이블만 라쉐즈에 제작을 맡기고 나머지는 합판으로 짜맞춘 후 오일스테인으로 컬러를 맞춰 고재 느낌을 냈다. 침실 역시 마찬가지. 자재를 보러 다니던 중 눈에 들어 ‘이 벽지만큼은 꼭 쓰고 말리라’ 마음먹었던 것을 구입해 포인트 벽지로 삼았는데, 2롤을 사용하느냐 1롤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져, 1롤만 바른 후 나머지 부분부터는 흑경을 달았다. 그 밖에 큰 불만이 없었던 화장실은 건드리지 않고, 주방 역시 거실과 분위기가 지나치게 대비되는 싱크대 상판만 흑단 느낌의 것으로 교체해 최대한 예산을 조절해가며 공사를 진행했다.
5, 6 주방은 거의 그대로 두고 싱크대 상판만 교체한 후 그에 맞춰 수납장과 아일랜드 식탁을 만들었다. 투박한 원목과 크리스털이 절묘하게 조화된 다이닝 테이블은 홍현주 작가의 라쉐즈에서 제작한 것.
부티크 호텔 콘셉트 침실
작업실은 일본풍 빈티지 스타일, 거실은 고재를 이용해 꾸민 남편 스타일(?)이라면, 침실은 블랙과 실버 컬러를 믹스해 꾸민 반짝반짝하고 화려한 부티크 호텔 스타일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작은 방 2개를 터서 침실을 만들었는데 두 방 사이의 벽 역시 옹벽이라 완전하게 틀 수는 없었다. 때문에 작은 방 쪽은 드레스 룸으로 활용하도록 수납장을 짜 넣고 사이에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침실에 딸린 드레스 룸 정도의 느낌으로 연출했다. 얼핏 보면 구슬이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포인트 벽지(세덱에서 구입)는 스타일리스트와 집주인이 함께 자재 구경을 갔다가 한눈에 반해 구입한 것이다. 그 후 조명 상가를 돌아보다 벽지와 마치 세트인 양 딱 맞아떨어지는, 은색 메탈 구슬 발이 길게 이어진 등을 발견하고는 냉큼 구입해다 침대 옆에 달았다. 패브릭은 침실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도록 동대문에서 원단을 끊어다 디자이너인 집주인이 직접 제작했다. 2쪽 미닫이식 접이문은 침실이 맞은편 아파트에서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파티션 개념으로 달아놓은 것. 문 사이로 바람이 잘 통하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도 마음 놓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을 수 있도록 한 스타일리스트의 배려다.
7 흑경은 집주인이 어느 공간에든 꼭 쓰고 싶어했지만 마땅한 공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벽지를 바르고 남은 공간. 흑경 앞에는 벽지와 비슷한 느낌의 은색 메탈 구슬등을 달았는데, 불을 켜면 흑경에 빛이 반사돼 침실을 더 화려하고 분위기 있게 만들어준다.
과감한 집의 남다른 개조 포인트
이 집의 또 하나 특이할 만한 점은 집의 모든 문이 미닫이로 되어 있다는 거다. 사생활을 지켜달라 외치는 아이도 없고, 부부 사이에 문을 꼭 걸어 잠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화장실 문까지 모두 슬라이딩 도어로 바꾸었다. 슬라이딩 레일을 천장과 바닥 안쪽으로 매립해, 문을 열어놓으면 걸리는 것 없이 모든 공간이 하나로 연결된 듯 보인다. 여기에 걸레받이까지 없애 집이 훨씬 더 넓어 보이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 본래 걸레받이는 도배 마감을 위해 하는 것이지만, 내추럴한 스타일을 지향한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게 스타일리스트의 조언이다.
8 집 안의 문은 모두 슬라이딩 도어로 교체했다. 화장실 문 앞에는 거울을 달아놓았는데, 얼핏 봐서는 문이라기보다 플로어 미러를 세워둔 것 같다.
9 2개의 방을 터 만든 침실. 중간에 만들어둔 미니 테이블은 옹벽이라 더 이상 틀 수 없는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남편과 오붓이 와인 한잔 하기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