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삽질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삽으로 땅을 파거나 흙을 떠내는 것을 ‘삽질하다’라고 말하지만, 아마 다른 의미로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헛된 일을 한다는 의미로, 별 성과가 없이 삽으로 땅만 힘들게 팠다는 데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의미인 헛된 일을 의미하는 삽질을 참 많이 하는 우리가 아닐까요? 저 역시 삽질을 참 많이 했습니다.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야구부에 들어갔던 적이 있고, 기타리스트가 되어 보겠다고 방학 내내 기타만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바리스타 등등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새로운 것에 쏟아부은 돈과 노력을 생각하면 분명히 삽질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삽질로 끝난 것일까요?
별 성과가 없는 것 같지만 분명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재미난 일을 하면서 재미난 인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추게 된 것도 내 삶에 또 다른 의미가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것도 의미 없는 삽질은 없습니다. 실패에도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의미를 찾아가는 삶 안에서 나의 소중한 삶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땅에서 새 생명으로 싹이 터, 본디 그것을 낳은 식물의 본성을 드러낸다는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실제로 당신의 몸으로 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교회가 무수한 밀알로 싹이 터서 성체라는 생명의 빵으로 구워졌으며, 그 빵을 받아 모시는 우리 안에서 몇 곱으로 늘어났습니다.
죽음 자체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음을 교회의 역사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죽음으로 이제까지의 모든 일이 의미 없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이 생명을 잃고 얻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스어에서 ‘생명’이라는 낱말은 영혼을 가리킵니다.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옳은 방법과 그른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 안에서 자기 영혼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그른 방법이고, 하느님의 모습 안에 있는 영혼을 사랑한다면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결국, 자신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삶,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섬김의 길은 우리를 영광의 길로 이끌어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삽질’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삽질’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영광을 드러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까요?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7).
오늘의 명언: 나누는 일을 이 다음으로 미루지 마라. 이 다음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법정스님).
사진설명: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나의 본성은 어떤가요?
고스톱을 치다 보면 상대방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고스톱보다 더 정확하게 사람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함께 등산을 가보라고 하더군요. 등산을 통해 그 사람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등산의 어려움 속에서도 남들을 위해 얼마나 배려하는지를 보고, 또 중간에 포기하는지 끝까지 가는지를 보고, 어렵고 힘들수록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부정적인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도 봐야 한다고 합니다.
결국, 위기에서 자기 본성이 나옵니다. 그래서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하나 봅니다. 내 본성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기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본성을 더욱더 성장시킬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진설명: 비가 많이 옵니다. 피해가 없기를...

2020.8.10.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신앙 안에서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생에서의 모든 것이 끝나고 단순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에게 죽음은 하나의 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람, 이웃을 사랑한 사람, 주어진 사명에 충실했던 사람은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을 성인과 성녀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광만을 위해서 산 사람, 이웃에게 상처를 준 사람, 회개하지 않았던 사람은 어둠의 세상에 머물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 또한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전구하고 있습니다.
한 달 전입니다.
평생 군인으로 살았던 분이 하느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최장수 시장이었던 분이 하느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삶의 길이 언제나 영광과 행복이었던 사람은 없습니다. 때로 양심을 속이기도 했고, 때로 갈등과 번민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 생에서의 공과 허물은 묻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생에서 가장 뛰어났다는 사람도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보다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 또한 천상에서 빛나는 별이 될 수 있도록 주어진 하루에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교회는 성 라우렌시오 부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박해자들이 교회의 보물을 바치라고 하자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의 재산을 남몰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그들을 박해자들 앞에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이에 분노한 박해자들은 라우렌시오 부제를 불살라 처형하였습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순교하였지만 교회는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라우렌시오 부제에게 교회의 보물은 화려한 건물, 진귀한 그림, 황금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외로운 사람, 병든 사람이 교회의 보물이었습니다.
후배 신부님도 비슷한 일을 하였습니다.
코로나19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우들에게 1,000불씩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취지에 공감한 교우들 중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굶주리고, 지금 헐벗고, 지금 아픈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주님께 해 드린 것이라는 가르침을 실천하였습니다.
‘울지마 톤즈’에 이어서 ‘부활’이 개봉하였습니다.
울지마 톤즈는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기억하는 영화였습니다. 아프리카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한 이야기입니다. 나병환자들의 발에 맞게 신발을 만들어 주었고, 꿈이 없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통해서 희망을 전해 주었습니다. 신부님은 건강이 악화되어서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고, 톤즈의 아이들과 교우들은 신부님을 기억하며 고마워하였습니다. 부활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썩었지만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영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을 들었던 학생들, 신부님과 음악을 함께 했던 학생들, 신부님과 정이 들었던 학생들의 이야기입니다. 신부님과 함께 했던 학생 중에는 의사, 약사, 공무원이 많았습니다.
지금 의대에 다니는 학생도 4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남수단의 교과서에도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록 신부님은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180여명의 제자들은 신부님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자들 모두 이태석 신부님께서 보여주신 희생의 길, 사랑의 길, 나눔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부활’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참된 부활의 삶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병든 이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살아가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