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 허브’로 떠오르는 한국
얼굴 붕대 감고 쇼핑하는 중국인들 출국 때 여권 사진과 달라 해프닝도
신당동 떡볶이, 신림동 순대, 의정부 부대찌개, 마포 돼지갈비, 대치동 학원가, 동대문 의류상가…. 익숙한 조합이다. 서울 각 지역의 특색을 연결시켜온 이 말들은 이미 고유명사화됐다. 여기에 압구정 성형외과가 빠지면 서운하다. 서울시내 성형외과의 70%가 압구정역과 신사역 주변에 몰려 있다. 중국 여성들도 주로 이곳으로 몰린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성형 전문의들의 원정 성형도 늘고 있다.
강남서 뼈 깎고 강북선 프티 성형
서울 강남 일대의 성형외과는 이름난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진검승부를 벌이는 전장(戰場)이다. 양악 수술을 비롯해 안면 윤곽, 전신 성형 등 큰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은 주로 압구정역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다.
고객 대부분이 의사 못지않게 성형 지식에 빠삭한 데다 최소 열 군데는 돌아보며 의사의 성향을 파악하기 때문에 고객 확보 차원에서도 한데 모여 있는 게 유리하다. 젊은 의사들의 관심도 뜨겁다. 압구정동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레지던트를 마친 30대 초중반 의사들이 고액 연봉을 마다하고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에 수련을 지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병원 간 차이가 크지 않은 보톡스나 필러·리프팅·PPC 등을 취급하는 병원은 강남 이외의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짧게는 2~3주에 한 번씩, 길어도 6개월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시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집이나 회사와 가까운 병원을 찾는 여성들의 심리가 작용한 것이란 분석이다. 강남에 비해 병원 임대료가 싸 시술비용이 저렴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큰 수술은 강남에서, 프티 성형은 강남 외 지역에서’라는 공식이 자리잡은 셈이다.
중국인은 성형 관광, 강남 의사는 중국 원정
하루에도 수백 명이 다시 태어나는 곳, 서울 강남구는 이제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의 ‘성형 메카’가 됐다. “강남 일대 성형외과의 절반은 중국인들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중국 여성들에게 한국 성형 관광은 ‘성지순례’와도 같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인의 한국 의료관광은 2011년에 비해 76.5%나 늘었다. 주중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지난해 베이징·선양·상하이·칭다오·광저우 공관에서 발급한 한국 의료관광 사증은 3000여 건으로 2011년의 1700여 건보다 1300여 건 증가했다. 비공식 성형관광객을 포함하면 2만~3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을 대상으로 고급 호텔과 병원을 한데 묶은 ‘메디텔’도 등장했다. 현재 강남에는 리츠칼튼호텔과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등 특급 호텔 다섯 곳에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들어서 있다.
이들은 면세점 등 쇼핑의 큰손이기도 하다. 중국인 성형관광 중개인 방모씨는 “쌍꺼풀 수술 후 실밥을 푸는 데 필요한 4~5일간 중국인들은 선글라스를 쓰고 서울시내 관광과 쇼핑에 나선다”고 전했다. 그는 “붕대나 마스크로 머리와 코를 싸맨 채 강남과 명동 일대를 다니며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있다면 십중팔구는 중국인 성형관광객”이라고 설명했다. 인천공항 출국 검사대에서는 여권 사진과 얼굴이 전혀 다른 젊은 중국 여성들이 대거 몰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자 2010년부터 ‘성형 확인증’을 검사하고 있다.
한국인 성형 전문의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국내 의료진의 해외 원정 성형도 늘고 있다. 중국 현지의 성형 시세보다 두세 배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대기자가 줄을 서고 있다고 한다. BK성형외과 김병건 원장은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선양은 물론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출장도 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성형외과와 피부과·치과가 합작해 현지에서 협진을 하기도 한다. 한 성형 전문의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중국 대도시를 방문하는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수술을 시작해 다시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 수술을 한다”며 “한국에서 수술받고 돌아간 환자들 상태도 점검하는 등 하루에 수십 명씩 보고 있다”고 말했다. /채윤경 2013-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