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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상하 메시야왕국의 대망 -
(107)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삽니다 역대하 36:11-20
지난 수요일 저희는 유다의 마지막 왕 네 사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이름도 비슷비슷해서 헷갈리는 왕들인데, 잠시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요시야가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하고 백성들에 의해 여호아하스가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석달만에 애굽의 느고왕에 의하여 폐위되고, 애굽으로 잡혀갑니다. 애굽의 느고는 유다에는 은백달란트, 금한달란트 벌금형을 내리고 그 형이었던 엘리아김을 여호야김으로 이름을 바꾸고 유다의 왕으로 세웁니다. 그가 11년을 통치하지요. 곧이어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올라오고, 여호야김을 잡아가게 되고, 그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지만, 석달열흘만에 여호야긴도 잡아가고 그의 숙부였던 시드기야가 바벨론에 의해 왕으로 세워집니다. 아시지요? 그랬던 그가 바벨론을 배신하고 애굽을 좇다가 결국 유다가 멸망을 당했던 것입니다.
자, 오늘은 나라를 망하게 만든 시드기야의 일들을 좀 자세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 앞에서 겸손하지 아니하였으며”(11-12)
“또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그의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게 하였으나 그가 왕을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13)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15-16)
예레미야의 말도, 선지자들의 말도, 심지어 느부갓네살 왕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지난시간 바로왕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요시야가 전사했는데, 느부갓네살왕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있으니, 시드기야가 곧 죽게 될 것을 우리는 벌써 알 수 있습니다. 자, 듣지 않습니다. 겸손하지 않았고, 돌아오지 않았고, 비웃고 욕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이렇게 됩니다. 17절입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17a)
그 뒤는 다 아시지요? 지킬 수 없었다. 다 빼앗겼고, 다 죽었고, 다 잡혀갔다. 나라는 역사에서 지워지고, 다시 노예가 되었다입니다.
자, 이 이야기가, 바벨론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유다가 멸망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열왕기하 25장에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한번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신하지요? 그래서 오늘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토성을 쌓고 포위합니다. 열왕기하 25장 1절입니다.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왕하25:1-2)
그렇게 시드기야 9년부터 11년까지, 2년 반을 버티다가 성안에 기근이 심하여 왕마저 결국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다가 바벨론 군대에게 잡히게 되었던 것이죠. 그 결과는? 26-27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들이 그를 심문하니라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왕하25:6-7)
자,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지요? 왜 시드기야와 백성들은 저 2년반이라는 시간동안, 버티기만 했을까? 히스기야와 방백들은 기도하여서, 저들이 방패를 세우지도, 화살을 쏘지도, 토성을 쌓지도,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시는, 오히려 18만 5천을 송장이 되게 하셨는데, 왜 2년반이라는 시간을 낭비했을까? 시드기야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왜 저들을 돌보지 않으셨을까? 그쵸?
오늘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하고 2년반을 버티며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저들을 돌보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시드기야의 어떤 정치외교적인 확고한 입장이 있었던 때문도 아닙니다. 그래요. 이모든 일이 일어난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기가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조금전 확인하셨잖아요. 역대하 36장 15-16절에 뭐라고 하셨지요?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계속 두 귀가 울리도록 말씀을 해주셨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바벨론의 왕을 통해서도 말씀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누구? 예, 유다의 멸망, 살길이 있는데 살길을 버리고 망하고 죽는 유다를 향해 눈물로 호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야 했던, 예레미야 선지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 어떤 말씀들을 주셨을까요?
열왕기와 역대기에 이 말씀이 자세히 기록되지 않지만, 예레미야 37장, 38장에 보면 이러한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서 유다를 버리지 않고 지키신다고 평안을 이야기하던 거짓선지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나돗의 땅을 사기위해 나가던 중 반역으로 몰려 감옥에 그것도 뚜껑있는 웅덩이에 갇히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때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먼저 모든 백성들에게 한 말입니다.
38장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 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리라”
바벨론에 항복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시드기야 왕에게 한 말도 같은 내용입니다. 17-18절입니다.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당하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뭐라고 합니까? 오늘 이 바벨론 사람들에게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항복하지 않으면 겪게 될 일들을 시드기야에게 다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길게 기록하고 있는 내용을 예레미야가 두줄로 요약해 이미 다 이야기를 해두었던 것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예레미야 38장 21-23절입니다.
“그러나 만일 항복하기를 거절하시면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말씀대로 되리이다 보라 곧 유다 왕궁에 남아 있는 모든 여자가 바벨론 왕의 고관들에게로 끌려갈 것이요 그 여자들은 네게 말하기를 네 친구들이 너를 꾀어 이기고 네 발이 진흙에 빠짐을 보고 물러갔도다 하리라 네 아내들과 자녀는 갈대아인에게로 끌려가겠고 너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벨론 왕의 손에 잡히리라 또 네가 이 성읍으로 불사름을 당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다 전했건만 어떻게 했어요? 오늘 본문 36장 12절, 13절? “그 앞에서 겸손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을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리곤 오늘의 본문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셔서 우리는 몰랐습니다?? 몰라서 그렇게 범죄한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성경이 기록하는 축복의 말씀들보다 저주의 말씀들이 더 길고 양이 많습니다. 왜요? 그만큼 저주가 무섭다는 것을 하나님은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죽음과 화, 저주의 길을 가지말고 생명과 복, 은혜의 길을 걸어가라는 초청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늘 실패하고 죽을 길을 찾아가는 인생을 찾아오셔서 생명길을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 것이지요? 그 절정의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모양으로 선지자를 보내어 말씀하시던 것을 그만두시고, 직접 아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찾아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때요? 한 번 죽는 것이 정하신 것이고, 우리 사람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있어 영생과 영벌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오늘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뇨,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글자로 쓰여져서 우리가 읽을 수 있게 주어져 있음에도 우리 성도들 조차도 그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도 청종하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거절하고 반대하고 미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누구처럼요? 오늘 살 길을 가르쳐 주어도 자기 자존심과 생각 때문에 그것을 버렸던 시드기야처럼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 하나님 대신에 사람을 더 두려워하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는 사람의 비참한 결국을 말입니다. 낱낱이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오늘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거짓선지자들의 예언을 붙들고 바벨론을 배반하고 저 옴싹달싹 못하는 애굽을 안전장치로 삼았던 것이지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바벨론에 항복하기를 거절하던 시드기야의 결국이 무엇입니까? 자기 군대가 다 흩어지고 자기 아들들이 붙잡혀 죽는 것을 보고 자기 역시 눈이 뽑혀 사슬에 매여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것입니다.(왕하25:6-7)
그뿐인가요? 성전에서 청년남녀, 노인, 병약한 사람들까지 다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전의 대소 그릇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약탈하고, 성벽을 헐고, 궁실을 불사르고 모든 기둥, 받침, 놋바다, 가마 부삽 놋그릇 등 모든 기물들을 다 약탈해갔던 것입니다. 물론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바벨론에 끌려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대하36:17-20)
성경이 무엇을 증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된다’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시드기야가 의지한 사람의 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불순종의 결과로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은 고스란히 이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만 의지하시길 축복합니다. 마지막 죽을 자리인줄도 모르고 끝까지 자존심, 체면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여전히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까닭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시고, 피할 길을 내시고 감당할만한 시험이 되게 만드실 하나님의 말씀, 그분의 음성을 늘 구하시고 들으시길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성전이 우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경책이 내 옆에 있다고 나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성전에 계신, 성전의 주인,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이고, 우리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유다백성들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면서 성전이 있으니까 율법이 있으니까 우리는 안전해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이름을 영원히 그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라고 성전을 향해 약속해주셨지만, 또한 동시에 이런 말씀도 함께 주셨습니다.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왕상 9:6-7)
무슨 뜻입니까? 성전이 있다고 율법이 있다고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배우고 청종하며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아 교제하고 그분의 말씀, 그분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며 하나님을 정직하게 따르며 살 때, 우리는 안전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피할 수 없는 진노 속에 나라가 망한 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이대로 끝인 것일까요? 지도에서 사라지고 역사에서 사라지고 기억에서 사라지고 그들의 역할은 끝난 것일까요?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면서 긴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지혜로운 왕이지요? 그 가운데 어찌알고 기도했을까요? 열왕기상 8장 33-34절 그의 기도를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왕상8:33-34)
수십 년이 지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에서 벗어나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지요? 스룹바벨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주의 이름을 인정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곤 다시금 그 백성들이 주님 주셨던 땅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꿈꾸는 것 같은 해방을 맛보게 되는 것이지요? 영영한 희락을 띄고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도 끝은 아닙니다. 언제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구원의 손을 거두지 않고 계십니다. 돌아오시면 됩니다. 어느 곳에 무슨 옷을 입고 있든지, 우리 주님의 이름을 인정하고 다시금 그분을 주인삼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면 됩니다.
그러면서 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복받은 세대인지를 보십시오. 우리에겐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아름다운 성전이 있습니다. 고개만 돌리면 교회가 보입니다. 또한 우리 손에는 우리 글로 쓰여진, 어린아이도 읽어 그 뜻을 배울 수 있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다고요? 이 어마어마한 은총 안에 살면서도 끝끝내 시드기야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와 주변 공동체에 고통을 안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아뇨, 더 이상 시드기야가 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행하는 복된 참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리하여서 오히려 절체절명의 멸망의 순간, 도리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경험하는 축복된 인생과 가문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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