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조선’은 처음이라는 분들을 위해
“더 이상 조선을 봉건사회라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자학사관임과 동시에 식민사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이 ‘잘난 조선’은 망한 것일까? 지면상 다음 회에 논의하기로 한다.”
지난 글을 이렇게 끝냈더니 어느 분이 “잘난 조선은 첨 듣는 말입니다. 다음 호 참 궁금합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처음 듣는다’는 말은 한자어로 ‘금시초문(今時初聞)’인데, 이것은 상대방의 말에 관심과 호기심을 나타낼 때도 쓰지만 상대방의 말을 부정하거나 폄하하고 싶을 때에도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분의 댓글은 이어진 말 ‘다음 호 참 궁금합니다’로 보아서 관심과 호기심의 표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찌되었는지 간에 ‘잘난 조선’이 처음 듣는 말이라는 것은 안타깝고도 불행한 현상이다. 조선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조상이 머물러 살았던 시공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직계 조상이 잘났다는 말을 처음 들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조상이 원숭이였다는 말은 할아버지한테 들었나요, 할머니한테 들었나요?”
뜬금없는 말 같지만 이것은 토론에서 창조론자 윌버포스 주교가 진화론자 헉슬리에게 던진 질문이다. 물론 이것은 시니컬한 유머에 속한다. 시시콜콜히 설명하자면 듣는 이들을 웃겨서 청중의 공감을 사려는 논리적 오류 (유머에의 호소)를 이용한 화법이다. 하지만 이 유머 속에는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는 자기 조상을 좋게 말한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
그렇다. 모든 어른은 어린 사람 앞에서 자기 조상을 좋게 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잘난 조선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회는 이런 인지상정마저 발현되지 않을 정도로 역사 왜곡이 심하다고 한다면 나만의 지나친 억설일까?
나는 대한민국 국민처럼 자기 조상을 폄하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현대인은 없다는 점을 늘 불만으로 품고 있다. ‘잘난 조선은 처음’, 사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충격을 받는다. 이런 말 때문이 아니라 이런 말이 거리낌 없이 공개적으로 발설될 수 있는 분위기가 놀라운 것이다. 수많은 학자와 지식인들, 언론들 그리고 흥행 영화와 텔레비전 사극 등이 조선역사 왜곡 주범들의 목록이다.
오늘의 내 글은 ‘잘난 조선이 처음’이라는 분들을 위해 급히 게재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조선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좋은 글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오늘은 삼성경제연구소 발간 『한국과 일본 방정식』에 수록된 한영우 교수(서울대 국사학과)의 논문 「법고창신과 동도서기의 길」을 일부만 발췌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일류국가가 되려는 꿈은 오늘의 우리만이 아니라 옛날의 조상들도 똑같이 지니고 있었고, 실제로 그 시대의 수준에서 일류국가를 부단히 생산해 온 것이 우리의 역사이다.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를 ‘군자국’ 또는 ‘동방예의지국’이리고 지칭하고, 우리나라의 사신을 주변 여러 나라의 사신 중에서 가장 상석에 배치하면서 극진히 우대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일류국가로 인식되었음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통신사가 일본에 가서 국력을 기울일 정도로 후대를 받은 것도 우리가 일본보다 일류국가였기 때문이었다. 실로 우리는 20세기 100년을 빼고는 언제나 일류국가로 살아 왔다.
조선왕조는 특히 여러 왕조 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국가라 할 수 있다. 전통문화의 한국적 특색이 가장 세련되게 발현된 것이 이 시대이고, 중국 문화를 열성적으로 수용한 것도 이 시대이며, 조선 후기에는 서양의 천주교와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비교적 우호적으로 받아들였다. 상대가 우리의 전통문화를 정면으로 파괴하려는 침략성을 드러내지 않는 한 항상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외래문화를 섭취하여 온 것이 우리 조상들의 기본자세였다.
우리나라는 유교 때문에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속설은 근거 없는 이야기다. 오히려 일본인들이 갖지 못한 인문적 교양과 전인적 사고력은 앞으로 우리가 일본을 능가하는 일류국가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조선왕조가 비록 일본의 무력에 의해 국치를 당했다 하더라도 침략자를 비난할 일이지 조상을 탓할 일이 아니다. 신사(紳士)가 불량배에게 맞았다고 해서 신사를 나무랄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국치 이후 100년 간 조선왕조를 원망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조선왕조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할 때이다. 그것이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21세기 신문명을 창조하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
작금의 대한민국, 조선 말기보다 나은가
나라가 망하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망하는 파망(破亡)이고 다른 하나는 외세의 침략에 의해 망하는 패망(敗亡)이다. 조선은 일본에 의해 패망한 왕조다. 그렇다면 만약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더라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조선이 말기에 들어 급속히 쇠퇴의 길에 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史實)이다. 표현을 바꾼다면 조선은 19세기 들어 파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류 역사에서 망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게다가 조선은 518년이라는 인류 최장수 왕조 수명을 유지한 나라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더라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체 내부의 개혁 또는 혁명으로 거듭나서 다음 수명을 이어갔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호를 변경하게 되어 ‘조선’이라는 이름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에게는 망해가던 조선을 재생시킬 수도 있었던 역사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으로 동학을 드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동학은 실로 위대한 ‘거사’였다. 그리고 동학은 혁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동학군은 최소로 잡아 조선반도의 60% 이상 지역에서 거병했다. 동학군이 내건 ‘폐정개혁안’은 매우 혁신적이었으며, 특히 동학군의 대민지침은 50년 후에나 흥기한 중국 공산혁명군의 것보다 우월했다.
최근 들어 당시 동학군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우수한 인격체들이었는지를 증언하는 일본 측 기록들이 다량으로 발견되고 있다. 그 기록들은 하나같이 동학군 지도자들을 ‘견식이 있는 자들이다’‘조선 국민 중 선각자다’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 <가가와 신보> 등)
그러나 동학군은 일본군에 의해 섬멸되었다. 당시 일본군이 내건 구호는 ‘비도 초멸’이라는 것이었다. 1890년대 동학군이 섬멸됨으로써 조선은 재기의 기회를 상실했고 1910년대 의병의 궤멸로 인해 조선은 그마저 결딴나 버리고 말았다.
조선에 정규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을 겪은 1905년의 시점에서도 3,500명의 관군이 남아 있었다. 일본은 조선의 관군을 해체시켰다. 그러자 그들은 의병으로 변신하여 저항했지만 역시 일본군에 의해 제압되었다.
중요한 것은 만약 일본군이 없었더라면 동학혁명은 틀림없이 성공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문치를 지향한 조선은 전통적으로 민란에 관대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일본군이 들어와 동학군 대처 수위를 조정하기 위해 조사한 보고서에도 나타나 있다. 일본인들은 반란민군에 가장 야만적으로 대처한 것은 자기들이 한껏 근대화라고 자칭하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부임을 알고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는 당시 ‘조선 왕실+집권세력’을 조선 자체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것은 마치 ‘박근혜의 청와대+새누리당’을 대한민국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시점에서 만약 외국군대가 대한민국을 침공한다면, 또는 미국 군대가 지금보다 더욱 현저히 대한민국의 주권을 침탈하면서 인민을 장악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게 될까? 당연히 싸울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짐작건대 소수만이 싸울 것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다수, 민주당의 상당수 세력은 투항하고 말 것이다. ‘다수결이라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유시민씨 같은 부류는 아마도 내심 반길지도 모른다.
조선 말기에도 그랬다. 도시 엘리트가 중심이 된 애국계몽운동 세력은 의병을 기본적으로 시국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폭도의 병란’으로 파악하고 자위단, 원호회 등을 창설하여 일본군의 의병 진압에 일부 협력하는 타협적인 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독립운동가와 매국노가 어떻게 갈라지는지를 역사를 통해 엄정히 읽을 수가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난감한 질문을 던지기로 하자. 만약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이 외세에 의해 망하게 된다면 과연 싸울 사람이 조선 말기보다 많을까? 여러분이 그토록 못났다고 하는 ‘조선말기’보다 말이다. 나는 많을 거라고 확신할 수가 없다.<계속>
첫댓글 나는 머지않아 우리사회의 기득권(旣得權) 세력이 바뀔것으로 봅니다.
현제의 사회구조로는 빈부의 격차를 계속 심화시켜가고 있음으로 물이 일정한 온도에 상승하면 끓듯이
민심도 일정한 한계 불만에 다다르면 끓어 폭발합니다.
우리국민은 절대 어리석질 않습니다. 동학농민운동도 그랬고 4.19혁명도 그랬습니다.
정치인들은 이점을 유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