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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북한·독일 맥주 블라인드 테스트 해보니
5년 전 한국 맥주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코노미스트지 칼럼 제목이다. 당시 주류업계는 물론 대동강맥주를 먹어 본 적이 없는 대다수 한국 국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한국 맥주에 불만이 많았던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이구동성으로 국산 맥주를 공격했다. 맥주업계 종사자들도 술자리마다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렇게 호기심을 자극한 대동강맥주는 기사가 나간 이후 때아닌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그래서 대동강맥주와 한국 맥주, 독일 맥주 등 세 종류를 일반 맥주 평가단 4명과 맥주 전문가 1명을 통해 비교해 봤다. 한국 맥주는 클라우드, 독일 맥주는 벡스로 선정했다. 클라우드는 국가고객만족도(NCSI) 맥주 부문에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위를 했고 국제주류품평회인 ‘몽드셀렉션’에서 금상을 받았다. 벡스는 독일에서 가장 많이 수출되는 맥주 가운데 하나다.
맥주 평가단 4명은 다양하게 구성했다. 시음가로 참석한 탈북민 방송인 신은하씨와 이화여대 이영민씨는 여성,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조선어(한국어)를 전공한 중국인 왕천선(고려대 박사 과정)씨와 정보기술(IT) 업계에 종사하는 직장인 이동규씨는 남성이다. 평가는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했다. 맥주는 투명한 잔에 담아 기호(P, Q, R)로 표시했다. 4명이 돌아가면서 P맥주부터 마셔 보고 평가했다.
왕천선씨는 “쓴맛이 좀 나면서 깊이가 있다”며 평가를 시작했다. 이동규씨는 “부드럽고 기분 좋은 쌉쌀한 맛이 나며 남녀 모두 선호할 것 같다”고 호평했다. 그러나 이영민씨는 “목 넘김이 부드럽고 보리향이 좋다”고 평가한 반면 신은하씨는 “색이 연하고 물을 탄 듯 밍밍하다”고 말했다. 신씨는 “북한에서 아버지 몰래 마시던 그 맛”이라고 고백했다.
Q맥주에 대한 평가는 신씨가 먼저 했다. 신씨는 “여성들에게 ‘강력한 추천’을 하고 싶다” “향긋하고 끝 맛이 달달한 꿀을 먹는 느낌”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영민씨는 “과일향이 오래 남아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동규씨는 “약을 먹는 것 같은 이질감이 들지만 전체적으로 목 넘김이나 부드러움은 좋다”고 말했다. 왕씨는 “생소한 맛인데 대동강맥주는 아닌 게 확실하다”며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R맥주 차례였다. 왕씨는 “맛이 제일 좋은 것 같다”고 운을 뗐고 신씨는 “가장 맥주답고 맥주 애호가들이 좋아할 맥주”라고 평가했다. 이동규씨는 “개인적으로 탄산이 많은 맥주는 싫어하는데 이 맥주는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다”고 느낌을 말했다. 다만 이영민씨는 “탄산이 많아 배불러서 많이 마시진 못할 것 같다”며 “MT에 갔을 때 가져가던 맥주 맛”이라며 친근감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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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단은 세 종류에 대한 평가를 마친 뒤 가장 마음에 드는 맥주를 골랐다. 왕씨는 P와 R을 마지막까지 비교했는데 탄산이 적은 P를 골랐고 이영민씨도 마찬가지였다. 이씨는 “‘혼술(혼자 술 마시기)’하기에는 탄산이 적은 P가 좋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신씨는 P와 Q를 고민하다가 “밍밍한 맛이 별로”라고 평가한 P를 꼽았다. 신씨는 “어릴 적 생각이 가장 많이 느껴졌다”며 P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평가단 가운데 유일하게 이동규씨만이 R을 선택했다. 이씨는 그 이유로 “맥주 특유의 청량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평가단 4명 가운데 3명은 P맥주, 1명은 R맥주를 선택했다.
평가가 끝난 뒤 P, Q, R맥주를 공개한 결과 P는 벡스, Q는 대동강맥주, R은 클라우드로 밝혀졌다. 신씨는 순간 깜짝 놀라며 “어, 이럴 수가. 내가 대동강맥주를 못 맞히다니”라며 의아하다는 듯이 웃었다. 신씨는 P맥주를 대동강맥주로 점찍어 놨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에 온 지 10년이 넘어서인지 입맛이 변했나 보다”고 말했다. 신씨가 “맥주다운 맥주”라고 꼽은 것은 대동강맥주가 아니라 클라우드였다.
대동강맥주는 180년 역사를 가진 영국 맥주회사 어셔스 양조장이 2000년 문을 닫자 북한이 우리 돈으로 약 174억원을 들여 생산설비를 가져와 독일에 기술 자문을 해 2002년부터 생산했다. 그래서 이코노미스트 칼럼을 쓴 대니얼 튜더 같은 영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았는지도 모른다.
맥주는 효모의 종류와 발효하는 온도에 따라 크게 라거, 에일(Ale)로 구분한다. 라거는 대개 차가운 온도(9~15도)에서 효모의 발효를 통해 만들어지고 에일은 대개 따뜻한 온도(18~25도)에서 만들어진다. 조판기 롯데주류 상품개발팀장은 “한국인들은 라거 맥주를 선호하는 편이라 국내 유통 맥주의 90% 정도가 라거 계열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대동강맥주는 에일 계열로 냉장시설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만들 수 있다. 손 대표는 “대동강맥주는 라거 효모를 사용했음에도 에일 온도에서 발효해 과일향을 더 가지고 있고 단맛이 강해 여운이 길다”며 “라거 같은 에일”이라고 평가했다.
맥주의 성분 분석 결과를 보더라도 쓴맛의 정도를 말해 주는 수치가 벡스는 19, 클라우드는 17.5로 나왔다. 반면 대동강은 10.7로 상대적으로 낮다. 손 대표는 “클라우드는 라거의 특징인 청량함과 깔끔함을 가장 잘 발현했고 부드럽다”고 평가했다.
평가가 끝난 뒤 손 대표는 어떤 맥주를 선호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즉답을 피하고 “소주가 좋다”고 돌려서 대답했다. 개인 취향의 차이가 있을 뿐 어떤 맥주가 더 맛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맥주 맛은 그날의 몸상태나 분위기, 선입견 등의 영향을 받으며 맥주 그 본연의 맛은 20% 정도일 뿐이다”며 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