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다소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어제는 장사가 많이 되질 않았는데, 오늘은 괜찮을지 내심 걱정도 됩니다.
비가 오다말다 하다보니 어르신도 잘 나오지 않으시네요. 오늘은 어떨지 내심 걱정이 됩니다.
장사가 우선이 아니라곤 하지만, 간혹 이렇게 장사가 너무 안되는 날엔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9시 15분,
여느날과 똑같이 장을 보러나오는 어르신들.
윗집 어르신은 요양보호사님과 계란 사는 일로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엄니, 한 판 사야해요." , "아녀, 괜찮아 냅둬, 10알 남았으니깐 괜찮아."
하루에 6알씩 삶는다는 어르신. 5일이면 1판입니다. 그럼에도 어르신은 하루에 두알씩 먹는다고합니다.
"엄니, 그러면 계란찜이나 계란말이도 못해요~ 괜찮아요?" ," 엉 냅둬, 안먹어~ 괜찮아~"
내심 요양보호사는 아쉽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르신의 결정권을 존중해드려야합니다.
어르신들은 돈 한 푼 한 푼 나가는 것이 예민합니다. 조금이라도 아껴 먹으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종종 요양보호사들과 어르신들 사이에서 장보는 일로 실랑이가 벌어지곤 합니다. 다 서로를 위한 맘이겠지요.
9시 35분,
"우리 총무 만났어? 내가 결제 해야한다고 얘기 했는데~" 하시는 어르신.
어르신들에겐 외상값이 큰 부담입니다. 경로당 부식 사업으로 외상을 올려도 바로바로 갚아야한다는 어르신들.
볼 때마다 못챙겨줘서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말씀드립니다.
"어르신,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계속 하시면, 제가 오는 일 자체가 어르신에게 부담이 되니, 그냥 얼굴보러 왔구나~ 라고 생각해주세요~"
10시,
오늘도 바닥에 앉아 계신 어르신. 오늘은 어르신을 위해 챙길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었습니다.
어르신께서 드실만한 불가리스, 요구르트, 카스타드, 소세지, 구운 계란 챙겨갔습니다.
이제는 어르신과 얼추 소통이 잘 이뤄집니다. 손짓과 눈만봐도 대화가 됩니다.
어르신께 많이 못갖고와서 죄송하다며, 말씀드리며 그럼에도 "늘 찾아주시고 물건 구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말씀드리니,
멍든 눈 위로 눈웃음을 보이며 손짓해주십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였지만, 몇 달간 지속해서 가니 대화의 방법이 보이고, 이젠 마음도 전달됩니다.
조만간 어르신에게 정말 필요한 물건들이 무엇인지 여쭤보고 준비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싶습니다.
10시 20분,
오늘도 소주 공병 3개를 주신 어르신, 2병씩만 드셔야하지만, 오늘도 한 병 더 주셨습니다.
아들이 주신거라고 하지만, 약속이 계속 어긋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과하진 않으니깐 괜찮은건지, 공병을 주고받으며 찝찝함이 남습니다.
11시,
누군가에겐 별일 없는 계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험난한 길의 여정입니다.
어르신께서 나오는 계단이 쉽지가 않아, 내려올 때도 옆에를 잡고 내려와야한다고 하십니다. 최근 근육을 키우려고 집 주변을 걸으며 운동한다고 하시지만, 갈수록 기력이 쇠약해집니다.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어르신께서 주간보호를 이용하여 건강이 유지되길 바래봅니다.
11시 30분,
회관 옆 어르신이 나오십니다. 어르신이 손짓을 하시며,
"오늘은 암도 없어~~ 그냥 가~~" 하십니다. 지난주까지만해도 잘 모이셨는데, 이번주는 안모이시는것이 신기했습니다.
회관에 식사 담당 일자리 하시는분 안계시는지 여쭤보니, "다 반납했어~" 하십니다.
어르신께서 그간 종종 간헐적으로 음식을 하자고 제안하여 도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어르신. 일이 많을 때는 다들 잘 모이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마을의 구심점으로 있는 회관 이용율이 저조하다는 것에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함께 살아야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이제는 서로 각자도생의 삶으로 가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13시 40분,
오늘도 건강체조를 열심히 하고 계시는 어르신들.
오늘은 조금일찍끝났습니다. 어르신들이 수박 먹고 가라며 한사코 붙잡으십니다. 우리 건강체조 선생님은 "나 어렸을 적엔 어르신들이 간식을 내놓아도 좋은것만 내놓것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바로 가~~" 하시면서 오늘은 한두쪽 먹고 간다고 하십니다. 어르신들은 안먹어주면 안먹는것에 대한
서운함도 큰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썰어놔주신 수박은 모두 다 꺠끗하게 먹고 옵니다.
14시 15분
전화가 왔습니다.
"아니 울 동네 안온댜?"
회관에서 시간을 너무 오래 붙잡았나봅니다. 언넝 부리나케 움직여봅니다. 우유 어르신댁가니 윗동네 요양보호사가 여기에서도 뵈게되었습니다. 어르신께 우유 드리고 잔돈 드리러 쫓아가니,
"아! 뭐더러 쫓아와!! 거기있어!" 하십니다
어르신께서 돈을 늘 숨겨놓는곳이 있는데, 아차 싶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잔돈 주시며 웃으면서, "뭘 그리 봐~" 하십니다.
저도 어르신께 웃으면서 맘이 급해서 막 쫓아갔다고 말씀드리며, 담엔 좀 더 조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14시 25분,
지난번 공병 수거로 소주 140개를 주신 어르신.
공병으로 댓병 3개를 받고, 천원을 주십니다. 공병 덕분에 오늘 어르신 술 값이 굳었네요.
14시 30분,
오늘은 놓치지 않고 우유를 드리러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집에가니 안에 어르신도 돈 챙긴다고 급하게 꺼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르신께 우유를 드리고 잔돈 갖다드린다고하니,
"담주에 줄 때 해줘~~" 하십니다.
주기적으로 주문해주신 어르신들은 잔돈을 잘 안받으시려고 합니다. 잔돈을 맡겨두고 거래하고자 하는 어르신들. 간혹 헷갈리긴하지만 밖에서 계속 일을 해야하는 상황을 마주하다보니 돈을 주머니에 넣는것을 꺼려하십니다. 잘못하면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요.
14시 40분,
떠나려던 찰나 뒤에서 막 뛰어오는 며느님.
최근에 계속 안보여서 어디가셨나 싶었습니다. 며느님께선 한동안 윗지방에 올라갔다가 최근에 다시 오셨다고 합니다.
다음번엔 다시 천천히 들려보기로 말씀드렸습니다.
14시 45분,
회관에 들리니 신발이 두개 있습니다. 회관에 들어가니 어르신들이 수박을 썰어드시고 쉬고 계셨습니다.
잠시 들어가서 인사드리니 와줘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남은 수박 썰어서 주시는 어르신.
"물건도 안갈아주는데, 이렇게 들어와서 봐주고 하니 얼마나 좋소~" 하십니다.
어르신들과 이야기하고 먹어드리는 것도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한 일입니다. 사람간에 에너지를 주고 받는 일이 귀한 일임을 새삼 생각해봅니다.
15시,
마을에 도착시간이 너무 늦었는지, 마을분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선 시간이 늦게 되면 뒤에는 배로 늦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앞에서 늦어지면 마음이 많이 조급해집니다.
도착했을 당시 처음보는 두 어머님들이 계셨는데,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점빵차를 보시곤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습니다.
맥주를 주문하신 어르신 집에 맥주를 갖다드리고 보니, 어르신께서 안계셨습니다. 전화드려보니,
"내가 3시 20분차를 타고 영광읍에 나왔어요~ 미안해서 어쩌지~" 하십니다.
제가 늦어서 기다리시다가 버스를 타셨나보다 싶었습니다. 괜찮다고 말씀드리며 바로 자리를 나섰습니다.
15시 15분,
회관 앞에서 서서 기다리시던 어르신. 바로 손짓 하십니다.
"암도 없어~~ 가가가~~" 하십니다.
그러곤,
"지난번 외상값있지? 이거~ " 하면서 외상값 주십니다.
외상값 주시려고 홀로 회관서 기다려주신게 죄송했습니다. 어르신은 괜찮다고 하시며 안전운전하라고 말씀해주십니다.
15시 30분,
마지막에 들린 어르신 댁. 필요한게 없으신지 여쭤보니, 지난번 고기 이야기를 하십니다.
"지난번 고기 성남식육점에서 샀어?? 어째 다들 고기를 먹더니 맛없다고 난리가 났지 뭐야.. 그래서 그냥 내가 샀다고했어. 점빵에서 안사고."
어르신들의 장보기를 조금 더 수월하게 해드리기 위해 도와드렸던 일이 어르신에게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어르신께서 주문하신대로 가서 사서 왔는데, 맛이 없다고 하니 그 책임도 온전히 저희에게 있겠지요. 어르신들이 신중하게 구매하는 식료품들은 섣불리 도와드려선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어르신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며, 다음번엔 좀 더 신중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르신은 점빵에서 구매를 해주지 못하는것을 늘 미안해하셨습니다. 동네에서도 본인만 구매한다고 한 켠으로는 자부심이 있으셨지요. 마음 무겁게 점빵으로 복귀하였습니다.
16시,
"저기, 울집에 와요~ 내가 돈 줄테니깐, 그리고 올 때 술 한 박스 더 갖고 와요~"
아까 어르신이었습니다.
어르신께 물건 갖다드리고 돈을 받아오는데 어르신께서 괜히 한 박스 더 사신것 같아서 여쭤봤습니다. 어르신께선,
"원래 여름철이 장사가 잘 안되잔아~~ 그리고 올 때도 어찌 그냥 부르나, 한 박스라도 더 해줘야 부르는데도 미안함이 덜하지~" 하십니다.
지난주, 이번주 장사가 한참 잘 안됬었는데, 어르신말씀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한 여름철엔 장사가 원래 잘 안된다는거.
장사보단, 한여름철 어르신들의 건강에 이상이 없길 바라고 있어야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