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교육연대 겨울호에 실어야 한다길래 지난 번 낙동강가에서 느낀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333 프로젝트-낙동강 상류 순례기
지난 11월 13일(토) “333 프로젝트- 낙동강 상류 순례”를 다녀왔다. 반만년 동안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역사를 만들어왔던 우리 민족은 최근 ‘4대강 사업’으로 생명의 젖줄이 공사장으로 바뀌고 수많은 생명을 파괴하는 야만의 시대에 이르렀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짝이 되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면서도 버젓이 '살리기'라는 거짓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황당한 상황에 처해 있다.
'333 프로젝트'는 333대의 버스에 33인의 참여자를 태우고 4대강 현장 답사를 진행하는 '1만 명 답사 운동'이다. 공사 착공 이전의 우리 강의 본연의 모습을 짧은 시간이나마 기억에 담아두어 훗날 복기할 자료로 삼고, 이로써 4대강 본연의 모습을 제대로 알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얻는 과정이다.
교대역에서 130여명이 버스 4대에 분승하여 낙동강 상류로 향했다. 초록교육연대 회원 21명은 2호차에 배정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7시 35분쯤 출발했다. 김광철 대표님 부부, 이희천 선생님 부부, 송홍선 박사, 남희정 선생, 우복실 국장이 함께 했다.
12시 30분경 낙동강 상류 내성천 넓은 모래밭에 내려서 점심식사를 했다. 주최 측은 인원이 너무 많아서 식당으로 모실 수가 없다면서 김밥과 막걸리 1병씩 마련해주었다. 우리들은 둘러 앉아 김밥과 회룡포 막걸리를 맛있게 나눠 먹었다. 흐음, 막걸리는 순하고 부드러웠다.
내성천 넓디 넓은 모래밭을 보니, 어릴 적 영등포에 살면서 샛강에 나가 놀던 때가 떠오르고, 청평 유원지로 놀러가던 때가 생각났다. 한강이 시멘트로 포장되고 수로형으로 바뀐 다음에는 강수욕이 사라져버렸다. 지금이야 살만하니까 너도 나도 바다로 해수욕을 가지만 6,70년대만 해도 한강가 백사장에서 헤엄치면서 즐겁게 놀았다. 물론 거의 매년 물웅덩이에 빠져서 아이들이 익사하는 끔찍한 사고도 있었지만, 영등포 둑 넘어 모래밭을 가로질러서 뛰어다니던 일, 둑에 나가 풀밭에서 개구리 잡고 미끄럼 타던 일, 수영도 할 줄 모르면서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물놀이 하던 일이 떠오른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의 목표로 홍수 방지, 수자원 확보, 수질 개선을 들고 나왔다만, 모래밭이야말로 천혜의 수질정화장치라고 하지 않는가? 환경부 산하 물관리정보시스템(WAMIS)에 공개된 우리 나라 하천의 2010년 8월의 BOD 측정치를 보면 모래사장과 자갈톱[사력퇴(砂礫堆;sand-gravel bars)] 습지의 하천 정화력은 실로 엄청나다. 낙동강 공단도시인 구미시에서 빠져나온 물이 BOD 3.3mg/L 수준으로 오염되어 있는데, 불과 10km만 하류로 내려가도 1.8mg/L 수준의 물로 정화가 된다. 낙동강 하류로 내려가면 거의 1급수라 할 수 있는 BOD 1.1mg/L가 된다고 한다. (오경섭, ‘하늘이 준 수질정화 필터, 모래톱을 없애고 강 살린다고?’ 프레시안, 2010. 11.18)
앞으로 내성천 상류에 영주댐이 건설되면 이 아름다운 백사장도 구경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4대강 사업에서 가장 많은 공역이 투입되는 낙동강의 경우, 수심 6m 이상 준설하는 곳이 전 사업구간의 50%라고 한다. 이렇게 자연 정수필터를 훼손하면 부산, 대구, 구미를 비롯한 영남 지역에 용수를 공급하는 낙동강의 수질은 매우 나빠질 것이다.
낙동강 답사를 추진하고 안내를 해주셨던 수원대 이원영 교수는 버스 안에서부터 경부 운하 이야기와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십 수 년 체험 속에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시장 시절부터 경부운하를 구상하고 타당성 여부를 전문가에게 의뢰했다. 그러나 너무나 경제성이 떨어져서 전문가들은 반대 의견을 분명히 전달하였다. 십 년 후 대선 공약으로 이명박 후보는 경부운하 건설을 다시 내세웠고 당선 후 밀어붙였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운하를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토목 사업을 어떻게든 해야 하는 정부는 4대강 유역의 홍수와 물부족을 해소한다는 핑계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펄펄 살아있는 강을 죽었다고 홍보하고 다시 살린다는 뻔뻔스러움은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봐 걱정된다. 이원영 교수는 군사독재가 끝난 다음 우리 나라는 토건독재국가로 넘어갔다고 평가한다.
우리들은 점심 식사 후에 내성천 강물에 발을 담갔다. 강물은 아주 맑고 차가웠다. 냉기에 놀라 얼른 나왔다가 다시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가니 한결 견딜만 하다. 모래알갱이가 발바닥을 콕콕 찌른다. 이리 저리 이동하니 발바닥 밑으로 물살을 따라 흘러가는 모래가 느껴진다. 온몸이 짜릿하고 상쾌하다. 이렇게 맑은 물이 흐르는 낙동강을 죽었다고 하면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자행하는 그들의 위선과 뻔뻔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게 된 것인가? 불가에서는 탐(貪;탐욕). 진(嗔;분노). 치(痴;어리석음)를 삼독(三毒)이라 하던데... '강 사업'은 일반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는 거의 미친듯이 순식간에 해치우려 하고 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할 인체 대동맥 수술과도 같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이 정권은 임기 후 ‘4대강 사업’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필시 역사의 단죄를 받을 것이다. 아, 그렇지만 포크레인에 매장. 멸절되는 생명들은 어쩔 것인가?
근대 문명은 사람과 자연을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 나누고 자연을 무생명의 물질로만 인식하여 한없는 개발로 자연에 들어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학살해 왔다. 이제는 생명의 원천인 강을 죽이려는 것이다. 강 없이 인류가 살 수 있을 것인가? 이명박 정부와 토건 마피아들에게는 거듭 거듭 물어야 한다. 이들은 돈과 권력으로 얽혀 하늘이든 바다든 땅이든 강이든 공사를 해야만 한다고 믿는 일종의 광신도 집단이다. 개발지상주의, 토건만세라고나 해야 할까?
하지만 이 얼빠진 일들이 무지하게 자행되는 배경에는 국민들의 무관심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얼마 전 <한겨레 신문> ‘즉문즉설’에서 지율 스님은 설악산 단풍 구경에는 8만 명이 몰리면서 4대강이 죽어가고 있는 데는 별 반 관심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오늘의 ‘333 프로젝트’는 4대강이 너무나 아름답게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며, 강과 모래가 곧 나임을 자각하는 순례이다. 근대화. 산업화 외길을 따라 정신없이 살아온 우리들의 정체성이 ‘4대강 사업’을 낳은 것이라 본다. 예수님 말씀대로 우리의 삶을 회개하지 않고서는 ‘4대강의 죽음’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등의 종교계에서 한 목소리로 들고 일어나 ‘4대강 사업 반대’를 외치는 까닭이기도 하다. 전태일 열사가 노동계의 작은 예수라면, 문수 스님은 4대강의 작은 예수인 것이다.
사람들은 강물에서 막걸리도 마시고 사진도 찍었다. 점차 발이 얼얼해지고 머리털이 쮸삣 서는데도 나가기가 싫었다. 그냥 팍 드러눕고 싶었다. 모래는 어디서 왔을까? 우리 나라는 화강암 천지다. 땅 속 깊은 지층에서 서서히 식으면서 광물질과 생물들을 흡입하면서 굳은 것이 화강암이고, 화강암은 1년에 0.1 센티 미터씩 융기하였다. 1억년에 10킬로 미터 위로 상승하면서 갖은 풍화 작용을 거치면서 북한산이 되었고, 도봉산이 되었다고 한다.(이원영 교수님의 화강암 이야기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화강암은 다시 풍화작용으로 서서히 부서져 바위로, 돌조각으로, 마침내 모래로 태어나게 된다. 모래는 화강암 돌조각이 물과 함께 흐르고 흘러 구르고 굴러 깎이고 깎여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수억년 전 화강암과 나는 모래와 발바닥으로 하나가 되었다.
회룡포를 거쳐 경천대로 가던 중 공사 중인 포크레인을 만났다. 언젠가 법정 스님이 갈파하셨던가? 전설의 일각수(一角獸)는 바로 이 포크레인이라고...세상을 마구 파헤치는 일각수. 모든 걸 파괴하고 혼돈으로 몰아가는 개념 없는 기계 인간. 포크레인은 기계 인간들의 연장(延長)이다. 4대강 어디를 가든 우리는 포크레인을 만난다. 그것은 생명 없는 기계 인간들의 욕망의 출구이다.
낙동강의 비경 경천대를 보고 내려오니 저녁 6시다. 사방은 벌써 컴컴해졌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각자 한 마디씩 소감을 나누었다. 나는 이명박 정부를 불가에서는 '역행보살'로 부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반드시 넘어가야할 과정으로, 과거에 압축 성장하듯이 압축적으로 온갖 모순이 돌출하는 시기라고나 할까? 급히 세운 나라 급히 망한다고 서양이 200년 걸린 근대화를 30~40년 만에 따라갔다고 좋아만 할 일은 아니다. 그 만큼 모순은 켜켜이 중첩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는 우리 내면을 조금 들여다보자고 했다. 외부의 침략을 받고 민족의 허리가 동강이 나고 어쩔 수 없이 외부의 힘들에 굴종하고 그들을 닮아가려고 노력한 세월이 150년쯤 된다면, 앞으로 150년쯤은 우리의 문화, 예술, 역사, 말, 정신, 음식, 옷, 멋 등에 대해서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다.
흠, 겨우 1만원 내고 낙동강 상류 답사를 너무 잘 하였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새삼 절실히 느꼈고 무엇보다도 이원영 교수님의 열정과 희망을 강력하게 느낄 수 있었다. '333 프로젝트' 추진단 여러분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2010. 11. 23.
첫댓글 초록교육연대 소식지 겨울호에 실린 선생님의 글<333 프로젝트 -낙동강 상류 순례> 함께 공감하며... 밑줄 그어 가며 읽었습니다. 늘 좋은 글을 올려 주시는 선생님 덕분으로 마음의 양식이 늘어 나는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구, 부끄럽습니다...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