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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인종 청소 실패와 팔레스타인 해방의 전망」
이 책은 제목이 아주 길다. 제목에 담긴 내용은 더 길게 느껴진다. 요즘 거의 매일 이스라엘과 중동전쟁 뉴스가 빠지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싸우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누구 때문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싸우는 이유를 조금 안다고 해도 어렴풋이 알 뿐이다. 어제(우리 시간 6.23) 한밤중에는 미국이 ‘벙크버스터 미사일’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란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하고, 결국 이스라엘과 이란이 휴전에 합의했다고 한다. 서로 자신들이 이겼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휴전에는 뭔가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싸우는지 이해해 보기 위해 이 책을 읽어야겠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참 묘한 거여서 알다가도 모를 때가 많다. 관심 가지고 따라가 보면 그렇구나 하지만, 따라가지 않고 담 넘어 가는 구렁이 보듯, 소 닭 보듯 무심히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둥글듯이 둥글둥글 살면 좋을 텐데… 왜 그렇게 피 터지게 싸우는지 알고 싶다면 이책을 따라가 봐야할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서방 여러 나라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그들을 피해자로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한다. 〈노동자 연대〉기자이기도 한 이 책 책임집필자 이원웅을 비롯해 모두 12명의 지은이는 서양인이 8명, 한국인이 4명이다. 17개 소제목마다 저술자가 누구인지를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이 마르크스주의자들로 〈노동자 연대〉에서 활동하거나, 영국 사회주의 노동당에서 활동하는 이들로 팔레스타인과 연대활동을 하거나, 중동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자와 편집자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좋게 보지 않으면서 침입자로 혹은 약탈자로 본다. 그래서 이들은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처럼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이스라엘과 중동전쟁에 대한 「연표」를 책 머리에 싣고 있는데,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약속하여 팔레스타인 땅으로 모여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움으로써 주변 무슬림 국가들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았으나, 그보다도 훨씬 이전인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이미 영국이 시온주의자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에 시온주의 국가를 건설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갈등이 시작되면서 시나이 반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해묵은 고대의 역사까지 들추지는 않았지만, 책임집필자 이원웅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의 끔찍한 인종학살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적 해법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유익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1장】이스라엘 사회와 국가의 성격
본론으로 들어가면, 유대인들 모두가 이스라엘이란 국가의 존재를 찬성하였을까를 묻고는 답은 ‘아니다’라고 한다. 일부는 반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세계 곳곳의 많은, 평범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공감하고 있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의 지하조직인 하마스가 기습공격하여, 이스라엘인들을 수백 명을 죽이고, 납치한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의 여파로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극대화되고 있다. 하마스의 은신처라며 병원까지도 공격해 공분을 사기도 한다. 가자지구 피난민들은 갈 곳을 잃었고, 죽음을 맞거나 난민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공격한 하마스를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공격을 계속한다. 폐허가 된 가자지구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해졌다. 어린이와 노인의 피해가 극심해져 어린이는 부모를 잃고, 다리를 잃고, 치료받을 곳도 없다. 눈물겹도록 하루를 살아간다. 아주, 아주 객관적인 우리가 보기에도 이런데 하물며 당사자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전쟁의 원인을 짚어보면 ‘1880년까지만 해도 아랍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인 유태인 간은 평화가 있었고, 서로 어울려 살았다. 당시는 여기에 살던 팔레스타인 인구는 50만, 유태인은 2만 5천이었다. 나치 등에 의해 유럽에서 유태인 박해가 시작됨으로써, 시오니즘으로 무장한 유태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밀려들어 왔다. 시오니즘이란 유대 국가를 건설하려는 운동을 말하는데, 유대인들이 신성시하는 예루살렘의 시온산에서 따온 말이다. 유대인들은 어디에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할지를 찾던 중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야 말로 유대 국가를 세울 가장 적절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팔레스타인은 터키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트르키예로 이름이 바뀐 터키는 당시 독일 편에 가담해 영국과 싸우고 있었다. 이에 영국은 아랍이 전쟁에 협력하면 팔레스타인을 아랍에게 돌려주겠다는 ‘맥마흔 서한’을 발표했다. 메카의 수호자 후세인은 영국인 로렌스 장군의 도움을 받아 터키군을 무너뜨렸다. 이는 〈사막의 로렌스〉인가 하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은 미국 내 유대인들의 협력을 얻어 미국을 참전시키고자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 수립을 지지한다는 이른바 ‘발포어 선언’을 했고, 전쟁이 끝나자 유대인들은 영국의 비호하에 팔레스타인으로 이민을 계속했고, 1936년 우수한 기술과 자본으로 정착촌을 건설하고 협동조합과 산업시설을 갖추었으며, 과격한 시오니스트들은 비밀리에 군대를 길렀다. 독립의 꿈이 무산된 아랍인들은 시오니스트와 영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이에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둘로 분할 해, 유대인과 아랍인이 각각 독립 국가를 세우게 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 전역이 유대민족의 땅이라 주장하면서, 제안을 거부했다. 영국이 손을 떼고 철수하자, 1948년 5월 15일 시온주의 운동 지도자 ‘벤 구리온’이 텔라비브에서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했다.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후 제1차 중동전쟁이 시작되었고,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하루 아침에 100만에 달하는 아랍 난민이 생겼다. 아랍국가들 속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 때문이었다. 아랍의 반이스라엘 투쟁은 자연스럽게 반미투쟁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오늘에 이른다.(‘한 권으로 보는 세계사’를 요약했다)
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은 거의 1900년 동안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살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추방은 서기 70년에 일어났다고 하는데,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하던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의 유대인 성전을 파괴하고, 예루살렘이 속했던 속주 유대에서 모든 유대인을 쫓아냈다. 그러나 추방당하기 전에 이미 수백 년 동안 유대인들은 지중해 전역에 흩어져 살았고, 로마제국 정치·상업의 중심지였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는 유대인이 1/3을 차지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땅은 애초부터 종교가 공존해 오던 곳이었다.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 모두 팔레스타인 땅에서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만의 땅으로 만든다는 프로젝트는 그곳이 유대인이 살기에 가장 위험한 곳으로 만들 뿐이었다.
1870년 경제위기 이후, 유럽에서는 조직적으로 유대인을 혐오하는 정치세력이 등장했다. 러시아의 차르 정권은 유대인에 대한 폭력과 대학살을 조장했고, 이후에는 히틀러가 그 주장을 이어받아 좌파를 분쇄하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다. 유대인 금융가 집단이 세계를 조종한다는 ‘데마고기*’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시온주의는 유대인 혐오자들과 근본은 공유하지만, 유대인이 다른 인종과 공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유대인만의 국가를 따로 세워야 한다는 게 시온주의자들의 대안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나라를 세우고자 한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을 몰아내려면 유대인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어려웠다. 제국주의의 지원이 필요했다.
*demagogy : 민중을 선동하기 위하여 정치적인 의도로 유포시키는 허위 선전
오늘날 시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유대인의 오랜 독립국가 염원을 실현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참말이 아니다. 이스라엘에 정착한 유대인의 압도적 다수는 원래 유럽 등 아랍 바깥에 살았고, 홀로코스트 이전까지만 해도 별도의 유대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유대인에 대한 차별에 있었고, 기존 거주지역을 떠나 새로운 국가를 만들겠다는 주장에 질색하는 유대인도 훨씬 더 많았다.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은 더더욱 소수였다. 유대인이 차별받는 인종이라는 것은 독립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민족이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시온주의는 유대인의 자연스러운 민족감정이 아니었다.
최근 이스라엘은 미국, 프랑스, 독일 등지의 극우주의 파시스트 세력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의 무슬림 혐오에 편승하는 것인데. 이는 유대인 혐오까지 강화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서방에 사는 무슬림과 유대인은 지배자들이 ‘외부세력’으로 보고, 속죄양 삼기 쉬운 대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홀로코스트로 목숨을 잃은 사람 중에는 유대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집시라 불린 로마인, 사회주의자, 동성애자, 장애인들도 많았다. 하지만 유대인은 터무니없이 더 많았다. 나치 점령하 폴란드에는 유대인 아닌 폴란드인이 300만 명이었는데, 그중 9%가 홀로코스트로 살해당했다. 하지만 유대계 폴란드인은 92%가 홀로코스트로 살해당했다.
이스라엘 옹호자들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유대인 혐오’로 몰아세운다. 유대인 혐오는 무고한 사람들을 겨냥한 것으로 위험한 무기다. 오늘날 파시스트들 사이에 실재하는 유대인 혐오는 “유대인은 다른 인류와 다르다. 그들은 인류의 적이고, 가는 곳마다 자신들만의 ‘국가 안의 국가’를 꾸린다. 그들은 묘한 능력이 있어서 적은 인원으로 배후를 조종할 수 있다.”고 한다. ‘유대인은 다른 나머지 인류와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에 타협하는 쪽은 시온주의자들로 이스라엘 비판은 유대교나 유대인이 아니라, 시온주의자들과 그들의 정치조직인 이스라엘을 향한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 혐오를 다른 세계인들이 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인 약 1,200명을 사망케 한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목표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모두 내쫓아 버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내각의 일원인 아비 디 흐트는 “우리는 가자판 나크바를 벌이고 있다.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고 했는데, ‘나크바’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 있었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팔레스타인 인종 청소를 일컫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나크바를 부인해 왔지만, 이스라엘 정치지도자들은 이번에도 가자판 나크바를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상대로 여러 차례 전쟁을 벌여왔다. 2008∼2009년 침공으로 약 1,400명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고, 2012년 174명, 2014년 공중 폭격과 지상군으로 2,250명이 죽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같이 저항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비례성’원칙으로 정당하게 복수할 권리는 오직 식민 점령자에게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빛의 민족이고, 저들은 어둠의 민족이다.”고 한 ‘베냐민 네타나후’현 이스라엘 총리의 말은 비례성이나, 공정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는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를 유의하며 공격해야 하는가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이스라엘인 응답자 4/5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우리도 일제시대에는 식민지를 겪었지만, 정착자에 의한 식민주의는 원주민에게는 가혹했다. 여기에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호주와 미국이 대표적이다. 두 지역의 토착 원주민은 거의 절멸되다시피 했다. 호주에는 원래 원주민이 거의 100만 명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1788년 영국은 호주 전체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무주지로 설정했고 원주민을 학살했다. 이제 겨우 3%만 남아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아메리카도 비슷하다.
정착자 식민 지배의 다른 유형은 남아프리카인데, 여기서는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온 식민 정착자들이 원주민 저항에도 충돌하고, 자기들끼리도 충돌했다. 1913년 원주민토지법을 만들어 인구가 다수인 흑인에게 전체의 13% 토지 소유권만 허용했다. 흑인들은 생계를 위해 광산이나 농장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북아메리카, 남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흑인 원주민이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함에도, 흑인노동자가 경제 중심적 구실을 함에도, 백인지배에 대한 대중저항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독특한 형태의 정착자 식민주의로 호주·미국·남아프리카 유형을 모두 결합한 형태다. 이스라엘은 잔혹 행위와 공포를 심어주는 방식으로 건국됐다. 팔레스타인인 약 75만 명을 살던 곳에서 쫓겨냈는데, 그중 일부는 요르단이 통제하던 서안지구로, 다른 일부는 이집트가 통제하던 가자지구로 옮겨갔다. 이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 3/4을 장악했다. 이스라엘은 존립을 위해 제국주의 후견자에게 구애했다.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은 처음에는 영국처럼 모호한 정책을 썼다. 미국의 관심사는 중동의 석유였고 소련의 확대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1961년 이란에서 석유를 국유화하고, 이듬해 이집트에서 압델 나세르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미국은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위험을 분명히 보여 줬다. 그러나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대적 경제·군사 지원을 했고, 급기야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가들에게 수모를 안겨주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유대인 로비’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제국주의적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1997년 사다트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방문해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이듬해 체결된 캠프데이비드협정으로 이집트는 최초로 이스라엘을 인정한 아랍 국가가 되었다. 협정으로 이집트는 미국과 가까운 기반을 마련했고, 현재 가자 남부 국경을 통과하는 것은 이집트에게 손 벌려야 하는 일이 되었다. 1994년 요르단, 2020년 아랍에미레이트·바레인·모르코가 이스라엘을 인정했다. 2023년에 미국의 중재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대사 교환을 논의하던 중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협상은 중단되고 있다.
‘하마스’는 전 팔레스타인 저항단체인 ‘파타’가 민족주의적 저항에 실패함으로써 대안적으로 출현했고, 성장했다. 1970년 가자지구에서 결성된 이슬람주의 복지 제공 조직으로 시작해 처음에는 이스라엘의 일정한 지원도 받았다. 이스라엘은 이들을 파타 세력을 견제할 균형추로 여겼기 때문에 지원했다. 하마스는 무슬림형제단과 연계가 더 광범한 초국가적 이슬람주의 운동을 표방하면서, 독자적 팔레스타인 세력을 구합해 2007년 6월 하마스는 가자지구 전역을 장악했다. 그때부터 사실상 정부 구실을 해왔다. 하바스가 장악한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에 의해서 오랜 기간 봉쇄됐고, 가자지구에서는 외부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주민의 비율이 10%에서 80%로 늘었다. 2018년 청년 실업률이 무려 70%, 가자지구는 점점 더 궁핍해 갔다.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대학살 계획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 아마 세계가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매시간 전해지는 보도를 통해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전쟁범죄를 목격하고 있다. 도처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대중운동이 분출되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끔찍한 전쟁은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근본적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이스라엘이 벌이는 민간인 공격은 단지 분노발작 같은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의 저항 의지를 꺾고 그들을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한 의도적 전략이다.
2022년 11월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의원 선거에서 극우세력이 핵심으로 진출했다. 이들은 네타냐후 연립정부의 핵심 세력이 됐는데, ‘민족 종교당-종교적 시온주의당’두 당 지도자가 재무부장관, 국가안보부장관이 되었다. 둘 다 서안지구를 완전히 병합해 팔레스타인 당국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들이다. 이스라엘군을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정착자 운동을 지지한다. 학살을 지지할 뿐 아니라 무장한 정착자들의 테러까지 부추긴다. 또 그들은 나크바, 즉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 75만 명을 잔인하게 몰아낸 사건을 ‘미완의 과업’이라고 여긴다. 2022년 중도 좌파 연립정부하에서도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는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전 해보다 82%늘었고, 2020년보다는 500% 가까이 늘었다.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정착자 인구를 늘이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강탈과정을 자신들의 영구적 속성으로 만들려고 한다. 최초의 정착자 유입은 홀로코스트 전후로 유럽에서 유대인 혐오를 피해 온 ‘아슈게나짐’이라고 하는 유대인 유입 물결이었다. 유럽 출신 유대인 중에서 이스라엘 건국의 기초를 놓은 것은 세속적인 노동당식 시온주의자 세력이었고 다음으로 큰 정착자 유입은 1940∼1950년대 북아프리카 출신 ‘미즈라힘’유대인과 ‘세파르딤’유대인 유입이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유입이 이루어졌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1980년과 1990년대 옛 소련에서 온 세속적 유대인 유입 물결이었다.
중동의 난민촌과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팔레스타인인은 7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의 귀환권도 여전히 팔레스타인 독립의 필수조건이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이후 20년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은 굴복한 듯 보였다. 1969년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팔레스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 자신을 팔레스타인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우리 이스라엘이 그들을 쫓아내고 나라를 빼앗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로 무섭고 황당하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하는 현실은 인종차별적이고 거짓임이 드러났다. 1967년 6일 전쟁으로 아랍 국가들이 참패하고 난 후,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이끄는 무장 저항세력은 1982년 레바논에서 분쇄됐고, 지도부는 튀니스로 망명해 영향력이 크게 약화됐다. 그러나 5년 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대중은 행동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회의 여러 부분을 이간질해서 각개 격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 전략은 2021년 5월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들고 일어난 ‘단결 인티파다’의 분출로 무산됐다. 그리고는 마침내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은 팔레스타인이 진압당하거나 굴복했다는 이스라엘의 환호를 무산시켰다.
1946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한 원조는 2600억 달러로 추정된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 의지는 중동 대중에 의해 여러 차례 쓰러졌고, 이는 미국의 중동 장악력을 위태롭게 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이란의 샤 팔레비 정권이 무너졌고, 2011년 이집트 혁명으로 무바라크가 권좌에서 쫓겨난 것이 그 사례다. 미국과 친해지려는데 반발한 아랍 혁명은 여전히 중동과 북아프리카 권력의 근심거리다. 혁명이 다시 분출해 제국주의 질서를 뒤흔들 위험은 언제나 내포하고 있다.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자신이 중동의 강자임을 입증하고 미국은 프랑스를 제치고 최대 원조국이 되었다. 미국, 영국, 유럽의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지켜주는 충견이자 보루인 이스라엘을 언제나 지켜 줄 것이다. 누가 이스라엘 정권을 잡든 그 정권이 어떤 전쟁범죄와 인권침해를 자행하든 이스라엘을 방어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가지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이 더 광범위하고 반제국주의 반란의 기폭제가 될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막느냐는 것이다. 식민 정착자 국가인 이스라엘의 관심은 어떻게 해서든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막고 분쇄하는 것이지만,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질서의 안정성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2장】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은 팔레스타인, 이라크, 요르단 등 중동 여러 주요 지역을 차지했고, 팔레스타인에 시온주의자들이 정착하도록 한다고 약속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반식민 저항을 제압하는 데 시온주의 운동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중동을 지배하던 유럽제국들의 힘은 쇠퇴하고, 미국이 중동에서 입지를 내세우게 되었다. 미국은 직접적 식민 지배를 의도하지 않았고, 현지 국가들과의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미군 기지 건설을 통해 비공식적 제국을 건설하여 지배력을 행사하려 했다.
미국은 1970년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 1978년에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맺도록 주선했다.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을 배신한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았다.
(너무 긴 것 같아 따로 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