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붓다전"을 여신 범주 큰스님을 뵙고
취재 /전현자
기자 이렇게 큰 전시회를 준비 하시느라 바쁘셨을 것인데, 전시장에 나오셔서 직접 작품 설명도 해주시며 저에게는 면담을 흔쾌히 받아주시어 매우 고맙습니다. 큰스님, 미국에서도 전시회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범주 큰스님(이하, 스님) 1980년대에 L.A.에서 했습니다.
기자 미국에는 언제 가셨는지요?
스님 1980년도에 L.A. 달마사 주지를 맡게 되어서 였습니다.
기자 어떤 일을 주로 하셨는지요?
스님 숭산스님 모시고 주지를 하면서 한국교포분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했습니다.
그 뒤, 뉴욕으로 가서는 정법사를 창건하고 미국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선문화, 선화를 가르쳤고 ‘소호’센터에서 그리고 아시아 소사이티 문화센터에서 퍼포먼스도하고 선화를 통해서 참선을 포교, 전파하였습니다.
기자 스님을 초청하신 분은 누구신지요?
스님 숭산스님이셨습니다.
기자 뉴욕에서 포교 하셨을 때 현지인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요?
스님 미국에서 선에 대해 붐이 일어나고 있었던 때라 특히 지성인들이 선에 관심이 많아 선화 전시회를 L.A. 뿐만 아니라 뉴욕, 뉴저지 등에서 하면서 선화에의 관심은 많지 않았어도 선에의 관심을 선화를 통해 이끌어 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그때 당시 불자인 선무용가 이선옥씨가 있었는데 그분과 같이 퍼포먼스를 많이 했고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뉴욕 타임즈에서 몇 페이지를 할애해 소개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프랑스 파리의 문화센터에서 초청해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기자 한국으로 돌아오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스님 L.A.에서의 5년 뉴욕에서의 약 5년 등 10년 정도 포교활동을 하다 보니 수행에 깊이 정진해야겠다는 간절함이 생겨 한국에 들어와 속리산에 토굴을 하나 짓고 10년을 포교보다는 선묵화 정진으로 수행 했습니다.
기자 스님의 달마도가 미국의 한국절은 물론 일본절에도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스님 미국에서 포교활동 할 당시, L.A.에 일본 선(Zen)센터가 있었는데 센터장이셨던 스님과 숭산스님께서 깊은 친분이 있었던 것을 계기로 그 선원에서 선화 지도도 했었고 소노마 마운틴의 일본 선사하고도 친분관계가 달마도가 모셔진 것일 것이며, 숭산스님의 제자가 있는 세계 어느 곳에나 제 작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자 소호에서의 전시와 퍼포먼스의 반응은 어떠셨는지요?
스님 소호 오픈센터는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문화 예술을 나누며 가르치는 곳입니다.
선화를 지도했는데 선화는 선수행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선을 바탕으로 한 선화를 하는 예술인이 흔치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좋은 반응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서양화를 전공하셨다고요?
스님 홍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 했는데 4학년 2학기 때 인생의 참의미를 찾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급하게 느껴져 대학 졸업장도에 대한 필요성도 없어져 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자 전강 큰스님께서 은사스님이시라고요?
스님 네, 그렇습니다.
기자 전강 큰스님을 아시고 찾아 가셨나요?
스님 몰랐습니다. 출가해서 춘성스님을 찾아뵈었는데, 춘성스님께서 한국의 최고 선지식이시라며 전강 큰스님을 소개해 주시어 제자가 되었습니다.
기자 한국으로 돌아오신 목적은 이루셨습니까?
스님 수행이란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니, 깨달은 다음에도 습성을 변화하기 위해서도 보림을 하는 것이니 정진이 된 만큼 전체를 위해 사는 것이 수행자의 삶이라 생각합니다.
기자 스님의 수행이 달마도로 나타날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스님 사람마다 특성이 있는데, 수행을 통해서 얻은 기운, 정신을 말로써 표현하는 분들도 있고, 저처럼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하겠고 여러 가지 각기 다른 방편으로 표현 전달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회의 주제가 ‘해피 붓다’인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진입에 와 있는 대단한 나라가 되었는데, 그 반면 정신적인 면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어 OECD국가중 자살률 1위인 국가가 된 것은 그만큼 마음 정신적 심리적 문제를 겪는다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일이 한국 사회에 무엇보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며, 그 극복의 방안은 불교에서, 즉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가능하다고 보기에 이러한 관점에서 치유, 즉 힐링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불교가 기복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국민의 정신적인 문제에 힘이 되지 못하는 대안으로 수행의 기운을 전하는 대안으로 힐링과 웃음을 주제로 전시를 합니다. 웃음은 육체적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암이나 여러 병들의 원인은 마음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은 것을 웃음을 통해 면역력 향상이 증진되고 또한 웃는 마음엔 복이 온다는 뜻을 생각해보면 웃는 모습으로 관계성 회복이란 특히 긍정적 소통이 필요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안 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전시회의 수익금은 수행정진만 해오시며 나이 들고 때로는 병들어도 오갈 데도 없는 스님들을 위해 쓰일 것입니다.
기자 마지막 말씀에서 스님의 법향기가 봄꽃처럼 느껴집니다. 선화 중에 포대화상이 많은 것 같습니다.
스님 미륵보살인 포대화상을 통해 웃음과 복을 나누어 주는 행복한 부처님, 해피붓다를 선화 즉 치유예술로써 포대화상을 여러 방면의 모습과 웃음으로 표현 했습니다.
스님 미국에서도 한국 교포들은 차이가 없다고 봐야합니다. 숭산스님의 경우 현지 미국인들에게 선을 포교하신 것처럼 서양인들의 관심은 선, 선불교이기에 복을 바라는 것이 아니기에 선불교를 보다 쉽게 대중화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스님은 누구십니까?
스님 스님은 누구냐고?
기자 네
스님 당신은 누구요?
기자 .............
스님 묻는 당신이 있으니 나에게 물었잖아?
그게 둘이 아니다.
범주(梵舟) 스님
스님은 출가 전 홍익대 미술대학에서 4학년 1학기까지 수학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이고,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중 ‘반야심경’을 통해 불교를 만났다. 1966년 출가해서 전강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구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용화사 법보선원, 범어사, 안국사, 영월암, 위봉사 등에서 10년 동안 참선수행하고 때론 전국을 헤매며 만행을 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건강이 안 좋아진 상태로 머물던 안국사에서 수행 방편으로 선화를 시작했다. 1980년대에 미국에 갈 기회가 있었고 그곳에서 숭산 스님을 도와 5년간 포교활동을 했다. 그리고 뉴욕에서 선묵화 전시회, 선 퍼포먼스 등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2006년 부산 APEC 세계정상 영부인 초청 퍼포먼스 등 30여회에 달하는 국내외 퍼포먼스를 통해 선문화와 선묵의 세계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현재 속리산 선문화예술원(달마선원) 원장의 소임을 맡고 있다.
연락처 : 검색어 -상주 달마선원
(054) 535-0378